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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5일 일요일

깊고 느린 역사 -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pp.183-192]

책에서 말하는 페르낭 브로델의 역사라는 학문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역사적 시간을 다층적으로 생각: 사건사, 국면사, 구조사
    - 사건사: 어느 시대에 어떠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다식의 서술, 연대를 중심으로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
    - 국면사: 사건들보다는 더 장기적이고 불변적이 요소, 이를테면 경제, 국가, 사회, 문명 등의 주제 분석. 여기에서 다루는 시간은 사회적인 시간, 즉 천천히 움직이며 반복되는 시간
    - 구조사: 인간을 둘러싼 주위 환경과 연관된 역사. '거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 있는 역사'. 예를 들면 산과 바위, 강과 바다, 흙과 공기의 변천사 등. 지리적 시간.

  • 일반적인 시불변의 구조주의가 아닌, 기원과 생성 과정을 지니며, 너무나도 느리게 변하는 '구조'.
    - 역사에 대한 한계 또는 제약
    - 구조사: 가장 근원적인 역사 - 가장 중요한 역사에서부터 가장 피상적인 역사로, 가장 긴 호흡의 장기지속에서부터 가장 빠른 단기지속으로
    - 지리적 환경만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사실, 생산성의 한계 등 복잡한 요소도 포함 - 역사학, 지리학, 경제학, 사회학 등 인문, 사회과학의 여러 학문 분과들이 두루 동원되어야 진정한 역사 서술 가능: 학제적(學際的) 연구
책의 이 장을 읽으면서 저자의 다른 책 '남경태의 역사 오디세이 시리즈'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그 책들에서 계속 강조되는 역사에서 지정학적 조건의 역할이 여기서 말하는 브로델의 관점에서 나온 것 같다.

개체 단독이 아닌 구조 내에서의 역할로서 인간을 분석하는 구조주의처럼, 인류의 역사 또한 그 단독으로서가 아닌 주어진 환경 내에서의 필연으로서 해석해야 한다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두 가지의 '구조'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구조'란 분석 대상과 상관없이 미리 주어지는 조건?)

(잘은 모르지만) 구조주의도 그렇고 여기에서 말하는 구조주의와 결합된 역사도 그렇고, 인문, 사회과학에서 '(구조의 가정 하에서) 자연과학과 같은 (필연적) 법칙의 도출과 그를 이용한 해석'을 시도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이 맞다면 구조 자체를 다루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결국 계층적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2007년 8월 3일 금요일

책)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남경태,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황소걸음, 2001

20세기의 사상들을 간단히 정리한 책.

예전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이하 굴뚝청소부)'을 읽고나서 이런 류의 책은 이제 그만 읽고, 이제부터는 한 사람의 생각에 대한 책들을 읽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우선 철학과 굴뚝청소부란 책이 너무 잘 쓰여져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도 철학자와 그 사람의 철학에 대해 소개한 책들을 몇 권 읽어봤는데, 대개 각 장에서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 그 사람이 말한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불만은 그 사람의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너무 피상적인 것 같았고, 그래서 너무 간단하게 다뤄지다보니 이해가 어려웠다. (거의 다 번역서였는데 어쩌면 번역에서 오는 한계일 수도 있다. 추측하기에는 일반인들에게 풀어쓴 책이라면 당연히 쉽게 썼을테지만 번역하는 도중에 다시 어려워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굴뚝청소부는 사람의 생애보다는 철학에 대해 자세한 정도를 적당하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되니 재미도 있고, 각 사상에 대해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한 눈에 읽는 현대철학(이하 현대철학)'은 사실 남경태라는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굴뚝청소부와 비교해보면 솔직히 굴뚝청소부가 더 마음에 든다. 이 책 역시 앞에 말한 다른 책들처럼 한 사람당 9~12쪽 정도의 한정된 분량 안에서 소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 (31명, 장은 30개)을 소개할 수 있었지만 깊이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분량으로도 뭔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사상을 이해하기엔 좀... 그래서 다른 책들도 찾아가고 그러면서 읽었다. 그래도 이 책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책 뿐만 아니라 이런 종류의 책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장점이지만, 어떠한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부터 시작해서 주로 20세기에 활동한 사람들의 사상을 정리해서 한 번에 쭉 읽다보니 어렴풋하게나마 책 제목처럼 현대철학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소위 철학자 뿐만 아니라 과학자, 의사 등의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같이 소개함으로써, 철학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의 업적들이 사상에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나 알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20세기 사상의 흐름을 한 단어로 나타내보라면 나는 '구조주의'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인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각 개인의 행동이나 생각은 언어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회 속에서 결국 규정하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인간은 언어에 기반하여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언어 자체나 언어가 생성, 사용되는 사회의 구조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주체, 그리고 주체가 외부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생각함에 있어서 주체가 속해 있는 구조(무엇이 됐든)를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에서도 나오지만, 이 구조 자체도 사람들에 의해 (물론 개인은 아니지만), 아니면 사람들의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변화되어진다. 결국 역사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대개의 구조주의의 분석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구조 자체를 기반으로 주체를 해석하기 때문에, 구조를 시불변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류의 초기부터 그러한 구조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결국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 것과 밀접한 관계를 있을 수 밖에 없다. 초기 원시적인 형태의 구조 틀안에서 사람들이 사고하고, 또 그 사고들이 모여서 구조가 변화가 되고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지금의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또한 구조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사람의 인식 또한 역사성을 가지는 것일까?

여튼 앞으로는 이제 각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 우선 머리 덜 아픈 책 좀 읽고.

원작의 종류에 따른 번역의 태도

(전략) ... 번역자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원문을 그대로 살릴 것인가, 아니면 원작자의 의도를 살릴 것인가? ... 원문을 살리는 번역이란 원문 내용을 일절 여과 없이 치밀하게 옮기는 것을 말한다. ... 한편 원작자의 의도를 살리는 번역이란 행간의 의미까지 헤아리는 번역을 말한다. ... 이 두 방식 중 어느 것이 나은 방식인지는 일차적으로 원작의 종류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원작이 만약 문학작품이라면 번역자는 주저없이 첫 번째 방식을 택해야 한다. 문학에서 내용(idea)과 형식(form)의 분리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러나 형식보다 내용을 중요시하는 과학계통의 작품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형식은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다. 아이디어를 보다 쉽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번역자는 자신의 재량을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셰익스피어를 이해하려면 필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야 하지만 아인슈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스티븐 와인버그(S. Weinberg)의 '중력과 우주론(Gravitation and Cosmology)'이 아인슈타인 이해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모든 물리학자들이 주지하는 바이다. ... (후략)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역자 후기 pp.427-428


번역하고자 하는 원작에 따른 번역자의 태도뿐 아니라 각 목적에 따른 책의 선택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내용 전달이 목적일 때에는 잘된 번역서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각 영역에서 용어에 대한 정의만 확실히 잘 된다면(물론 쉽지 않겠지만), 문학 작품이 아닌 서적들은 한글서적으로도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2007년 8월 2일 목요일

책) 천재들의 주사위

데이비드 살스버그 (최정규 역), 천재들의 주사위, 뿌리와이파리, 2003.

통계학자들과 그 업적을 중심으로 엮은 통계학사.

우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부터 말해보자. 마틴 가드너의 '이야기 파라독스', '아하' 같은 책이나 다른 문헌들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흔히 접하게 되는 통계학적 오류에 관심이 생겼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매스컴에서 어떤 데이터를 대표하는 값으로서 산술평균, 중앙값 또는 최빈수를 필요에 따라 적절히 채택한다는게 있겠다.

여기에서 몇 가지 다른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면, 통계에 따르면 '결핵 환자 중의 많은 사람이 산에서 죽는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산악기후가 결핵균의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일까? 사실은 정반대로 결핵 환자의 요양에 좋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요양을 위해 산중으로 가게되고, 따라서 산에서 죽는 결핵 환자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발이 큰 아이가 말을 더 잘 한다'면 발의 크기와 말을 배우는 능력이 관계 있다는 말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결국 둘 다 성장이 빠른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통계는 기만적인 결론을 낼 수 있고, 이런 측면이 나의 관심을 끌었었다.

더 나아가 '검은 까마귀의 파라독스(by Carl Hempel)'(검지 않으면서 까마귀가 아닌 대상은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법칙을 검증해준다는 내용)나 '푸파란색(by Nelson Goodman)'(어떠한 사실이 두 개의 법칙을 똑같이 검증할 때 더 단순한 법칙이 선호된다. 오컴의 면도날?)의 파라독스는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주요한 문제(특히 귀납적 논리에 있어)가 된다 한다. (출처: 이야기 파라독스) 그리고 통계학은 사회학에 있어서나 과학 연구에 있어서나 광범위하게 이용되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생각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여튼 이러한 통계학의 특성 때문에 관심있는 분야였고 해서 통계학에 대한 책을 찾다 이 책을 알게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이 책에서는 많은 통계학의 거장들을 소개하고, 그 사람들이 통계학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이야기한다. 그 기여한 내용은 (수식 없이) 말을 통해서만 전달하는데 그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적절한 수식을 통해 설명했으면 쉽고 명확했을 것 같은데). 통계학적 내용 자체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아니면 통계학을 전공해서 그 내용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책인 것 같다. 내가 통계학을 전공했다면, 이 사람은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이런 정리를 발견했구나, 이 이론은 이 사람이 이런 배경에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재미있게 봤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통계학 자체에 대한 설명은 미흡하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 책은 절반 넘게 읽다가 멈춘 상태다(그 이후로는 끝까지 대강 훓어보기만 했다). 말했듯이 처음 기대했던 내용과 달랐고, 그래도 계속 기다리며 봤지만 계속 비슷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계속 읽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흥미를 끄는 다른 책들이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통계학 자체의 내용보다는 통계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통계학 자체에 대해 소개한 책이 있으면 좋겠다(있을 법 한데). 데보라 J. 베넷이라는 사람이 쓴 '확률의 함정'이라는 책이 그럴 것 같긴 한데...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 이런 점이 안 좋다.

2007년 7월 28일 토요일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소개된 경제이론들

책에 소개된 경제학사의 주요 인물, 학파의 개념 및 이론들을 생각나는대로 간단히 정리해보자.

애덤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 자유방임시장(free market)
분업, 지역과 국가 간의 분업(절대우위, absolute advantage) - 자유무역

맬서스
인구론: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식량의 산술급수적 증가
빈민 구제에 대한 반대 - 인구 증가 감소

데이비드 리카도, 중상주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과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 자유무역(free trade)
경제학적 지대(economic rent): 현재의 용도로 쓰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최소액수에 대한 초과액 - 차액지대론 및 곡물법 반대

존 스튜어트 밀
제레미 벤담 - 공리주의
비례세율, 상속세, 자유방임과 정부개입에 대한 중립

카를 마르크스
지배계급이 생산수단을 장악: 자본가들은 불변자본을 제공하고 가변자본(노동자)을 고용 - 잉여가치의 수탈
자본주의 파멸: 이윤율과 자본축적의 감소 - 경제력 집중 - 경기침체 - 산업예비군 - 무산계급의 궁핍
(저자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전혀 쓸모없다 말한다)

앨프레드 마셜, 신고전학파
한계분석: 기업 - 한계수확(marginal returns), 소비자 - 한계효용(marginal utility)
한계수확과 한계효용의 체감 - 같아지는 점에서 균형
수확체증: 내부경제와 외부경제 - 하지만 기업의 수명에 의해 순환(탄력성과 진보성에 의한 한계)
탄력성(elasticity)의 개념
명목이자율(nominal interest rate), 실질이자율(real interest rate)의 개념

토스타인 베블런, 구제도학파, 신제도학파
제도학파(institutionalist): 사회의 법, 기풍, 제도 등에 관심
유한계급(the Lesure Class) - 현시적 여가(conspicuous leisure), 현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현시적 가격(conspicuous price)
비즈니스 맨 - 현시적 소비, 양심적 능률 포기 / 엔지니어 - 창조, 장인정신, 과학적 사고
갤브레이스 - 필요(needs)와 욕구(wants), 광고에 의한 의존효과(dependence effect): 한계효용체감법칙 성립 안함
신제도학파 - 법률의 결정에 경제학 도입: 과실, 재산, 범죄 등에 한계분석 도구 이용

케인스 (주의자)
끈끈한 물가와 임금 - 시장경제로 모든 걸 해결 불가 (고전학파 비판)
한계소비성향 (MPC, 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 한계저축성향 (MPS, marginal propensity to save) - 승수이론(theory of multiplier): 승수 = 1/(1-MPC) = 1/MPS
불경기의 극복 - 정부가 적절한 액수 만큼의 소비를 경제에 투입: 승수이론에 따라 부족한 수요량을 메울만큼 정부가 소비

밀턴 프리드먼, 통화주의자
피셔의 교환방정식(equation of exchange) MV = PQ (V: 화폐의 유통속도, M:통화량, P: 물가수준, Q: 재화와 용역의 생산량(실질GNP))
단기적인 M의 증가는 P뿐 아니라 Q도 증가: 정부의 단순한 소비증가(케인스)만으론 효과 없음
'V가 일정하나'와 구축효과(crowding out):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의 쟁점
정부정책: 일정한 통화량 증가율 유지 역할만

제임스 뷰캐넌, 공공선택학파
이익집단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사회의 공익을 해친다.
일반인 - 합리적 무시 (rational igrorance): 비용에 비해 이득이 작으므로 무시
정부, 관료나 정부의 기업규제, 재정 정책의 부정적 측면 - 모두 자신의 이익을 좇음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 정보비용: 정부활동에 대한 비관

합리적 기대이론학파 (rational expectations school)
정부의 개입은 아무런 효과가 없음 - 자동적인 수급 균형, 모든 정보의 분석을 통한 최선의 선택
정부 정책(소비, 통화) 등의 효과도 미리 예측하여 판단하기 때문에 효과 없음 - 오직 예상치 못한 정책만이 효과
내부정보의 경우는 예외 (참고: '괴짜경제학'에서도 정보와 경제의 관계에 대해 언급)

2007년 7월 8일 일요일

현대물리학이 탐색하는 신의 마음 4장, 5장

[현대물리학이 탐색하는 신의 마음 4장, 5장]
    - 세계(자연)의 수학적 본질
    - 수학의 특성(기계론적)
    - 논증 불가한 논리, 계산 불가한 숫자
    - 계산기계를 통한 구현
    - 라이프 게임을 통한 구현
    - 시뮬레이트와 현실의 차: 시간의 비가역성, 하지만 이론적으로 구현 가능, 결국 차이 없음
    - pp171 그 내부의 인간에게는 그 세계가 칸트의 물자체, 경험주의 입장에서 그 이상은 알 수 없음
    - 알고리즘의 압축가능성, 법칙, 카오스
    - 계산 불가한 수 오메가와 종교들의 秘傳: 진리를 담고 있으며 믿음으로 이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그냥 단어를 나열하는 식으로 정리해봤다. 언젠가 다시 읽을 때 도움이 되겠지. 여튼 중요한 것은 시뮬레이트 내의 이성이 존재한다면, 그 이성에게 있어서는 시뮬레이트 내의 신호, 정보(전기 신호든 뭐든)가 소위 칸트의 물자체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시뮬레이트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왠지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난다.)

마찬가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 그러니 그 이상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물자체라는 개념을 가정하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냐, 없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으로 갈리는데 하물며...

2007년 6월 28일 목요일

책) 소설이 아닌 삼국지

최명, 소설이 아닌 삼국지, 조선일보사, 1997.

인물별, 에피소드별로 구성한 소설 삼국지연의에 대한 평전.

저자인 최명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라 한다. 책의 성격과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책의 목차를 정리해 보자.


천하 대세의 순환 / 조조와 진궁 / 영웅론 1,2 / 공명론 1,2,3 / 봉추론 / 선비론 / 주유론 / 노숙론 / 관우론 1,2 / 미인론 1,2 / 쪼다론 / 장수론 1,2 / 모사론 / 사마의론 / 정통론

이처럼 책의 목차만 봐도 책이 어떤 내용인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본 국가의 분열과 통일이라든지 정통이란 무엇인가처럼 역사의 관점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물들에 따라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내용 중에서는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의 인물이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 밖의 중국역사, 고전이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도 적절하게 잘 섞여 내용의 다양성과 충실함을 높혀준다.

그리고 삼국지에 대한 학술적 분석이나 본격적인 비판을 목적으로 쓴 책이라기 보다는, 마치 삼국지를 읽은 친구와 함께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화장실에서 잠깐잠깐씩 읽기도 좋은 책이랄까. 어느 정도 삼국지의 전체 줄거리가 잡혀있는 상태에서 읽으면 새록새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의 책인 것 같다.

책의 저자는 삼국지를 매우 좋아해서 수없이 읽었다 하며, 정음사 판(나는 읽어보진 못했다)을 기본으로 이 글을 썼다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 등에서 나오는 '유비는 쪼다이다' 등의 여러 의견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여러 번역본을 참고한 듯 하다.

여튼 삼국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덧붙혀 보면, 우선 개인적으로는 김구용씨가 쓴 삼국지를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삼국지(많이 알려져 있는 이문열 삼국지 등)들을 읽으면서, 과연 원본은 어떨 것인가 궁금해했다. 어쭙잖게 평역이랍시고 번역자에 의해 변형된 삼국지들을 읽다보면 어떤 것이 원래 내용인지 알 수가 없게된다. 물론 삼국지의 현대적인 해석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예를 들어 조조에 대한 재해석이라든지). 하지만 우선은 변형되기 전의 것을 알아야 이런 것들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중문학자인 김구용 씨가 직접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삼국지를 읽으며, 그동안 내가 찾던 삼국지구나 하는 것을 느꼈었다.

또 한가지,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사와의 비교라든가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소설 내부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므로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교훈을 찾으려고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교훈도 얻을 수 있겠지만, 소설은 재밌지고 읽는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번역가가 '이것은 정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임의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앞에서 삼국지들의 평역에 대해 별 가치를 인정치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어짜피 소설가지고 너무 심각한 게 싫다고나 할까).

이런 관점에서 삼국지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재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재미이다. 용맹스런 장수들, 뛰어난 모사들,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싸우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활약하는 난세에서, 주인공인 유비 삼형제들이 정통성을 등에 업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 삼국 중의 한 나라를 성립하는 과정이 주요 재미라 생각한다(말하자면 이 밖에도 더 많지만 삼국지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이고 따로 글을 쓰는 게 좋겠다).

다시 '소설이 아닌 삼국지'로 돌아가 보면, 여러 에피소드들은 어짜피 삼국지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후흑학(厚黑學)'에 대한 내용이 흥미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영웅이 되려면 자기의 본심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하긴 했지만, 성공하려면 남을 속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처세술도 남을 속이는 것도 싫어하지만, 살아가며 가끔은 이 말이 뜻하는 것을 경험하고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이러한 현실의 답답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속에서는 아무리 치열하고 삭막하더라도 어짜피 소설이니까.

어찌 쓰다보니 이 책의 유쾌한 분위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방금 말한대로 이 책은 정말 유쾌한 책이다. 친한 친구와 삼국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2007년 6월 23일 토요일

동양에서의 왕조 교체의 이유

[종횡무진 한국사 (하) pp. 35]

농경문명을 중심으로하는 동양적 왕조가 일정한 패턴을 가지며 계속적으로 교체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토지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기존의 토지 소유를 무효화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왕조의 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체된 토지제도가 그 효력을 발휘하는 동안에는 왕조도 잘 나가다가, 그 효력이 다하는 중기 무렵에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고 그 영향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때 왕조가 교체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예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분석 중의 하나인 것 같다.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책) 소오강호 (笑傲江湖)

김용 (박영창 역), 소오강호(전 8권), 중원문화사.

유명한 김용(金庸)이 쓴 무협소설 중 한 작품으로, 김용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예전 임청하, 이연걸 주연의 영화 '동방불패(東方不敗)'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제는 정파(正派)와 사파(邪派)란 무엇인가, 그 구별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가 아닐까 싶다. 김용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권력에 대한 욕심이라든지 겉으로만 군자인 척 하는 것 등 다양한 인간 본성에 대한 묘사가 좀 더 자세한 것 같다.

내용은 화산파(華山派)의 수제자인 영호충(令狐沖)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임씨 집안에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무공비급 규화보전(葵花寶典)을 둘러싸고 정파와 사파 양측에서 암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능력부족으로 긴 내용을 적당한 분량으로 줄여쓰지 못해 이 정도로만 생략. 혹시 안 읽어보신 분은 읽어보셔도 후회 안할 거라고 보장. 그만큼 대중성 있음).

김용 소설 중에서 소오강호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 영호충 때문이다. 영호충은 우선 허우대 좋고 얼굴도 잘 생긴 편인, 겉보기에서는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보다 유쾌하고 여유있는 말솜씨, 더구나 두려운 것이 없는 듯한 말투는 자칫 그를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정파의 가르침 그대로를 따르는 마음과 행동이라 하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겉보기에는 약간 천박해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충심으로 신의를 지키며, 남녀 간의 관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며 희롱하거나 가벼운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욕심이나 야망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이용하지 않으며, 강자의 위협에 결코 굴하지 않는다. 참, 술을 매우 좋아하고 잘 마신다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술에 약한 나로서는 부럽다).

정리하면 겉으로는 가볍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말그대로 교과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군자검(君子劍)의 별호를 가진 스승 악불군의 위군자(僞君子)적인 행동과 대비된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중에서는 역사를 다룬 소설을 좋아하고(三國志, 大望 등), 또 김용의 장편소설들은 대개 중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절묘하게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시는 점이 내가 김용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소오강호에서는 중국 역사상의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시기인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저 명대 쯤일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용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무협지답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김용 작품 말고 무협지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지만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좀 더 정치적으로 얽히고 섥히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정사(正邪) 구분의 무의미함을 통해 마치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공허함을 말하는 듯 하다. 실제로 이 소설이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을 빗대어서 쓴 것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다 (정확히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또한 이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가 앞에서 말한 위군자인데, 좌냉선으로 대표되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권력 지향적인 사람에 비해, 악불군처럼 자기의 야망을 숨기고 겉으로는 초연한 척하는 위군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악불군의 본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복선이 나오기도 하지만, 거의 반전에 가깝다). 주인공 영호충은 진짜 군자이나 겉으로 봐서 그것을 쉽게 알기 어렵고, 악불군은 누가봐도 군자의 행동거지나 말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위군자인 것이다.

또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심리묘사이다. 흔히 김용의 작품 중에 남녀간의 애정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영웅문 2부로 알려져 있는 신조협려를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보다는, 소오강호에서 영호충의 사매 악영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림의 영호충에 대한 소녀와 같은 동경, 영영의 영호충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애정의 표현 등에서 더 감동을 느꼈었다 (뭐, 원래 익숙치 않은 영역이라... ㅎㅎ 제일 어려운 것은 남녀 간의 마음이로다).

이 소설은 초반에 정파의 유정풍과 마교 곡양의 음악을 통한 목숨을 뛰어넘는 우정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이 등장한다. 소설의 제목 '소오강호'는 이 두 사람이 같이 만든 음악의 제목이다 (그 뜻은 '강호를 호탕하게 비웃는다' 정도?). 그리고 소설의 결말은 정파와 마교의 또 다른 인물인 주인공 영호충과 마교 교주의 딸 영영(盈盈)이 결혼하여, 같이 소오강호를 연주하는 것이다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 이 두 장면을 통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스포일런가? ㅎㅎ)

2007년 6월 19일 화요일

책)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한국사



<남경태의 역사 오딧세이 3부작>
남경태, 종횡무진 동양사, 그린비, 1998.
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그린비, 1999.
남경태, 종횡무진 한국사(상,하), 그린비, 2001.

각각의 역사를 통사 형식으로, 그 흐름을 한눈으로 읽을 수 있게 구성된 역사책이다. 통사는 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 또는 그렇게 쓴 역사라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이렇게 통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가는 형식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장점이 있다. 특히 이 책처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사책에서 어울리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필연적 요인으로서 지정학적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서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정치체제와 사상이 발전한 이유를 들 수 있다. 동양에서는 지리적으로 중심이 있을 수 있었고 서양에서는 중심이 있기 힘든 지형이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수직적인 정치사상이 발전하였으며 계속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역사였고, 서양에서는 수평적인 사상과 함께 지방분권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사건들을 큰 흐름의 표출로써 설명하는데,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필연성을 가정한다. 여기에서 그 큰 흐름이나 필연성을 자연 과학의 가설이나 법칙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러한 가설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더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히면 우연적인 요인으로써, 각 역사적 배경에서 등장하는 인물들(특히 지도자들)과 전쟁의 승패 결과가 있는 것 같다.

연장선상의 이야기인데, 책에서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그 배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오지만, 직접적 계기는 우연한 작은 사건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264년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메시나가 시라쿠사와의 다툼으로 로마 원로원에 SOS를 치지 않았다면 포에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원후 303년 서진의 사마영이 흉노 족장 유연을 팔왕의 난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중국의 남북조시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계기들이 없었다 해도 기원전 3세기에 로마는 어차피 지중해 세계를 통일했을 테고 기원후 4세기에 중국은 오랜 분열기로 접어들었겠지만, 어쨌든 계기로만 보면 지극히 사소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그 계기를 만든 자들은 그런 결과가 빚어질지 미처 몰랐으리라는 이야기다. [종횡무진 한국사(상) pp. 344]
저자의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 역사학계에서 정설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으나,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거의 독립적으로 발전했던 각각의 문명 사이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이나 발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제자백가가 발생하던 시기나 고대그리스에서 고전 철학이 성립하던 시기, 18세기의 서양의 백과전서와 청나라의 고금도서집성, 사고전서 등의 백과사전 편찬,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일본 막부의 성립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 책과 같은 통사적인 역사 서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인 것 같다. 이러한 사실들도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 뿐일까.

이 책의 특징으로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민족(사람) 중심이 아닌 어떤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한민족이 살았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고 유목적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 동감한다.

나는 이 책을 서양사 - 동양사 - 한국사의 순서로 읽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현대는 서양사의 세계로 전 세계가 통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서양에 흡수되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봐도 무리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서양 역사 발전의 연속선상에서 전 세계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하나의 문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동양과 서양은 별개의 문명이라 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처럼 각각에 대해 통사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동양사, 특히 중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인만큼 동양사를 먼저 읽고, 연속적으로 한국사를 읽는 것이 좋았었다.

여기에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역사는, 가까이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지 못한 사대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여기서도 역사의 필연적 원인으로서의 지정학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왕조교체나 분열 등의 환경에 따라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끼쳤음을 말하고 있다(멀게는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 모두).

특히 직접적으로 현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에 대해서는 수직적 중화주의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왕이 아닌) 사대부들이 지배한 사회라 말하고 있다(오히려 근대 유럽처럼 절대왕정의 시기가 있었다면 더 바람직하게 발전했을 거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학자-관료라는 개념과 당쟁, 사화 등이 사대부들이 지배하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 사육신이나 연산군도 겉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사대부의 지배가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대부, 성리학 중심의 조선에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 한족의 왕국이 멸망하자, 소중화주의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상까지 생겨, 그 후 역사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말하고 있다.

또한 국난이 생길 때마다 항상 도망가는데 급급했던 지배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병자호란, 임진왜란, 가까이는 6.25 때까지). 그리고 해방 후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이승만, 김일성: 잘못된 역사의식과 비정상적인 권력욕을 가진) 지금 분단의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고 있다. 이는 혁명을 통해 모순을 없애지 못한 우리나라의 한계이지만, 각 국민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을 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고 있다.

2007년 6월 16일 토요일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르빈 슈뢰딩거 (서인석, 황상익 역), 생명이란 무엇인가, 한울, 2000.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생명현상의 물리적 해석에 대해 쓴 책.

원서는 1944년에 씌어졌다고 하는데, 시간이 오래 지난 만큼 현재에는 많은 부분이 (거의 다?)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한다 (책 말미에는 이 책의 내용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려주는 논문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답을 알기엔 요원한 것 같은 생명 현상에 대한 해석의 시도와 그를 위한 접근법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생물 분야에도 관심이 있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물리학자답게 생명 현상도 물리법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환원주의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까). 본격적으로 생명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물리법칙으로서의 원자통계학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다. 이 개념을 책에 나온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긴 원통에 산소기체가 있을 때 자기장을 가해주면 각 산소분자가 자기화, 즉 자기장의 방향과 나란히 서게 된다 (산소분자 자체도 작은 자석이기에). 하지만 모든 분자가 자기화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화의 정도는 자기장의 크기에 비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작위한 배열을 만들어 내는 열운동에 의한 방해 때문이다. 정리하면, 분자들을 자기장과 평행하게 하려 하는 자기장과 무질서하게 하려 하는 열운동의 경쟁에 의한 결과가 관찰되는 자기화라는 것이다. 도체에서 이러한 현상을 근사적으로 나타낸 게 옴의 법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열운동을 작게 하면, 즉 온도를 낮추면 자기화를 높일 수 있을 건데, 초전도 현상에서 그걸 볼 수 있다. 비슷하게 브라운 운동도 분자 단위로 보면 그 운동을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다루는 분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확산법칙이라는 편미분 방정식 형태의 물리법칙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거시적인)물리법칙은 근사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발견이 아니라 이해하고 이용하기 위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 등은?)

여튼 위와 같은 사실을 이야기 한 다음, 생물의 일반적인 특성과 그로 유추할 수 있는 유전물질의 특성을 말한다. 그 내용이 어려워서 다 이해하지는 못했고, 그냥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위에서 말한 사실과 양자역학(불확정성)을 근거로, 생물체의 자기 유지 및 복제, 돌연변이 발생 등의 특성을 가지기 위한 유전물질(염색체)의 조건을 다원자구조여야 하며 그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이 맞는지 자신은 없다...). 그리고 생명체는 (다른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음의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생명에 대한 이러한 견해(기계로서의 생물)에서 자유의지의 의의에 대해 평하고 있다.

내용을 정리하긴 했지만 공부가 부족한 관계로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새로 발견된 사실(양자역학과 염색체)로부터 생명 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게 좋았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유전자(염색체)가 생명체의 구성과 진화에 미친 영향과 또 생물체의 생명 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했다면, 이 책에서는 유전자의 구성 자체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고 할까 (그 뒤의 연구를 통해 틀렸음이 밝혀졌지만). 특히 과학자다운 엄격하고 창조적인 접근법이 이 책의 의의가 아닐까.

2007년 6월 13일 수요일

책) 마틴 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

마틴 가드너 (과학세대 역), 마틴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제3개정판), 까치, 1993. (책 표지는 처음 봤다. 어렵게 구한 책 표지 그림인데 좀 후지다. ㅎㅎ)

너무 읽고 싶어서 헌책방을 뒤지다 포기하고, 결국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해 제본한 책. (지적재산권에 어긋난 행동이긴 하지만, 이렇게 구하기 힘들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이렇게 매력을 느낀 이유는 우선 저자 '마틴 가드너'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 파라독스(사계절)'란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작가이다. 그 뒤 '아하!(사계절)', '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바다출판사)', '마틴가드너와 함께보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라사랑)' 등의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은 마틴 가드너는 수학자인 동시에 대중들에게 수학에 대한 내용을 재밌게 풀어쓰는 작가이며, 사이비 과학의 헛점을 파헤치는 사이비 과학 헌터(?)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마술이나 초능력의 사기를 현상금까지 걸고 찾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렇게 저자만으로도 관심 있었는데, 어디선가 책 소개를 봤는데 책의 내용이 단순히 대칭의 기하학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입자나 우주, 끈이론 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고 꼭 구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 부분의 입자나 우주, 시공간의 내용들을 읽을 때는, 항상 그러는 것처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그냥 느낌만 가지고 넘어갔지만, 간단하게 거울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초끈이론까지 이야기를 전개한다. 책에서는 특별히 나누지 않았지만, 책이 다루는 주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대칭의 (거울 상의) 기하학, 원자/분자, 생물, 양자, 우주론/시공간/통일장이론

자연 만물의 대칭과 비대칭, 그리고 패리티 보존 법칙의 성립 및 붕괴를 통해 기본 법칙을 말하고 있고, 눈에 보이는 거시세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까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본문에 여러가지 관점의 내용을 더 자세하고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전부 다 기억나지는 않고, 그냥 일반인의 입장에서 한가지 생각을 덧붙혀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에서 말한 것과 같이 만물에 대해 대칭/비대칭을 기준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아무 것도 없다면 (대칭, 비대칭을 말하긴 어렵지만) 대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평평한 모래밭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한 곳에서 모래를 파내어 다른 곳에 쌓아두면 비대칭이 생기게 된다. (웅덩이와 언덕) 입자와 반입자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뭔가가 존재한다 함은 곧 비대칭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우주가 전체적으로 평형인가, 즉 입자와 반입자가 동일하게 존재하는 우주인가 등에 대한 문제는, 책에서도 나오지만 여러 가지 의견이 있고,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여기서는 패스) 이렇게 물질(곧 에너지)의 존재는 곧 비대칭이며, 무한대의 엔트로피는 아무런 존재가 없는 완전한 대칭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책) 괴짜경제학

스티븐 레빗 (안진환 역), 괴짜경제학, 웅진지식하우스, 2005.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다루었기 보다는 여러 경제적 현상들의 쉽게 보이지 않는 진짜 원인을 정리해주는 책이다. 그중에는 통계적인 착각에 대한 내용도 있다. 작년 초에 읽었던 책이라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몇 가지 내용을 통해 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 교사와 스모 선수의 공통점은
- 경제적, 도덕적, 사회적 인센티브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여 부정 행위까지도 유발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2장 KKK와 부동산 중개업자는 어떤 부분이 닮았을까
- 정보의 폐쇄성을 이용해서 얻는 이득에 대해 이야기한다.
3장 마약판매상은 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걸까?
- 소수에게 집중된 소득 때문에 대부분은 가난하다.
그 밖에 앞서 말한 통계적 오류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분야든지 자기의 전공 분야를 일반인에게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나 글들을 보면 참 부럽다. 이 책도 그런 예의 한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의 전공분야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동감을 얻을 수 있도록 잘 정리,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연과학과 종교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아르눌프 지텔만)]
끝부분에 자연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삶의 방향제시로서의 종교의 역할로써 끝맺음을 한다. 자연과학이 또 하나의 형이상학인 종교에 미치는 영향, 즉 그 자체로는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형이상학이 그와 어긋나거나 동떨어져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얘기한다. 유물론적 관점이다.
그런데 철학과 종교의 관계는 무엇일까.

언어의 한계

[언어의 한계 - 노자와21세기1 p106-108]노자가 지적한 언어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언어의 의미와 중요성만 강조한 나로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와 가상, 결국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리고 최초의 디지털로서 언어로 한계를 말한 적이 있다.

최고 번역본을 찾아서_(10)나관중의 '삼국지연의'

김구용 譯 가장 신뢰...황석영 譯, 재미있고 정확해고전번역비평
최고 번역본을 찾아서_(10)나관중의 '삼국지연의'

2005년 09월 13일 《교수신문》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2005 Kyosu.net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처럼 출판사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책이 없는만큼, 해방 이후에만 삼국지 번역은 60종이 넘으며, 해방전까지 더한다면 그 수가 두배에 달한다. 번역종류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인하대 한국학연구소는 ‘정역류/평역류/재창작류’로 구분하는가 하면, 정원기 아시아대 교수는 ‘정역류/번안류/요시카와 에이지류(일어중역)’로 분류한다. 삼국지의 잘된 번역조건으로는 흔히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한국어 구사가 유려한가, 둘째 원본의 내용과 분위기를 잘 살렸는가, 셋째 역사내용 이해를 위한 주석이 잘 달려있는가다. 이번 취재에서는 총 10명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삼국지를 꼽아달라’라며 그에 대한 자세한 의견을 들었다.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것은 김구용 역과 황석영 역으로 정역류다. 각각 4명이 ‘최고’의 번역본으로 꼽았다. 많은 이들이 정역류를 ‘최우선’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보다 “삼국지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기 때문”. 대표적인 정역류로는 김구용·황석영·리동혁·박상률 역 정도가 있는데, 이중 김구용·황석영 역이 신뢰를 얻고 있는 것.
남민수 영남대 교수, 정원기 아시아대 교수 등이 김구용 역을 꼽는 최우선 요인은 “진지한 작업”이라는 점. 원문내용 전달에 가장 충실해 원문과 대조해가며 봐도 될 정도라는 평가다. 先 번역서들 뿐만 아니라 이후 나온 평역류들과도 확실히 차별성을 띠고 있다는 것. 게다가 삼국지는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주석이 꼭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데, 김구용 역은 주석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이어서 읽기를 돕는다는 의견들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학자의 번역이기에 작가들의 번역에 비해 “융통성이 부족한” 필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고문투가 있고 무미건조한 문체라는 것인데, 어쩌면 이는 삼국지를 ‘재밌게’ 읽으려는 독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인초 연세대 교수, 홍상훈 서울대 강사, 권순긍 세명대 교수 등은 황석영 역을 ‘최고’로 꼽는다. “원본을 최대한 살렸”으면서도 “재미있”는, 두 핵심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점 때문이다.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의 연구 프로젝트로 국내 대부분의 번역본을 비교해본 홍상훈 씨는 이전엔 김구용 역을 추천했지만, 지금은 황석영 역을 추천한다고 한다. 홍 씨가 삼국지를 보는 최우선 요소는 ‘재미의 여부’다. 그는 “정확성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황석영은 원문도 잘 살리면서 특유의 필력을 발휘해 읽는 재미가 있다”라며 김구용 역과 구분짓는다. 전인초 교수가 황석영 역을 추천하는 이유는 “어차피 전문가 번역이 없는 마당에, 황석영 씨는 전문가의 자문과 지도를 적절히 받았기 때문에 신뢰가 간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황석영 역은 이미 일간지에서 논쟁을 몇 번 거쳤듯이 미해결된 쟁점요소들이 잠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판본문제를 재차 제기하고 있는 것이 정원기 교수다. 정 교수는 “유창한 한국어 구사능력에도 불구하고 연변본과의 유사성은 마음에 걸린다”라며 ‘순수성’을 문제삼는다.

장정일 역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비교적 최근 것임에도 3명의 추천을 받아 그 인기를 실감하겠지만, 전문가들 중 몇몇은 새로운 시도에 고개를 젓는다. 우선 추천되는 이유는 기존 번역과는 달리 ‘완전한 재창작’이라는 차별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창헌 교수는 “이문열 평역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여성차별적인 관점들을 고려해 독자층을 넓힌 장정일 역은 다른 평역본들과도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라고 평가한다. 홍상훈 씨는 “필력은 이문열 역이 낫지만, 객관성 면에선 장정일 역을 신뢰한다”라며 둘을 비교·평가한다.
이는 “정사 삼국지와 비교해가며 나름의 현실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해석을 시도했다”는 서동훈 대구미래대 교수의 평과 통한다. 하지만 장정일 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삼국지번역은 중화주의·남성중심주의 일색”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선 “혼동일 따름”이라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홍상훈 씨는 “삼국지를 고전으로 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텍스트로 대할 것인가를 구분해야 한다”라면서 “단지 비판적 안목을 키우면 될 뿐인지 외국의 고전을 두고 중화중심주의라는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라고 덧붙인다.
장정일 역이 “너무 주관적”이라며 비판하는 의견들도 많다. 장 씨가 내세운 ‘창조적·자주적 해석’이라는 것은 자칫 이데올로기적 냄새를 풍길 수 있다는 게 정원기 교수의 비판이다. 또 이등연 전남대 교수도 “너무 주관적인 해석이 강해 삼국지라 보기에는 가당찮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성실성’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남민수 영남대 교수는 “68회 분만 비교해봐도 상당한 내용이 삭제됐다”라며 “현대적 감각에 맞지 않아 삭제했다면 할말 없지만 원본에 대한 불성실한 번역이다”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재창작류는 작가의 창의성이란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작 훼손이라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정치학자로서 삼국지 마니아라 할 수 있는 신복룡 건국대 교수는 단연 박태원(최영해) 역을 최고로 꼽는다. “가장 정확하고, 원전에 가장 충실하며 번역자의 작위적인 글이 가급적 절제되어 있어 삼국지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라는 것. 구문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삼국지를 읽는 데 전혀 흠이 안된다는 견해다.
박종화 역도 한표를 얻었다. 남민수 영남대 교수는 “한문을 좀 안다면 박종화 역이 볼만하다”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원전에 충실하다는 김구용 역과 비교해 봐도 원문전달에 큰 하자가 없으며, 역사소설가로서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원문 중의 긴 대화를 자의적으로 나누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 문학의 멋을 가장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 외 김광렬 외 역, 황병국 역, 이문열 역도 각각 한명에게 추천을 받았다.
국내 삼국지 번역은 전문가 번역이 없어 대부분 문제를 지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문열 역이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신복룡 교수는 “이문열 역은 소설을 다시 쓴 것이지 삼국지라 할 수 없다”라며 비판한다. 오역의 문제뿐만 아니라, 유비가 아닌 조조를 중심에 둔 것은 삼국지의 내용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견해다. 남민수 영남대 교수는 “작가의 개입이 지나치고 누락과 오역도 많다”라고 지적한다. 가령, 제7권 360쪽에서 “좌자가 옥에 갇히고 음식을 주지 않아도 멀쩡하게 지내자 조조가 어찌할 수 없어서 풀어주었다”(2002년판 기준)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대목은 원래 ‘曹無可奈何’의 다섯 글자로 조조가 풀어주었다는 언급은 일체 없다는 것. 이건 하나의 예에 불과할 정도로 이문열 역의 오역은 끊임없이 지적된다.
지난 7월 연변작가 출신인 리동혁 역이 나와 삼국지 출판경쟁에 불을 붙인 바 있다. 리 씨는 이미 ‘삼국지가 울고있네라는 저서를 통해 이문열 역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이인데, 그가 중국의 12원전을 아우른 이른바 ‘통일 전본’을 번역해 야심차게 내놓은 것.
하지만 이를 접한 전문가들은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정원기 교수는 “지나친 재주 때문에 오히려 기형아를 낳은 꼴”이라 말한다. 12종 원본의 특징을 아울렀다는 건 “삼국지의 판본 진화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발생한 넌센스”라는 것. 홍상훈 씨도 “오역은 최소화 했겠지만, 삼국지는 원래의 저본에 충실해야 제맛인데 12본을 모두 반영해 재미를 떨어뜨린다”라고 비판한다. 나아가 한국작가들이 중국어에 능통치 못해 오역을 저지르는 것처럼, 리 씨의 한국어 구사 역시 매끄럽지 않다고.
유명작가들이 번역에 뛰어들면서 삼국지 출판붐을 과도하게 일으키는 가운데, 오역논쟁이 간간이 제기되고 있지만, 문제는 이런 지적이 반역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상훈 씨는 “리동혁 씨가 이문열 역에 대해 오역을 정확하게 지적했음에도 2002년 개정판에서 60%정도만 고쳐졌을 뿐이다”라며 “이문열·황석영 역은 독자들을 고려해 빨리 개정판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라고 주문한다.
● 추천교수 명단권순긍 세명대(국문학), 남민수 영남대(중국고전문학), 민관동 경희대(중국소설), 서동훈 대구미래대(국문학), 신복룡 건국대(정치학), 이등연 전남대(중국소설), 이창헌 명지대(고전산문), 정원기 아시아대(중문학), 전인초 연세대(중문학), 홍상훈 서울대(중문학) 이상 총 10명 가나다순.


시대를 휩쓸었던 삼국지들
2005년 09월 13일 《교수신문》이은혜 기자ⓒ2005 Kyosu.net


●박태원(정음사 刊, 1950) 월북작가인 박태원의 삼국지는 원문을 최대한 살리려 한 것이 특징으로 1950~60년대 두루 읽혔다. 고투의 문체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신뢰를 얻고 있다. 박태원본은 최영해본과 동일한데, 이에 대해 ‘작품 전편중 2/3를 박태원이 작품 말미는 최영해가 번역했다“라는 풍문이 있다. 1941년 4월~1943년 1월까지 ’신세대‘에 연재된 것을 수정·정리 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1953년 이후엔 최영해 본으로 나왔으며, 북한에서도 몇종이 간행되었다.
●김광주(창조사 刊, 1965)요시카와 에이지류 중 널리 읽힌 것으로, 120회 완역을 기본으로 하되 ‘읽기 쉽고 재밌는 번역’에 초점을 뒀다. 강조부분에 소제목을 붙였으며 매회 줄거리를 제시한다. 원문의 재구성 역시 돋보이며, 현대적인 대화투와 명쾌한 단문구사가 읽는 묘미다. 그러나 삼중당(1969) 본에서는 장비에 대한 성격묘사가 크게 바뀌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현재는 서문당(1996)에서 출간되고 있다.
●박종화(삼성 刊, 1967) 역사소설가 답게 박종화 본은 대중소설적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가령, 고통받는 백성들을 대신해 장비가 탐관오리인 독우를 지칭하는 대목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든지 여포와 초선이 등장하는 장면을 흥미를 위해 가미하는 등 원문에 없는 내용들이 곳곳에 윤색·첨가되었다. 1963년 1월 1일~1968년 5월 8일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것으로 박종화 특유의 문체와 감각의 발휘로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최근엔 대현출판사(1999)에서 나오고 있다.
●김구용 (솔 刊, 1974) 전통학문에 조예가 깊고 네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답게 내용과 문체 모두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종강 ‘삼국지연의’의 원래 모습을 가장 잘 구현한 게 특징이다. 다만 ‘무미건조함’이나 ‘지루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솔출판사에서 개정판(2000, 2003)이 나온 이래 현대독자들에게도 친근하게 읽히고 있다.
●정비석(광희문화사 刊, 1975)자유부인’, ‘소설 손자병법’으로 이름을 떨친 대중작가답게 삼국지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았다. 일본 요시카와 판본을 토대로 재창작 했다. 전체적인 체례와 본문의 내용을 약간씩 다듬었으며, 각권의 제목도 우리말로 풀어놓았다. 문장도 현대적이라 ‘정비석 판본 현대 변형판’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은행나무출판사에서 6판(2004)까지 나왔다.
●이문열(민음사 刊, 1988)모종강 본을 바탕으로 해설과 평을 곁들인 최초의 評譯류라 할 수 있다. 1983년 10월~1988년 1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걸 묵어냈다.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삼국지도 큰 성공을 거뒀는데, 대학입시 논술고사의 필독서로 공고되면서 1권의 경우 총 1백 쇄를 발행했을 정도로 역대 출판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문열 본의 힘은 거대출판사의 광고전략과 작가의 명성, 나아가 평론가들의 맹목적인 떠받듦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들이 제기되어 왔다.
●황석영(창비 刊, 2004)‘장길산’, ‘객지’ 등을 통해 유려하고 장쾌한 글솜씨를 보여줬던 실력을 삼국지로 옮겼다. 1999년 샹하이 강소고적출판사에서 나온 ‘수상삼국연의’를 기반으로 했으며, 원문의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체를 최대한 살리되 중요한 전투장면 등에는 박진감 넘치는 묘사를 덧붙인 게 특징. “민중문학의 좌장격으로서 작가 특유의 의식이 들어가지 않아 아쉽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김구용의 뒤를 잇는 정역류라는 데 의미가 있다.

2007년 6월 11일 월요일

신문산업을 통해 본 독과점 - 시장의 한계

[유시민의 경제학카페 p164-204]
신문배달업과 생산업이 통합된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그로 야기되는 신규사업자의 진입장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를 통하여 신문이 독자를 따라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비스, 성향 등)

하지만 완전 경쟁이 될 경우, 신규진입이 쉬워진다 해도 현재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신문사들이 미치는 영향이 작아지며 주도권이 독자에게 넘어갈 것인가. (언론주도, 사회교육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와 함께 시장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의료계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 '괴짜경제학' 부동산업자의 예에서도 설명됐던 정보의 독점과 불균형이 있다.

시장경제

[유시민의 경제학카페 p341]
"자기 책임의 원리 - 시장은 위험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경쟁무대이고 이 경쟁에 참여하는 자는 자기가 하는 선택의 결과에 대해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는 하나의 도박판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나를 배반한 역사(박노자) p.79-97]
개인주의는 곧 이기주의로 치부되는 우리나라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개인의 치부와 출세 지향은 개인주의가 아닌 제도에 기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라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개인보다는 무조건 집단을 우선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수긍하나 바람직한 개인주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필자가 말하는 개인주의란 각 개인의 (자신만이 아닌) 가치를 최고로 여기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을 평소 내가 생각해 오던 성장은 자아의 확대를 뜻한다는 것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얼마나 개인주의를 강조하는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항목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주의는 나아가 다양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7년 6월 6일 수요일

책) 이기적유전자

진화론을 논리적으로 보충한 책.

복잡하게 보이는 현상을 '간단한 원리의 적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명활동은 유전자가 자기를 퍼뜨리려는 의지.' 앞에서 '의지'라고 표현했지만, 우리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예를 들어, A, B 라는 두 물질이 섞여 있고, B는 A라는 물질과 접촉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A로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자. 그걸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A가 B를 잡아먹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물질들은 아무 '의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가 없다.

생명체는 이러한 유사의지가 모여서 정말로 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는 듯 보이게 만든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 인간의 모든 의식도 이러한 단순한 유전자들의 화학활동 (의지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들이 오랜 시간동안 작용한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과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치란 무엇일까. 모든 활동은 생명활동일진데, 흔히 미덕으로 생각되는 여러 가치들(이타심, 사랑, 희생, 정의 등)은 단순한 착각일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자 자기의 기본적인 생명활동의 욕구에 따라 멋대로 살면 되는 것일까.

우선 기본적으로 나는 '생명' 이라는 것에 가치를 둔다. 그 생겨난 과정이야 어찌됐든, 어떻게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이 생명이라는 현상 자체를 보존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사실 위에서 말한 것들과 같은 더 근사한 가치들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것들은 허망하다 생각한다. 오히려 천박하고 단순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생명'에 대한 가치가 더 확고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이 생각 - 생명에 가치를 두는 - 에서 이어져나오는 생각은 다음 기회에 정리해야겠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지. 재밌는 것은 내가 한 때 생명활동을 아주 덧없고 가치없다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인간이라는 한계, 굴레에 대한 생각때문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