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3일 토요일

국기에 대한 쓴 웃음

요즘 들으니 "국기에 대한 맹세"를 그 텍스트를 약간 고칠 뿐 본격적으로는 그냥 그대로 두려 한다고 합디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냥 쓴 웃음이 나오지요. 소련에서 태어난 죄 (?)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국기에 대한 온갖 맹세들을 급우들과 함께 수도없이 하곤 했어요. 그런데, 소련이 막상 망하니 이 급우들 중에서는 할복이나 거병은 물론, 약간이나마 신경을 써준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강요되는 맹세들을 달달 외우면 외울수록 냉소만 강화될 뿐이지요. 맹세를 통해 마음 속의 진정한 사랑을 키운 경우를 어디에서 본 분이 계세요?

초등학교3학년, 제 나이 9살. 제가 그 때에 소년공산당 (피오네르) 입단식을 치르면서 빨간 깃발 앞에서 "심신을 바쳐 모든 힘을 쏟아 공산당의 사업을 복무하도록 할 것"을 엄숙히 맹세했지요. 나중에 거의 다달이, 무슨 행사할 때마다 역시 "공산당 사업을 위한 투쟁에 준비돼 있으라!"는 구령에 따라 "네, 항상 준비돼 있습니다!"라고 외치면서 거수경례를 했지요. 아마도, 그 구령을 지금이라도 들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거수경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 앞에서 그렇게도 엄숙한 표정으로 "맹세"를 외쳤던 그 급우들은, 나중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댔을까요? "아, 저 대머리 발로댜를 보기만 하면 졸나 웃겨 목참겠구먼. 아까 식을 치르면서 겨우 참은 거야" 이 "대머리 발로댜"는 바로 그 깃발에서 그 얼굴을 나타냈던 블라디미르 레닌이었습니다 ("발로댜"는 "블라디미르"의 애칭). 강요된 맹세를 하면서도 국가의 의례에 대한 염증만 키운 것이지요. 결국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어쩔수 없이 거래의 관계인데, 이 관계에서는 국가가 제시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면 아무리 많은 애국 의식들을 강제해봐야 별 쓸모가 없는 것이지요. 구 소련 같으면, 지식 청소년들에게 살아숨쉬는 혁명적 정신도 진정한 자유도 제시하지 못햇으며, 노동계급의 청소년들 보기에는 간부들만 외국에 왔다갔다하면서 부럽게쓰리 잘 사는 불평등한 국가이었습니다. 결국 국가로부터 그 충성에 대한 어떤 가치 있어보이는 보상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에 상당히 냉소해진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어차피 실생활에서 지켜지지도 않는 공산주의 이상들은 냉소와 조소의 대상이 돼도, "맹세의 문화"가 강요했던 일상적인 군사주의 정도는 잘 뿌리를 내렸지요. 제 급우들의 절대 다수는, 아프간에 가서 "야수와 같은 폭도" (무자헤드)들을 잡아죽이는 것을 "진짜 남자다운 일"로 생각했으며, 학교를 방문하여 "애국 애군 미담"을 나누었던 아프간 침략의 상이병들에게 영웅대접을 해주었지요. 이들이 국가를 별로 정의롭고 평등한 것으로 보지 않았지만, 전우애로 꽁꽁 묶여진 "진짜 사나이의 집단", 즉 군부대를 "남성의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지요. "맹세의 문화"는 애국 시민을 키울 수 없어도, 살인훈련에 무신경이 된 꼴통 마초 만들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의 지배자들이 이 "맹세의 문화"를 이처럼 사랑하는 것이지요.

한국 대학생들에게 여론조사해보면 대다수가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북유럽/일본/스위스에서 태어나겠다"고 답합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에 대한 그 무슨 주문을 외우게 해도, 자랑스러운 태극기의 그늘에서 다시 타어나고 싶지 않다는 태도가 안고쳐질 것에요. 국민연금이라고는 용돈 정도 주면서도, 제대로 된 실업수당도 교육/의료 혜택도 주지 않으면서도 남성들에게 유럽에 비해 두배 긴 기간을 여건이 아주 열악한 군에서 보내게 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이게 공정한 거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차피 소수일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주문을 외우게 하는 대신에 사립재단이라도 제대로 감시하여 재단 이월금을 교육 사업에 쓰게 해서 등록금 인상이라도 잡아주었으면 나라에 대한 애착이 강한 시민 키우기에 훨씬 더 주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기 앞에서의 맹세"의 문화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같은 소수자들을 이지메하는 분위기 만들기에 아주 "기여"할 것입니다. 다들 하나같이 맹세를 외우는 데에 혼자 외우지 않는 사람이 늘 배제 당하고 맙니다. "맹세의 문화"는 자신의 마음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혼자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이지요. 맹세라면 같이 하는 것이고, 개인의 판단이란 이미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맹세의 문화"는 자신만의 얼굴이 없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키웁니다. 그게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사명일는지도 모르지요....


출처: 한겨레 박노자글방 2007/06/21 23:08 [원문]

동양에서의 왕조 교체의 이유

[종횡무진 한국사 (하) pp. 35]

농경문명을 중심으로하는 동양적 왕조가 일정한 패턴을 가지며 계속적으로 교체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토지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기존의 토지 소유를 무효화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왕조의 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체된 토지제도가 그 효력을 발휘하는 동안에는 왕조도 잘 나가다가, 그 효력이 다하는 중기 무렵에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고 그 영향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때 왕조가 교체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예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분석 중의 하나인 것 같다.

83세 진융 `아직도 더 배우고 싶다`

캠브리지대 석사 학위 받아
`베이징대서 갑골문 공부`


"중국에 대한 공부가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베이징(北京)대학에 설치된 국학(國學)연구원에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요."

중화권은 물론이고 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누려온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金庸.83.사진)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1924년 저장(浙江)성 하이닝(海寧)에서 태어난 그의 학문과 중국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뜨거웠다. 진융은 "중국 문화 가운데 갑골문(甲骨文:동물의 뼈에 새긴 옛 문자)을 공부하고 싶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중국을 방문중인 그는 17일 베이징대학 국학연구원 개원 15주년 행사에 참석해 이같은 배움의 의지를 공개했다. 베이징대학 측은 진융이 중국학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따라 진융은 1898년 베이징대학 개교 이래 '최고령 학생'으로 강의를 듣게 될 전망이다. 구체적인 등록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 진융은 올해 초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당나라 역사(唐史)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당초 최후의 로마 군단을 연구 주제로 삼으려 했으나 연구에 어려움을 겪다가 주제를 바꿨다. 그는 "베이징에서 공부를 더한 뒤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도 밟고 싶다"며 "학위 때문이 아니라 공부 그 자체가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융은 '소오강호(笑傲江湖)' '천룡팔부(天龍八部)'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신조협려(神雕俠侶)' 등 중국을 무대로 한 무협소설을 히트시킨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특히 우리나라에 '영웅문'으로 소개된 '사조영웅전'은 수백만부가 팔리며 무협소설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세계에 그의 독자는 3억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작품 '천룡팔부'는 중국 고교 정식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홍콩의 권위지인 명보(明報)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1950년대 신문 연재 형식으로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해 70년대 초 '녹정기(鹿鼎記)'를 출간한 뒤 작품활동을 접고 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zhang@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2007.06.19 04:51 [원문]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책) 소오강호 (笑傲江湖)

김용 (박영창 역), 소오강호(전 8권), 중원문화사.

유명한 김용(金庸)이 쓴 무협소설 중 한 작품으로, 김용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예전 임청하, 이연걸 주연의 영화 '동방불패(東方不敗)'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제는 정파(正派)와 사파(邪派)란 무엇인가, 그 구별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가 아닐까 싶다. 김용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권력에 대한 욕심이라든지 겉으로만 군자인 척 하는 것 등 다양한 인간 본성에 대한 묘사가 좀 더 자세한 것 같다.

내용은 화산파(華山派)의 수제자인 영호충(令狐沖)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임씨 집안에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무공비급 규화보전(葵花寶典)을 둘러싸고 정파와 사파 양측에서 암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능력부족으로 긴 내용을 적당한 분량으로 줄여쓰지 못해 이 정도로만 생략. 혹시 안 읽어보신 분은 읽어보셔도 후회 안할 거라고 보장. 그만큼 대중성 있음).

김용 소설 중에서 소오강호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 영호충 때문이다. 영호충은 우선 허우대 좋고 얼굴도 잘 생긴 편인, 겉보기에서는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보다 유쾌하고 여유있는 말솜씨, 더구나 두려운 것이 없는 듯한 말투는 자칫 그를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정파의 가르침 그대로를 따르는 마음과 행동이라 하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겉보기에는 약간 천박해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충심으로 신의를 지키며, 남녀 간의 관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며 희롱하거나 가벼운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욕심이나 야망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이용하지 않으며, 강자의 위협에 결코 굴하지 않는다. 참, 술을 매우 좋아하고 잘 마신다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술에 약한 나로서는 부럽다).

정리하면 겉으로는 가볍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말그대로 교과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군자검(君子劍)의 별호를 가진 스승 악불군의 위군자(僞君子)적인 행동과 대비된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중에서는 역사를 다룬 소설을 좋아하고(三國志, 大望 등), 또 김용의 장편소설들은 대개 중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절묘하게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시는 점이 내가 김용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소오강호에서는 중국 역사상의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시기인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저 명대 쯤일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용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무협지답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김용 작품 말고 무협지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지만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좀 더 정치적으로 얽히고 섥히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정사(正邪) 구분의 무의미함을 통해 마치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공허함을 말하는 듯 하다. 실제로 이 소설이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을 빗대어서 쓴 것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다 (정확히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또한 이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가 앞에서 말한 위군자인데, 좌냉선으로 대표되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권력 지향적인 사람에 비해, 악불군처럼 자기의 야망을 숨기고 겉으로는 초연한 척하는 위군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악불군의 본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복선이 나오기도 하지만, 거의 반전에 가깝다). 주인공 영호충은 진짜 군자이나 겉으로 봐서 그것을 쉽게 알기 어렵고, 악불군은 누가봐도 군자의 행동거지나 말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위군자인 것이다.

또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심리묘사이다. 흔히 김용의 작품 중에 남녀간의 애정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영웅문 2부로 알려져 있는 신조협려를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보다는, 소오강호에서 영호충의 사매 악영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림의 영호충에 대한 소녀와 같은 동경, 영영의 영호충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애정의 표현 등에서 더 감동을 느꼈었다 (뭐, 원래 익숙치 않은 영역이라... ㅎㅎ 제일 어려운 것은 남녀 간의 마음이로다).

이 소설은 초반에 정파의 유정풍과 마교 곡양의 음악을 통한 목숨을 뛰어넘는 우정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이 등장한다. 소설의 제목 '소오강호'는 이 두 사람이 같이 만든 음악의 제목이다 (그 뜻은 '강호를 호탕하게 비웃는다' 정도?). 그리고 소설의 결말은 정파와 마교의 또 다른 인물인 주인공 영호충과 마교 교주의 딸 영영(盈盈)이 결혼하여, 같이 소오강호를 연주하는 것이다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 이 두 장면을 통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스포일런가? ㅎㅎ)

국보법은 미국 가면 돌 맞는다

[한겨레] 수정헌법 제1조를 통해 본 국가보안법의 후진성…
“모든 정치적 의견은 토론의 시장에서 정화된다”

▣ 노트러데임(미국)=박용현/ 한겨레 편집부 기자 piao@hani.co.kr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법리 논쟁이 갈수록 볼만하다. 외국에서 바라보니 더욱 그렇고, 미국 로스쿨에서 법의 잣대를 들고 보자니 더더욱 그렇다. 그 점입가경의 극치는 역시 ‘광화문 인공기’나 ‘주체사상연구소’식의 자극성 상황 설정과,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이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호들갑이다.

알카에다도 의견 낼 수 있어

미국 인디애나주 노트러데임대학 로스쿨 교수인 리처드 가넷에게 이는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 하찮은 논란에 불과한 듯했다. 그는 “미국엔 특정 이념을 선전•선동하거나 적국을 찬양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표현•언론•집회의 자유 등을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는 일개 헌법 조항인데도 독자적인 법 과목을 이룰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 수정헌법 제1조 아래에선, 9•11 동시다발 테러의 참혹한 악몽에도 불구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노골적으로 찬양하거나 알카에다에 단순 가입하는 사람조차 처벌할 수 없다는 게 가넷 교수의 설명이다. “현행법에서는 테러단체를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행위에 이르러서야 처벌이 가능합니다.” 이는 이론상의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이슬람교도들을 향해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미국인을 살해하라”고 지시하는 빈 라덴의 ‘세계이슬람전선 성명’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녀도 이를 문제 삼은 적이 없다. 인권단체와 일부 로스쿨 교수들은 ‘물질적 지원 금지’에 대해 “테러단체로 지목된 단체들도 각종 합법적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일괄적으로 기부나 원조 행위를 금지해선 안 된다”며 이마저도 지나친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달 초 미국 캔자스주 항소법원에서는 테러에 대한 공포와 개인의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판결이 있었다. 평소 빈 라덴을 찬양하고 “미국인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한 이란인 노동자가 9•11 1주년 직후 미국인 동료들에게 “닷새 뒤 미국 전역에 테러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미국을 비판하고 빈 라덴에 대한 지지를 밝힐 권리는 그야말로 보호된다”며 “그러나 마치 임박한 테러에 자신도 가담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말로써 여성 동료가 불안해서 울 정도로 만든 것은 정치적 의견 표명이 아닌 폭언에 해당한다”고 유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의 초점은 ‘말의 내용이나 관점’이 아니었다. 이 이란인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9•11 이후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테러 공포증의 민감도를 말해주는 한편, 그럼에도 정치적 의견의 표명에 그치는 한 어떤 말도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9 11 이후 미국 정부는 이른바 ‘애국자법’을 통해 테러수사 기관에 지나친 정보 수집 권한을 줌으로써 개인의 사생활을 위협하는가 하면 아랍계 외국인에 대한 차별 강화, 테러 용의자의 변호인 접견권 불허 등으로 인권 상황을 급속히 악화시켜왔다. 이란•콩고•파키스탄 등과 더불어 미성년자까지 사형에 처하는 8개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은 사실 인권에 관한 한 선진국으로 볼 수도 없다.

브란덴버그 기준… 정부 협박한 KKK 인정

그러나 9•11 이후에도 의견과 그 표현을 처벌하는 법만은 만들지 않고 있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처벌해야 할 표현의 범위에 대해 확고한 법적 기준을 형성해왔고, 이 기준을 넘어 법을 만들 경우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으로 판명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중 국내에도 잘 알려진 것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기준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 대상자들에게 징집 거부를 촉구하는 우편물을 발송한 혐의로 미국 사회당 사무총장이 기소된 사건에서 홈즈 연방대법관은 “어떤 의견 표현이 행해지는 상황이나 그 성질로 보아 실질적인 해악을 가져올 것이라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발생하느냐 여부”를 처벌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 기준은 국내에서도 국가보안법 사건 변호인들에 의해 종종 인용되곤 한다. 국가보안법에 걸리면 명백한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 행위도 처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행위조차 처벌해야 한다고 보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이 기준을 받아들일 리 없다. 이들은 거의 1세기 전, 그것도 전쟁의 와중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그려놓은 표현의 한계선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기준은 이후 홈즈 대법관을 표현의 자유의 대명사로 만들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완전한 보호막이 되지는 못했다. 1950년대 매카시즘에 휩쓸려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소된 이들에게 대대적인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후 미국 법원은 다시 표현의 자유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69년에 나온 브란덴버그 사건 판결이다. 무장한 KKK(극우 백인단체) 단원들이 모여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부 요인에 대한 보복도 불사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집회를 다룬 이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비록 폭력이나 불법적인 수단의 사용을 옹호하는 말일지라도, 즉각적인 불법 행위를 선동해서 그런 사태가 실제로 벌어질 만한 상황이 아닌 한 금지돼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 정도 기준에 이르면, 한총련을 비롯한 국내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거의 대부분 무죄로 기울 게 분명하다.

예를 들어 폭력에 의한 정부의 전복을 주장하더라도 이른 시일 안에 봉기에 나설 것을 선동하고 그런 결과가 곧 예견되지 않는 한 그런 주장은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토론할 시간적 여유만 주어진다면 위험한 생각도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충분히 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질서는 처벌의 공포만으로 지켜지지 않으며, 사회의 안전으로 가는 길은 불만과 대안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의 기회 속에 놓여 있다”라는 게 연방대법원의 철학이다.

브란덴버그 기준은 이후 베트남전 당시의 반전시위 사건을 비롯해 모든 불법 행위 선동 사건의 처벌 기준으로 확고히 유지돼오고 있으며, 수정헌법 제1조 교과서에서 첫 판례로 소개하고 있다.
미국 역사에서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과도하게 침해받아왔는지를 연구한 책 <위험한 시대>를 이달 출간한 조프리 스톤 시카고대학 로스쿨 교수는 “브란덴버그 기준이야말로 의견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우리가 감내해야 할 최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반대쪽 의견에 대해 관용하고 자문해보는 태도를 버린다면, 우리는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싸우는 꼴이 될 것”이라면서 “미국 법원은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었고, 앞으로는 안보상 필요성에 따른 표현의 자유 제한을 더욱더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9 11 테러도 ‘표현의 자유’ 꺾지 못해

미국 내에는 이런 기준을 달갑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다수 여론은 굳건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표현의 자유 침해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퍼스트어멘드먼트센터가 내놓은 올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 보장이 지나치다”는 대답은 조사 대상자 1002명 중 30%에 그친 반면 65%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9•11 테러의 충격을 고스란히 반영한 2년 전 조사에서도 안보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더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은 과반을 넘지 못했다.

다시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국가보안법 존치론자들은 안보 불안 심리를 부추기느라 여념이 없고 반대편에선 법을 고쳐도 처벌할 건 다 처벌할 수 있다는 논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침해해온 권리는 무엇이고 앞으로 이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는 정작 전면에 떠오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법원을 비롯한 법조계에서는 형법 대체안의 처벌 기준이 모호하고 또 다른 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법이 바뀐 뒤에도 죄명만 바뀐 채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여전히 구속당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기준을 찾는 적극적인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어쩌면 이는 민주주의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서도 ‘이세고리아’라는 표현의 자유 개념이 확고했다. 데모스테네스는 이세고리아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체제의 근본적 차이는 아테네에서는 스파르타 체제를 찬양할 자유가 있지만, 스파르타에서는 스파르타 이외의 체제를 찬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로부터 2300년이 지난 시대에 살고 있다.

유럽, 아시아, 전세계 어디서나… ‘브란덴버그 기준’ 수준의 표현의 자유 보장이 미국만의 것은 아니다. 지난 1995년 국제법 전문가들이 국가 안보와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면밀히 논의한 결과 채택한 ‘요하네스버그 원칙’도 그와 비슷한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원칙은 이후 유엔의 공인을 받았다.

이 원칙 제1조는 국가 안보의 필요성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그 표현이 심각한 위협을 줄 때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제한만 가해야 하며 △그 제한은 민주적인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전제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표현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선 그 표현이 △즉각적인 불법 행위 선동을 의도했고 △그런 불법 행위를 유발할 것 같으며 △그 표현과 불법 행위의 발생 가능성 사이에 직접적이고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세 가지 사실을 정부가 증명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런 기준은 단지 이론적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나라에서 이미 법적인 원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선진국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인도 대법원은 이미 지난 1989년 제한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이렇게 판시했다. “표현 행위가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이 시간적으로 먼 일이거나 단지 추측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그 표현과 직접적이고 근접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 마치 화약통 속의 스파크처럼, 의도하는 행위를 일으킬 만한 표현이어야 한다.” 나이지리아 대법원의 1983년 판결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폭력에 의한 체제 전복 선동으로부터 우리의 공동체를 지킬 중요성이 커질수록,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 또한 더욱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부가 국민의 뜻에 책임을 지는 것이고 국민이 바라는 변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이 가입해 있는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건이 자주 다뤄지는데, 역시 엄격한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다.

쿠르드족이 무장투쟁 등 강력한 분리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는 터키에서, 지난 1989년 정부의 쿠르드족 탄압 중단과 쿠르드족의 자유 의지에 근거한 평화적 해결 등을 주장하며 창당된 공산당이 그 강령을 이유로 해산 명령을 받았다. 공산당 지도자들이 터키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럽인권재판소는 “정당의 활동이 헌법적 체제를 훼손한다는 정부의 판단만으로는 결사의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 특히 정당은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의 작동을 보장하는 데 본질적 역할을 하는 만큼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더욱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터키 영토의 일부를 쿠르드족의 땅으로 지칭하며 쿠르드노동자당의 무장 활동을 찬양하는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처벌당한 언론인의 제소에 대해서도 이 재판소는 “개인의 의견을 주장했을 뿐이고 즉각 무장저항에 나서도록 설득하려 한 의도도 없는 만큼, 이 기사는 쿠르드족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언론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한겨레21 200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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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폭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아 양심이 있느냐?

개봉 전의 기대치를 보려고 왔건만, 이런 영화를 왜 만드느냐, 5.18이 모래시계나 기타등등 많이 만들어졌는데 돈벌려고 또 만드냐, 폭동을 미화하느냐 등등등 개쓰레기만도 못한 글들이 수두룩하구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독재정부가 쿠데타를 인정 못하는 주민을 학살한 것이다. 그리고 더 참혹한 사실은 내가 대학생이 되기 전에 5.18이 뭔지도 얼마나 죽었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깡촌 시골학교에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이 외우라는 것은 열심히 외웠고 필요없다는 것은 한 자도 읽지 않았다. 아프리카 여러나라의 주요 수출품을 외우고,수천년전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의 년도를 외웠다. 땅속 광석들의 종류를 구분하고, 농업시간엔 젖소나 돼지의 임신기간도 외웠다. 하지만 내가 아기일때 이나라에서 수백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다쳤다는 역사는 말하지 않더라.. 폭동인지 투쟁인지 내가 판단할 일인데 나이든 국사선생님은 알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셨나 보다. 고교졸업후 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당시 맞아가며 수년동안 외웠던 암기사항들은 전혀 기억에도 없지만, 대학신입생때 잠깐 배운 5.18의 슬픔은 내게 지식으로 남았다.

요즘도 많은 이들이 북한을 욕하고 일본을 욕하고 남미,아프리카를 비웃는다. 북한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고, 일본은 타국을 괴롭히고도 반성이나 사과할 줄 모르며, 아프리카,남미는 끝없는 내전으로 서로를 죽여가며 기아에 허덕이는 한심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웃음과 비난을 날리는 사람들 중에 더한 인간들이 있다.

북한이나 일본으로부터 자신과 국가를 지켜달라며 믿음과 세금을 보냈지만, 주적 김일성과 오십보 백보인 대머리 인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오히려 지켜야 할 대상을 죽이는 일을 벌이고도 반성을 모르는 인간들이다.

북한을 동족을 죽인 빨갱이라면서 자기도 동족을 죽이고 일본이 제대로된 사과를 안한다면서 그들은 사과조차도 없고 지금도 빨갱이폭도이라 매도하며, 제3세계의 가난한 내전국을 비웃으며 우리나라도 그런 참혹한 살육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을 욕하고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바라기 전에 우리부터가 당당해야 하지만, 친일파와 군부의 남은 찌꺼기들은 끝까지 똥칠을 하고 있다.

더이상 폭동이나 간첩들의 음모니 떠들어서 다른 나라들이 비웃을 추잡한 짓거리를 하지말자. 이건 아이들에게 숨기고 이웃나라에 숨기고 자신에게도 숨길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무력과 폭압에도 죽음으로 맞선 자랑스런 역사다. 다른 나라같으면 자랑할 역사를 스스로 지우고 깍아내리고 욕하기 바쁘니 얼마나 추한가. 일본이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문제나 난징학살을 지웠다고 욕하기 전에 우리의 역사나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스스로의 과오를 청산하지 못하는 민족이 타민족의 사과를 바라는 건 넌센스다. 독일은 학살자로서의 과거를 눈물로 사과하고, 파시즘에 반대하다 고문과 노역,살인으로 숨진 열사를 기리며, 경제적 마이너스를 알면서도 통일을 이룩했다. 일본이 독일처럼 못한다고 욕하기 전에 우리부터 독일의 장점을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은 물론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도 억압과 파시즘, 군사독재, 이념의 충돌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탈이데올로기로 발전해 가는데, 아직도 암흑시대를 그리워하고 과거를 조작하기 바쁜 쓰레기들이 한국에 발로 차일 정도로 넘쳐난다는게 정말 부끄럽고 답답하다.

의경복무시절 상관이신 경찰관 중에 특수부대원으로 광주에 계셨던 분이 있었다.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걸 꺼려하셔서 자세한 얘기는 못했지만 네이버의 쓰레기들처럼 폭도니 빨갱이니 하는 소리는 없더라. 그 자리에서 피흘리고 동료가 죽어가는 현장에 계신 분도 말이 없는데, 빈깡통이 요란하다고 경험도 지식도 인격도 모자란 놈들이 더 설치는게 아닌가 한다.

40대면 불혹이고 50이면 지천명의 나이다. 인터넷 익명성의 편의아래 개똥보다 못한 지저분한 생각들을 배설물처럼 쏟아내지말고, 인간적인 글들을 남겨서 인생의 후배들을 감동시키는 건 못하는가?

이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은 분들이시여... 누군가들 비난하고 깍아내리고 욕하는데 남은 인생과 열정을 쏟기에는 아까운 시간이 아닌가? 죽을 때까지 누구를 비하하고 당신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분노해서 자신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건가? 기성세대로서의 존경을 나이로만 받으려 말고 쌓여진 주옥같은 지식과 인생의 철학들로 받으려 노력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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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격양된 감정으로 쓴 두서없는 글이 메인리뷰에 오르니 많이 쑥스럽습니다.

지우고 싶은 생각도 들고 과격한 표현들을 고치고 싶기도 하지만 왠지 자신을 속이는 듯 싶어서 그냥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역사는 외우는게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가기위해 공무원이 되기위해 억지로 외워야 하는 암기사항도 아니어야 하며, 자신의 해박함과 암기력을 자랑하기 위한 지식이 되어서도 안되죠.

이순신장군도 자신의 이긴 전투의 횟수가 몇번이고 대첩들의 순서와 위치, 격파한 일본의 함선이 몇척인지를 달달 외우며 암기하기를 바라시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기를 원하시지도 않겠죠. 다만 자신과 조선의 민초들이 격은 고통과 맞써 싸운 용기들을 가슴속에 담고 있기를 바라리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5.18의 열사와 희생자들도 자신들이 영웅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진 않으리라 생각하네요. 다만 그들의 용기와 마지막까지 잃지 않았던 희망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리라 믿습니다.

그날의 광주에 있었던 민간인도 시민군도 군인도 모두가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혼돈과 공포, 슬픔과 희망을 지금의 후세들과 비경험자들이 느끼지도 완전히 알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매일같이 기억하고 공부할 수도 없죠. 하지만 절대로 잊지만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네이버 영화리뷰에 와서 멋진 글, 재밌는 글, 웃기는 글들을 찾으며 영화의 오락성을 많이 추구했고 장난같은 댓글과 리뷰를 가끔씩 쓰면서 혼자 좋아하며 여흥처럼 이용했었네요.

하지만 "화려한 휴가" 에서는 그런 오락과 재미만을 추구할 수는 없었고 결국 타인들의 독설을 독설로 대응하는 미숙함을 보이며 제가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적었습니다.

쪽지까지 보내주신 어느 분의 말씀처럼 "화려한 휴가"가 역사와 진보는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는 걸,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걸 보여줬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왜곡된 현대사와 과오들이 수정되고, 서로를 미워하고 새로운 갈등을 만드는 그릇된 사회구조가 사라질 수 있도록 새로운 세대인 우리들이 지역과 정치관을 넘어서 서로 노력했으면 합니다.

(많은 추천과 댓글 감사드리며. 다른 역사관과 정치관을 가지신 분들을 심하게 모욕한 점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출처: 네이버 영화 네티즌 리뷰 natural200 님의 글 (관련영화: 화려한 휴가) [원문]

영화) 빅 피쉬 (Big Fish)

빅 피쉬 (Big Fish, 2003) / 미국 / 드라마, 판타지, 코미디 / 125 분 / 개봉 2004.03.05

감독: 팀 버튼
출연: 이완 맥그리거, 알버트 피니, 빌리 크루덥, 제시카 랭, 헬레나 본햄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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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거짓말에 실망했던 아들이, 그 거짓말이 순전한 거짓말은 아니며 그 속에 자기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었음을 깨닫고 화해하는, 동화같은 가족 영화.

좋아하는 영화감독인 팀 버튼 감독의 작품이다. 나는 팀 버튼 감독의 동화같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기억나는 영화로는 '가위손', '비틀쥬스', '배트맨 1,2', '크리스마스의 악몽', '화성침공', '찰리와 초콜렛 공장' 등이 있다. 위에서 말한대로 세상에는 없는 듯한 환상적인 배경에서 동화같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이 좋다. 왠지 '조니 댑'이나 '위노나 라이더'의 분위기와 딱 맞는 감독같다.

위에서 말한대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데, 아들은 과거에 대해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사이가 않좋았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의 거짓말은 없었던 이야기를 말했다기 보다는 실제 경험했던 일을 과장해서 말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마을 사람들의 말썽이었던 엄청난 거인은 실제로는 2미터가 넘는 거한이었고 (그래도 크긴 크다), 전쟁 중에 만난 서커스단의 샴쌍둥이는 실제로는 그냥 쌍둥이었고 이런 식이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다 확인된다). 아들에게 무미건조한 삶에 대한 꿈을 주기 위해서였을까. 여튼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며 서로 화해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영화가 끝날 때 쯤 아버지가 죽을 때, 아버지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다시 이야기 속의 모습대로 등장해서 아버지가 물고기가 되는 걸 (아버지는 자기가 죽어서 물고기가 될 거라 했다) 도와주는 장면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프러포즈하는 부분에서도 감동했었는데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난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봤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만족해하는 것 같진 않은 분위기였던 것 같다. 싱거운 영화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고, 기존에 팀 버튼을 좋아했던 사람은 특유의 냉소적인 맛이 없는 영화라고 평했다. 하지만 냉소적인 것도 좋아하고 따뜻한 인간미도 좋아하는 (다 좋다는 말?) 나로서는 감동적으로 봤던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거짓말을 싫어하지만 (이 영화의 아들이랑 비슷할까), 이 영화에서 아버지가 하는 거짓말은 싫지 않았다. 삭막한 삶이지만 이렇게 낭만을 갖고 살 수 있다면...

南北 송전선로 59년만에 다시 연결

개성공단 평화변전소 준공..10만kW급

(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기자 = 고압 송전선로를 이용한 남.북한간 전기공급길이 다시 열렸다. (jsking@yna.co.kr)

배전방식을 이용한 공급은 이미 2년전부터 이뤄져 왔지만 송전방식의 남북간 전력공급은 북한이 1948년 5월 대남송전을 중단한 뒤 59년만이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은 21일 개성공단 현지에서 김영주 장관과 이윤성 국회 산업자원위원장, 이원걸 한전 사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성공단 1단계 구역(330만㎡)에 전력 공급을 담당할 '평화변전소'의 준공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부터 공사를 시작한 개성공단 송.변전설비는 경기도 파주의 문산 변전소에서 군사 분계선을 지나 개성공단까지 총 16㎞구간에 350억원을 투입해 건설됐으며 철탑 48기와 154kV급 송전선로, 개성공단내 옥외변전소 등으로 구성됐다.

전력 공급량은 10만kW급으로 대구 성서공단이나 목포 대불공단(각 12만kW)에 공급되는 전력와 맞먹는 규모이며 한전은 향후 입주기업과 전력수요가 커지면 변압기를 늘려 최대 20만kW까지 공급을 확대할 방침이다.

한전은 2005년 3월부터 개성공단 시범단지와 본단지 일부 입주기업에게 이미 전력을 공급해왔으나 이는 고압으로 전기를 보낸 뒤 변전소에서 변압과정을 거쳐 공급되는 일반적 송전방식이 아니라 문산 변전소에서 변압된 전력을 1만5천kW범위내에서 배전방식으로 공급하는 형태였다.

일제시대에 건설된 발전설비가 대부분 북쪽에 밀집해있던 탓에 남북한간에는 해방 이후에도 송전방식의 전기공급이 이뤄져왔으나 북한은 1948년 5월14일 남측의 요금 미납을 이유로 평양∼수색 변전소간 154kV 송전선로를 통해 남한으로 공급되던 전력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김영주 장관은 이날 축사에서 "남북간 송전선로 연결은 열차 시범운행에 이어 남과 북의 혈맥을 잇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한반도 평화 증진과 남북 공동번영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변전소의 개설과 운영을 맡게 된 한전의 이원걸 사장도 "평화변전소는 남북공동번영의 필수기반시설"이라며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시설운영에 최선을 다해 개성공단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2007/06/21 10:14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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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극화 OECD 세번째로 커…사회보장 지출은 꼴찌

(그림: OECD 각국 상용직 임금생활자 소득격차(왼쪽)와 일반세의 사회보장 부문, 크게보시려면 클릭)

OECD 20개국 조사결과 보고서 발표
“상대빈곤율 높아지는데 복지지출 낮다” 우려


소득 격차에 따른 한국의 양극화가 세계적으로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현지시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07년 고용전망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회원국(20개국) 가운데 한국은 소득 격차가 세 번째로 큰 나라로 드러났다.

이 기구는 상용직 임금생활자의 하위 10% 계층에 견줘 상위 10%의 평균소득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소득 10분위 배율을 통해 격차 정도를 평가했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2005년 소득 10분위 배율이 4.51로, 헝가리(5.63)·미국(4.86) 다음으로 높았다.

한국은 또 1995년부터 10년 동안 소득 격차가 많이 벌어진 대표적 나라로 꼽혔다. 이 기간 한국의 소득 10분위 배율은 3.64에서 0.87이나 늘었다. 한국은 헝가리(1.67)와 폴란드(0.91)에 이어 세 번째로 격차가 심해졌다.

노르웨이(2.21)·스웨덴(2.33)·핀란드(2.42) 등 북구 쪽은 소득 격차가 가장 덜한 나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아일랜드(3.57)와 스페인(3.53)만 지난 10년 동안 소득 격차가 줄어들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이 멕시코·터키와 더불어 “사회 안전망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나라”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2003년 일반세의 사회보장 부문 사용비율이 3%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꼴찌이며, 평균 43%에 크게 못미쳤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적 비용의 규모가 10% 미만인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뿐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또 20일 발표한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최근 들어 한국의 상대빈곤율(가처분소득이 중간계층 소득의 50% 미만)이 크게 늘고 있는데도 사회복지 지출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보고서는 90년대 중반 9%던 한국의 상대빈곤율이 2000년대 들어 급속하게 높아져 이 기구 평균치(10%대 초반)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며, 공적부조 수혜대상을 더 확대해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확보하도록 돕는 게 시급하다고 권고했다.

한편, 고용전망 보고서는 세계화의 혜택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소득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무역·투자 개방 정책이 전세계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면서도 “일부 노동자들은 세계화로부터 많은 것을 잃는다”고 짚었다. 조사 대상국의 생산성은 지난 2년 동안 평균 1.5% 늘어났지만, 1인당 실질임금은 2005년 0.6%, 2006년 1.2% 증가에 그쳤다.

이 보고서는 “기술·교통·통신의 발달과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이 제공하는 값싼 노동력으로 세계 경제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며, “회원국 정부가 고용과 임금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또 회원국들이 자유무역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노동조건 개선과 사회 안전망 확충을 통해 노동시장을 변화시키는 데도 앞장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외현 최우성 기자 oscar@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 2007-06-21 오전 08:35:29 [원문]

누가 싸이에게 돌을 던지랴?

재입대의 악몽을 꾸었다.

탁현민 기자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회 구석구석 물렁물렁한 곳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유독 준엄한 구석이 하나 있으니 바로 병역문제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징병의 나라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병역문제는 어떤 사건, 사고 보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누구든 비위의 대상으로 선정되는 순간 거의 '아작'이 난다.

군대 가는 것을 가슴 벅찬 신성한 병역의 의무라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고, 다들 제대하면 오줌도 그쪽으로 안 싼다고 이를 박박 갈면서 제대하고, 제대해서 몇 년 동안 잊지 않고 불러 모으는 예비군 훈련이 지겨워 죽겠는게 대부분의 남자들이다.

그렇게 가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군대이건만, 누가 어찌어찌해서 면제라거나, 공익으로 빠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군대 안 갔다 오면 남자도 아니라느니,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느니, 애국심이 없다느니,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까닭을 참 모르겠다.

끌려갔다온 사람들이 안 간 사람들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면제받거나 대체복무를 하게 된 사람들이 제대로 조국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못 가진 것이 안쓰러워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 가수 싸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검찰에서는 그가 애초의 대체복무 분야와 다른 일을 했고 그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고, 네티즌과 일반 여론은 모범을 보여야 할 연예인이 어떻게든 군대를 안 가려고 꼼수를 썼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괘씸하다는 것인이다. 군대 갔다 왔고, 가기 싫은 예비군도 다녀왔고, 이제 민방위 3년차에 접어든 입장에서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싸이에게 '다시 군대 가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아니 '일빵빵' 주특기 받고 '60미리' 메고 뛰어 다닐 수도 있는 일이고, 소총수로 왔다가 행정병으로 확 풀려 버릴 수도 있는 곳이 군대 아니었나? 제대로 근무를 안 했다는 것도, 그래 군대라는 곳이 풀리면 다행이고 꼬이면 에라 어떻게든 돌아가는 게 국방부 시계라고 믿으며 2년 2개월(지금은 2년인가) '뺑이 치는 곳' 아니었는가 말이다.

업무를 게을리 했다는 검찰의 엄숙한 발표는 그래, 솔직히 좀 뜨끔했다. 군대 있을 때 업무를 게을리 한 것이 문제라면 나도 어쩌면 다시 군대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상병 때까지는 병장 눈치 보여 그럭저럭 열심히 하는 '척' 했지만 병장 달면서부터는 어떻게든 짱 박히려 노력 했고, 제대를 앞두고는 '아. 세상에 가장 편한 것은 육군 병장 말 호봉'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업무 태도가 불량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나도 참 할 말이 없다.

그래 물론 이 나라에서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이 모두 나나 싸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은 한다. 정말 병역의무를 신성하게 생각하고, 하루하루 '충성'하며 열심히 생활하다 온 사람들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가기 싫고,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가서 그래도 적당히 사고치지 않고 시간 채워 나왔다면 그도 최소한의 의무는 다한 것이다. 아마도 주특기대로 복무하지 않았다고 땡땡이 쳤다고 다시 군대 가라면 아마도 다시 가야할 사람 적지 않을 것이고 기준이 그렇다면 병역비리수사는 전국적으로, 전 방위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네티즌과 여론의 감정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다. 나 역시 돌아서면 네티즌이고 여론의 한 부분이니 솔직히 "싸이, 그냥 제대로 갔다 오지 꼼수 쓰다가 잘 걸렸다"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근데 그게 솔직히 고백하자면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싸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거나 그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행해야할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방기했기 때문에 분노해서는 아니더라.

누구는 '뺑이' 치고 삼년 썩었는데(사실 2년 2개월인데 왜들 꼭 삼년이라는지 모르겠다. 나도 마찬가지고) 누구는 군대 안가고 편하게(사실 편한지 아닌지도 잘 모르지만) 있으면서 그마저도 제대로 안했다니까 부아가 치밀어서 그런 것이었다.

글쎄, 내가 군대 있을 땐 '대체복무'라는 것이 없어서 그게 그렇게 편하고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이해하기에는 대체복무도 군대처럼 다 하기 싫고, 가기 싫은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하면서, 군대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게끔 만들어진 제도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대체복무'중에 제대로 일했느냐? 아니냐? 는 과정 중에 물어야 할 책임이지 제대, 아니 소집해제, 아니 퇴사? 여하튼 끝난 마당에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제대한지 10년도 넘은 내게 검찰이든 헌병대든 찾아와 '너 93년 복무 중에 사역 나간다고 하고서 PX에서 짱 박혔던 적 있지?' 조사하면 이런 젠장 나도 군대 다시 가야 되는 것이냐?

-- 덧붙히는 글
분명히 이런 분들 계실 것 같아 미리 말해두는데
싸이와는 반면식도 없는 사이다. 당연히 뭐 하나도 받아먹은 것 없다.
군대는, 열심히는 안했지만 여하튼 다들 그렇듯이 제대로 제대 했다.
애국심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은? 죄송스럽지만 그다지... 어쩌랴 먹고살기 고달픈데.

출처: 오마이뉴스 2007-06-21 08:54 (원문)
ⓒ 2007 OhmyNews

2007년 6월 20일 수요일

“이순신동상이 이순신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

창원대 도진순 교수

(사진: 4월28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을 앞두고 충남 아산자율방범연합대원들이 충남 아산 신정호 국민관광단지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척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크게, 더 높게만 세워놓은 이순신 장군 동상이 오히려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막고 있다.”

창원대 도진순(사학과) 교수가 19일 오후 경남도의회 회의실에서 도의회 선진교육문화연구회(회장 이유갑)가 마련한 포럼에서 '과거속의 미래 찾기:남해안 시대와 충무공 이순신-동북아 해양평화벨트 구축을 위한 시론'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면서 서두에 강조한 말이다.

도 교수는 전국적으로 인간적인 내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높게, 크게만 세워놓은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에서는 난중일기 곳곳에서 나타난 이충무공이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낸 고통과 전쟁에 대한 고뇌, 각종 질병 등의 모습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수병의 주요 무기가 활인데도 활을 든 이순신은 전혀 없고 천편일률적으로 칼을 든 이순신만 있다고도 꼬집었다.

이에 비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에서는 사람 그 자체보다 생각이 보이고 영-프 전쟁 당시 도시를 구하기 위해 교수형 집행지를 향해 걸어가는 시민들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고 도 교수는 지적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임란 당시 일본 장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고 좌충우돌형으로 그리는 것 또한 당시 일본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의 막강한 전투력을 오판할 수 있도록 한다고 도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이순신을 이런 식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조총과 일본, 세계를 보지 못하게하는 것은 물론 당시 민중과 조선의 현실,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망각하도록 하고 있다"며 "도가 추진하고 있는 이순신 프로젝트도 1천400억원을 들여 다시 이순신만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 교수는 이어 남해안 일원에 흩어져 있고 제각각 관리되고 있는 임진왜란 유적지와 방치되고 있는 왜성 유적지, 러.일전쟁 유적지, 식민 유적지 등을 묶어 동북아 국제평화와 교류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해양 역사공원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했다.

그는 또 일본과 중국의 전쟁 유적지와 연계해 크루즈 투어를 실시하는 방안도 내놓고 궁극적으로 한.중.일의 전쟁 관련 유적과 평화공원 등을 묶어 '동북아 해양평화벨트'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도 교수는 "자신이 아닌 타인, 선인이 아닌 악인, 영광이 아닌 치욕, 영웅이 아닌 범인(凡人)의 유적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할 것인가가 화두"라며 "함부르크의 반파시즘 기념관과 일본 오키나와(沖繩) 평화공원의 사례처럼 치욕의 역사는 없애는것이 아니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영국 런던 빅토리아 타워 가든에 있는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위키피디아 이미지)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이란?

1884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인 칼레시의 시장으로부터 1347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영국에 시 전체가 포위되었을 때 도시를 구한 영웅들의 조각상 제작을 의뢰받았다.

전쟁 당시 칼레는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에 버텼으나 도시 절멸의 위기 앞에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영국왕 에드워드3세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도시 대표들의 목숨을 요구했다. 불안에 떤 칼레 시민들 중에서 자원자가 나섰다. 칼레 최고의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였다. 이후 칼레의 지도자와 귀족들이 줄줄이 뒤를 이어 자발적으로 나섰다. 모두 6명의 의인이었다. 시민을 위해 스스로 희생에 나선 이들이 칼레를 구했다.

로댕은 숭고한 역사를 담은 작품 완성에 10년이란 세월을 투자했다. 칼레 시민들은 거장 로댕의 손길이 칼레와 그 시민들을 구한 ‘영웅’을 용감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조각상으로 나타내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로댕이 완성한 작품은 칼레 시민들의 기대와 달랐다. 도시의 함락을 앞두고 목숨을 내놓으러 나선 6명의 인물은 공포와 고뇌에 가득차 있었다. 영웅이 아니라,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숙인 채 고독과 공포에 처해 고뇌하는 사람들이었다. 로댕은 6명의 인물들을 제각각 흩어지게 배열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 속에 인물마다 고유한 표정과 움직임이 살아 있게 만들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연합


출처: [한겨레신문 2007-06-19 오후 07:30:30]

2007년 6월 19일 화요일

출연연 연구원 ‘진짜’ 퇴출된다

‘절대평가’로 연구평가의 형평성 맞춰야

최근 서울시와 울산시, 그리고 행정자치부가 무능하고 불성실한 공무원 퇴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에서도 연구원 퇴출을 둘러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대전의 한 출연연에 근무해 온 A연구원은 6월말까지만 출근한다.

그는 ‘삼진아웃제’에 의해 퇴출되는 것이다. 삼진아웃제란 △연구비 수주실적 △특허∙논문 출원 △기술이전 수입 등을 근거로 한 개인역량 평가에서 3년 연속 하위 평점을 받은 연구원은 기관과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해당 기관을 떠나는 제도다. A연구원은 지난 3년간 하위 평점을 받은 것에 대해 사유서를 준비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연구원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용지물’이던 출연연 퇴출제

(▲ 최근 바이오 분야에서 근무하던 출연연의 한 연구원이 ‘삼진아웃제’에 의해 기관을 떠날 예정이다. ⓒ동아사이언스)

출연연의 연구원 퇴출제는 갑자기 생겨난 제도가 아니다. 대부분의 출연연은 퇴출에 대한 자체 규정이 있으나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을 뿐이다. 가령 2년 연속 최하위 점수를 받은 연구원은 적성과 전공을 최대한 고려해 다른 연구팀으로 옮기거나 뒤쳐진 기술을 만회하도록 해외연수를 가기도 한다. 심지어 모 출연연의 관계자는 “3년 연속 하위 5%에 들더라도 한 차례 기회를 더 준다”고 밝혔다. 이처럼 실적이 부진해도 연구소를 떠나는 이가 드물어 삼진아웃제는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출연연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한국화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4~5년 전부터 연구성과가 아닌 연구비 수주실적으로 평가가 강화되면서 훌륭한 연구를 해놓고도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IMF 사태 이후 비정규직 연구원이 많아지고 연봉제가 도입되면서 연구원에 대한 평가가 강화된 때문이다. 또한 연구비 취득이 개인평가 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거나 특허를 출원해도 해당 연구비의 금액이 적으면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1996년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연구과제중심제도’(PBS, Project Based System) 시행이 이런 문제를 불러왔다고 지적하는 연구원도 있다. 10년 넘게 근무한 출연연의 한 책임연구원은 “연구과제 수주에 매달리다보니 ‘보따리 장사’라 불린다”며 “인건비의 40%까지만 정부가 대주고 나머지는 연구원이 직접 수주 받은 연구과제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기관에서도 연구비 확보를 평가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PBS보다는 ‘상대평가’가 문제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과거 절대평가를 할 때는 퇴출 연구원에 대한 평가결과에 다른 연구원들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며 “현재 연구원을 S∙A∙B∙C∙D등급별 강제 배분하는 상대평가는 오히려 연구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팀의 속한 연구원의 실적이 모두 높을 경우에도 일정 비율은 낮은 등급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밥벌이 얼마나 했나”가 평가기준?

조성재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회장은 “연구원이 생산해야할 본질적 가치는 ‘연구성과’”라며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인 ‘돈’으로 평가되는 현실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시 말해 연구에 집중해야 할 연구원에게 “네 밥벌이 얼마나 했냐”고 따진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 대덕의 밤은 깊지만 출연연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의 열정은 환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조 회장은 “5~10년 전에는 우수한 평가를 받던 연구원의 연구분야가 사회적 필요성이 떨어진다면 최근 3년간 연구과제를 수주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이런 논리라면 지금 잘 나가는 연구원도 언제든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공공기술연구회 산하의 한 연구원은 “연구과제의 액수가 작고 학문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적은 기초과학을 탐구하는 전공자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적은 연구비로 과제를 수행해 ‘사이언스’나 ‘네이처’, ‘셀’ 같은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알려진 생약의 효과를 재검증하거나 양약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상의학의 과학화를 추구하는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선 다른 분야의 평가잣대로 다룰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기술개발 속도가 빠른 IT분야에선 45세가 넘으면 자기발전에 한계를 느낀다”며 “연구 분야별 특성을 반영해 평가하거나 적성과 능력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출연연의 연구원들은 내부경쟁을 해야 조직이 발전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의 미래도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즉 현재의 ‘퇴출제’에 적극 찬성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변호사는 자식에게 자신의 직업을 권할 수 있어도 과학자는 그럴 수 없다”며 “과학자가 연구에 전념한 만큼 보상받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 적당히 연구하는 문화도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2007-06-19 오후 5:21:48

‘음악’에 푹 빠진 과학자

“우리 연구실은 ‘음악을 좋아한다’ ‘악기연주를 잘한다’고 받아주지 않습니다. 수학이나 물리를 잘해야지. 하지만 입학하면 제가 말을 바꾸죠. 명색이 소리를 연구하는데 악기 하나씩은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연구실의 모든 학생들에게 악기를 배우도록 하고 연말마다 연주회를 여는 과학자가 있다. 바로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성굉모(60) 교수다. 그를 찾아 뉴미디어연구실의 지하계단을 내려가자 어둠 속에서 은은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왔다. 흔히 볼 수 있는 공대 분위기와는 색다른 풍경이다.

‘모범생’이어서 이루지 못한 꿈

(ⓒ동아사이언스)

성 교수의 전공은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진동이 인간의 귀에 소리로 들리는 과정을 연구하는 ‘음향학’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독일 아헨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83년 귀국해 전자공학과(현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또 음대 겸임교수직을 맡아 악기의 물리적 구조와 소리가 나는 원리 같은 음악음향학을 20년 넘게 강의하고 있다. 이렇듯 음악을 좋아하는 그가 음대에 가지 않고 공대에 간 이유는 뭘까.

“중학시절 안익태 선생처럼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는 꿈을 가졌죠. 하지만 모범생(?)이어서 꿈을 이룰 수 없었어요.” 음악이론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던 열네 살 소년에게 음악 선생은 작곡공부를 권유했다. 하지만 생활고에 허덕이던 1960년대 부모와 교장 선생은 결사반대를 하고 나섰다. 전교 1, 2등을 하는 학생에게 과학자가 훨씬 낫다는 이유에서다. 성 교수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던 모범생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 교수는 “역사에 ‘만일’이란 있을 수 없다”며 “음향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1971년 독일 아헨공대에 유학을 간 그는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세부전공으로 음향학을 선택했다. 성 교수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좋았고 감성의 영역인 소리를 물리적인 공학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지도교수는 바이올린 연주에 수준급이어서 다른 음대 교수들과 현악4중주를 연주할 정도였다.

독일에서 지도교수와 바이올린의 음질 개선을 연구한 그는 귀국한 뒤에도 악기와 관련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왔다. 특히 성 교수는 “우리나라 향가를 경성제국대 일본인 교수가 처음 해독했다는 사실은 치욕”이라며 “국악 연구를 우리가 안하면 누가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성 교수는 국립국악원과 함께 국악기의 계량이나 국악기가 내는 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음의 높낮이에 대한 표준음을 설정하기도 했다.

‘위스키’ 마시며 관람하는 연주회

(▲ 성 교수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사람들과 함께 ‘젤로소 윈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동아사이언스)

“성인이 된 뒤 악기를 배우려는 사람에겐 기타나 아코디언, 색소폰을 다룰 것을 권합니다. 쉽게 배울 수 있고 어떤 장르든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성 교수가 매일같이 연습하는 악기는 색소폰이다. 색소폰은 교회나 성당에선 종교음악을 연주할 수 있고 캄캄한 무대에선 찐득한 음악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그는 귀띔했다.

성 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색소폰만 모두 6개. 소프라노 색소폰, 알토 색소폰, 테너 색소폰처럼 다양한 악기를 갖고 있다. 그의 집에는 트럼펫과 튜바, 클라리넷 등 20여개가 넘는 악기가 더 있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성 교수는 프로와 수준급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모인 ‘젤로소 윈드 오케스트라’의 단장까지 맡고 있다. 그리스어로 ‘젤로스’(zelos)는 열정이란 뜻이다. 이름대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소리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연주자가 무대에 오를 때 느끼는 가슴 떨림도 맛봐야 합니다.” 보통 음향학을 연구하는 다른 나라의 연구실은 조촐한 연주회를 갖지만 성 교수의 연구실은 제자의 가족들을 초청해 성대한 연주회를 연다. 한 해는 학교 대강당을 빌려 콘서트를 열고 또 한 해는 학교 후문에 위치한 재즈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색다른 콘서트를 갖는다.

성 교수는 “우리나라는 개인적인 취향이 있어야만 과학자가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며 “외국에선 음악이 생활의 일부니까 어린이들도 ‘나도 클라리넷이나 트럼펫 들고 취악대에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문화선진국인 유럽 각국은 마을마다 ‘윈드앙상블’(Wind Ensemble, 입으로 불어서 소리 내는 악기로 이뤄진 연주단)이 있다. 나아가 성 교수는 “유럽에서 음악이 생활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과학을 친숙하게 하려면 문과, 이과, 예체능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뉴스등록시간 : 2007-06-19 오후 3:15:33

역사 서술 방법의 종류

우선 역사서의 편찬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형식이 있었다 한다.

역사 서술 방법 - 기전체, 편년체, 기사본말체, 강목체

편년체(編年體): 시간 순으로 서술하는 방법 (조선왕조실록,고려사절요)
기전체(紀傳體): 사마천의 사기가 기원, 본기(왕의 행적), 세가(제후의 전기), 연표(연대기), 지(사회, 경제, 문화, 제도), 열전(신하의 전기) 등으로 나누어 서술, (삼국사기,고려사)
강목체(綱目體): 성리학적 사관을 바탕으로 역사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구분하고, 강(큰 줄거리)과 목(자세한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는 형식, (동사강목)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법 (연려실기술)

기전체랑 편년체는요 역사를 서술하는 한가지 방법인데요. 기전체는요 역사사실을 서술할 때 본기(本紀) ·열전(列傳) ·지(志) 등으로 구성하여 서술하는 역사서술의 체재입니다. 한 왕조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하여 여기에 속한 신하들의 전기 ·통치제도 ·문물 ·경제실태 ·자연현상 등을 분류, 서술하여 왕조 전체의 체제를 이해하기에 편한 역사서술이므로 중국 ·한국의 정사체제로서 자리잡았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조선시대 관찬사서인 《고려사》, 그리고 사마천의 《사마천 사기》가 그 예입니다.

그리고 편년체는요. 연월(年月)에 따라 기술하는 역사편찬의 한 체재입니다. 일기처럼 시간순서에 따라 써내려 가는 방법이지요. 기전체형식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이러한 기술방식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후한대순열편저의 《한기》에서부터입니다. 그후 역대로 단대사적 편년의 역사서가 작성되어 왔으나, 북송의 사마 광에 이르러 비로소 통사로서의 《자치통감》이 편찬되었으며 이를 계승하여 이도의 《속자치통감장편》 등의 우수한 편년체의 사서 편찬이 계속되었고, 연월에 따르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기사의 분단을 보충하기 위한 방식으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형식의 사서도 편찬되었답니다.
(출처: 멋쥔넘(csj8563) 님의 블로그)


통사와 분류사

그리고 통사와 분류사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우선 통사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고, 그 반대말인 분류사는 사전에는 없었으며 네이버 지식iN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통사(通史): [명사]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 또는 그렇게 쓴 역사.

통사(通史)와 분류사(分類史)

6차교육과정에서 배웠던 국사 교과서는 통사였고 7차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국사 교과서는 분류사입니다.
6차(통사)에서는 시대별로 단원이 나뉘어져서 삼국시대 안에 삼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고려시대 안에 고려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이 시대별로 묶어져 있었는데 7차(분류사)는 정치사,경제사,대외관계사,사회사,문화사로 단원을 나눠져서 정치사 안에서 고대의 정치, 중세의 정치, 조선의 정치를 배우고, 경제,사회, 문화 역시 그 안에서 시대별 세부 내용을 배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통사는 선사시대,고대,중세,근세..등으로 시대별 구분이 되어있고, 분류사는 경제사,대외관계사,문화사,사회사,정치사 등 영역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분류사는 주제에 따라 변화과정을 연결하면서 배우기 때문에 흥미를 유발하기 좋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책이 상호 연결되는 주제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주제를 재미있게 드러내기 쉽고, 학생들은 쉽고 재미있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반면, 통사는 시기나 큰 주제에 초점을 맞춘 서술 방법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추적하는데 유효합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iN mugirg 님 글)

책)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한국사



<남경태의 역사 오딧세이 3부작>
남경태, 종횡무진 동양사, 그린비, 1998.
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그린비, 1999.
남경태, 종횡무진 한국사(상,하), 그린비, 2001.

각각의 역사를 통사 형식으로, 그 흐름을 한눈으로 읽을 수 있게 구성된 역사책이다. 통사는 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 또는 그렇게 쓴 역사라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이렇게 통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가는 형식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장점이 있다. 특히 이 책처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사책에서 어울리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필연적 요인으로서 지정학적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서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정치체제와 사상이 발전한 이유를 들 수 있다. 동양에서는 지리적으로 중심이 있을 수 있었고 서양에서는 중심이 있기 힘든 지형이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수직적인 정치사상이 발전하였으며 계속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역사였고, 서양에서는 수평적인 사상과 함께 지방분권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사건들을 큰 흐름의 표출로써 설명하는데,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필연성을 가정한다. 여기에서 그 큰 흐름이나 필연성을 자연 과학의 가설이나 법칙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러한 가설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더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히면 우연적인 요인으로써, 각 역사적 배경에서 등장하는 인물들(특히 지도자들)과 전쟁의 승패 결과가 있는 것 같다.

연장선상의 이야기인데, 책에서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그 배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오지만, 직접적 계기는 우연한 작은 사건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264년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메시나가 시라쿠사와의 다툼으로 로마 원로원에 SOS를 치지 않았다면 포에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원후 303년 서진의 사마영이 흉노 족장 유연을 팔왕의 난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중국의 남북조시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계기들이 없었다 해도 기원전 3세기에 로마는 어차피 지중해 세계를 통일했을 테고 기원후 4세기에 중국은 오랜 분열기로 접어들었겠지만, 어쨌든 계기로만 보면 지극히 사소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그 계기를 만든 자들은 그런 결과가 빚어질지 미처 몰랐으리라는 이야기다. [종횡무진 한국사(상) pp. 344]
저자의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 역사학계에서 정설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으나,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거의 독립적으로 발전했던 각각의 문명 사이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이나 발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제자백가가 발생하던 시기나 고대그리스에서 고전 철학이 성립하던 시기, 18세기의 서양의 백과전서와 청나라의 고금도서집성, 사고전서 등의 백과사전 편찬,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일본 막부의 성립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 책과 같은 통사적인 역사 서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인 것 같다. 이러한 사실들도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 뿐일까.

이 책의 특징으로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민족(사람) 중심이 아닌 어떤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한민족이 살았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고 유목적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 동감한다.

나는 이 책을 서양사 - 동양사 - 한국사의 순서로 읽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현대는 서양사의 세계로 전 세계가 통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서양에 흡수되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봐도 무리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서양 역사 발전의 연속선상에서 전 세계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하나의 문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동양과 서양은 별개의 문명이라 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처럼 각각에 대해 통사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동양사, 특히 중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인만큼 동양사를 먼저 읽고, 연속적으로 한국사를 읽는 것이 좋았었다.

여기에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역사는, 가까이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지 못한 사대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여기서도 역사의 필연적 원인으로서의 지정학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왕조교체나 분열 등의 환경에 따라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끼쳤음을 말하고 있다(멀게는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 모두).

특히 직접적으로 현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에 대해서는 수직적 중화주의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왕이 아닌) 사대부들이 지배한 사회라 말하고 있다(오히려 근대 유럽처럼 절대왕정의 시기가 있었다면 더 바람직하게 발전했을 거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학자-관료라는 개념과 당쟁, 사화 등이 사대부들이 지배하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 사육신이나 연산군도 겉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사대부의 지배가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대부, 성리학 중심의 조선에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 한족의 왕국이 멸망하자, 소중화주의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상까지 생겨, 그 후 역사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말하고 있다.

또한 국난이 생길 때마다 항상 도망가는데 급급했던 지배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병자호란, 임진왜란, 가까이는 6.25 때까지). 그리고 해방 후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이승만, 김일성: 잘못된 역사의식과 비정상적인 권력욕을 가진) 지금 분단의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고 있다. 이는 혁명을 통해 모순을 없애지 못한 우리나라의 한계이지만, 각 국민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을 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고 있다.

충치! 치료를 제때하지 않으면 질환은 계속해서 심해집니다.

□ 치아 조직 구조


치아조직(Dental tissues)은 법랑질(사기질, Enamel), 상아질(Dentin), 치수(Pulp)로 구성됩니다.
법랑질은 치관부 표면의 가장 단단한 부분으로 저작 압력과 충치를 일으키는 산이나 온도변화로부터 치아의 내부인 상아질과 치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상아질은 치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꺼운 조직입니다. 치관부는 법랑질에 의해 싸여 보호를 받으며, 치근부는 백악질로 싸여 보호를 받습니다. 상아질 내부는 치수실과 근관이 위치합니다.
치수는 치아 내부에 위치하는 연조직으로, 치수실과 근관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수는 신경, 혈관(세동맥, 모세혈관, 세정맥), 림프, 결합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충치의 발생과 질환 심화 과정

충치의 주요 발생 부위


충치는 대개 어금니 표면 홈이나 쑥들어간 곳, 인접면 앞니의 사이에 자주 발생합니다. 충치 발생원인등에 대한 설명은 후술하기로 하구요, 여기에서는 일단 충치가 발생하여 치료를 미루거나 방치하게 되면 어떻게 질환이 확대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충치 진행 1단계] 법랑질 우식


지각신경이 없어 아프지 않으나 법랑질이 침식(우식)되어 보통 까맣게 변합니다. 이 시기의 충치는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을 수 있으며 정기적 관찰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법랑질 우식 단계의 치료는 예방치료인 실런트나 정기적 검진이 있습니다.

[충치 진행 2단계] 상아질 우식


충치가 진행되어 상아질에 이르게 되면 이를 상아질 우식이라 하는데, 상아질에는 상아세관이 있어서 이것에 따라 충치 진행이 빨라지고 움푹패는 공동이 생기기 쉬우며, 음식찌꺼기등이 쉽게 고이게 되어 충치진행을 빨리 촉진시키고 썩는 냄새를 나게 합니다. 상아질 우식 단계에서는 찬공기나 물에 접촉하면 통증이 있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 치아충전술(치료)가 행해집니다. 상아질 우식 단계의 치료는 직접충전(레진)과간접 충전(레진,금)이 있습니다.

[충치 진행 3단계] 치수염


상아질 우식 단계에서 충치 치료를 방치하게 되면 충치균이 치수 조직까지 침투하여 치수염증을 유발하게 되는 ‘치수염’을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충치 때문에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고 할 때 보통 치수까지 충치가 확대된 경우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치수염은 통증이 심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또한 찬물이 들어가면 더욱 아픕니다. 많은 분들이 상아질우식단계에서 충치를 자각하고 치과치료를 계획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이상 아파서 견디지 못할 경우에 치과를 방문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이 치수염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수염은 염증이 발생한 부위를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발수하여 약제로 소독,소염한 다음 충전을 하게 됩니다. 치수염 단계에서 치료는 치수를 처치하는 일수 만큼 치료기간이 길어집니다. 보통 환자가 치료 도중에 치통이 사라지게 되면 나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치료를 미루거나 중단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반드시 치수염이 재발하고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다보면 치주염까지 진행되어 치료를 더욱 어렵게 합니다.
치수염 단계의 치료는 신경치료와 이에 연이은 보철치료(크라운이나 레진 충전)이 있습니다.

[치수염 방치 이후] 치근막염과 치조골염으로 파급


치수염을 방치할 경우, 치근과 턱뼈 사이에 있는 섬유성 조직인 ‘치근막’에 염증을 유발하게 됩니다. 치근막염증은 곧 치조골염증으로 파급되게 됩니다. 치근막염의 병소가 작을 때는 치아 주위를 소독하고 세균과 염증 조직을 제거해서 치료를 진행하지만, 염증이 심하게 진행되고 잇몸 뼈까지 상했을 경우에는 잇몸수술과 잇몸뼈 이식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치조골염은 치근 주위 턱뼈에 생기는 염증을 뜻합니다. 여러 발병원인이 있지만, 충치를 방치할 경우에도 발생하게 됩니다. 치조골염 단계까지 질환이 심화되면 우선 질병이 일어난 부위를 안정시키고 항생제를 투여하여 염증을 가라앉힌 후 원인이 되는 치아를 뽑아내게 됩니다.
또한 치조골염으로 인해서 고름이 고여 있는 부분(치은농양으로 질환 심화)은 절개해서 고름을 제거하고 뼈가 썩은 경우에는 수술을 통해 그 부위를 긁어내게 됩니다.?
치수근막염 단계의 치료는 신경치료와 이에 연이은 보철치료(크라운이나 레진 충전), 발치가 있습니다.치조골염 단계의 치료는 신경치료와 이에 연이은 보철치료(크라운이나 레진 충전), 발치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 치근단수술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간단한 충치가 계속해서 방치되게 되면 질환이 심화되어 치료기간과 치료방법이 더욱 어려워진답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충치치료와 신경치료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네모치과 홈페이지

2007년 6월 18일 월요일

“TV화질, PDP가 LCD보다 낫다”

시노베이트, 일본 등 5개국 비교 시연 결과 발표
비교전 "PDP, LCD 차이 없다" → 비교후 70-80% "PDP가 더 좋다"


디지털 TV의 양대산맥인 LCD와 PDP 중 어느 쪽의 화질이 더 뛰어날까.

TV업계 최초로 유럽과 아시아 등 5개국에서 LCD와 PDP TV 화질을 소비자 시각에서 비교 시연한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독일의 시장조사기관인 시노베이트는 최근 일본과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5개 국가에서 동시에 PDP와 LCD의 화질을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비교 시연한 결과를 내놓았다.

결론부터 보면 PDP의 압도적인 'KO' 승이었다.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시연에 참여한 5개국 소비자 70-80%가 PDP의 화질이 더 좋다고 답했다.
시연 결과 중국(참가자 181명)은 88%, 일본(192명)은 80%, 영국(171명)은 70%, 프랑스(179명) 69%, 독일(123명)은 80%가 PDP TV 화질이 더 좋다고 답했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비교 시연을 하기 전 프랑스를 제외한 4개국 참가자들은 PDP와 LCD의 화질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거의 50대 50으로 LCD와 PDP의 화질이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비교 시연 이후 80대 20으로 PDP 화질이 더 좋다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중국에서 진행된 비교 시연 결과를 보면 선명도에서는 76%, 색상은 71%, 반응속도 69%, 명암비 73%, 블랙화질 72%, 해상도 76%, 이미지 깊이 74%, 광시야각 59% 등 거의 모든 항목에서 60-70%의 참가자가 PDP 화면이 더 좋다고 답했다.

시노베이트는 "PDP에 대한 화질 선호도는 40인치 대보다 50인치 대의 대형 화면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대형 화면일수록 LCD보다 PDP 화면에서 눈의 피로감을 덜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연은 LCD, PDP 구분이 불가능하게 TV의 상표 등을 가리고 같은 조건 하에 같은 영상을 방송한 상태로 실시됐다.

TV는 '일반(normal) 모드'로 조정됐고 TV와의 거리는 3H(3 x TV의 높이), 실내 조도는 실외 자연광이나 기타 외부 조명은 완전히 차단한 채 생활환경의 차이를 반영해 유럽에서는 50㏓, 일본에서는 100㏓, 중국에서는 150㏓를 적용했다. 내용도 4분 정도 같은 영상물이 동시에 방송됐다.
TV 업계 관계자는 "이번 시노베이트의 블라인드 테스트는 결국 동등한 조건에서 보면 PDP가 LCD에 비해 화질이 월등히 좋음에도 불구하고 LCD 진영의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LCD 화질이 더 좋다'는 선입견을 갖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따라 최근 PDP 업계는 소비자에게 TV 화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PDP와 LCD 화면을 직접 비교 시연하는 행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삼성SDI[006400]는 TV 동호회 등을 상대로 한 소규모 고객행사를 매달 개최해 소비자들이 PDP TV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깨고, LCD TV와의 화질 경쟁에서 앞서는 점을 알리는 '입소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LCD 업계 관계자는 "LCD TV도 최근 LED 백라이트, 플랙패널 등 신기술을 적용해 화질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고 특히 최대 약점이었던 동영상 잔상 문제도 거의 없앴다"며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어떤 TV 기종을 사용했는가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서울=연합뉴스 2007-06-18 오전 07:24:52 )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

2007년 6월 17일 일요일

조선 [사설] 민영화 안 하면 공기업 개혁도 안 된다 에 대해서

조선 [사설] 민영화 안 하면 공기업 개혁도 안 된다 에 대해서

(홍재희) ====== 진실과 거리가 먼 거짓과 불공정 편파 왜곡된 주장으로 한국사회의 올바른 가치관정립을 위한 건강한 여론형성에 역행하고 있는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사설은

“한국전력 發電발전 子자회사들의 민영화작업이 중단된 뒤 생산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석탄화력발전소 생산성 증가율이 2001~2003년에 평균 6.6%로 치솟았다가 2003년 이후 3.6%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산업연구원은 석탄화력발전소 생산성 증가율이 2001~2003년에 평균 6.6%로 치솟았다가 2003년 이후 3.6%로 떨어졌다고 밝혔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왜 무엇 때문에 석탄화력발전소 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졌는지에 대해서 산업연구원이 구체적으로 밝힌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사설은

“연구원은 2001~2003년에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2001년 한전에서 6개 발전 자회사가 떨어져 나오고 민영화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3년 자회사 중 하나인 남동발전 매각이 실패하고 2004년 配電배전부문 분할계획이 중단되면서 민영화계획이 백지화되자 생산성 개선 효과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민영화를 앞두고 긴장하던 자회사들이 민영화 중단과 함께 公공기업 체질로 되돌아갔다는 얘기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연구원은 2001~2003년에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2001년 한전에서 6개 발전 자회사가 떨어져 나오고 민영화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조선사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구체적으로 2001~2003년에 생산성이 높아진 사실을 적시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2001년 한전에서 6개 발전 자회사가 떨어져 나오고 민영화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2001~2003년에 생산성이 높아진 원인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사설은“그러나 2003년 자회사 중 하나인 남동발전 매각이 실패하고 2004년 配電배전부문 분할계획이 중단되면서 민영화계획이 백지화되자 생산성 개선 효과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할계획 자체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민영화계획 백지화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조선사설은“ 민영화를 앞두고 긴장하던 자회사들이 민영화 중단과 함께 公공기업 체질로 되돌아갔다는 얘기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 주장대로라면 구체적인 생산성 향상의 실천없이 민영화를 앞두고 긴장만 해도 생산성이 오른다는 식의 조선사설의 부실한 논조는 오늘자 조선사설이 공기업 개혁문제에 대해 얼마나 부실하게 접근하고 있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사설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非비능률·非비효율은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국은 1980년대부터 통신에서 철도까지 거의 모든 부문의 국영기업 민영화에 나섰고 각국이 뒤따르고 있다. 일본도 정부 산하 163개 法人법인 중 일본은행, 예금보험기구 등 5개만 남겨놓고 모두 민영화하거나 독립법인으로 바꿨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철도와 전력등의 공공기관은 국가전략적 산업이다. 단순하게 시장의 경쟁을 통한 수지타산의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공공성과 공영성과 공익성이 있는 기관인 것이다. 그리고 철도와 전력등의 산업은 특성상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경쟁을 통한 수지타산의 논리를 적용해 효율성을 극대화 할수 없는 한계가 있다. 영국이 철도민영화 이후 영국철도가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다. 그리고 민영화이후 오히려 영국 철도의 문제점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민영화된 미국의 캘리포니아 지역 전력산업도 많은 문제점을 않고 있고 부작용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1980년대부터 통신에서 철도까지 거의 모든 부문의 국영기업 민영화에 나선 영국의 경우 프랑스의 떼제베가 달리는 프랑스의 철도산업보다 발전했다는 근거도 없다. 영국과 프랑스의 국민 1인당 소득규모도 거의 대등소이하다. 대한민국은 1997년 IMF 관리체제를 통해 영국 미국 일본 보다 훨씬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양산하면서 신자유주의 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해 일본보다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은행과 보험등 금융개혁을 해놓았다.

조선사설은

“한국만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다. 이 정권은 출범 후 단 한 개의 공기업도 민영화하지 않았다. 도리어 前전 정권이 만든 전력·도시가스·철도 민영화계획까지 없던 일로 해버렸다. 대신 정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공기업 체질을 바꾸고 경영을 革新혁신하면 된다고 큰소리쳤다. 정권 코드에 맞는 사람들을 공기업 개혁에 적임자라며 사장·감사·임원으로 내려보냈다. 그러니 공기업 생산성이 높아질 리 없다. 공기업 감사들이 ‘세미나’ 한다며 南美남미 이과수폭포에 놀러가려던 사건은 민영화 없는 공기업 개혁이 얼마나 허튼소리인지를 말해준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기업 체질을 바꾸고 경영을 혁신하기위해 공기업 개혁에 적임자라며 사장·감사·임원으로 내려보낸 사람들이 관광 여행성 해외여행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발전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조선사설 식으로 그런 지엽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다면 이들 공기업보다 더 폐쇄적이고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민간기업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 그룹과 조선일보의 경우는 오히려 국영화 해야 하지 않을까? 삼성그룹의 이건희 부자는 수많은 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을 동원해 지금 회사와 재산을 불법 탈법으로 승계하고 상속하다가 들통나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됐고 선거때마다 차떼기 정경유착으로 회사의 투명경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정몽구 부자도 수많은 전문경영인들을 동원해 현대자동차그룹과 개입재산을 불법 탈법 편법 승계하고 상속하다가 들통나 현재 재판중에 있다. 이런 삼성과 현대의 재벌오너들의 부실경영으로 삼성과 현대에 대한 국제적인 신용도가 실제보다 낮게 저평가 되고있다.

(홍재희) =====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도 천문학적인 탈세와 횡령으로 대법원으로부터 최종유죄가 확정돼 조선일보 발행인 자격을 박탈당한 상황이다. 이런 경우도 공기업 감사들의 남미 이과수폭포 관광계획의 문제점을 부각해 공기업 모두를 민영화 해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한다면 역설적으로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 그룹이나 조선일보등 민간기업이 배타적 오너의 황제경영으로 민간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공사화 해야 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홍재희) ===== 미국이 요구하는 신자유주의경제정책에 의해 진행했던 중남미의 민영화 계획은 모두 실패했다. 중남미는 거의 모든 나라의 정권이 좌파로 넘어갔다. 영국과 함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메카라고 할수 있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이 최근 고백한 것은 조선일보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최근 지난 30여년 동안 미국경제가 도입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이 미국의 역동적인 성장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조선사설은 그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자료출처 = 2007년 5월26일 조선일보 [사설] 민영화 안 하면 공기업 개혁도 안 된다 )

출처: [우리모두] 홍재희 님 글 2007/05/26 (12:14:42)

제주도 안정적인 전력공급 열쇠는 “발전소·HVDC·풍력 상호 보완”

제주 풍력발전으로 계통 불안정 요인…HVDC 연계로 해소해야

LNG발전소·HVDC 동시건설…2013년 설비예비율 70%대 육박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도)는 국제 자유도시이자 섬 도시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다. 물론 전력공급도 섬이라는 지리적 이유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발전설비 6600만kW, 송변전 설비용량 2억kVA를 달성하는 등 세계 12위의 전력강국이다. 기술적으로도 송배전 손실률 4%, 정전시간도 10분대를 유지하는 등 세계적 수준이다. 그런데 지난해 4월 1일 제주도 전역을 강타한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2시간이 넘는 정전을 일으킨 이 사고는 육지에서 제주도로 전력을 공급해 주는 HVDC가 원인. 연간 국내외 관광객 45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제주도다. 대한민국의 얼굴인 제주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고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이에 정부는 제주도 전력공급의 다변화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꾀하기 위해 예산낭비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LNG발전소와 해저케이블을 동시에 건설하는 방안을 채택한 바 있다. 다음은 제주도 전력공급과 계통에 대해 살펴본다.

오는 2020년까지 전국의 전력수요는 전력저소비형 산업구조로 전환되는 등의 영향으로 연평균 2.5% 증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제주도 전력수요도 이보다 조금 낮은 2.4%를 기록할 전망이다.

제주도 최대전력은 오는 2020년까지 연평균 4.1% 수준으로 다소 높은 증가세를 유지. 오는 30일 남제주화력 3·4호기가 준공되고,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30만kW급 LNG발전소가 오는 2013년과 2018년에 각각 준공, 20만kW급 HDVC가 오는 2011년 연결되면 제주도의 전력공급은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높은 설비예비율. 이 전력공급체계가 모두 갖춰지면 제주도의 예비율은 오는 2012년까지 20∼40%의 설비예비율을 유지한다 ▲2013년 70.2% ▲2014년 65% ▲2015년 60.6% ▲2016년 56.1% ▲2017년 52.3% ▲2018년 43.9% ▲2019년 40.4% ▲2020년 37.2% 등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산업자원위원회 최철국 의원(열린우리당)은 “제주도에 30만kW급 LNG발전소와 20만kW급 HVDC를 동시에 건설할 경우 2012년 총 설비용량은 145만kW로 설비예비율이 100%에 이르는 기이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며 “현재 방안대로 전력설비를 제주에 추가 건설할 경우 평소 2/3의 전력설비가 쉬게 되고 피크 시에도 절반이 쉬게 된다며 이는 명백한 예산낭비”라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수요관리 등 단기수급 측면에서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주도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력은 어디서 공급되는가. 풍력발전을 제외하고 제주도내 발전소는 크게 3곳이다. 이 중 한 곳은 북제주군에 위치하고 있는 중부발전의 제주화력. 이 발전소의 설비용량은 25만5000kW, 중유와 등유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두 곳은 남부발전의 남제주화력과 한림복합화력이다. 남제주에 위치한 남제주화력은 중유를 사용하며 오는 30일 준공되는 3·4호기를 포함해 설비용량이 자그마치 26만kW로 제주도에서는 가장 크다. 또 총 설비용량 10만5000kW인 한림복합화력은 등유를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제주도 전력공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급원은 HVDC. 전남 해남과 제주를 연결하는 HVDC는 지난 1998년 개통됐으며, 설비용량은 16만kW다. 이들 전력공급원은 79개 배선선로를 통해 제주도 전역으로 전력을 공급한다.

그렇다면 제주계통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제주계통 문제점에 대해 중부발전 양경호 팀장은 단위용량이 계통용량보다 큰 발전기가 다수 운영되고 있어 발전기 탈락시 주파수 큰 저하폭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또 전력연계선 수전 비중이 높아 계통탈락시 저주파수계전기의 동작이 수반되고, 전력연계선과 발전기 동시 탈락시 전 계통 정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했다.

양 팀장은 이 문제점에 해법으로 제주계통 경부하와 기저부하시 계통 신뢰성 추구 계통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경부하와 기저부하 시 전력연계선을 계통연계 역할만 수행하도록 하고 계통부하는 제주지역 발전기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계통운영을 전력연계선과 최대 단위의 탈락 시에도 전 계통 정전으로 진전이 안되도록 부하제한을 적절히 시행해 운전중인 발전기의 탈락을 방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고장파급방지장치를 적극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력거래소 배주천 팀장은 제주도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제주도 전력 40∼50%를 담당하고 있는 HVDC의 안정운영이 우선 시 돼야 하고, 오는 30일 종합 준공되는 남제주화력 3·4호기의 안정적인 운영, 무효전력 수급 안정, 풍력발전 증대 대비, 지속적인 운전요원 교육훈련 등을 꼽았다.

제주도 전력계통에 큰 변수는 풍력발전이다. 지난 1998년 행원풍력이 최초 상용화에 성공, 이어 한경풍력 1단계와 2단계 등이 건설되면서 풍력 도시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제주도가 풍력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은 우수한 이용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풍력발전분야에 앞서 있는 덴마크와 미국의 이용률이 20%, 독일이 15%다. 그러나 제주도의 풍력발전 이용률은 30%를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풍력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제주계통에서 약한 부분이 있다. 제주대 김일환 교수는 “풍력발전의 경우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바람의 세기와 양에 따라 다르므로 급전지시가 불가능해 계통운영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출력도 단시간 변동이 심해 전력품질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부하 말단 접속 시 전원의 대민 신뢰성도도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풍력발전에 의한 출력조정 불능과 작은 출력변동 특성 등 계통 불안정 요인을 HVDC 연계운전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와 연계해 송·수전 양방향 전송이 가능하고 보조적인 발전원으로 사용 가능, 송전량의 실시간 제어로 부하변동에 대한 속응성이 뛰어난 점을 꼽았다.

이외에도 제주 동부와 서부로 나눠져 있는 것에 대해 풍력발전시스템의 출력 통합을 위한 전용 HVDC 시스템 운영과 전용선로를 운영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김진철 기자 jc-kim@
출처: [에너지 경제 신문 2007-05-23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