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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3일 토요일

국기에 대한 쓴 웃음

요즘 들으니 "국기에 대한 맹세"를 그 텍스트를 약간 고칠 뿐 본격적으로는 그냥 그대로 두려 한다고 합디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냥 쓴 웃음이 나오지요. 소련에서 태어난 죄 (?)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국기에 대한 온갖 맹세들을 급우들과 함께 수도없이 하곤 했어요. 그런데, 소련이 막상 망하니 이 급우들 중에서는 할복이나 거병은 물론, 약간이나마 신경을 써준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강요되는 맹세들을 달달 외우면 외울수록 냉소만 강화될 뿐이지요. 맹세를 통해 마음 속의 진정한 사랑을 키운 경우를 어디에서 본 분이 계세요?

초등학교3학년, 제 나이 9살. 제가 그 때에 소년공산당 (피오네르) 입단식을 치르면서 빨간 깃발 앞에서 "심신을 바쳐 모든 힘을 쏟아 공산당의 사업을 복무하도록 할 것"을 엄숙히 맹세했지요. 나중에 거의 다달이, 무슨 행사할 때마다 역시 "공산당 사업을 위한 투쟁에 준비돼 있으라!"는 구령에 따라 "네, 항상 준비돼 있습니다!"라고 외치면서 거수경례를 했지요. 아마도, 그 구령을 지금이라도 들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거수경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 앞에서 그렇게도 엄숙한 표정으로 "맹세"를 외쳤던 그 급우들은, 나중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댔을까요? "아, 저 대머리 발로댜를 보기만 하면 졸나 웃겨 목참겠구먼. 아까 식을 치르면서 겨우 참은 거야" 이 "대머리 발로댜"는 바로 그 깃발에서 그 얼굴을 나타냈던 블라디미르 레닌이었습니다 ("발로댜"는 "블라디미르"의 애칭). 강요된 맹세를 하면서도 국가의 의례에 대한 염증만 키운 것이지요. 결국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어쩔수 없이 거래의 관계인데, 이 관계에서는 국가가 제시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면 아무리 많은 애국 의식들을 강제해봐야 별 쓸모가 없는 것이지요. 구 소련 같으면, 지식 청소년들에게 살아숨쉬는 혁명적 정신도 진정한 자유도 제시하지 못햇으며, 노동계급의 청소년들 보기에는 간부들만 외국에 왔다갔다하면서 부럽게쓰리 잘 사는 불평등한 국가이었습니다. 결국 국가로부터 그 충성에 대한 어떤 가치 있어보이는 보상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에 상당히 냉소해진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어차피 실생활에서 지켜지지도 않는 공산주의 이상들은 냉소와 조소의 대상이 돼도, "맹세의 문화"가 강요했던 일상적인 군사주의 정도는 잘 뿌리를 내렸지요. 제 급우들의 절대 다수는, 아프간에 가서 "야수와 같은 폭도" (무자헤드)들을 잡아죽이는 것을 "진짜 남자다운 일"로 생각했으며, 학교를 방문하여 "애국 애군 미담"을 나누었던 아프간 침략의 상이병들에게 영웅대접을 해주었지요. 이들이 국가를 별로 정의롭고 평등한 것으로 보지 않았지만, 전우애로 꽁꽁 묶여진 "진짜 사나이의 집단", 즉 군부대를 "남성의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지요. "맹세의 문화"는 애국 시민을 키울 수 없어도, 살인훈련에 무신경이 된 꼴통 마초 만들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의 지배자들이 이 "맹세의 문화"를 이처럼 사랑하는 것이지요.

한국 대학생들에게 여론조사해보면 대다수가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북유럽/일본/스위스에서 태어나겠다"고 답합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에 대한 그 무슨 주문을 외우게 해도, 자랑스러운 태극기의 그늘에서 다시 타어나고 싶지 않다는 태도가 안고쳐질 것에요. 국민연금이라고는 용돈 정도 주면서도, 제대로 된 실업수당도 교육/의료 혜택도 주지 않으면서도 남성들에게 유럽에 비해 두배 긴 기간을 여건이 아주 열악한 군에서 보내게 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이게 공정한 거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차피 소수일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주문을 외우게 하는 대신에 사립재단이라도 제대로 감시하여 재단 이월금을 교육 사업에 쓰게 해서 등록금 인상이라도 잡아주었으면 나라에 대한 애착이 강한 시민 키우기에 훨씬 더 주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기 앞에서의 맹세"의 문화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같은 소수자들을 이지메하는 분위기 만들기에 아주 "기여"할 것입니다. 다들 하나같이 맹세를 외우는 데에 혼자 외우지 않는 사람이 늘 배제 당하고 맙니다. "맹세의 문화"는 자신의 마음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혼자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이지요. 맹세라면 같이 하는 것이고, 개인의 판단이란 이미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맹세의 문화"는 자신만의 얼굴이 없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키웁니다. 그게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사명일는지도 모르지요....


출처: 한겨레 박노자글방 2007/06/21 23:08 [원문]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스크랩) [인터뷰특강] 우리나라 국사책 믿으십니까

[인터뷰특강] 우리나라 국사책 믿으십니까

[한겨레] [제3회 인터뷰 특강- 거짓말 ③]
한홍구 vs 박노자 ‘한국사의 거짓말을 논쟁하다’
주입되는 모든 것을 검토하며 ‘역사 바로보기’를 훈련하라
▣ 김종옥 7·8기 독자편집위원

특강에 오기 전에 ‘학부모 총회’를 하러 아이들 학교에 갔다. 시간이 되자 ‘국민의례’를 시작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흘러나왔다. 그 비장한 서약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미루더라도, 그 맹세가 박정희 정권 시절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치졸한 표절이라는 사실이 이미 <한겨레21>을 통해 밝혀졌건만 도대체 학부모 회의에 모여서까지 촌스런 거짓 맹세를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라는 섬뜩한 강요가 진창 속에 웅크린 부스럼두꺼비마냥 징그럽다.
해서, 기분 전환을 위해 저녁에 있을 <한겨레21> 특강을 생각해냈다. 아, 그래. 한홍구, 박노자 교수의 특강이 있지. 우리 역사 안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있는가, 역사 서술가들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가에 대해 실컷 얘기하는 신나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지.

박노자에 섭섭? 한홍구는 여럿이다?

사회를 보는 오지혜씨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들떠 있었다. 인터뷰 특강의 두 간판스타를 좌우에 거느리게 된 기쁨에 그는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청중의 열기도 뜨거워서 두 스타의 소개 인사에 환호가 터져나왔다. 정치적 지향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건 이렇게 중요한 문제다. 가족도 그 점에서는 양보가 안 된다. 박수를 치고 기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청중은 한순간 슬쩍 동지가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지혜씨는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 국민 모두가 일렬로 서서 혼나는 기분마저 든다. 귀화까지 한 한국인으로서 그렇게까지 혼내는 것이 은근히 섭섭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질문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야 뭐, 자기 자신을 야단치는, 그런 똑같은 심정으로…”라고 답했다. ‘자기 자신’이라는 표현에 감동받은 사람이 많았으리라.
이어 한홍구 교수에게는 활동 영역이 넓은 것을 지적하며 “심지어 ‘한홍구는 여럿이다’라는 말까지 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작업을 감당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예전에 박노해 시인에게도 독재정권에서 그런 의혹을 덧씌웠는데, 그때는 그가 조작된 거짓 인물인 것처럼 보이려고 억지를 쓴 것이었고 오늘 질문은 감탄이 섞인 찬사이니 세상이 변하긴 했다.) 한홍구 교수는 “물론 감당하기 어렵죠. 여기저기서 ‘빵꾸’가 나서 샙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본격적인 토론은 박노자 교수가 역사 속의 거짓말에 대해 몇 가지 주제를 정해 묻고, 그에 대해 둘이서 각자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가 준비해온 열 가지의 담론 주제를 다 소화하기에 시간은 너무도 짧아서,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서까지 진행되었음에도 할 얘기의 3분의 1도 하지 못하고 아쉽게 끝났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며 몇 대목만을 소개한다.
"역사가 과거의 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사회의 주류와 전문가 집단의 의견에 가깝고, 따라서 역사에 대한 힘있는 자의 주관, 나아가서는 거짓말이 당연한 진실로 둔갑돼 대중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를 잡으면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져 멀쩡한 사람이 눈뜬 맹인이 되는 것”이라는 ‘업계의 비밀’을 밝히면서 대담을 시작한 박노자 교수는 맨 처음 우리 국사 교과서 문제를 거론했다.

삼국은 과연 한나라였을까

박: 국정교과서의 고대 중세사 부분을 보면 고대 우리나라의 삼국이 과연 한 나라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런 의식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자기네 영토 안에서 일어난 일은 다 자기 역사라고 하는 거짓말은 근대국가에서는 다 그랬지요.
한: 최근 보면 일단 영토를 규정해놓고, 그 안에서 일어난 것을 모두 우리 역사 속에 넣으려고 합니다. 근대국가가 역사를 서술하려다 보면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를 올려잡기도 하고요. 약소국이고 어려운 시기에는 그럴 수 있지만, 이미 이 정도의 규모를 갖춘 국가에서는 그런 의도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개화기 때 얘기를 해볼까요. 박은식, 신채호 같은 분들이 당시 단군을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인정하기는 하지만, 혈통 위주의 민족주의의 탄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복왕조의 의미로 단군을 부각시키면서 군사적으로 강력한 게 긍정적으로 서술되고, 또 그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내조자에 멈추게 되지요.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말씀하셨다시피 제국주의 침략이 시작된 상황이라는 걸 빼고 신채호를 읽을 수 없지요. 그가 가진 진짜 진보성은, 당시 자신이 얼마나 시대를 성찰하고 변화시켰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패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고대사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박: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있는 이라크 독립군의 위치를 그와 똑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친일 청산을 외치면서도 한편에서는 과거 친일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습니까. 그건 모순이죠.
논의가 막 무르익을 무렵 이미 정해놓은 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박노자 교수는 준비했던 주제들을 아쉽게 건너뛰어 ‘남성 위주의 힘의 역사에서 벗어나 미래의 교과서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귀화인 등 약자와 소수자를 어떻게 기술해야 할 것인가’를 서둘러 물어야만 했다. 한홍구 교수는 전적으로 소수자 문제가 역사 속에 포함돼야 하지만 교과서에 실을 만한 수준으로 소수자의 역사가 축적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이 대목에서 박노자 교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의 다양한 측면의 자료를 복원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자의 삶를 기록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에서 많은 질문이 쏟아져 곤욕을 치른 뒤 마무리로 한홍구 교수는 역사의 거짓말을 거둬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정제된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의 눈으로 걸러서 진짜를 가려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중은 역사 속에서 무수하게 속아왔지만 이제는 속지 않을 능력, 속았지만 바로잡을 능력을 키워나가야 하며 그것이 ‘역사 바로보기’라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민중의 고통과 투쟁을 우선시하고 미래의 민중의 복지와 자율성을 지향하는 민중적 주관의 입장에서 역사를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외부에서 내게 주입하려는 모든 것을 내 입장에서 한 번 걸러보면 거짓말을 좀은 가려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리 살면 좀 피곤하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에 쫓겨 할 얘기를 너무나 많이 남기고 특강이 끝나버렸고 아쉬운 마음은 오늘도 길고 긴 팬 사인회의 줄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스타 학자와 얼굴을 맞대고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 덕에 시간이 더 길어졌고, 이에 따라 경비 아저씨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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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한겨레]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국과 일본의 많은 지성인들은 왜 그토록 ‘종교적 전제왕국’의 환상에 쉽게 빠지는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수년 전 필자가 한국의 한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유독 눈에 띈 것은 학생회관 내 어느 방에 걸려 있던 ‘하늘과 땅’이란 현수막이었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로서 결례를 무릅쓰고 들어가서 인사를 청했다. 나중에 그곳이 어떤 신흥종교에 열정을 바치는 동아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모르는 새 종교가 여기에 있구나! 새로운 발견을 한 기분으로 필자는 그 학생들을 사귀었고 그 교주를 알현하기까지 되었다.

한 교주의 빌라에서 충격을 받다

굿당들이 많은 산에 위치했던 교주의 빌라에서 필자는 그날 충격을 받았다.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에 둘러싸인 교주가 ‘말씀’을 하면 “네, 선생님!”을 연발했던 신도들의 얼굴 표정도 “문선명에게 늙은이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 식구들은 젊은 피가 많아!”와 같은 ‘교세 자랑’도 충격이었다. 지금 그 교단의 정확한 명칭도 기억할 수 없지만, 전도 유망해 보이던 학우들이 왜 그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그 교단으로 가게 만든 이유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몇 개월 뒤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어느 종말론적 선교회의 선교사와 만난 일이 있었다. 1992년 10월28일이 되면 세계사가 끝이 나고 믿는 자만이 허공으로 들려 올라갈 수 있다는 예언을 위주로 설교하는 부부 선교사였는데 그 남편은 원래 대기업의 사원이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거쳐간 사람이 갑자기 광신으로 뭉친 소집단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뒤 1992년 10월28일 시한부종말론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읽었을 때 이장림 목사에게 현혹돼 전 재산을 바치는 등 극단적인 신앙 행위를 벌인 2만여명 중 공무원·교사·기업체 간부 등 고학력 중산층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이라도 비판 정신을 가진다면 곧 허구성이 드러나는 한 개인의 종교적인 환상을 고학력자들이 어떻게 절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동아시아의 ‘중산층 신형 신흥종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는 1995년 3월20일의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이었다. 이 가스 제조의 책임을 맡은 화학 석사나 옴진리교를 위해 러시아에서 무기 구입을 한 오사카대학교 출신의 젊은 건축가,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재판을 받았음에도 꾸준히 믿었던 도쿄대학교 박사과정 출신의 인류학자 등 젊은 지성인들은 어떻게 해서 “문선명과 창가학회(創價學會·일본의 대표적인 불교적 신흥종교)의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회장이 유대인 조직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일본인들을 말살하려고 한다”는 난센스를 믿고 대량 살인을 ‘정당한 방어’로 믿게 됐는가? 물론 일본 국내의 교도들은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의 극소수에 불과하며, 영계·환생에 대한 괴설로 유명(?)한 도쿄대 법학부 출신 오가와 류호(大川隆法)의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고학력 중산층 위주의 ‘신형 신흥종교’들도 수만명 이상의 고정 신도를 모을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상당수 대학생들이 한번쯤 옴진리교·행복의 과학 유의 말세론적·유사(類似)밀교적·카리스마적 리더 숭배 중심의 ‘신형 신흥종교’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고, ‘교주 말씀’이라면 범죄까지도 서슴지 않을 만큼 ‘개인 숭배’가 태심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윗 사람에 대한 맹종문화’가 토양

아시아에서 근대적이라 할 일본이나 한국에서 어떻게 해서 지성인들까지 빨아들일 수 있는 ‘전제왕국’들이 생겨날 수 있는가? 이 현상이 동아시아 근대성의 본질적인 문제들과 연관은 없는가? 근대 초기의 ‘고전적인’ 신흥종교- 예컨대 한국의 동학이나 일본의 천리교(天理敎)와 같은 민중 본위적인 종교운동- 들이 전통 질서의 밑으로부터의 와해와 대안적 미래의 열망을 반영했다면, 기독교·불교의 요소를 종말론·환생론에 자의적으로 갖다붙이는 식의 1970년대 이후의 ‘신형 신흥종교’들은 근대의 무엇을 반영하는 것인가? 일본이 제도적으로는 근대화됐지만 근대성의 기본 요소인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을 끝내 가져보지 못했다는 전후 일본의 진보적 사상계의 주역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96)의 뼈아픈 지적을 보자. 서구에서는 주체적인 개인의 탄생이 이루어졌다는 마사오의 의견에 그대로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도 아직도 끝까지 탈피하지 못한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메이지 모델’이 주체적 개인의 탄생을 극단적으로 방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설교문 테이프를 수시로 듣고, 옴진리교 소유의 공장에 가서 무보수로 일하고, 교주의 명령이 떨어지면 ‘배교자’들을 납치·살인을 했던 옴진리교 신도들의 행동 양식은 우리로서 끔찍할 뿐이고 이장림 목사 유의 ‘교주’들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은 바보로 보인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계 서열적인 폭력·착취, 패거리 집단 안에서의 ‘윗사람’에 대한 맹종이 과연 한국·일본 사회에서 드문 일인가? 물론 체육학과 교수의 지시에 따라 성적을 못 올린 후배에게 주먹질을 하는 선배나, 내용상 관계가 없더라도 자신의 논문의 제1주에서 꼭 지도교수의 글을 인용하는 대학원생도 ‘교주’의 의심 모를 하수인이 되려면 특수한 계기·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방모찌’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주류’ 사회로의 진출이 불가능한, 즉 개인과 집단의 ‘어르신’ 사이의 합리적인 횡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토양에서 ‘교주님’들이 번성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류' 집단의 물신주의·출세주의·형식주의에 질려버린 젊은 지식인으로서 늘 이탈의 동기가 존재하지만, 이탈이 곧바로 또 하나의 패거리로의 편입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악 속의 빌라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몰입하던 학우들이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이었을 듯하다. 상황을 더욱더 왜곡하는 것은 한국의 경우 일반적인 종교집단의 구조적인 문제들이고, 일본의 경우에는 전전(戰前) 민족주의의 청산의 미흡성이다. 즉, 일반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를 비판하기는커녕 평등한 상대로서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에서, 어떤 경우에는 권위주의가 지나친 일반 성직자와 사이비 ‘교주’ 사이에서 구별조차 하기 힘들다. 그리고 유대인의 지하조직과 미국, 영국의 왕실 등이 일본을 말살하려고 하고 그들과 연결돼 있는 일본의 국제적 명망가들이 다 ‘유대인’들이라는 아사하라의 가르침이나, 일본의 ‘신인류의 중심’에 놓인 수많은 ‘신형 신흥종교’의 교리는 겉으로만 과거의 국가주의를 ‘극복한’ 오늘의 일본에서 민족주의적 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린이와 어른을 동등한 인격체로

후기 산업사회의 무의미한 생산·소비의 순환에 식상하여 허무감을 종교적인 모색으로 메우려는 중산층 고학력자 젊은이들의 고뇌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중심부나 준주변부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리나 ‘참 나’로부터의 소외의 진정한 이유인 자본주의적 체제의 기본 문제들이 무시되고 담론의 구조가 전적으로 종교적 차원만으로 전환되는 한 이 모색이 생산적 ‘소외 극복’으로 되지 못하고 기존의 구조로 계속 회귀된다. 다만, 서구·미국의 경우에는 요가나 불교, 탄트라(성적 요소가 강한 힌두교적·불교적 밀교) 등이 결국 일종의 ‘종교적 소비품’으로 전락되어 핵화된 소비주의자들의 입맛에 단순히 맞추어지는 반면에, 소외라는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가 집단주의·자율적 개성의 미발달과 중첩되는 한국·일본 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라는 위계질서적 구조를 벗어나게 하는 개체들이 곧 전체주의적 성격이 훨씬 강한 ‘비주류’ 교단으로 몰입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양쪽의 근대화 과정이 달랐던 만큼 자본주의의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擬似) 탈주’의 구조도 다른 것이다.

물론 종교적 모색이 시장 논리에 편입된 구미 지역을 흠모할 일은 없지만 개인이 집단 속에서 용해되는 만큼 극단적인 폭력이 저질러질 가능성이 있는 동아시아형 ‘신형 신흥종교’들의 문제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린이와 어른이 기본적으로 동등한 인격체로서 취급됨으로써 개인으로서의 독립심과 자긍심을 길러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참고 사이트 1. 옴진리교 관련 사이트 링크의 모음: http://square.millto.net/~sacca/
2. 옴진리교의 후신 단체인 ‘알레프’의 사이트: http://www.aleph.to/
3. 아사하라 ‘예언집’의 일부. ‘일미 결전(決戰)’을 예언하는 것은 태평양전쟁 시대의 세계관을 방불케 한다: http://www.geocities.co.jp/WallStreet/1733/aum/seppou-1.html
4. 이탈자 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영생교’라는 한 신흥종교의 사이트. 그 교주 조희성이 “전지전능한 구원자”로 불렸다: http://www.victor.or.kr/
5. 옴진리교에 대한 영문 정리와 영문 링크 모음 :
http://religiousmovements.lib.virginia.edu/nrms/aum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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