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8일 목요일

책) 소설이 아닌 삼국지

최명, 소설이 아닌 삼국지, 조선일보사, 1997.

인물별, 에피소드별로 구성한 소설 삼국지연의에 대한 평전.

저자인 최명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라 한다. 책의 성격과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책의 목차를 정리해 보자.


천하 대세의 순환 / 조조와 진궁 / 영웅론 1,2 / 공명론 1,2,3 / 봉추론 / 선비론 / 주유론 / 노숙론 / 관우론 1,2 / 미인론 1,2 / 쪼다론 / 장수론 1,2 / 모사론 / 사마의론 / 정통론

이처럼 책의 목차만 봐도 책이 어떤 내용인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본 국가의 분열과 통일이라든지 정통이란 무엇인가처럼 역사의 관점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물들에 따라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내용 중에서는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의 인물이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 밖의 중국역사, 고전이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도 적절하게 잘 섞여 내용의 다양성과 충실함을 높혀준다.

그리고 삼국지에 대한 학술적 분석이나 본격적인 비판을 목적으로 쓴 책이라기 보다는, 마치 삼국지를 읽은 친구와 함께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화장실에서 잠깐잠깐씩 읽기도 좋은 책이랄까. 어느 정도 삼국지의 전체 줄거리가 잡혀있는 상태에서 읽으면 새록새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의 책인 것 같다.

책의 저자는 삼국지를 매우 좋아해서 수없이 읽었다 하며, 정음사 판(나는 읽어보진 못했다)을 기본으로 이 글을 썼다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 등에서 나오는 '유비는 쪼다이다' 등의 여러 의견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여러 번역본을 참고한 듯 하다.

여튼 삼국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덧붙혀 보면, 우선 개인적으로는 김구용씨가 쓴 삼국지를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삼국지(많이 알려져 있는 이문열 삼국지 등)들을 읽으면서, 과연 원본은 어떨 것인가 궁금해했다. 어쭙잖게 평역이랍시고 번역자에 의해 변형된 삼국지들을 읽다보면 어떤 것이 원래 내용인지 알 수가 없게된다. 물론 삼국지의 현대적인 해석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예를 들어 조조에 대한 재해석이라든지). 하지만 우선은 변형되기 전의 것을 알아야 이런 것들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중문학자인 김구용 씨가 직접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삼국지를 읽으며, 그동안 내가 찾던 삼국지구나 하는 것을 느꼈었다.

또 한가지,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사와의 비교라든가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소설 내부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므로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교훈을 찾으려고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교훈도 얻을 수 있겠지만, 소설은 재밌지고 읽는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번역가가 '이것은 정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임의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앞에서 삼국지들의 평역에 대해 별 가치를 인정치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어짜피 소설가지고 너무 심각한 게 싫다고나 할까).

이런 관점에서 삼국지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재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재미이다. 용맹스런 장수들, 뛰어난 모사들,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싸우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활약하는 난세에서, 주인공인 유비 삼형제들이 정통성을 등에 업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 삼국 중의 한 나라를 성립하는 과정이 주요 재미라 생각한다(말하자면 이 밖에도 더 많지만 삼국지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이고 따로 글을 쓰는 게 좋겠다).

다시 '소설이 아닌 삼국지'로 돌아가 보면, 여러 에피소드들은 어짜피 삼국지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후흑학(厚黑學)'에 대한 내용이 흥미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영웅이 되려면 자기의 본심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하긴 했지만, 성공하려면 남을 속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처세술도 남을 속이는 것도 싫어하지만, 살아가며 가끔은 이 말이 뜻하는 것을 경험하고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이러한 현실의 답답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속에서는 아무리 치열하고 삭막하더라도 어짜피 소설이니까.

어찌 쓰다보니 이 책의 유쾌한 분위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방금 말한대로 이 책은 정말 유쾌한 책이다. 친한 친구와 삼국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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