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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3일 금요일

책)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남경태,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황소걸음, 2001

20세기의 사상들을 간단히 정리한 책.

예전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이하 굴뚝청소부)'을 읽고나서 이런 류의 책은 이제 그만 읽고, 이제부터는 한 사람의 생각에 대한 책들을 읽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우선 철학과 굴뚝청소부란 책이 너무 잘 쓰여져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도 철학자와 그 사람의 철학에 대해 소개한 책들을 몇 권 읽어봤는데, 대개 각 장에서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 그 사람이 말한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불만은 그 사람의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너무 피상적인 것 같았고, 그래서 너무 간단하게 다뤄지다보니 이해가 어려웠다. (거의 다 번역서였는데 어쩌면 번역에서 오는 한계일 수도 있다. 추측하기에는 일반인들에게 풀어쓴 책이라면 당연히 쉽게 썼을테지만 번역하는 도중에 다시 어려워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굴뚝청소부는 사람의 생애보다는 철학에 대해 자세한 정도를 적당하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되니 재미도 있고, 각 사상에 대해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한 눈에 읽는 현대철학(이하 현대철학)'은 사실 남경태라는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굴뚝청소부와 비교해보면 솔직히 굴뚝청소부가 더 마음에 든다. 이 책 역시 앞에 말한 다른 책들처럼 한 사람당 9~12쪽 정도의 한정된 분량 안에서 소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 (31명, 장은 30개)을 소개할 수 있었지만 깊이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분량으로도 뭔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사상을 이해하기엔 좀... 그래서 다른 책들도 찾아가고 그러면서 읽었다. 그래도 이 책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책 뿐만 아니라 이런 종류의 책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장점이지만, 어떠한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부터 시작해서 주로 20세기에 활동한 사람들의 사상을 정리해서 한 번에 쭉 읽다보니 어렴풋하게나마 책 제목처럼 현대철학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소위 철학자 뿐만 아니라 과학자, 의사 등의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같이 소개함으로써, 철학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의 업적들이 사상에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나 알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20세기 사상의 흐름을 한 단어로 나타내보라면 나는 '구조주의'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인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각 개인의 행동이나 생각은 언어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회 속에서 결국 규정하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인간은 언어에 기반하여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언어 자체나 언어가 생성, 사용되는 사회의 구조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주체, 그리고 주체가 외부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생각함에 있어서 주체가 속해 있는 구조(무엇이 됐든)를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에서도 나오지만, 이 구조 자체도 사람들에 의해 (물론 개인은 아니지만), 아니면 사람들의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변화되어진다. 결국 역사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대개의 구조주의의 분석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구조 자체를 기반으로 주체를 해석하기 때문에, 구조를 시불변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류의 초기부터 그러한 구조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결국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 것과 밀접한 관계를 있을 수 밖에 없다. 초기 원시적인 형태의 구조 틀안에서 사람들이 사고하고, 또 그 사고들이 모여서 구조가 변화가 되고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지금의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또한 구조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사람의 인식 또한 역사성을 가지는 것일까?

여튼 앞으로는 이제 각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 우선 머리 덜 아픈 책 좀 읽고.

2007년 8월 2일 목요일

책) 천재들의 주사위

데이비드 살스버그 (최정규 역), 천재들의 주사위, 뿌리와이파리, 2003.

통계학자들과 그 업적을 중심으로 엮은 통계학사.

우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부터 말해보자. 마틴 가드너의 '이야기 파라독스', '아하' 같은 책이나 다른 문헌들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흔히 접하게 되는 통계학적 오류에 관심이 생겼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매스컴에서 어떤 데이터를 대표하는 값으로서 산술평균, 중앙값 또는 최빈수를 필요에 따라 적절히 채택한다는게 있겠다.

여기에서 몇 가지 다른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면, 통계에 따르면 '결핵 환자 중의 많은 사람이 산에서 죽는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산악기후가 결핵균의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일까? 사실은 정반대로 결핵 환자의 요양에 좋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요양을 위해 산중으로 가게되고, 따라서 산에서 죽는 결핵 환자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발이 큰 아이가 말을 더 잘 한다'면 발의 크기와 말을 배우는 능력이 관계 있다는 말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결국 둘 다 성장이 빠른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통계는 기만적인 결론을 낼 수 있고, 이런 측면이 나의 관심을 끌었었다.

더 나아가 '검은 까마귀의 파라독스(by Carl Hempel)'(검지 않으면서 까마귀가 아닌 대상은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법칙을 검증해준다는 내용)나 '푸파란색(by Nelson Goodman)'(어떠한 사실이 두 개의 법칙을 똑같이 검증할 때 더 단순한 법칙이 선호된다. 오컴의 면도날?)의 파라독스는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주요한 문제(특히 귀납적 논리에 있어)가 된다 한다. (출처: 이야기 파라독스) 그리고 통계학은 사회학에 있어서나 과학 연구에 있어서나 광범위하게 이용되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생각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여튼 이러한 통계학의 특성 때문에 관심있는 분야였고 해서 통계학에 대한 책을 찾다 이 책을 알게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이 책에서는 많은 통계학의 거장들을 소개하고, 그 사람들이 통계학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이야기한다. 그 기여한 내용은 (수식 없이) 말을 통해서만 전달하는데 그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적절한 수식을 통해 설명했으면 쉽고 명확했을 것 같은데). 통계학적 내용 자체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아니면 통계학을 전공해서 그 내용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책인 것 같다. 내가 통계학을 전공했다면, 이 사람은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이런 정리를 발견했구나, 이 이론은 이 사람이 이런 배경에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재미있게 봤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통계학 자체에 대한 설명은 미흡하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 책은 절반 넘게 읽다가 멈춘 상태다(그 이후로는 끝까지 대강 훓어보기만 했다). 말했듯이 처음 기대했던 내용과 달랐고, 그래도 계속 기다리며 봤지만 계속 비슷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계속 읽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흥미를 끄는 다른 책들이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통계학 자체의 내용보다는 통계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통계학 자체에 대해 소개한 책이 있으면 좋겠다(있을 법 한데). 데보라 J. 베넷이라는 사람이 쓴 '확률의 함정'이라는 책이 그럴 것 같긴 한데...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 이런 점이 안 좋다.

2007년 6월 28일 목요일

책) 소설이 아닌 삼국지

최명, 소설이 아닌 삼국지, 조선일보사, 1997.

인물별, 에피소드별로 구성한 소설 삼국지연의에 대한 평전.

저자인 최명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라 한다. 책의 성격과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책의 목차를 정리해 보자.


천하 대세의 순환 / 조조와 진궁 / 영웅론 1,2 / 공명론 1,2,3 / 봉추론 / 선비론 / 주유론 / 노숙론 / 관우론 1,2 / 미인론 1,2 / 쪼다론 / 장수론 1,2 / 모사론 / 사마의론 / 정통론

이처럼 책의 목차만 봐도 책이 어떤 내용인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본 국가의 분열과 통일이라든지 정통이란 무엇인가처럼 역사의 관점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물들에 따라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내용 중에서는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의 인물이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 밖의 중국역사, 고전이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도 적절하게 잘 섞여 내용의 다양성과 충실함을 높혀준다.

그리고 삼국지에 대한 학술적 분석이나 본격적인 비판을 목적으로 쓴 책이라기 보다는, 마치 삼국지를 읽은 친구와 함께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화장실에서 잠깐잠깐씩 읽기도 좋은 책이랄까. 어느 정도 삼국지의 전체 줄거리가 잡혀있는 상태에서 읽으면 새록새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의 책인 것 같다.

책의 저자는 삼국지를 매우 좋아해서 수없이 읽었다 하며, 정음사 판(나는 읽어보진 못했다)을 기본으로 이 글을 썼다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 등에서 나오는 '유비는 쪼다이다' 등의 여러 의견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여러 번역본을 참고한 듯 하다.

여튼 삼국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덧붙혀 보면, 우선 개인적으로는 김구용씨가 쓴 삼국지를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삼국지(많이 알려져 있는 이문열 삼국지 등)들을 읽으면서, 과연 원본은 어떨 것인가 궁금해했다. 어쭙잖게 평역이랍시고 번역자에 의해 변형된 삼국지들을 읽다보면 어떤 것이 원래 내용인지 알 수가 없게된다. 물론 삼국지의 현대적인 해석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예를 들어 조조에 대한 재해석이라든지). 하지만 우선은 변형되기 전의 것을 알아야 이런 것들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중문학자인 김구용 씨가 직접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삼국지를 읽으며, 그동안 내가 찾던 삼국지구나 하는 것을 느꼈었다.

또 한가지,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사와의 비교라든가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소설 내부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므로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교훈을 찾으려고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교훈도 얻을 수 있겠지만, 소설은 재밌지고 읽는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번역가가 '이것은 정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임의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앞에서 삼국지들의 평역에 대해 별 가치를 인정치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어짜피 소설가지고 너무 심각한 게 싫다고나 할까).

이런 관점에서 삼국지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재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재미이다. 용맹스런 장수들, 뛰어난 모사들,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싸우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활약하는 난세에서, 주인공인 유비 삼형제들이 정통성을 등에 업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 삼국 중의 한 나라를 성립하는 과정이 주요 재미라 생각한다(말하자면 이 밖에도 더 많지만 삼국지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이고 따로 글을 쓰는 게 좋겠다).

다시 '소설이 아닌 삼국지'로 돌아가 보면, 여러 에피소드들은 어짜피 삼국지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후흑학(厚黑學)'에 대한 내용이 흥미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영웅이 되려면 자기의 본심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하긴 했지만, 성공하려면 남을 속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처세술도 남을 속이는 것도 싫어하지만, 살아가며 가끔은 이 말이 뜻하는 것을 경험하고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이러한 현실의 답답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속에서는 아무리 치열하고 삭막하더라도 어짜피 소설이니까.

어찌 쓰다보니 이 책의 유쾌한 분위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방금 말한대로 이 책은 정말 유쾌한 책이다. 친한 친구와 삼국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책) 소오강호 (笑傲江湖)

김용 (박영창 역), 소오강호(전 8권), 중원문화사.

유명한 김용(金庸)이 쓴 무협소설 중 한 작품으로, 김용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예전 임청하, 이연걸 주연의 영화 '동방불패(東方不敗)'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제는 정파(正派)와 사파(邪派)란 무엇인가, 그 구별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가 아닐까 싶다. 김용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권력에 대한 욕심이라든지 겉으로만 군자인 척 하는 것 등 다양한 인간 본성에 대한 묘사가 좀 더 자세한 것 같다.

내용은 화산파(華山派)의 수제자인 영호충(令狐沖)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임씨 집안에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무공비급 규화보전(葵花寶典)을 둘러싸고 정파와 사파 양측에서 암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능력부족으로 긴 내용을 적당한 분량으로 줄여쓰지 못해 이 정도로만 생략. 혹시 안 읽어보신 분은 읽어보셔도 후회 안할 거라고 보장. 그만큼 대중성 있음).

김용 소설 중에서 소오강호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 영호충 때문이다. 영호충은 우선 허우대 좋고 얼굴도 잘 생긴 편인, 겉보기에서는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보다 유쾌하고 여유있는 말솜씨, 더구나 두려운 것이 없는 듯한 말투는 자칫 그를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정파의 가르침 그대로를 따르는 마음과 행동이라 하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겉보기에는 약간 천박해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충심으로 신의를 지키며, 남녀 간의 관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며 희롱하거나 가벼운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욕심이나 야망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이용하지 않으며, 강자의 위협에 결코 굴하지 않는다. 참, 술을 매우 좋아하고 잘 마신다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술에 약한 나로서는 부럽다).

정리하면 겉으로는 가볍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말그대로 교과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군자검(君子劍)의 별호를 가진 스승 악불군의 위군자(僞君子)적인 행동과 대비된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중에서는 역사를 다룬 소설을 좋아하고(三國志, 大望 등), 또 김용의 장편소설들은 대개 중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절묘하게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시는 점이 내가 김용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소오강호에서는 중국 역사상의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시기인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저 명대 쯤일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용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무협지답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김용 작품 말고 무협지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지만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좀 더 정치적으로 얽히고 섥히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정사(正邪) 구분의 무의미함을 통해 마치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공허함을 말하는 듯 하다. 실제로 이 소설이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을 빗대어서 쓴 것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다 (정확히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또한 이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가 앞에서 말한 위군자인데, 좌냉선으로 대표되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권력 지향적인 사람에 비해, 악불군처럼 자기의 야망을 숨기고 겉으로는 초연한 척하는 위군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악불군의 본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복선이 나오기도 하지만, 거의 반전에 가깝다). 주인공 영호충은 진짜 군자이나 겉으로 봐서 그것을 쉽게 알기 어렵고, 악불군은 누가봐도 군자의 행동거지나 말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위군자인 것이다.

또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심리묘사이다. 흔히 김용의 작품 중에 남녀간의 애정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영웅문 2부로 알려져 있는 신조협려를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보다는, 소오강호에서 영호충의 사매 악영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림의 영호충에 대한 소녀와 같은 동경, 영영의 영호충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애정의 표현 등에서 더 감동을 느꼈었다 (뭐, 원래 익숙치 않은 영역이라... ㅎㅎ 제일 어려운 것은 남녀 간의 마음이로다).

이 소설은 초반에 정파의 유정풍과 마교 곡양의 음악을 통한 목숨을 뛰어넘는 우정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이 등장한다. 소설의 제목 '소오강호'는 이 두 사람이 같이 만든 음악의 제목이다 (그 뜻은 '강호를 호탕하게 비웃는다' 정도?). 그리고 소설의 결말은 정파와 마교의 또 다른 인물인 주인공 영호충과 마교 교주의 딸 영영(盈盈)이 결혼하여, 같이 소오강호를 연주하는 것이다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 이 두 장면을 통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스포일런가? ㅎㅎ)

2007년 6월 19일 화요일

책)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한국사



<남경태의 역사 오딧세이 3부작>
남경태, 종횡무진 동양사, 그린비, 1998.
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그린비, 1999.
남경태, 종횡무진 한국사(상,하), 그린비, 2001.

각각의 역사를 통사 형식으로, 그 흐름을 한눈으로 읽을 수 있게 구성된 역사책이다. 통사는 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 또는 그렇게 쓴 역사라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이렇게 통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가는 형식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장점이 있다. 특히 이 책처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사책에서 어울리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필연적 요인으로서 지정학적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서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정치체제와 사상이 발전한 이유를 들 수 있다. 동양에서는 지리적으로 중심이 있을 수 있었고 서양에서는 중심이 있기 힘든 지형이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수직적인 정치사상이 발전하였으며 계속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역사였고, 서양에서는 수평적인 사상과 함께 지방분권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사건들을 큰 흐름의 표출로써 설명하는데,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필연성을 가정한다. 여기에서 그 큰 흐름이나 필연성을 자연 과학의 가설이나 법칙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러한 가설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더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히면 우연적인 요인으로써, 각 역사적 배경에서 등장하는 인물들(특히 지도자들)과 전쟁의 승패 결과가 있는 것 같다.

연장선상의 이야기인데, 책에서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그 배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오지만, 직접적 계기는 우연한 작은 사건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264년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메시나가 시라쿠사와의 다툼으로 로마 원로원에 SOS를 치지 않았다면 포에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원후 303년 서진의 사마영이 흉노 족장 유연을 팔왕의 난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중국의 남북조시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계기들이 없었다 해도 기원전 3세기에 로마는 어차피 지중해 세계를 통일했을 테고 기원후 4세기에 중국은 오랜 분열기로 접어들었겠지만, 어쨌든 계기로만 보면 지극히 사소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그 계기를 만든 자들은 그런 결과가 빚어질지 미처 몰랐으리라는 이야기다. [종횡무진 한국사(상) pp. 344]
저자의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 역사학계에서 정설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으나,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거의 독립적으로 발전했던 각각의 문명 사이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이나 발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제자백가가 발생하던 시기나 고대그리스에서 고전 철학이 성립하던 시기, 18세기의 서양의 백과전서와 청나라의 고금도서집성, 사고전서 등의 백과사전 편찬,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일본 막부의 성립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 책과 같은 통사적인 역사 서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인 것 같다. 이러한 사실들도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 뿐일까.

이 책의 특징으로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민족(사람) 중심이 아닌 어떤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한민족이 살았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고 유목적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 동감한다.

나는 이 책을 서양사 - 동양사 - 한국사의 순서로 읽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현대는 서양사의 세계로 전 세계가 통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서양에 흡수되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봐도 무리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서양 역사 발전의 연속선상에서 전 세계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하나의 문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동양과 서양은 별개의 문명이라 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처럼 각각에 대해 통사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동양사, 특히 중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인만큼 동양사를 먼저 읽고, 연속적으로 한국사를 읽는 것이 좋았었다.

여기에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역사는, 가까이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지 못한 사대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여기서도 역사의 필연적 원인으로서의 지정학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왕조교체나 분열 등의 환경에 따라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끼쳤음을 말하고 있다(멀게는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 모두).

특히 직접적으로 현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에 대해서는 수직적 중화주의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왕이 아닌) 사대부들이 지배한 사회라 말하고 있다(오히려 근대 유럽처럼 절대왕정의 시기가 있었다면 더 바람직하게 발전했을 거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학자-관료라는 개념과 당쟁, 사화 등이 사대부들이 지배하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 사육신이나 연산군도 겉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사대부의 지배가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대부, 성리학 중심의 조선에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 한족의 왕국이 멸망하자, 소중화주의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상까지 생겨, 그 후 역사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말하고 있다.

또한 국난이 생길 때마다 항상 도망가는데 급급했던 지배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병자호란, 임진왜란, 가까이는 6.25 때까지). 그리고 해방 후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이승만, 김일성: 잘못된 역사의식과 비정상적인 권력욕을 가진) 지금 분단의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고 있다. 이는 혁명을 통해 모순을 없애지 못한 우리나라의 한계이지만, 각 국민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을 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