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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9일 화요일

책)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한국사



<남경태의 역사 오딧세이 3부작>
남경태, 종횡무진 동양사, 그린비, 1998.
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그린비, 1999.
남경태, 종횡무진 한국사(상,하), 그린비, 2001.

각각의 역사를 통사 형식으로, 그 흐름을 한눈으로 읽을 수 있게 구성된 역사책이다. 통사는 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 또는 그렇게 쓴 역사라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이렇게 통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가는 형식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장점이 있다. 특히 이 책처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사책에서 어울리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필연적 요인으로서 지정학적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서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정치체제와 사상이 발전한 이유를 들 수 있다. 동양에서는 지리적으로 중심이 있을 수 있었고 서양에서는 중심이 있기 힘든 지형이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수직적인 정치사상이 발전하였으며 계속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역사였고, 서양에서는 수평적인 사상과 함께 지방분권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사건들을 큰 흐름의 표출로써 설명하는데,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필연성을 가정한다. 여기에서 그 큰 흐름이나 필연성을 자연 과학의 가설이나 법칙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러한 가설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더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히면 우연적인 요인으로써, 각 역사적 배경에서 등장하는 인물들(특히 지도자들)과 전쟁의 승패 결과가 있는 것 같다.

연장선상의 이야기인데, 책에서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그 배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오지만, 직접적 계기는 우연한 작은 사건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264년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메시나가 시라쿠사와의 다툼으로 로마 원로원에 SOS를 치지 않았다면 포에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원후 303년 서진의 사마영이 흉노 족장 유연을 팔왕의 난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중국의 남북조시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계기들이 없었다 해도 기원전 3세기에 로마는 어차피 지중해 세계를 통일했을 테고 기원후 4세기에 중국은 오랜 분열기로 접어들었겠지만, 어쨌든 계기로만 보면 지극히 사소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그 계기를 만든 자들은 그런 결과가 빚어질지 미처 몰랐으리라는 이야기다. [종횡무진 한국사(상) pp. 344]
저자의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 역사학계에서 정설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으나,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거의 독립적으로 발전했던 각각의 문명 사이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이나 발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제자백가가 발생하던 시기나 고대그리스에서 고전 철학이 성립하던 시기, 18세기의 서양의 백과전서와 청나라의 고금도서집성, 사고전서 등의 백과사전 편찬,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일본 막부의 성립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 책과 같은 통사적인 역사 서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인 것 같다. 이러한 사실들도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 뿐일까.

이 책의 특징으로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민족(사람) 중심이 아닌 어떤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한민족이 살았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고 유목적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 동감한다.

나는 이 책을 서양사 - 동양사 - 한국사의 순서로 읽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현대는 서양사의 세계로 전 세계가 통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서양에 흡수되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봐도 무리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서양 역사 발전의 연속선상에서 전 세계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하나의 문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동양과 서양은 별개의 문명이라 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처럼 각각에 대해 통사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동양사, 특히 중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인만큼 동양사를 먼저 읽고, 연속적으로 한국사를 읽는 것이 좋았었다.

여기에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역사는, 가까이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지 못한 사대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여기서도 역사의 필연적 원인으로서의 지정학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왕조교체나 분열 등의 환경에 따라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끼쳤음을 말하고 있다(멀게는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 모두).

특히 직접적으로 현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에 대해서는 수직적 중화주의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왕이 아닌) 사대부들이 지배한 사회라 말하고 있다(오히려 근대 유럽처럼 절대왕정의 시기가 있었다면 더 바람직하게 발전했을 거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학자-관료라는 개념과 당쟁, 사화 등이 사대부들이 지배하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 사육신이나 연산군도 겉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사대부의 지배가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대부, 성리학 중심의 조선에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 한족의 왕국이 멸망하자, 소중화주의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상까지 생겨, 그 후 역사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말하고 있다.

또한 국난이 생길 때마다 항상 도망가는데 급급했던 지배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병자호란, 임진왜란, 가까이는 6.25 때까지). 그리고 해방 후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이승만, 김일성: 잘못된 역사의식과 비정상적인 권력욕을 가진) 지금 분단의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고 있다. 이는 혁명을 통해 모순을 없애지 못한 우리나라의 한계이지만, 각 국민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을 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고 있다.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스크랩) [인터뷰특강] 우리나라 국사책 믿으십니까

[인터뷰특강] 우리나라 국사책 믿으십니까

[한겨레] [제3회 인터뷰 특강- 거짓말 ③]
한홍구 vs 박노자 ‘한국사의 거짓말을 논쟁하다’
주입되는 모든 것을 검토하며 ‘역사 바로보기’를 훈련하라
▣ 김종옥 7·8기 독자편집위원

특강에 오기 전에 ‘학부모 총회’를 하러 아이들 학교에 갔다. 시간이 되자 ‘국민의례’를 시작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흘러나왔다. 그 비장한 서약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미루더라도, 그 맹세가 박정희 정권 시절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치졸한 표절이라는 사실이 이미 <한겨레21>을 통해 밝혀졌건만 도대체 학부모 회의에 모여서까지 촌스런 거짓 맹세를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라는 섬뜩한 강요가 진창 속에 웅크린 부스럼두꺼비마냥 징그럽다.
해서, 기분 전환을 위해 저녁에 있을 <한겨레21> 특강을 생각해냈다. 아, 그래. 한홍구, 박노자 교수의 특강이 있지. 우리 역사 안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있는가, 역사 서술가들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가에 대해 실컷 얘기하는 신나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지.

박노자에 섭섭? 한홍구는 여럿이다?

사회를 보는 오지혜씨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들떠 있었다. 인터뷰 특강의 두 간판스타를 좌우에 거느리게 된 기쁨에 그는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청중의 열기도 뜨거워서 두 스타의 소개 인사에 환호가 터져나왔다. 정치적 지향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건 이렇게 중요한 문제다. 가족도 그 점에서는 양보가 안 된다. 박수를 치고 기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청중은 한순간 슬쩍 동지가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지혜씨는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 국민 모두가 일렬로 서서 혼나는 기분마저 든다. 귀화까지 한 한국인으로서 그렇게까지 혼내는 것이 은근히 섭섭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질문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야 뭐, 자기 자신을 야단치는, 그런 똑같은 심정으로…”라고 답했다. ‘자기 자신’이라는 표현에 감동받은 사람이 많았으리라.
이어 한홍구 교수에게는 활동 영역이 넓은 것을 지적하며 “심지어 ‘한홍구는 여럿이다’라는 말까지 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작업을 감당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예전에 박노해 시인에게도 독재정권에서 그런 의혹을 덧씌웠는데, 그때는 그가 조작된 거짓 인물인 것처럼 보이려고 억지를 쓴 것이었고 오늘 질문은 감탄이 섞인 찬사이니 세상이 변하긴 했다.) 한홍구 교수는 “물론 감당하기 어렵죠. 여기저기서 ‘빵꾸’가 나서 샙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본격적인 토론은 박노자 교수가 역사 속의 거짓말에 대해 몇 가지 주제를 정해 묻고, 그에 대해 둘이서 각자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가 준비해온 열 가지의 담론 주제를 다 소화하기에 시간은 너무도 짧아서,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서까지 진행되었음에도 할 얘기의 3분의 1도 하지 못하고 아쉽게 끝났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며 몇 대목만을 소개한다.
"역사가 과거의 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사회의 주류와 전문가 집단의 의견에 가깝고, 따라서 역사에 대한 힘있는 자의 주관, 나아가서는 거짓말이 당연한 진실로 둔갑돼 대중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를 잡으면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져 멀쩡한 사람이 눈뜬 맹인이 되는 것”이라는 ‘업계의 비밀’을 밝히면서 대담을 시작한 박노자 교수는 맨 처음 우리 국사 교과서 문제를 거론했다.

삼국은 과연 한나라였을까

박: 국정교과서의 고대 중세사 부분을 보면 고대 우리나라의 삼국이 과연 한 나라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런 의식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자기네 영토 안에서 일어난 일은 다 자기 역사라고 하는 거짓말은 근대국가에서는 다 그랬지요.
한: 최근 보면 일단 영토를 규정해놓고, 그 안에서 일어난 것을 모두 우리 역사 속에 넣으려고 합니다. 근대국가가 역사를 서술하려다 보면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를 올려잡기도 하고요. 약소국이고 어려운 시기에는 그럴 수 있지만, 이미 이 정도의 규모를 갖춘 국가에서는 그런 의도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개화기 때 얘기를 해볼까요. 박은식, 신채호 같은 분들이 당시 단군을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인정하기는 하지만, 혈통 위주의 민족주의의 탄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복왕조의 의미로 단군을 부각시키면서 군사적으로 강력한 게 긍정적으로 서술되고, 또 그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내조자에 멈추게 되지요.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말씀하셨다시피 제국주의 침략이 시작된 상황이라는 걸 빼고 신채호를 읽을 수 없지요. 그가 가진 진짜 진보성은, 당시 자신이 얼마나 시대를 성찰하고 변화시켰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패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고대사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박: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있는 이라크 독립군의 위치를 그와 똑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친일 청산을 외치면서도 한편에서는 과거 친일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습니까. 그건 모순이죠.
논의가 막 무르익을 무렵 이미 정해놓은 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박노자 교수는 준비했던 주제들을 아쉽게 건너뛰어 ‘남성 위주의 힘의 역사에서 벗어나 미래의 교과서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귀화인 등 약자와 소수자를 어떻게 기술해야 할 것인가’를 서둘러 물어야만 했다. 한홍구 교수는 전적으로 소수자 문제가 역사 속에 포함돼야 하지만 교과서에 실을 만한 수준으로 소수자의 역사가 축적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이 대목에서 박노자 교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의 다양한 측면의 자료를 복원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자의 삶를 기록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에서 많은 질문이 쏟아져 곤욕을 치른 뒤 마무리로 한홍구 교수는 역사의 거짓말을 거둬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정제된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의 눈으로 걸러서 진짜를 가려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중은 역사 속에서 무수하게 속아왔지만 이제는 속지 않을 능력, 속았지만 바로잡을 능력을 키워나가야 하며 그것이 ‘역사 바로보기’라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민중의 고통과 투쟁을 우선시하고 미래의 민중의 복지와 자율성을 지향하는 민중적 주관의 입장에서 역사를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외부에서 내게 주입하려는 모든 것을 내 입장에서 한 번 걸러보면 거짓말을 좀은 가려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리 살면 좀 피곤하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에 쫓겨 할 얘기를 너무나 많이 남기고 특강이 끝나버렸고 아쉬운 마음은 오늘도 길고 긴 팬 사인회의 줄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스타 학자와 얼굴을 맞대고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 덕에 시간이 더 길어졌고, 이에 따라 경비 아저씨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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