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6일 토요일

전력·가스산업 구조개편 지속

IEA 망딜 사무총장, 한국 국가에너지보고서 발표서 밝혀
[미디어다아라 2007/06/07 12:04]

국제에너지기구인 IEA가 한국의 전력·가스시장 자유경쟁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구조개편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EA는 한국의 전력·가스시장 구조개편에 대해 구체적인 타임테이블(시간계획)을 수립하고 전력산업을 규제하는 전기위원회의 권한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하고 한전의 배전사업을 분리할 것은 권고했다.

끌로드 망딜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정부과천청사에서 IEA의 한국 국가에너지보고서를 발표하며 전력과 가스 등 한국의 에너지시장을 경쟁촉진적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망딜 총장은 한국의 전력·가스시장 구조개편에 대해 “한전이 발전부문 6개 자회사로 분리하는 등 시작은 좋았으나 이미 민영화 계획은 중단됐고 가스분야도 비슷한 처지”라며 “자본집약적인 산업인 전력·가스산업이 발전하려면 장기적으로 정부 규제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하고 한국 경제성장 속도에 맞춘 에너지 시장의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망딜 총장은 한국의 전력시장 구조개편을 위해 구조개편을 위해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한국 전력시장에 전기위원회가 있지만 정부는 이 기관의 권한을 강화해 완전하고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가스시장도 독립적 규제기관 설립을 주장했다.

그는 IEA가 민영화를 더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부문에서 경쟁으로 갈 수 있는 측면이 더 크다며, 민영화를 하지 않아도 경쟁촉진이 가져다 줄 혜택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망딜 총장은 IEA 회원국 중에서도 정부가 에너지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뉴질랜드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나라는 민영화를 하지 않았지만 자유화를 진행시킨 대표적인 나라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민영화가 정치적으로 지지 받지 못하지만 에너지시장을 민영화하지 않고도 자유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망딜 총장은 오는 2011년과 2015년 검토에서는 민영화가 제안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편 IEA는 회원국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상세 검토 보고서를 4∼5년 주기로 발표하며 한국의 검토보고서는 지난 1994년과 2002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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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ㆍ에너지ㆍ도시개발] 환경친화적인 고효율 발전소

[매일경제 2006.12.07 15:02:01 입력]


◆제 2회 토목·건축대상 환경·에너지시설 / 최우수상 삼환기업 `양양 양수발전소`◆

토목과 건축 분야에서 전통의 명문인 삼환기업은 올해 9월 12일 종합 준공한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로 2006년 토목건축대상 환경ㆍ에너지 부문 최우수상 영예를 안았다.

양수발전소는 댐에 가둔 물을 지하관로로 흘려 전력을 얻는 발전소로 발전소 기동과 출력조정이 신속해 다른 발전소에 비해 전력계통 신뢰도가 높다.

실제 발전 원료별 최대 출력 도달시간을 비교하면 △양수 3분 △가스터빈 30분 △복합 1.5시간 △유연탄 4시간 △원자력 24시간으로 양수발전이 월등히 뛰어나다.

삼환기업 관계자는 "발전시 심야전력을 사용하므로 대형 발전소 이용률과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양양 양수발전소는 삼환기업과 삼성물산이 공동 시공하고 설계감리는 삼안, 주기기제작은 두산중공업이 맡았다.

공사는 93년 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된 지 14년, 96년 본공사에 착수한 지 10년 만에 마무리돼 `대역사`로 불릴 만하다.

발전소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영덕리에 있는 하부댐과 발전소,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에 위치한 상부댐으로 나뉘어 있다.

시설용량 100만kW에 최대 낙차가 무려 819m에 이른다.

공사비는 총 9324억원이 들었는데 국내 자본 8611억원에 외국 투자자본도 713억원(6469만달러)이 투입됐다.

주시공사인 삼환기업측은 대규모 발전소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이미 작년 6월 말 상ㆍ하부댐 준공을 마쳤지만 꾸준히 시운전을 하면서 동작상황을 점검해 25kW급 4기 발전기기를 성공적으로 설치할 수 있었다.

삼환기업이 자랑하는 발전소 건설 효과는 크게 3가지다.

먼저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대량의 발전 능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양양발전소는 한 해 19억kWh 전력을 생산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는 하루 최대 50만kWh 전력 생산능력을 가진 유연탄발전소를 158일 연속으로 가동해야 확보할 수 있는 전력이다.

100% 수입에 의존하는 화력발전소 가동용 천연자원을 한 해 310억원가량 아낄 수 있는 전력량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발전이 낙후된 지역경제를 발전소가 활성화했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삼환기업 현장 관계자는 "직접 공사비 집행 이외에도 건설현장 주변에서 한 해 6억원이 넘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발생했다"며 "발전소 건설로 지방 세수가 늘어나고 건설 인력이 상주하면서 지역 내 구매력이 늘어난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삼환측은 10년간 장기공사로 연 인원 170만명에 이르는 고용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양수발전소는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는 물을 끌어올리는 양수 형태로 운영되고, 전력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정오부터 저녁 6시까지는 상부댐의 물을 하부로 내려 발전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 허종 사장 수상소감 = 지난 10여 년 동안 공사에 전념해준 직원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 같아 기쁘다.

아울러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도움을 준 한국중부발전 삼성건설과 함께 협력사에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삼환기업은 지난해 제1회 토목건축대상에서 광안대교 공사로 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아 기쁨이 남다르다.

지금까지 삼환이 걸어온 길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더 중요하다.

70년대 `중동건설 붐` 선구 역할을 했던 국외시장에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삼환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4개 도로공사와 예멘 LNG시설 공사 등을 비롯한 다수 국외공사를 수행중이다.

[산업자원부] '07년도 전력산업기반기금 총 1조2,922억 원 지원 확정

연합뉴스 보도자료 기사입력 2007-01-07 12:05

전력연구개발 및 인프라 구축 등 전력산업 경쟁력강화사업에 2,063억 원
신재생에너지 개발ㆍ보급사업에 2,456억 원 지원 등


산업자원부는 전력수급의 안정과 전력산업의 지속적인 발전, 보편적 전력공급, 전기안전관리 등을 통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07년도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1조 2,922억원을 지원하기로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 시행계획을 1.8일 확정ㆍ공고하였다.

총 1조2,922억원 이 지원되는 '07년도 사업의 주요내용은 전력산업 경쟁력강화 및 전력수급안정관련 사업에 3,884억원 지원, 전력연구개발 및 인프라구축사업은 투자를 확대하여 전력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대 구축에 2,063억 원, 수ㆍ화력 및 원자력발전기술, 전력계통기술, 전력기반기술 등 전력설비의 선진화와 성능향상, 전력IT 등 전력연구개발지원사업에 1,633억 원, 전력산업의 성장기반 조성 및 전력기술 경쟁력 강화기반 구축을 위한 인력양성, 정보화, 표준화, 연구시험설비구축 등 인프라구축사업에 370억 원을 지원하고 국내 전기ㆍ전력관련사업의 수출역량 강화 및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수출산업화지원사업에 신규로 60억 원 지원, 최대전력수요 감축 및 합리적인 전력소비 유도를 위한 전력수요관리사업에 1,821억 원, 최대전력수요 억제를 위한 부하관리 및 요금지원사업에 790억 원, 에너지절약을 위한 전력효율향상지원사업에 565억 원을 지원한다.

또한, 기후변화협약 및 국제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신재생에너지 개발ㆍ보급사업에 2,456억 원, 전력관련 신재생에너지기술개발 및 기반구축 사업에 1,046억 원, 태양광주택 10만호 보급을 위한 주택용 태양광발전설비 설치 지원 및 신재생에너지발전사업자에 대한 발전차액 지원사업 등 보급사업에 760억 원, 발전설비의 설치자에 대한 장기저리의 융자자금 지원에 650억 원이 지원되며, 신재생에너지사업은 전력기금에서는 전력관련 분야만 지원하며 에너지특별회계 등에서 지원하는 사업 등을 포함한 전체적인 지원 규모는 4,351억 원이다.

기타 법령에 의하여 의무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사업은 법령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 지원한다.

농어촌 및 도서벽지지역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한 도서자가발전시설운영 및 농어촌 전기공급지원사업에 1,186억 원, 국내무연탄발전, 열병합발전에 따른 변동비 손실보전을 위한 발전차액 지원사업에 2,260억 원, 전원개발 촉진과 발전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관련법령에 의해 지원하는 발전소주변지역지원사업에 1,270억 원, 안전관리가 취약한 재래시장의 전기설비 개선 및 저소득층 전기안전사고 방지 등을 위한 전기안전관리사업에 800억 원을 지원한다.
(끝)

<본 보도자료는 연합뉴스의 편집방향과 무관하여 모든 책임은 정보 제공자에 있습니다>

[로컬이슈]송전선로 건설 논란 해법없나

[로컬이슈]송전선로 건설 논란 해법없나 [강원일보 사회면 2007-2-5 기사]

-주민 “전자파 피해” vs 한전 “전력망 시급”

원주시 곳곳에서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둘러싸고 대립과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력수요에 대비해 전력수송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한국전력과 환경파괴 및 전자파 피해가 우려된다는 주민들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 송전선로 건설사업 현황

한국전력은 신충주 분기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2008년 10월부터 2010년 4월까지 부론면 정산리에서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 신충주 변전소까지 송전선로 22㎞에 62기의 철탑을 세우는 사업을 추진중이다.

이중 12기가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건설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원주시 우산동 산2-1번지 일대 12,675㎡(3,834평) 부지에 사업비 170여억원을 들여 지하1층 지상3층 규모의 변전소를 건축하고 우산동~호저면 무장리까지 송전선로 4.8㎞에 철탑 18기 신설을 추진중이다.

■ 지역주민 입장

주민들은 반대대책위를 구성해 수차례 제천전력관리처를 항의 방문하고 송전선로 건설사업의 부당성 등을 제기하며 노선 변경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부론면 정산리 주민들은 충주시가 추진중인 주덕 기업도시 전력 공급을 위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산리를 희생물로 삼아 송전철탑을 세우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충주 소태면에서 주덕까지 송전선로를 연결하면 훨씬 가까운데도 사업비가 많이 드는 정산리 노선을 선택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하다며 후손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사업계획 철회를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원주시 우산동 점실·웃골마을 주민들도 최근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한전 제천전력관리처를 항의방문하는 등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한국전력 입장

한전측은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사업을 철회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문제해결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부론면 정산리의 경우 제천전력관리처에서 서울전력계통 건설처로 업무가 이관되면서 주민들의 피해상황 등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송전선로 경과지 선정을 위한 몇가지 안을 채택, 그 중 가장 적합한 곳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만큼 노선변경에는 사실상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전 서울전력계통건설처 관계자는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찬성하는 곳이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필요한 사업을 안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주민들과 자주 만나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향후 전망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의 주민들은 한전측의 주민설명회 자체를 무산시키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대해 한전은 주민들을 설득하고 발전기금을 지원하는 등 해결방안 모색에 나서고 있다.

이철연 우산동송전선로건설 반대비상대책위원장은 “주민들 모두가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주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한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 제천전력관리처 관계자는 “원주의 경우 발전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라며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송전선로 건설로 피해를 입을 수 없다는 지역주민들과 부족한 전력수요에 대비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한전측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당분간 사업추진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원주=원상호기자

[알아봅시다] 태양광발전

[알아봅시다] 태양광발전 [디지털타임즈 2007/01/11]
태양전지에 햇빛 모아 영원한 전기에너지 생산

교류전력 변환기기 '인버터'로 송전
산간ㆍ도서지역 독립형으로 전력공급
전력효율 높은 '추적ㆍ집광형' 건설중



고유가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자원 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자원 확보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대비해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자원확보는 지금부터 준비해도 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무궁한 에너지의 생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에너지원인 이른바 신재생에너지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고갈되지 않는 무한의 자원이며 환경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원인 햇빛도 그 가운데 하나로 활발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이란=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태양광 발전입니다. 태양광발전은 실리콘소자로 만들어진 반도체의 일종인 태양전지에 빛을 모아 전기를 발생하는 발전 방식입니다.

자세히 말하면 p-반도체 n-반도체 접합으로 구성된 태양전지(solar cell)에 태양광이 입사되면 광에너지에 의한 전자와 정공쌍이 생겨나고, 전자와 정공이 이동해 n층과 p층을 가로지르게 되면 전류가 흐르는 광기전력 효과(photovoltaic effect)에 의해 기전력이 발생, 외부에 접속된 부하에 전류가 흐르게 됩니다.

태양광발전시스템의 태양전지는 변화하는 기후와 충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모듈이라는 일정한 틀 속에 직ㆍ병렬로 연결해 사용됩니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가 요구하는 전력량으로 제작할 수 있으며, 모듈의 배(Array)에 따라 큰 용량의 전압과 전류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시스템 종류=이런 태양광발전시스템은 송전여부에 따라 독립형 태양광발전시스템과 계통연계형 태양광발전시스템의 2가지 종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독립형 태양광발전시스템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주간에 전력을 발전해 축전지에 저장했다가 축전지의 전력을 이용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발전시스템은 주로 한국전력 계통이 없는 산간 벽지, 도서 지역 등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용도로 설치되는 경우가 많으며, 풍력을 비롯한 다른 복합발전과 연계해 하이브리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합니다.

최근 들어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농촌지역을 비롯한 도시 공동주택에서도 태양광발전시스템을 설치, 전기를 이용하는 태양광 주택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계통연계형 태양광발전시스템은 전기가 공급되는 지역에서 태양전지를 이용해 주간에 전력을 발전해 계통선을 이용, 한국전력에 전력을 송전하는 시스템입니다.

태양전지를 이용한 전력은 직류 전원을 발전하므로 송전을 위해서 교류 전력으로 변환하기 위한 인버터(전력변환장치)가 필요하며, 변환된 양질의 교류 전원을 전선을 이용해 송전하게 됩니다.

계통연계형 태양광발전시스템은 주로 중대형 발전을 통해 한국전력거래소에 전력을 되파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 주택형 발전에서의 계통연계형 시스템은 생산되는 전력만큼 계량기를 거꾸로 돌려서 사용한 전기요금의 차액만을 지급하기도 합니다.

또한 태양광발전시스템은 그 형태에 따라 고정형과 추적형, 집광형, 건물일체형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정형은 태양광발전을 위한 모듈 또는 어레이를 건물이나 지면에 고정시켜 발전을 하는 형태이며, 추적형은 태양 빛을 따라서 움직이는 형태의 발전시스템을 설치하는 방식입니다. 집광형 태양광발전시스템은 태양 빛을 모아 태양광발전을 하는 시스템으로 단위면적당 이용할 수 있는 태양에너지의 양을 증대시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발전형태입니다. 건물일체형시스템은 건물의 창문이나 벽면 등을 이용하여 별도의 공간이 필요 없는 태양광발전시스템의 형태로써 주로 계통연계형 태양광발전시스템이 많은 특징을 가집니다.

◇차세대 발전소 `태양광발전소'=태양광발전소는 태양광발전을 대규모로 하는 계통연계형 발전형태로 전기를 대량으로 생산, 송전하는 시설입니다. 기존의 화력발전소와는 달리 친환경적인 발전소로서 미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어 국가 정책으로 장려되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소는 설치된 발전시스템의 형태에 따라 고정형추적형집광형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 국내에는 주로 고정형 태양광 발전소가 건설돼 있으며 향후 추적형과 집광형 등 태양광발전의 효율성이 높은 보다 진보된 형태의 태양광발전소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는 태양광주택 10만호 보급사업과 기술개발을 위한 실증사업, 대규모 발전소 건설을 독려하기 위한 발전차액지원제도 등을 통해 태양광발전시스템의 보급확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이 보다 많이 보급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이런 안정적인 정책의 뒷받침과 꾸준한 기술개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송원준기자 swj@

국내 최초 원격운전 청송양수발전소 가동

국내 최초 원격운전 청송양수발전소 가동 [EBN산업뉴스 2007-03-09 06:00:00]
안동시 전력사용량 8배 생산, 130km나 떨어진 삼랑진 양수발전소에서 운전

안동시 전력사용량의 8배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청송양수발전소가 9일 준공식을 갖고 본격 가동에 돌입, 경북 북부지역에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게 됐다.

산업자원부는 한국서부발전(주)이 9일, 경북 청송군 청송양수발전소 현지에서 이재훈 산업자원부차관을 비롯한 가계 주요 인사와 지역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갖고 가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번에 준공된 청송양수발전소 1,2호기는 60만kW급 양수발전소로 현대엔지니어링(주)이 설계를, GE Energy가 기자재 공급했고 동아건설산업(주), 삼성물산(주), 두산중공업(주), (주)한화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총 공사비 5천920억원에 연인원 110만명이 투입돼 6년 4개월만에 준공된 청송양수발전소가 이번에 가동에 들어가면서 국내 전력에서 수력이 차지하는 비율도 7.5%에서 8.4%로 0.9%포인트 상승하게 됐다. 또 수력 가운데 양수발전 비율도 71%에 이른다.

특히 청송양수발전소는 최첨단 IT 기술이 접목돼 130km나 떨어진 삼랑진 양수발전소에서 기동, 정지 및 운전이 가능해 운영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경영혁신 모델 발전소로서 국내최초, 세계최대 원격운전 양수발전소란 특징을 갖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친환경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청송양수발전소가 종합 준공됨으로써 국립공원 주왕산권 관광벨트와 연계하여 관광자원화에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국내전력계통의 안정과 기후변화 협약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준공식에서는 신상열 서부발전 건설처장이 동탑 산업훈장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서 서부발전 및 협력업체 임직원 36명에게 훈·포장 및 대통령표창 등이 수여된다.

송남석 기자 song651@ebn.co.kr [EBN산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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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르빈 슈뢰딩거 (서인석, 황상익 역), 생명이란 무엇인가, 한울, 2000.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생명현상의 물리적 해석에 대해 쓴 책.

원서는 1944년에 씌어졌다고 하는데, 시간이 오래 지난 만큼 현재에는 많은 부분이 (거의 다?)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한다 (책 말미에는 이 책의 내용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려주는 논문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답을 알기엔 요원한 것 같은 생명 현상에 대한 해석의 시도와 그를 위한 접근법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생물 분야에도 관심이 있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물리학자답게 생명 현상도 물리법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환원주의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까). 본격적으로 생명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물리법칙으로서의 원자통계학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다. 이 개념을 책에 나온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긴 원통에 산소기체가 있을 때 자기장을 가해주면 각 산소분자가 자기화, 즉 자기장의 방향과 나란히 서게 된다 (산소분자 자체도 작은 자석이기에). 하지만 모든 분자가 자기화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화의 정도는 자기장의 크기에 비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작위한 배열을 만들어 내는 열운동에 의한 방해 때문이다. 정리하면, 분자들을 자기장과 평행하게 하려 하는 자기장과 무질서하게 하려 하는 열운동의 경쟁에 의한 결과가 관찰되는 자기화라는 것이다. 도체에서 이러한 현상을 근사적으로 나타낸 게 옴의 법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열운동을 작게 하면, 즉 온도를 낮추면 자기화를 높일 수 있을 건데, 초전도 현상에서 그걸 볼 수 있다. 비슷하게 브라운 운동도 분자 단위로 보면 그 운동을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다루는 분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확산법칙이라는 편미분 방정식 형태의 물리법칙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거시적인)물리법칙은 근사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발견이 아니라 이해하고 이용하기 위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 등은?)

여튼 위와 같은 사실을 이야기 한 다음, 생물의 일반적인 특성과 그로 유추할 수 있는 유전물질의 특성을 말한다. 그 내용이 어려워서 다 이해하지는 못했고, 그냥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위에서 말한 사실과 양자역학(불확정성)을 근거로, 생물체의 자기 유지 및 복제, 돌연변이 발생 등의 특성을 가지기 위한 유전물질(염색체)의 조건을 다원자구조여야 하며 그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이 맞는지 자신은 없다...). 그리고 생명체는 (다른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음의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생명에 대한 이러한 견해(기계로서의 생물)에서 자유의지의 의의에 대해 평하고 있다.

내용을 정리하긴 했지만 공부가 부족한 관계로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새로 발견된 사실(양자역학과 염색체)로부터 생명 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게 좋았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유전자(염색체)가 생명체의 구성과 진화에 미친 영향과 또 생물체의 생명 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했다면, 이 책에서는 유전자의 구성 자체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고 할까 (그 뒤의 연구를 통해 틀렸음이 밝혀졌지만). 특히 과학자다운 엄격하고 창조적인 접근법이 이 책의 의의가 아닐까.

답답한 대학 입시 보도

오늘 아침 중앙일보며 소위 보수언론이라하는 신문들에 실린 기사들을 보며 답답한 맘을 금할 수 없었다. 모두 대학의 입시제도 변경과 교육부의 대응에 대해 정부 쪽을 지탄하는 글들 일색이었다. 그런데 과연 대학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그리고 교육부의 정책은 정말 중심없이 흔들리고만 있는가?

교육부는 누차 공교육의 붕괴를 막기 위한 내신 지키기를 표명해왔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그 정책적 일관성만큼은 분명했다. 다만 대학이 입시 자율을 워낙에 외치다보니 그를 감안하여 조율하는 과정에서 정책에 약간씩의 변동이 생겼다. 그렇다면 정책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대학의 요구 탓이지, 정부의 탓이 아니다. 적어도 정부가 맘이 바뀌어 계속 정책을 오락가락 휘집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몇몇 서울 소재 사립대학에서 발표한 내신 무효화 정책들은 필자가 보기에는 어불성설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서울 소재 유수 대학들이 내신 3-4등급 이상을 일괄적으로 만점 처리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곧 공교육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 실상 Y대며, I대며 이름이 거론된 대학들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내신에서 1-2등급 내에 드는 극소수이다. 수능에서 서울 소재 유수대학 갈 정도 점수 나온다고 하는 아이들이 내신에서 3등급 이하로 떨어지는 예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다. 헌데 4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고 한다면, 이는 곧 내신을 유명무실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 그래도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통에 누가 학교 공부에 치중하고 수업시간에 귀기울이겠는가. 모두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들 것이다.

중앙일보 한 기사에서 서울대는 1-2등급까지만 만점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교육부가 이를 말렸다며 비판하는 논조를 보았다. 이 역시 위와 같은 맥락에서 말이 안된다. 서울대 정도 지원할 수 있는 수능 성적 나오는 학생들은 정말 대다수가 1등급이고 못해도 2등급 이상이다. 그렇다면 서울대의 정책은 '우리 내신에는 모두 만점 주겠다'와 같은 말이 되는 것이다.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교육부의 심중이 이해될만 한데 얄팍한 '겉'사실로 독자의 눈을 속이려 하니 통탄을 느낄 따름이다.

현 교육부 정책을 따라가면 특목고 학생들이 불리하다고 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로 완전히 잘못된 비판이다. 먼저 첫째, 그렇다면 현 대학이 내놓은 방식의 자율로 바뀌면 반대로, 일반고나 농어촌 학생들이 불리하지 않은가? 그 수로만 봐도 특목고 학생들의 몇 십배는 될 것이다. 대학이 말한 식의 내신 무효화를 통한 자율로 가면 사교육 시장만 비대해질텐데, 교육여건이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사회적 하위층 자녀들은 어찌 되나? 태어날 때부터 진 업보이니 미안하지만 그냥 살라는 말인가? 그들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무작정 정부의 대책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물론 정부의 대책이 최선은 아닐 것이지만,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사회 전 계층을 고려한 보다 나은 대책이 있나? 대안없는 비판은 단순한 '네거티브 공세'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두 번째로, 특목고 학생들의 불리함을 왜 입시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나? 사실 현 특목고 체제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에 그러한 불리함이 나오는 것이다. 특목고는 그야말로 특수목적고, 특정한 직업적 목적을 지닌 학생들을 교육양성하기 위한 학교이다. 그런데 특목고의 대명사인 외국어고는 단순히 성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곳이 되어버렸지 않나. 그러니 현 대학입시제도에서 이들이 불리함을 겪는 것이다. 외국어고가 정말 외국어를 특별히 더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 된다면 왜 이들이 현 제도 내에서 불리함을 겪겠는가. 외국어 자체는 전혀 성적의 우열 여부와는 관계가 없을 뿐더러 정시 외에 이들만을 위한 수시나 특별전형이 많을텐데. 즉 특목고생들의 불리함은 잘못된 특목고 제도에서 고쳐야지, 대학입시를 통해 메워야 할 것이 아니다.

답답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언론이 교육부에 대해 겨누고 있는 비난의 화살이 현 상황에 비추어 전혀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그저 정부에 대해 성토하기에만 바쁜 것인지, 자극적인 기사로 독자를 모으려는 것인지 당최 말이 되지 않는 비판들이 난무한다. 난 '노빠'도 아니고, 참평포럼이나 노사모의 일원도 아니다. 그저 얼마 전까지 그 지옥 같다는 입시의 현장에 있었던 학생이다. 언론이 선동하니 괜한 시민들도 입시자율과 대학경쟁력을 주문처럼 외우며 정부를 비난하기만 한다. 물론 양자 모두 중요하고, 나 역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언론의 비판은 단지 그것을 정부 비판에 이용하기 위해 구호처럼 내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거와 대안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당장의 이익과 한치 앞의 손익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대운이 걸린 장래까지 멀리 보며 다져가야 한다. 그러자면 대학경쟁력만큼 중요한 것이 교육을 통한 사회 양극화의 개선과 진정한 민주주의적 평등의 달성이다. 현재 대학이 주장하는 입시제도로 '지금 당장' 선회하게 된다면 이는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교육적/경제적 양극화를 심화할 것이다. 교육부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저 넓은 사회와 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데, 보수언론들은 당장 코앞에 닥친 2008년도 입시만을 이야기한다.

오늘도 한 뉴스에서 인터뷰를 하는 학부모 한 분의 왈, '교육부가 정책을 자꾸 바꾸니까 거기 휘둘리지 말고...' 정말 정책을 자꾸 흔드는 주체는 교육부인가? 아니면 대학인가? 언론인가? 그것도 아니면 앞선 둘에 휘둘리는 여론인가?


출처: 중앙일보 이미지( caesarian)님 글

뮤비) BoA - Lady Galaxy ( 2007 아레나 투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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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영웅, 그리고 빠순이

우리나라는 영웅을 키우지 못하는 사회라고들 한다. 그건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성질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누구의 팬으로서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빠'라고 말하며, 그 말이 객관적인지 아닌지는 무시되기 일쑤이다.

실제 우리나라 사람이 그런지,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는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자. 누군가가 자기는 누구를 (또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을 때, 그 대상(사람이든 아니든)에 대해 흠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완벽한 건 없으므로). 그리고 (실제로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든 없든) 자기가 좋아하는 건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대상을 비판하는 측은, 최소한 말싸움에서는 우위에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자기에게는 공격 대상이 되는 약점이 없으므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도대체 그걸 왜 하냐'라고 묻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대체 그걸 왜 좋아하냐'라고 묻는 사람에게 나는 묻고 싶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냐?', '너는 무엇을 좋아하냐?'

정치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이 가진 가장 흔한 태도가, 정치를 욕하면서 양비론, 냉소주의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우리나라의 정치가 바람직하고, 정치가들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팔짱끼고 멀찌감치 서서 혀만 차고 있으면 나아지는 것이 무엇일까? (쿨하게 보일 수 있나?) 더구나 정치의 결과는 결국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계급만을 위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런 정치가가 원하는 정치에 대한 시선은 바로 위와 같은 냉소주의일 것이다 (국민들이 누가 자기를 위해 정치를 하는가 열심히 생각하면, 표로써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자기가 권력을 잡을 수 없을 게 자명하므로).

'오십 보 백 보'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속담이나 격언이 있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논리가 전부 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이다 (비유 등의 수사법도 다 해당, 숨겨진 핵심을 짚어내거나 어떤 것을 전달하고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참인 건 아니다). 모든 정치가가 못하더라도 조금 덜 못하는 사람을 지지해주자. 그리고 수준이 낮다고 냉소주의로 무관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최소한의 실천(투표)을 하자. K리그가 외국 빅리그에 비해 수준이 낮다 해서 특별히 손해볼 건 없지만, 정치가 수준이 낮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ps. 난 정치가 중에서는 김근태를 좋아하고, 그런 사람(요령은 부족하지만 양심과 굳은 신념을 가진)이 크게 될 수 없는 우리나라가 안타깝다.

차범근! 잃어버린 영웅

차범근에 대한 명전이라면 '축구 선수' 차범근에 대해 과연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을 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후추의 주류 독자층인 20대 스포츠 팬들에게 차범근이란 이름 석자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갈 것인가? 그들이 차범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과연 어느 정도이며 얼마를 알려줘야 하는지? 암담했다. 요즘 스포츠 팬들이 필자에게 "차범근이 정말 그렇게 축구 잘 했나요?"하고 질문 한다면… 그저, 막막할 뿐이다. K-League 보다 이태리 Serie-A에 더 관심이 많은 요즘 축구 팬들에게 '당시 차범근은 지금의 바티스투타 정도의 실력과 입지를 누리고 있었다'라고 답한다면 feel이 올까나? 차범근의 명전은 '축구 선수 차범근' 또는 '생활인 차범근' 이렇게 뚜렷하게 구분을 해서 특정 주제에만 전념해야겠다는 다짐도 한때 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후추가 아는 만큼은 전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먼저 '축구 선수 차범근'에 대한 소개를 할까 한다. 그가 '세계적인 스타 차범근'이 되기 전까지의 축구 이야기를 말이다.

'차범근이 과연 얼마나 잘했냐?'는 질문에 답하는 일처럼 고통스럽고 막막한 '도전'이 없겠지만 이렇게나마 하나씩 풀어나가 보려고 한다.



1970년대 아시아 축구판도는 전통의 강호 한국을 필두로 장신 스트라이커 크라파이와 테크닉이 좋은 몽예몽이 이끄는 버마 (현 미얀마),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유럽식 축구를 구사했던 이란, 짐 메케이와 롱드로우인의 명수 리챠드가 버틴 호주, 여기에 늘 우리 한국이 껄끄럽게 생각했던 이스라엘 등이 4강 내지는 5강 체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68년 멕시코 올림픽 득점왕 가마모토가 이끌던 일본은 비록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고는 하지만 결코 당시 한국의 상대는 분명 아니었다(버마는 70년대 중반부터 쇠락 한다).

72년 경신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한 차범근은 사상 최연소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면서 그 해 5월 방콕에서 벌어진 제5회 아시아 축구선수권 대회에 이세연, 이회택, 김호, 박수덕, 박이천, 변호영 등 기라성같은 대선배들과 함께 출전한다. 한국은 결승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GK '헤자지'와 파르빈, 베자디, 아디비 등 초 아시아급 선수들이 버틴 이란에게 2대1로 패하며 비록 준우승에 머물긴 했지만, 차범근 개인에게 있어서는 화려한 국가대표 데뷔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소득을 올린 대회라고 볼 수 있다. 국가대표 초년병시절 차범근은 대표팀 연습 시에 바람 빠진 축구공에 공기를 넣는 등 대선배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막내둥이 였지만, 플레이만큼은 처음부터 막내가 아니었다. 당시로는 비교적 장신에 속하는 178센티의 신장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측면돌파와 정확한 센타링은 기존의 국내 선수들과는 분명 한 차원 다른 플레이였고, 어시스트능력 또한 탁월했다. 혹자는 '대한민국 뻥축구의 원조는 차범근이다'라고도 하지만, 차범근이 보여준 '뻥축구'는 당시 이땅의 국민들의 눈에는 '삼바 축구', '토탈 사커'이상의 '신기'였다. 대표팀에 발탁된 차범근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모해 나갔고, 대표팀 코칭스탭은 물론 선배들도 차범근의 성실한 자세와 뛰어난 기량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차범근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축구의 독보적 스타로 군림했던 이회택은 자신의 아성에 정면으로 도전한 차범근이었지만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후배 차범근에게 늘 격려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차범근은 고려대학 2학년 때인 73년 5월 뮌헨월드컵 아시아 A조 예선 대 이스라엘 전에서 연장 3분 경에 수비수 김호곤이 강슛한 볼이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오자 기가 막힌 발리 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려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차범근 시대'의 막을 올린다. 이후부터 차범근은 아시아의 호랑이로 성장해 국내 경기뿐 아니라 수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맹활약, 축구팬은 물론 남녀노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한국 스포츠계 최고의 영웅 자리에 오른다. 당시 학교에서든 동네 조기축구에서든 가장 볼을 잘 차는 인물들은 모조리 차범근의 백넘버인 11번을 달았고, 당시 우리축구 대표팀의 패턴이 차범근의 측면돌파에 이은 정확한 센타링을 190센티의 장신 센타포오드 김재한이 헤딩으로 많은 득점을 올리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자주 봐온 어린 아이들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종이비행기'란 동요의 가사를 바꿔 '찼다찼다 차범근 센타링 올렸다 떴다떴다 김재한 헤딩슛 골인'이라고 부르고 다닐 정도였다.

차범근은 한국에서 매년 열리는 박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지는 메르데카컵, 태국에서 벌어지는 킹스컵 등 국제대회에 출전해서 유럽과 남미팀들과의 경기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발휘해 유럽과 남미의 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아시아권에선 폭발적인 스피드의 차범근을 마크하기란 불가능했고 아시아 어디를 가더라도 축구팬들은 한국의 차범근이 '아시아 넘버원'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한국이 78년 5월재팬컵에 출전해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스타 플레이어 지몬센이 이끄는 서독의 명문 보루시아 MG와의 경기에서 4대 3으로 패했지만 차범근의 플레이를 눈여겨본 보루시아 MG의 명감독 우도 라데크에게 경기 후 '한국의 11번은 정말 놀라운 선수다. 저 선수는 서독에 와도 충분이 통할 수 있는 플레이어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또한 차범근은 78년 박대통령컵에 동행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팀 1군 코치 슐테 코치의 관심을 사기도 했었다. 차범근은 이미 이때부터 우리의 몫, 아니 아시아의 몫이 아니었다.

차범근이 72년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79년 서독에 진출하기 전까지 국가대표로 참가했던 주요대회는 72년 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74년 뮌헨월드컵 예선,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예선,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 78년 방콕아시안 게임 등이었다. 얼마 전 보도된 차범근의 공식 A매치 출장 기록(121경기)을 일일이 파헤칠 순 없겠지만, 필자의 'Memory Lane'을 조심스레 뒷걸음질 쳐가며 '태극마크의 차범근'이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경기 3개를 replay 해 본다.

- Retro: "The best of Chaboom 1"
(1976년 9월11일 제 6회 박 대통령컵 국제 축구대회 대 말레이시아 전 - 서울운동장)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 소친원이 이끄는 말레이시아와 첫 경기에 맞붙은 한국대표1진 화랑은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으나, 이날 따라 선수들의 미스가 속출했으며 특히 수비수들의 호흡이 전혀 맞지 않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연속해서 수비수들의 엉성한 플레이로 엉겹결에 3골을 허용한다. 후반전에 전열을 가다듬은 화랑은 차범근이 슛한 골이 골대 맞고 튀어나오자 이공을 미드필더 박상인이 골대 안으로 밀어넣어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곧바로 말레이시아의 목타르 다하리에게 중거리슛을 허용해 스코어는 4대 1로 벌어지며 패색이 짙어진다. 말레이시아가 무서운 강팀은 아니라고 하지만 축구경기에서 3골차란 결코 쉽사리 따라붙을 수 있는 스코어가 아니었다. 남은 시간은 7분. 그러나 '기적'은, 그리고 '차범근의 전설'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어느덧 까까머리 신참에서 대표팀 대들보로 성장한 라이트윙 차범근이 수비수들을 멋지게 제치고 강슛한 볼이 골네트를 가르면서 추격에 불을 지피더니 4분 후 또다시 차범근이 두 번째 골을 터뜨려 한 순간에 서울 운동장에 모인 관중들과 시내 다방 안에서 텔레비젼을 시청하던 축구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그리고 2분 후 종료1분전 중간 지역에서 볼을 차단한 차범근이 단독으로 치고 들어가 천금과 같은 동점골을 터뜨리며 4대4동점을 만들어낸다. 차범근은 그래서 '차범근'이었다. 스탠드를 꽉 메운 관중들은 물론 한국팀 벤치 또한 흥분을 감추질 못했으며 반면에 다잡은 승리를 한 순간에 놓쳐버린 말레이시아 선수단 전원은 망연자실 했다. 이 '동화 같은 엔딩 (ending)'을 발판으로 화랑은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진출, 한국대표 2진 충무를 3대0으로 제압한 브라질의 상파울로 선발팀과 공동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수 많은 축구 팬들의 뇌리 속에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는 차범근의 모습은 바로 이 '대 말련전' 한 경기로 충분했다. 또한 이 게임은 아직까지도 한국축구사의 가장 흥분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 이 대회직전 차범근은 약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었다. 76년 고려대를 졸업한 차범근은 신탁은행에 적을 두게 되는데 신탁은행과 서울은행이 통합되면서 당시 감독이던 민병대씨가 자동차보험으로 옮기며 차범근도 동시에 자동차보험으로 이적하려다 문제가 발생 졸지에 무적선수가 되고 만다. 이때 축구선수가 적이 없으면 경기장에서 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당시 축구협회 회장 김윤하씨가 차범근을 축구협회소속으로 등록시켜서 박 대통령컵 대회에 출전 시켰던 것이었다.

- Retro: "The best of Chaboom 2"
(1977년 3월20일'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 이스라엘전 -서울운동장)
당시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은 먼저 1,2,3,4조로 나누어 각 조1위 팀을 가려낸 뒤 오세아니아 지역대표등 5개팀이 홈앤드 어웨이로 승패를 가려 가장 성적이 좋은 팀 하나가 아시아 대표로 월드컵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은 일본, 그리고 항시 우리에게 껄끄러운 상대였던 강호 이스라엘과 같은 조에 속했다. 한 달 전인 2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어웨이 경기에서 김진국이 강슛한 볼이 크로스바를 맡고 골라인 안으로 들어갔으나 선심이 골인으로 인정치 않아 결국 무승부로 경기를 끝냈는데, 이스라엘 매스컴에서 조차 김진국이 슛한 볼은 골인이 분명하다고까지 보도된 바 있고 한국의 오완건 단장은 부당한 오심을 FIFA에 제소하는 등 강력한 항의를 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의 서울 홈 경기는 한달 전의 분풀이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당시 한국의 감독은 최정민씨였고 코치는 김정남씨였다. 당시 멤버는 GK 1번 김황호 DF 3번 김호곤, 8번 조영증, 12번 최종덕, 5번 황재만, 6번 박성화 MF 4번 조광래, 9번 이영무, 17번 박상인, 18번 김성남, FW 15번 허정무, 14번 김진국, 11번 차범근, 7번 신현호등이었다.

1차전과 마찬가지로 초반부터 적극공세를 펼친 한국은 전반 20분이 지날 무렵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11번 차범근이 수비수 두 명을 가볍게 제치며 강슛을 성공시켜 3만 여 관중들의 함성을 쏟아낸다. 전반을 성공리에 끝낸 한국은 후반 GK 김황호가 '충분히 잡을 수도 있는 볼'을 골로 허용해 1대1동점이 된다. 그러나 한국은 후반 3분 여를 남기고 오른쪽에서 최종덕이 가까운 포스트쪽으로 이동하는 차범근을 향해 롱드로우인 한 볼을 차범근이 헤딩패스로 가운데 밀어넣자 달려들던 17번 박상인이 골대 정면에서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골네트를 가른다. 승기를 잡은 한국은 1분 뒤 다시 차범근이 센타서클 중앙에서 한 사람을 제치고 오른쪽 풀백인 자신의 고려대학 2년 후배 12번 최종덕에게 연결하자 최종덕은 볼을 한두 번 툭툭 치고 가다 골대와의 거리 30여 미터 전방에서 그대로 중거리 슛을 성공시켜 서울운동장을 꽉 메운 3만 여명의 관중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한다. 최종덕은 이후 '중거리슛의 명수'란 별명까지 얻게 되고 결국 한국은 강호 이스라엘을 3대1로 물리친다. 이 시합에서 역시 차범근은 혼자서 3골을 모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며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78년 방콕 아시안 게임 결승전이자 사상 첫 국대 남북대결인 대 북한전을 0-0 무승부로 마친 화랑(전 국대) 선수들 중 유일하게 차범근만이 현지에서 직접 독일 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차범근의 독일 진출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바두즈'사의 독일 대변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서독에 도착한 차범근은 여우종 재 서독 한인회 회장의 환대를 받으며 다음날 분데스리가 최하위팀인 다름슈타트와 월봉 1만마르크(260만원)에 6개월 단기 계약을 맺고 보쿰을 상대로 데뷔전을 갖는다. 다름슈타트의 부크발트 감독의 극찬은 독일 지역 신문을 비롯 국내 언론은 대서특필, 차범근의 '탈 아시아 시대'를 예고했건만, 당시 공군 현역병이었던 차범근의 신분 문제로 급거 귀국하게 된다. 도무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며 궁금해 할 후추인들을 위해 차범근의 입대 배경 및 거취 문제를 간단히 요약해 본다. 76년 10월에 입대했던 차범근은 공군이 타군에 비해 복무 기간이 길었던 부분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공군팀 전력 강화 특별 케이스'로 선정되어 타 군과 동일한 복무기간 후 '총장 권한으로 조기 제대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서면으로 받아 놓았던 상태라서 78년 12월이면 제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독일 진출은 12월에 진행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 '공군팀 특별 케이스 입대 1기'가 바로 차범근이었고 2기가 장기문, 황재만과 같은 당시 국가대표 급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의 독일 진출을 놓고 워낙 '시끄러웠기 때문에' 공군의 그런 약속이 무산되었던 것이었다. 차범근의 독일 체류는 이렇게 해서 11일 만에 마감된다.

- Retro: "The best of Chaboom 3"
차범근은 그 다음해인 1979년 5월31일 공군에서 만기 제대 한 후 6월22일 다시 서독으로 출국을 하게 되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떠나는 축구영웅 차범근을 위해 서울 운동장에서 성대한 고별경기를 열어준다. 3만 여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차범근의 고별전은 차범근의 모교 고려대학OB와 연세대학OB의 라이벌전으로 치러졌다.당시 고려대OB에는 차범근을 비롯해 선배인 황재만, 이차만, 고재욱, 그리고 후배인 박성화, 최종덕, 김성남, 김강남등이 출전했고 연세대OB역시도 김호곤, 박종원, 홍성호, 허정무, 조광래 등 양팀 다 정말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출전했다. 결과는 박성화가 맹활약한 고려대 OB의 승리로 끝났지만, 경기를 마친 후 차범근은 고려대와 연세대 양교 응원단장과 함께 서울운동장 트랙을 한바퀴 돌면서 자신을 보러 온 3만 여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고 운동장을 꽉 메운 수많은 축구팬들은 환호와 박수 그리고 눈물로써 차범근을 배웅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필자 역시 떠나가는 차범근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영웅을 잃는 슬픔'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꺼지지 않는 차범근의 독일 신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당시 유럽 최강이었던 헝가리를 누르고 첫 월드컵을 제패하며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한 서독은, 그 무드가 이어지면서 1963년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분데스리가를 창립한다. 차범근이 진출할 당시 분데스리가는 유럽 최강의 리그였으며 세계적 선수들이 가장 뛰어보고 싶어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분데스리가를 거치면 유럽 시장 어디든 갈 수 있었을 정도로 분데스리가의 위상은 실제로 대단했다.

국내에서는 1977년경부터 MBC 문화방송에서 매주 월요일밤 10시 30분에 이철원 아나운서와 주영광 선생의 구수한 해설로 서독 분데스리가를 방송해 주었기에 축구 팬들은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 높은지를 대략 조금은 알 수 있었고, 골수 축구팬 이라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세계적 선수들의 이름 한두 명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뛰고있던 유명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바이에른 뮌헨의 폴 브라이트너, 헤네스, 칼하인츠 루메니게, 융한스. 함부르크 SV의 케빈키건, 마가트, 후루베쉬, 만프레도 칼츠. 도르트문트의 아브람직. 카이져스 라우테른의 브리겔. 샬케04의 피셔. FC쾰른의 슈마커, 쿨만, 리트바르스키, 슈투트가르트의 한스뮐러, 쌍둥이 푀르스터 형제, 보루시아 MG의 마테우스 등이었다. 정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유명한 선수들이었다.

이러한 선수들이 즐비해 있었기에 차범근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성공을 섣불리 점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오쿠데라가 이미 차범근이 서독에 진출하기 2년전인 77년에 FC쾰른에 입단해 있었다.

1978년 6월22일, 두 번째로 독일에 도착한 차범근은 몇 차례의 역경과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처음에 입단했던 다름슈타트가, 잠시 고국에 다녀온다고 해놓고 기한 내에 차범근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위반을 들고나왔으며, 다른 팀에서도 차범근에 대한 교섭이 전혀 없었다. 차범근은 3-4주 정도 호텔에서 머무르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봉착하게 된다. 대변인이었던 여우종씨와 함께 당시 다름슈타트 감독이던 부흐만 감독을 슈트트가르트로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 다음날 (현 샬케 04 매니저인) 루디 앗싸워가 공격수를 찾다가 부흐만에게 전화, 차범근에 대해서 알아본 것이 계기가 되어서 다음날 3일간의 브레멘 테스트가 성사되었다.

3일간의 테스트 도중 차범근은 연습경기에 출전하게 되는데 이 때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지역 신문에 호평을 받게 된다. 브레멘의 매니저 루디 앗싸워가 브레멘과의 계약을 요청해서 브레멘 크레스트 호텔에서 차범근의 협상은 시작된다. 5시간에 거쳐 진행된 협상 중 프랑크푸르트 구단 측의 슐테로 부터 급하게 연락을 받는다. 78년 박스컵 당시 차범근을 활약상을 직접 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던 슐테는 신문에 난 소식을 보고 차범근에게 '브레멘과 사인하지 말고 프랑크푸르트로 내려오라'는 요구를 한다. 가능하다면 프랑크푸르트 측에서 계약을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당시 상황으로 봐선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브레멘 측은 사실 '헐값'에 차범근을 사인하려는 움직임이었고 슐테의 연락을 받은 차범근은 곧 바로 본에 위치한 여우종 씨의 집에서 1박을 한 후, 다음날 새벽 프랑크푸르트로 내려간다. 10분 간의 입단 테스트 후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의 명문 프랑크푸르트와 연봉 25만 마르크(7천 8백만원)와 다름슈타트에 이적료 20만 마르크를 지불해준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게 된다. 차범근이 입단한 프랑크푸르트는 FC쾰른, 함부르크SV, 카이져스라우테른과 함께 63년 분데스리가가 창설될 때 같이 출발했던 역사 깊은 명문팀이었다. 이 팀에는 74년 뮌헨월드컵 우승의 주역 그라보스키와 휄첸바인 그리고 세계 최고의 중앙 수비수중 한 명인 오스트리아의 '전기철조망' 브르노 페차이가 핵심을 이루었으며, 이외에도 동독에서 망명한 금발의 나흐트바이와 서독대표출신 니켈, 노이베르거 등을 보유한 중상위 팀이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에는 페차이와 스위스 국가대표 출신 엘스너까지 2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었는데 차범근을 영입하기 위해서 엘스너를 트레이드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차범근의 독일 진출 배경을 쓰기 위해서 수 많은 자료와 서적을 뒤적이며 연구했다. 그 중 85년 축구원로들에 의해 공동집필 된 '한국 축구 100년 사' 중의 차범근 독일 진출 이야기를 인용해서 후추 명전의 일부를 작성하기도 했는데 보기 좋게 낭패를 보았다. 가급적 차범근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FACT를 전달하려고 했던 후추의 기본 취지를 살려 원고 작성 후 차범근 감독의 확인 작업에서 여기저기서 빨간 줄이 그어진 것이다. 여러 명의 축구 원로들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축구 전문 서적에서도 차범근에 대한 오보가 전달된다면 과연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차범근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입단과 동시에 차범근은 한국대표 시절에 달아온 백넘버 11번을 달고 당당히 프랑크푸르트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기용되면서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로 분데스리가의 '차붐 돌풍'을 예고 한다. 특히 미드필더인 주장 그라보스키와 휄첸바인, 그리고 콤비를 이룬 니켈의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패스를 받아 많은 골을 터뜨려 데뷔 첫해인 79-80시즌 34게임중 31게임에 출장해 12골을 기록, 득점 랭킹 7위에 오르며 서독 축구계 뿐 아니라 전 유럽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갈색 폭격기'라고 불리우기 시작한다.

그 이듬해인 80년에 키커지에서는 차범근을 신년 첫 호의 표지인물로 내세웠고, 프랑스의 메이어지는 차범근을 '80년대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정했으며, 또한 차범근은 독일의 슈테른지가 선정한 '세계 4대 상승인물'에 테레사 수녀와 함께 선정되는 등 세계적 선수로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UEFA컵 결승 2차전 대 보르시아MG와의 경기에서 결정적 어시스트로 프랑크프르트가 1대0으로 승리하는데 공헌하며 UEFA컵 우승의 주역이 된다. 이 대회에서 3골을 기록한 차범근을 두고 서독의 유명한 스포츠 전문가인 티터 큐어튼은 '차범근이 서독 국적이었다면 대표팀 공격문제가 완전 해결됐을 것'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본다. 80년대 초반 세계 축구의 메인스테이지(Main stage)는 지금 우리 축구 팬들에게 익숙한 이태리의 'Serie-A' 또는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가' 양대산맥 체제도 아닌 분데스리가 독주 체제였다. 물론 당시엔 유럽 시장과 남미 시장이 지금보다 더 확연히 구분되던 시절이었지만 유럽 최고의 축구 시장, 즉 유럽에서 볼 제일 잘 찬다는 선수들이 한결같이 몰려들던 분데스리가의 위상을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베컴, 지단, 피구에 열광하는 요즘의 축구 팬들에게 당시의 차범근의 '무게'를 상상해 보라는 요구 자체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생각해 본다. 지금처럼 한국 축구의 세계적 위상이 곤두박질 치고 있을 즈음, 과연 한국 국적을 가진 축구 선수 한명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 최정상의 자리에 버젓이 서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이야기인가…

분데스리가 진출 1년 만에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차범근은 80년 6월 프랑크푸르트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도착한 날 각 신문사와 방송사 사진기자들은 차범근이 비행기 트랩에서 딸 하나양을 안고 내려오는 모습부터 촬영 하는 등 지금의 박찬호가 귀국할 때 이상으로 김포공항을 뜨겁게 달구었다. 또한 화랑과 프랑크푸르트의 경기 중계방송이 있던 날 차범근의 아버지인 차금동선생과 어머니인 채규순씨를 텔레비젼 중계석까지 모셔서 인터뷰를 하는등 매스컴에서도 최고의 환대를 베풀었다. 프랑크푸르트는 한국대표 화랑과 세 차례, 그리고 할렐루야팀과 한차례의 경기를 치루면서 4연승을 했는데 화랑 시절의 짧은 스포츠형 머리스타일에서 바가지 머리스타일로 바뀐 차범근은 매 게임 절친한 후배이자 화랑의 주전 스토퍼 홍성호의 끈질긴 대인마크와 심한 허벅지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차례의 경기 중 총 3골을 터뜨리는 등 놀랄 만큼 성장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었다.

또한 차범근을 보러 운동장에 운집한 국내 축구 팬들 중 과반수는 프랑크푸르트를 응원하며 차범근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면서 격려했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국내 축구팬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했던 콧수염의 그라보스키와 세계적 수비수인 브루노 페차이가 사정상 내한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차범근의 명성에 자극을 받은 국내 몇몇 선수들이 80년 초반부터 분데스리가에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기 시작하는데 연세대 출신의 박종원이 카이져스라우테른에 진출 하지만 기량부족으로 도중하차 하고 박상인(뒤스부르크), 김진국(2부리그 보름즈), 김민혜 등이 뒤이어 1부리그와 2부리그에 각각 문을 두드리긴하나 역시 분데스리가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된다. 그나마 유일하게 허정무만이 80년 7월 네덜란드의 명문 PSV 아인트호벤 필립스에 진출하게 된다.

1981년, 그 누구보다도 화려했지만 역경이 끊이지 않았던 차범근의 축구 인생에 어쩌면 가장 큰 '시련의 시절'이 찾아온다.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세계적 공격수로 인정 받은 차범근이 팀 내에서도 1억이 넘는 고액 연봉자가 되자 이때부터 동료들의 텃세가 시작되는데, 특히 자존심이 상한 브로노 페차이(얼마 전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친선 아이스하키 경기 중 심장마비로 사망)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고, 분데스리가의 타팀 수비수들 역시 정상적인 수비로는 차범근 마크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는 고의적 파울이 시작되었다. 급기야는 80-81시즌에 바이엘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돌프의 잔인한 반칙으로 인해 차범근은 척추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고 선수생활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다. 프랑크푸르트 팀 단장인 악셀샨더씨는 매 경기 후 기자들에게 '경기를 마친 후 라카룸에서 차범근의 몸을 한번 봐라. 마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모습이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차범근의 고난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이어진다. 국내 언론에서는 갑작스럽게 몰아 닥친 '차붐 돌풍'으로 인해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했지만 그라운드 복귀와 재기에만 전념하던 차범근의 '비 협조적 태도'에 반기를 들다 못해 '폭발' 직전까지 가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소위 '차범근 죽이기'는 이미 20년 전에 시작된 셈이다.

여기서 필자는 지난 8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문 시 차범근의 손 지갑 안에 아직까지도 고이 간직되고 있던 한 통의 편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얼마 전 '월드컵 조직위 홈페이지 사건'으로 부당하게 옷을 벗은 최창신 전 사무총장(당시 서울 신문 기자)이 81년 차범근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월드베스트 올스타전'에 출전을 앞두고 있던 차범근은 P모 씨를 비롯한 국내 기자단 4명의 '초대치 않은' 독일 방문을 받게 된다. PSV 아인트호벤에서 뛰던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의 초청으로 유럽에 도착한 기자단은 바르셀로나 올스타 경기에 대한 소식을 듣고 차범근에게 자신들에게 스페인 행 비행기 표와 체제비를 요구한다. 아주 좋게 얘기하자면 "차선수, 그래도 당신이 국민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와서 이렇게 컸는데 고국에 있는 그들에게 바르셀로나 올스타 전 경기 소식을 열려 주고 싶으니 가능하면 우리 취재비랑 체제비 좀 대 주쇼…" 이런 식의 요구였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이, 차범근이… 니가 누구 덕분에 이렇게 국민스타가 되고 떼돈을 벌게 됐는데 이젠 우리한테도 좀 협조해야지.." 당시 기자단의 정확한 접근 방식은 후추인의 상상에 맡긴다. 이에 대한 차범근의 반응은 단호했다. "당신들 비행기 표랑 체제비 끊어줄 정도로 돈을 벌지도 못 했지만 설사 벌었다고 해도 그렇게는 돈을 쓸 수가 없다." 차범근의 이 한 마디로 그에 대한 국내 언론의 '융단 폭격'은 시작된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차범근의 말을 들어본다. "독일에서 멀쩡히 게임을 뛰고 있는데 경기에도 안 나갔고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감독과 불화', '미국 코스모스로 간다', '홍콩으로 간다…' 뭐, 이런 악성 루머나 퍼뜨리고 말이야." 당시 차범근에 대한 공격은 독일 신문에서도 한몫을 했다. 81 시즌 골이 터지지 않자 '고연봉 선수'에 대한 시기로 인해 동료 선수 페차이와의 갈등 등, 한마디로 차범근이 경험했던 '최악의 나날들' 이었다. 차범근은 회상한다. "내가 죽는 수 밖에 없더라고… 내가 죽어줘야 해결이 되겠더라고… 마누라는 정신병원에 갈 뻔 하고, 근데 내가 죽질 않으니… 첫 골이 터지고 나니까 독일 신문은 그런 공격이 서서히 사라지고 차차 회복이 되었지만, 금방 죽길 원했던 국내 언론은 내가 3년, 4년까지 살아 남으니까 그때서야 서서히 수그러 들더라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 당시 서독을 방문해서 내 생활을 보고 서독 팬들의 반응을 두 눈으로 보고 갔던 최창신 기자는 국내 언론에서 별의 별 얘기를 다 해대니까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해서 그 편지를 보낸 거고 얼마 전(98년) 보다도 훨씬 더 언론의 공격이 심했던 그때 진짜 힘들었는데 (창신이 형의) 그 편지 한 통이 정말 많은 힘이 되었지… 그 무렵 교통부 장관 하시던 정부 고위 관계자가 독일에 와서 내 생활을 다 보고 경기도 보고 가셨는데 그 뒤로 청와대에 계시는 분이 신문사 데스크들을 불러서 '내가 다 보고 왔는데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쓰면 되느냐?'라고 질타를 해서 신문사 데스크들도 다 바뀌고 그랬다고 그러더라고…" 필자가 직접 본 최창신 전 사무총장의 낡고 낡은 편지에는 그런 말이 쓰여져 있었다. "자네에 대해 그 어떤 소문과 말이 나돌아도 난 자네를 믿네…" 그 한마디의 격려는 이날까지도 차범근의 지갑 속에, 아니 그의 가슴 속에 묻혀져 있다.

80-81 시즌에는 부상에 따른 그 후유증으로 28게임에 출장 8골을 기록하는데 그쳤으나, 그 이듬해인 81-82 시즌에는 31게임에 출장해서 11골을 기록 하는 등 득점 랭킹10위에 오르며 차범근의 건재를 과시했다. 82-83 시즌에 들어 더욱 완숙한 기량을 선보인 차범근은 15골을 터뜨리며 팀내 최다득점선수가 됐으나 재정난에 허덕이는 프랑크푸르트와의 재계약에 실패한다. 그는 79-83년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면서 1백 22게임에 출전해 46골을 기록했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난 차범근에게 같은 분데스리가팀인 슈투트가르트와 뉘렌베르크, 이태리의 나폴리, AC밀란 등의 많은 팀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으나 차범근은 83년 7월 이적료 1백 35만 마르크(4억 5백만원)에 연봉 52만 6천마르크(1억 5천만원)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받고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전격 이적한다. 레버쿠젠은 차범근과 '악연'이 있는 겔스돌프가 소속된 팀이다. 레베쿠전은 이미 분데스리가 베테랑이 된 차범근에게 그 무엇보다도 리더쉽을 요구하고, 그는 이적 하자마자 팀에 쉽게 적응하면서 하위팀에서 맴돌던 레버쿠젠의 공격선봉으로 나서 팀을 분데스리가 7위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83-84, 85-86 시즌에는 두 차례나 전 게임(34게임)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특히 85-86 시즌에 시즌 최다득점인 17골을 터뜨려 분데스리가 득점랭킹 4위에 오르며 다시 한번 세계적 스트라이커로써 인정 받는다. 반면에 차범근이 빠진 프랑크푸르트는 중하위권으로 떨어진다. 85년 바이엘 레버쿠젠 선수들 체력검사에서 차범근은 같은 팀 소속 19세의 선수들보다 월등한 체력을 갖고 있다고 진단 받는 등 레버쿠젠에서도 변함없이 절제된 생활과 아울러 철저한 체력관리를 해나간다.

86년은 차범근에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한해가 된다. 2월20일 A급 코치자격증(모든 아마추어팀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 했고,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도 서게 된다. 한국대표는 86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숙적 일본에 2연승하며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 짓는데 본선을 앞두고 축구협회는 서독에 나가있는 차범근을 불러들이며 한국축구 사상 최강의 멤버를 구성한다. 사실 차범근의 월드컵 대표팀 합류는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이루어졌다. 차범근의 대표팀 합류에 찬반양론이 갈렸기 때문이다. 우선 반대하는 측은 차범근이 대표팀에 들어오면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차범근에게 쏠리게 되어 기존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더러 위화감을 조성해 팀웍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대 축구감독이자 축구 해설위원인 박경호씨는 '차범근이 합류해도 대표팀 전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에 한양대 교수이자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당시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최은택씨와 88대표팀의 박종환감독은 '세계적 공격수인 차범근을 반드시 합류시켜야 한국이 16강에 들 수 있다'고 강력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최은택씨는 축구해설을 할 때도 국내 전문가들중에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차범근 소식을 가장 자세하고 정확하게 전해주었고, '차범근 같은 세계적 선수가 월드컵에 나가질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늘 얘기한 바 있는 축구인이었다. 이외에도 이회택감독, 김재한감독 등도 차범근 합류에 강력히 찬성했고 조광래, 허정무 등 노장선수들도 차범근을 불러와야 된다는 의견을 낸다.

이 문제로 수개월을 끈 끝에 결국 대표팀 감독인 김정남씨는 차범근 합류를 축구협회에 공식적으로 요청해 멕시코 월드컵 한달 전인 4월 차범근은 드디어 대표팀에 합류한다. 차범근이 소속되어 있는 바이엘 레버쿠젠에서도 구단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는 선수인 차범근을 위해 분데스리가에서 명성이 자자한 유명한 맛사지사인 레버쿠젠 팀 닥터 죨렉씨를 한국대표팀에 파견한다. 드디어 차범근은 월드컵 개막 한달 전 대표팀의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전지훈련 때 합류하게 되는데 김정남 감독은 8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차범근에게 백넘버 11번의 유니폼을 건넨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11번을 달고 뛰었던 변병주는 대신 19번 유니폼으로 바꿔 입게 된다. 차범근은 월드컵 본선에서 후배인 최순호와 김종부를 투톱 파트너로 맞이하며 대 아르헨티나전, 대 불가리아전, 대 이탈리아전에서 고국을 위해 헌신한다. 당시 나이 32세의 차범근은 온 국민이 기대한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3게임모두 줄기찬 기동력과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여러 차례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 냈다. 비록 한국이 1무 2패로 예선탈락은 했지만 86년 멕시코 월드컵은 차범근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뜻깊은 대회였으며 그 어느 때 보다도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한 대회라고 볼 수 있다.

87-88시즌부터 차범근은 센타포드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환하며 25게임에 출장 4골을 기록한다. 88년에는 '킥 AIDS88세계 올스타'로 선정되어 베켄바워, 미셀 플라티니, 케빈 키건, 조지 베스트 등 전설의 수퍼스타들과 함께 친선경기에도 참가할 기회를 잡게 되지만, 개인 사정 상 출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88년 4월 15일 대 카이져스 라우테른과의 경기에서 300게임 출장기록을 세운다. 또한 차범근이 이끄는 레버쿠젠은 같은 해(88년) 구단 사상 처음으로 UEFA컵 결승에 올라 1차전 어웨이 경기에서 스페인의 강호 에스파뇰에게 3대0으로 완패해 우승전망이 매우 어두웠으나, 2차전 홈 경기에서 레버쿠젠이 에스파뇰에 2대0으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범근이 기적과 같은 3번째 골을 성공시켜 레버쿠젠이 3대0으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운다. 결국은 승부차기에서 레버쿠젠에 4대2로 승리, 구단사상 처음으로 UEFA컵을 차지한다. 이로써 차범근은 80년 프랑크푸르트시절 UEFA컵 우승을 경험한 후 다시 한번 우승의 축배를 들게 되는데, 한 선수가 두 팀에서 UEFA컵 우승을 경험한 것은 차범근이 처음이었다.

그 후 차범근은 88-89 시즌에 29게임에 출전해 3골을 기록을 하며 89년 6월 19일 은퇴할 때 까지 분데스리가 통산 308게임에 출장해 98골을 터뜨렸는데 이 기록은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외국인 선수 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이 전까지 외국인 선수 최다득점자는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 스타플레이어인 보루시아MG의 알란 시몬센이 71년-78년까지 기록했던 76골이 최다였으나, 차범근은 분데스리가 진출 6년 6개월째 이미 81골을 터뜨려 알란 시몬센의 기록을 깨고 이후 새로운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은퇴 후 차범근은 분데스리가 팀을 지도할 수 있는 축구교사 자격증인 '푸스 발레러'를 취득하고 그 해 11월 10일 고국의 품으로 금의환향했다.



차범근이 10년 동안 변함없이 세계 무대 분데스리가에서 세계적 선수로서 명성을 떨치며 서독 국민들과 축구팬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피나는 훈련과 함께 술,담배,도박은 물론 오로지 축구와 가족 그리고 신앙 이외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않는 구도자적인 생활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간혹 교민들 사이에서 '대인관계가 안 좋다', '너무 이기적이다'라는 등의 비난도 받았으나 차범근은 이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축구만을 생각했기에 최정상의 자리까지 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차범근의 '처세술'과 '대인관계'그리고 그의 '입'은 오로지 축구장에서만 존재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축구 하나로 평가 받길 원했다. '남들에게 잘 하고 대인관계 좋게 하는 일'은 한국에서도 할 수 있었다. 그가 독일에 온 목적은 단 한가지, 분데스리가에서의 성공이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포기해야만 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마늘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난 후 독일 선수들이 노골적으로 표명한 이질감을 없애고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 후론 한국 음식을 거의 끊다시피 했다. 흔치 않은 한국 음식을 고집하다간 경기력에 까지 지장을 주겠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승리는 축구장 안에서의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의 집념을 보고 질타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입장을 바꿔서 볼 때, 어느 외국 용병 선수가 한국에 와서 김치찌개 보기를 무슨 '돼지 꿀꿀이 죽'보듯 꺼려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스테이크 대령하라고 요구한다면 우리들의 반응은 불 보듯 뻔하다. '미친x, 여기가 어디라고…'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활약상과 그 의미를 짧은 지면을 통해서 설명한다는 일은 어쩌면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차범근의 독일 신화'는 필자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읽었던 어느 독일 시인의 시집에 쓰여진 한 귀절로 요약된다고 믿는다..

'차붐!
나는 너를 낳아준 너의 어머니와 너의 조국 코리아를 향해 경의를 표한다…


출처: 네이버지식iN (집필자 zicsar)

FTA, 뭐가 헷갈리시나요

FTA, 뭐가 헷갈리시나요 [한겨레21 2006-08-01 08:03]

[한겨레] 찌꺼기처럼 남겨진 의문들을 말끔히 청소해주는 한미FTA 15문15답… 왜 하는 걸까, 미국과 해야하나, 정말 양극화가 심화되는 건가
[한미 FTA Q&A]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1. FTA가 뭔가요?

FTA란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의 약자로, 특정 국가 간에 배타적인 무역 특혜를 서로 부여하는 협정으로서 가장 느슨한 형태의 지역 경제통합 형태다. 우리 정부는 FTA 체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품 분야뿐만 아니라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기술표준 등 광범위한 분야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FTA 체결을 지향하고 있다.

2. FTA와 WTO는 어떻게 다른가요?

세계무역기구인 WTO는 다자간 무역에서 장기적으로 무역장벽의 철폐 또는 폐지를 통한 국가 간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는 조직체다. 세계무역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WTO의 규제를 받는다. 이에 비해 FTA는 협정 국가 간 자유무역을 추구하고 혜택을 누리는 배타적 무역 특혜 협정을 말한다.

3. 우리는 지금까지 어느 나라들과 FTA를 맺어왔나요?

우리는 2004년 4월1일 발효된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유렵자유무역연합(EFTA)과 FTA를 체결했다.
EFTA에는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한-동남아국가연합(ASEAN) FTA를 체결했고, 2005년 캐나다와는 FTA 추진에 관한 사전협의를 개시했다. 현재 FTA 추진 로드맵에 따라 20여 개국과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고 있다.

4. 한미 FTA를 왜 해야 하나요?

찬: 우리는 대외무역을 통한 경제 발전과 성장에 의존하고 있어 세계 시장이 중요하다. FTA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조류다. FTA를 체결하면 WTO 협상에 비해 빠른 속도로 경제가 개방된다. 개방은 우리 경제 시스템의 선진화와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방 수단인 FTA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반: FTA가 산업의 구조조정과 발전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목적은 될 수 없다. FTA가 발전 도구로써 유용성을 갖기 위해 무엇보다 한국의 다양한 산업 발전 단계를 고려해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모든 산업을 준비 없는 경쟁에 노출시키는 것은 자살 행위다.

5. 한미 FTA를 왜 지금 해야 하나요?

찬: 1997년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우리에게 지금은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라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어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안정적 해외시장 확보와 투자 유치•경쟁을 통한 생산성 증대가 필요하다. 중국•인도의 급부상과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 제조업은 10년 이내에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들과 격차를 두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한미 FTA를 통해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신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해야 한다.

6. FTA를 왜 미국과 해야 하나요?

찬: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상품 경쟁력이 판가름 나는 테스트 마켓이기도 하다. 관세 인하로 우리 기업들이 경쟁국 기업들보다 유리하게 진출할 수 있다. 서비스산업이 발달된 미국을 통해 우리도 높은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서비스산업을 키워야 한다. 선진화된 제도 등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과 FTA에 따른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한 안보 리스크 완화는 대외신인도를 높이고 외국인 투자도 촉진시킬 것이다.
반: FTA라고 다 같은 FTA가 아니다. 정부는 FTA가 세계적인 조류라고 주장하지만,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유럽식 FTA나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맺어지는 FTA가 상호주의에 입각한 것이라면 미국식 FTA는 군사안보 강화를 매개로 한 일방주의적 협정이다. 미국식 FTA는 결코 대세가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포괄적인 FTA’를 추진한다며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형태의 경제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식 FTA를 체결한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미국식 전면 자유화와 국내 제도의 미국화를 의미한다.

7. 한미 FTA가 국민에게는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찬: 국내 소비자들은 가격 하락으로 인한 직접적인 혜택을 입게 되고, 세계의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선택의 폭도 확대된다. 시장이 개방되면 수입관세가 인하돼 수입제품의 가격이 하락하고 국내 생산자들 또한 가격을 낮추려는 노력을 할 것이기에 국내 물가도 전반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반: 미국의 요구대로 FTA를 통해 의료, 교육, 환경, 에너지, 철도 등 공공서비스 시장이 개방된다면 그에 따른 의료 및 교육 비용과 공공요금이 싱승한다. 대학 등록금과 사교육비도 올라갈 것이다. 반면 서비스의 질은 낮아질 것이다. 노동과 환경 관련 규제가 철폐돼 고용의 질과 환경파괴도 심해질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만 더 커지게 된다.

8. 양극화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요?

찬: 양극화 현상은 개방화 시대의 무역자유화보다는 기술 산업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통신, 정보기술(IT) 등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해 고•저기술 노동력 간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 중국과의 무역•투자 확대는 국내 저기술•저부가가치 업종의 사양화를 촉진했다. 한미 FTA와 양극화는 별개의 이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한미 FTA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 FTA로 얻는 경제적 이익을 재분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반: 한미 FTA는 수출-내수, 대기업-중소기업, 첨단산업-전통산업 등의 양극화와 소득구조의 양극화를 촉진할 것이 분명하다. 무역 자유화는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의 부흥과 비교열위 산업의 몰락을 추진하는 것이다. 경제•산업의 양극화는 불평등한 소득구조를 촉발할 수밖에 없다. 또 시장 개방과 서비스산업 발달로 높은 수준의 교육•의료 서비스는 미국처럼 고비용•고품질 서비스가 될 것이다. 이처럼 소비 양극화 현상도 심해질 것이다.

9.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근로 조건도 악화되지 않을까요?

찬: 비정규직 증가는 정규직에 대한 높은 수준의 고용보호, 경직적인 임금체계,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필요성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미 FTA로 성장 잠재력이 큰 자동차산업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임금 등 근로 조건이 하락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임금 수준은 근로자의 생산성,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 등에 의해 결정된다. 한미 FTA가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반: FTA는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한미 FTA의 경우 구조조정의 폭과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구조조정은 실업 등 고용 불안을 부를 수밖에 없다. 산업의 양극화가 심해지기 때문에 고용이 되더라도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 될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서비스업에서 고용이 창출된다 해도 서비스업의 특성상 비정규직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과장하고 있다. 미국계 기업들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를 체결하면 비정규직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10. 한미 FTA 협상 전에 4가지 현안을 일방적으로 양보했나요?

찬: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유예, 의약품값 인하, 스크린쿼터 축소는 한미 양국의 오랜 통상 현안이다. 미국이 의회와 업계를 상대로 FTA 협상 출범을 설득하기 위해 4가지 현안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적은 있었다. 공문서에서도 ‘4대 조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양보로 국익을 손상하지 않았다. 쇠고기 수입 재개는 연기하기로 했고 의약품 문제는 우리 입장대로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유예는 통상 마찰을 고려한 것이고, 스크린쿼터 축소는 국내 영화산업의 경쟁력과 발전 방향을 감안해 결정했다.
반: 정부는 4가지 현안이 한미 FTA와는 무관하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에 관해 ‘우리 영화의 자립 여건이 성숙됐다고 판단하고, 영화산업 지원 방안과 병행해 한미 FTA 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 축소 결정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4가지 현안을 본 협상의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데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굴욕적이며 아마추어적인 협상 자세다. ‘지킬 것은 지키는 협상’이 아닌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는 협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11. 한미 FTA는 농업에 큰 타격을 주나요?

찬: 한미 FTA로 인해 농업 부문 일부에 피해가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단기적으로는 시장 개방으로 수입 농산물이 들어와 국내 농산물의 판매 위축이나 생산 감소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농산물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고 국내 농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정부는 우리 농업의 품목별 민감도를 감안해 차별화된 협상전략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다.
반: 세계 최대 농업국가인 미국과 가격 경쟁에서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 농축산물의 가격 폭락이 예상된다. 미국 농축산물의 수출 가격은 우리나라 도매 가격에 비해 22~27%에 불과하다. 이에 농업 생산성과 농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농수축산업 분야는 1차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이며, 다른 산업에 비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12.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멕시코 경제가 더 어려워졌나요?

찬: 1994년 NAFTA 발효 후 멕시코의 경기가 일정 기간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통계 수치
로 NAFTA의 경제 효과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멕시코 경기침체의 주요 요인은 NAFTA 체결 직후의 멕시코 페소화 위기와 미흡한 경제 구조조정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94년의 멕시코와 2006년 현재의 우리나라 경제를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NAFTA 발효 당시 멕시코의 대미 수출의존도는 85%였지만, 현재 우리의 대미 수출의존도는 14.5%에 불과하다. 경제 규모나 산업경쟁력에도 큰 차이가 있다.
반: 1994년 1400억달럭이던 멕시코의 무역 규모는 2003년 2.5배가량 증가했지만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멕시코는 낮은 성장과 경제 불안에 처했고 대대적인 산업 구조조정이 발생해 미국시장 지향형 노동집약적 생산기지로 변했다. 멕시코의 내수용 제조업, 중소기업, 농업 등의 대대적인 도산이 발생했다. 실업률이 높아졌고 빈부 격차도 심화됐다. 이는 거대 경제권과의 FTA 체결이 경제 성장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정부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13. 정부가 미국의 일정에 쫓겨 한미 FTA를 타결하는 것 아닌가요?

찬: 정부가 미국 신속협상권한(TPA)에 쫓겨 무리하게 협상을 타결하거나 지켜야 할 입장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TPA 시한은 미국 행정부에 주어진 협상 기한으로 우리에게 반드시 불리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다만 FTA는 양자협상이며 상호 국내 일정을 존중해주는 것이 바람직해 시한 내 협상을 타결하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다. 내년 3월이 목표 시한이지만 조정이 되지 않을 경우 타결 시한은 변경이 가능하다.
반: 광범위한 쟁점이 있고 규모가 큰 한미 FTA 협상을 1년의 단기간에 추진하는 것은 무리다. 작은 FTA도 최소 1년의 협상 기간이 필요하다. 한-칠레 FTA의 경우 3년의 협상 기간을 가졌다. 협상을 1년 안에 마무리짓겠다는 것은 외교부와 제경부, 수출대기업 등의 욕구와 조급증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국민적 합의가 없는 한미 FTA 추진 결정에 대한 합리화 근거를 마련하고 신속한 협상 추진을 통해 국민의 반발과 여론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국운이 달린 협상은 넉넉한 기한을 두고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14. 정부가 충분한 준비를 했나요?

찬: 2000년 한미 재계회의에서 FTA가 최초로 검토되는 등 양국 업계는 오래전부터 FTA의 필요성을 논의해왔다. 2003년부터 정부 내 검토와 전문가 연구, 설문조사 등을 통해 FTA 협상 출범 준비를 단계적•지속적으로 진행했고 2003년 8월 ‘FTA 추진 로드맵’에 따라 추진해왔다. 2005년 6차례의 한미 통상장관회담을 통해 FTA 협상 출범 가능성을 협의했다. 2005년 2~4월 3차례 한미 FTA 사전점검회의를 통해 상호 예상 쟁점을 미리 파악했다.
반: 2000년 한미 재계회의는 양국 대자본들의 회의일 뿐이다. FTA 추진 결정까지 정부 내 논의도 거의 없었다. 외교통상부가 한미 FTA의 경제효과에 관해 발주한 연구용역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한 연구가 전부다. 이 연구만으로 한미 FTA 경제효과를 가늠하기는 힘들다. 경제효과를 제대로 측정하려면 개별 산업과 업종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가 없으니 대책도 없다. ‘선 협상 후 대책’의 병폐를 드러내고 있다.

15. 국민적 합의는 있었나요?

찬: 정부는 2월 한미 FTA 공청회를 열었고, 추진 경과 보고는 완료했으나 반대 쪽의 회의 진행 반대로 불가피하게 회의 중단을 선언했다. 공청회가 정상적으로 완결되지는 못했으나 한미 FTA 협상 개시와 관련해 행정절차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판단해 한미 FTA를 최종 의결했다. 정부는 국민적 합의가 한미 FTA 성공과 직결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앞으로 한미 FTA 추진에 대한 설득과 설명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확산해나갈 것이다.
반: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발표 전에 형식적인 공청회를 개최해놓고 20분 만에 반대 쪽 때문이라며 공청회를 중단했다. 그러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공청회도 없이 의결하고, 국민적 공감대는 인터넷으로 수렴하겠다는 말이다. 국민의 생존권 전체를 위협하는 외부 충격을 놓고 이런 정도로 의견을 수렴하는 정부의 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참고자료 : 한미 FTA를 말한다(대한민국 정부 펴냄),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 홈페이지(www.fta.go.kr), 관계부처합동 한미 FTA Q&As, 민주노동당 한미FTA 자료집, 한미FTA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자료집, 전국농민회총연맹 한미FTA저지 해설단 자료집


’포지티브 리스트’가 뭐지?
통상 분야 용어 정리, 무역조정지원법에서 TPA까지

무역조정지원법(제조업 등의 무역조정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 FTA 상대국에서의 상품•서비스 수입 증가로 6개월 이상 매출액 또는 생산량이 25% 이상 감소하면 정부로부터 사업전환을 위한 기술개발•설비투자•인력확보 자금, 경영안정•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된다.

원산지 규정: 상품의 원산지 국가를 확인하는 방법이나 절차 등을 규정한 제반 법률이나 규정, 행정절차 등을 총칭하는 개념. 한미 FTA에서는 개성공단의 원산지 규정을 두고 논란이 있다.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 투자유치국 정부가 투자협정상의 의무를 위반해 투자자의 이익이 침해된 경우 투자자가 투자국 정부를 국내구제절차 또는 국제중재분쟁에 제소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규정. 한미 FTA 협상안에도 이 규정이 들어가 있다. 다국적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를 방해하는 모든 법과 제도 등이 제소 대상이 되기에 주권과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 원칙적으로 수입이 제한된 무역제도하에서 예외적으로 수입이 자유화된 품목의 리스트. 의약계에서는 효능이 뛰어난 신약이라도 가격 대비 효과를 따져 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인 의약품선별등제를 가리킨다.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 원칙적으로 수입의 자유화가 인정된 무역제도하에서 예외적으로 수입의 금지나 제한을 가하는 품목의 리스트. 의약계에서는 지정된 특정 의약품을 제외한 모든 의약품을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식을 말한다. 미국과 맺는 FTA는 원칙적으로 이 방식을 따른다.

양자간 투자협정(BIT•Bilateral Investment Treaty): 투자 증진 및 보호에 관한 협정으로 미국식 협정 용어. 일반 모델과는 달리 미국 모델은 최혜국대우와 내국민대우 적용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BIT는 한미 FTA 협상안 투자 조항에 포함돼 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관세 등 무역장벽을 다자협상을 통해 제거하고 무역분쟁 해결 절차를 마련해 자유무역을 확대하려고 1947년 제네바에서 미국을 비롯한 23개국이 서명하고 1948년 1월에 발효된 조약. FTA는 GATT의 조약문 24조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된 쌍무협정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이 관세와 무역장벽을 폐지하고 자유무역권을 형성한 협정. 1992년 12월 3국 정부가 조인해 1994년 1월 발효됐다.

신속협상권(TPA•Trade Promotion Authority): 미국에서 국제협상을 효율화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무역협상 권한을 위임하는 것. 국제통상협정을 더 신속하게 체결하려는 것이 취지다. 의회가 대통령에게 TPA 권한을 부여하면 의회는 수정권한 대신 행정부의 협상 결과를 일정 기한(90일) 내에 수정 없이 찬반 결정만을 하게 된다. 한미 FTA 협상 일정은 여기에 맞춰져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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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5일 금요일

블로그와 미니홈피

개인적으로는 미니홈피를 운영해 본 적이 없고 블로그도 이번이 처음이긴 하지만, 그 둘의 차이를 명확히 모르겠다. 블로그와 비교해 싸이월드로 대표되는 미니홈피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 사진 게시 및 공유
- 게시물을 통한 안부 교환 (커뮤니티)

그런데 위 두 기능 모두 블로그에서도 가능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홈피가 블로그에 비해 제한적인 기능만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미니홈피가 더 대중적인 이유가 뭘까? (내가 보기엔 미니홈피가 더 대중적인데, 아닌가?) 두 기능에 특화된만큼, 그에 따라 인터페이스도 그 기능에 집중하여 좀 더 편한 것 같고, 또 일반적으로 개인이 홈피를 운영하는 목적도 대개 위 두 가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뒤집어 생각하면 블로그는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사용하면 될 것 같은데) 간단히 말해서 미니홈피는 필요한 기능을 부담없이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즉, 다양한 기능도 중요하지만, 사용자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능을 잘 제공하는 게 중요하달까.

그런데 일반적으로 블로그가 널리 퍼져 있는 상태에서도 현재 기능의 미니홈피가 새로이 널리 퍼질 수 있을까? '블로그에서는 이런 것도 됐는데 여기서는 안 되네'하고 생각해서 잘 안 쓰지 않을까? 해외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블로그를 널리 쓰고 있으면 미니홈피는 새로 시장을 넓히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미니홈피는 그냥 개인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테니까).

전력시스템 분야 국제논문지 (SCI 및 SCIE)

● SCI

- ELECTRICAL ENGINEERING (SCI)
Bimonthly
ISSN: 0948-7921
SPRINGER, 233 SPRING STREET, NEW YORK, USA, NY, 10013
Electrical Engineering

- IEEE TRANSACTIONS ON POWER DELIVERY (SCI)
Quarterly
ISSN: 0885-8977
IEEE-INST ELECTRICAL ELECTRONICS ENGINEERS INC, 445 HOES LANE, PISCATAWAY, USA, NJ, 08855
IEEE Trans. Power Deliv.

- IEEE TRANSACTIONS ON POWER SYSTEMS (SCI)
Quarterly
ISSN: 0885-8950
IEEE-INST ELECTRICAL ELECTRONICS ENGINEERS INC, 445 HOES LANE, PISCATAWAY, USA, NJ, 08855
IEEE Trans. Power Syst.

- IET GENERATION TRANSMISSION & DISTRIBUTION (SCI)
Bimonthly
ISSN: 1751-8687
INSTITUTION ENGINEERING TECHNOLOGY-IET, MICHAEL FARADAY HOUSE SIX HILLS WAY STEVENAGE, HERTFORD, ENGLAND, SG1 2AY
IET Gener. Transm. Distr.


● SCIE

- ELECTRIC POWER COMPONENTS AND SYSTEMS (SCIE)
Monthly
ISSN: 1532-5008
TAYLOR & FRANCIS INC, 325 CHESTNUT ST, SUITE 800, PHILADELPHIA, USA, PA, 19106
EPCS

- INTERNATIONAL JOURNAL OF ELECTRICAL POWER & ENERGY SYSTEMS (SCIE)
Monthly
ISSN: 0142-0615
ELSEVIER SCI LTD, THE BOULEVARD, LANGFORD LANE, KIDLINGTON, OXFORD, ENGLAND, OXON, OX5 1GB
EPES

- ELECTRIC POWER SYSTEMS RESEARCH (SCIE)
Monthly
ISSN: 0378-7796
ELSEVIER SCIENCE SA, PO BOX 564, LAUSANNE, SWITZERLAND, 1001
EPSR

- EUROPEAN TRANSACTIONS ON ELECTRICAL POWER (SCIE)
Bimonthly
ISSN: 1430-144X
JOHN WILEY & SONS LTD, THE ATRIUM, SOUTHERN GATE, CHICHESTER, ENGLAND, W SUSSEX, PO19 8SQ
ETEP

● 논문지 검색: http://www.thomsonscientific.co.kr/

[사설] 민영화 안 하면 공기업 개혁도 안 된다

[사설] 민영화 안 하면 공기업 개혁도 안 된다

한국전력 發電발전 子자회사들의 민영화작업이 중단된 뒤 생산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석탄화력발전소 생산성 증가율이 2001~2003년에 평균 6.6%로 치솟았다가 2003년 이후 3.6%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2001~2003년에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2001년 한전에서 6개 발전 자회사가 떨어져 나오고 민영화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3년 자회사 중 하나인 남동발전 매각이 실패하고 2004년 配電배전부문 분할계획이 중단되면서 민영화계획이 백지화되자 생산성 개선 효과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민영화를 앞두고 긴장하던 자회사들이 민영화 중단과 함께 公공기업 체질로 되돌아갔다는 얘기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非비능률·非비효율은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국은 1980년대부터 통신에서 철도까지 거의 모든 부문의 국영기업 민영화에 나섰고 각국이 뒤따르고 있다. 일본도 정부 산하 163개 法人법인 중 일본은행, 예금보험기구 등 5개만 남겨놓고 모두 민영화하거나 독립법인으로 바꿨다.

한국만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다. 이 정권은 출범 후 단 한 개의 공기업도 민영화하지 않았다. 도리어 前전 정권이 만든 전력·도시가스·철도 민영화계획까지 없던 일로 해버렸다. 대신 정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공기업 체질을 바꾸고 경영을 革新혁신하면 된다고 큰소리쳤다. 정권 코드에 맞는 사람들을 공기업 개혁에 적임자라며 사장·감사·임원으로 내려보냈다. 그러니 공기업 생산성이 높아질 리 없다. 공기업 감사들이 ‘세미나’ 한다며 南美남미 이과수폭포에 놀러가려던 사건은 민영화 없는 공기업 개혁이 얼마나 허튼소리인지를 말해준다.

출처: 조선일보 2007.05.25 22:45

학문의 분류

크게 대상을 인간과 인간 이외의 자연으로 나눌 수 있다.

1. 인간과 관련된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인간과 관련된 대상으로 하는 학문에는 사회학과 인문학이 있다. 사회학과 인문학에 대한 사적적 정의를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았다.
사회학(社會學): [명사]<사회> 사회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 현상의 통일적인 관계를 밝히는 학문. 프랑스의 실증주의 철학자 콩트가 처음 이 용어를 창안하고 체계화하였다.

인문학(人文學): [명사]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그리고 대학교에서 각 단과대학별 과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중어중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노어노문학과, 서어서문학과, 언어학과,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철학과, 종교학과, 미학과, 고고미술사학과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외교학과, 경제학부, 사회학과, 인류학과, 심리학과, 지리학과, 사회복지학과, 언론정보학과
이 밖에 경영대학, 법과대학(모두 사회학)이 있었다.

2.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마찬가지로 우선 사전적 정의를 찾아 보았다.
자연과학(自然科學): <교육>자연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과학. 좁게는 자연현상 그 자체의 법칙을 탐구하는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지구 과학 따위를 이르며, 넓게는 자연현상을 실생활에 응용함을 목적으로 하는 공학·농학·의학 따위를 포함하기도 한다.

공학(工學): [명사]<공업> 공업의 이론, 기술, 생산 따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전자, 전기, 기계, 항공, 토목, 컴퓨터 따위의 여러 분야가 있다. ≒엔지니어링
나는 크게 학문을 위의 네 가지의 분야로 나누고 싶다. 그 분류의 기준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우선 인간과 관련된 대상이냐 아니냐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그 이후의 분류기준은 각각 다르다 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학문을 자연과학과 공학으로 나누었는데 그 기준은 다루는 대상이라기보다는 학문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 아닌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자연과학은 그 속에 존재하는 어떠한 공통된 성질을 찾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공학은 그러한 성질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를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인간과 관련된 대상을 다루는 사회학과 인문학은 모두 실용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할 수 있어, 목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약간 애매한 면이 있다. 그래서 인간과 관련된 학문은 다루는 대상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싶다.

예전에 오감을 통해서는 감각할 수 없지만 인간이 찾아낸 공통된 성질을 개념적존재로 정의한 적이 있다. 그와 비교하여 인간이 실제로 집단을 이루며 사는 모습을 사회라 한다면, 이 둘(간단히 말해, 개념과 사회)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 아름다움, 종교, 수학(종교나 수학에 대해서는 이것이 개념적 존재이냐 아니냐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듯) 등은 개념적존재라 할 수 있고, 사람 자체를 포함하여, 가족, 국가 등 사람이 모여 사는 집단과 그 운영, 유지에 관계된 것들을 또 하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둘 각각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인문학과 사회학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적고 보니 역시 애매하다).

여기에서, 철학을 인문학의 한 분야가 아닌 학문 자체의 시작, 기본으로서 특별하게 분류하고 싶다. 잘은 모르지만 고대그리스에서의 철학의 정의와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정리하면 철학에 기초한 학문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분류가 된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은 그 대상이 실재하냐 아니면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느냐에 따라 사회학과 인문학으로 나뉜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은 그 목적이 실용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공학과 자연과학으로 나뉜다.

게임) 마스터 오브 오리온 2

마스터 오브 오리온 2 (Master of Orion 2, 이하 MOO2)

Simtex에서 개발하고, Microprose에서 발매한 턴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그 전에 친구 소개로마스터 오브 오리온 1도 조금 해보았는데 재미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2가 나와 정품으로 사서 게임을 즐겼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997년에 나왔다고 하니, 그때였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턴전략 게임의 최고봉이라고 부르고 싶다.

<게임의 타이틀 화면>

위 화면이 게임의 타이틀 화면이다. 이 게임은 실행 파일이 두 개가 있는데 각각 도스와 윈도우 환경에서의 실행 파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스가 아직 사용되고 있었으니까) 실제 실행해 보면 어떤 걸로 하든지 차이가 없다. 게임을 시작할 때 참가할 종족의 수라든지 배경 우주의 크기, 시작할 때의 기술 수준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메인 화면>

위 화면은 게임의 메인 화면이다. 게임의 목표는 위 화면에 나와있는 여러 행성계(planetary system)들에 살고 있는 외계 문명들과 경쟁을 하여 모두 점령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게임의 엔딩을 보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전쟁을 통해 모두 점령하거나, 외교 등을 통해 2/3 이상의 표를 얻어 전 우주의 대표가 되거나, 아니면 다른 우주에서 침공해오는 Antaran 들의 본거지로 가서 그들을 전멸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게임 엔딩을 보는 방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한 전쟁게임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비슷한 류의 게임으로 Koei 에서 나온 삼국지 시리즈나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MOO2 를 제일로 생각한다. 삼국지 시리즈는 게임성도 재밌긴 하지만 그 배경이 되는 삼국지 세계관 자체에서 느끼는 재미가 크고, 문명 시리즈는 물론 재미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어쩔 수 없이 늘어지는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이건 이런 류의 게임에서는 대개 그렇지만 문명은 시스템 상 좀 더 심하다).

이 게임의 주요 요소 중 하나가 기술 개발인데, 단순히 전투에 쓰이는 함선이나 무기에 대한 기술 뿐만 아니라 생산력이나 이동에 관계된 기술도 개발할 수 있다 (정치체계나 외교술에 관한 것도). 위의 단순하게 보이는 지도도 이러한 기술의 적당한 개발이 필요하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개임 초반에 경쟁자들보다 앞서 있었지만 그 시기의 기술력으로는 이웃의 행성계까지 도달할 수가 없었다고 하자. 시간이 흘러 각 문명들의 기술이 발전하여 자유로이 전 행성계들을 이동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생산력이나 전력(戰力)이 뒤져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치 중국과 서양처럼).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생산력, 전력, 기술개발 이 세 분야에 대한 투자의 비율을 잘 맞춰야 하며, 전쟁에 관련된 기술이나 그 밖의 기술의 균형을 잘 맞춰야하고, 외교, 첩보 등도 신경을 써야한다. (많은 투자를 통해 공들여 개발한 기술을 스파이가 훔쳐 가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한 잊을만하면 침공해 오는 가공할 기술력과 전투력을 지닌 안타란들도 잘 방어해야 한다 (심시티의 자연재해랑 비슷하달까). 이렇게 잘 구성된 시스템 덕분에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외계 종족들도 각각 다양한 특성을 가지며, 경험이 쌓이면 자기 스스로 종족의 특성을 조정해 새로 창조할 수도 있다.

<전투 화면>

역시 정복 게임인 만큼 전투 자체도 재미있어야 한다. 위 화면은 전투 화면인데, 전투 역시 턴제로 이루어지게 된다. 전투를 수행하는 함선이나 그것이 사용하는 여러 무기들에 사용되는 기술도 직접 개발해야 하며,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들을 잘 조합해 함선의 설계도 잘 해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 설계한 함선으로 전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커다란 재미이다.

<외교 화면. 특이하게도 접촉도 없었는데 엘리당한 종족이 많다. CPU끼리 싸웠나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도 많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략할 수 있는 게임이었기에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노하우를 갖게 되었고, 그당시 PC 통신 상에서도 많은 게시물들을 통해 토론들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에 MOO3도 나왔는데, 게임에 대한 열의가 예전만 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너무 시스템이 복잡해져서 하지는 않았다. 여튼 위에서 말한 것처럼 게임성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많은 것도 생각할 수 있는 (나만 그런가.. ㅎㅎ) 게임이다. 개인적으로는 더 나은 턴전략 게임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히어로즈 시리즈처럼 중독성은 만만치 않은 게임은 있었지만).

CM) BoA TOSHIBA W53T




아래는 메이킹 필름이랍니다~

신해철의 얘기들

신해철이 나온 '황금어장'을 봤는데 여러 가지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을 했다. (평소에도 많이 그랬지만)

우선, 미덕은 칭찬받을 만한 것이지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 중 하나다.

신해철의 글이나 말 등을 보면 정말 내 생각이랑 비슷한 게 많다. 성에 대한 것들도 얼른 생각하기엔 다르지만 결국엔 같다. 예를 들어 연애시에 양다리 걸쳐봐라. 핵심은 결혼 후에 바람피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도 사람은 한 번쯤 그런 걸 겪게 된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신해철에 동감이다. 양다리까지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삶의 방식이라 생각하고, 다시 말하면 나랑 다른 사람이니까 하는 다양성으로서 인정한다. 같은 생각이 원인이 되더라도 다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거니까.

그 밖에도, 성적인 것을 숨기는 사람이 나쁜 짓을 한다(남에게 떳떳하지 못하니까 숨기는 것),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대마초 관련 얘기하면서) 등.기억에 남는 건 '좋아하는 것 (음악) 하면서 재미있게(행복하게), 그리고 가능하다면 주변사람들도 행복하게 살고싶다'. 나도 동감.

일본 나라 - 나라공원, 東大寺

일관계로 일본에 체류하는 중 주말에 시간을 내어 나라(奈良)에 가서, 나라공원과 동대사에 갔다. 원래 도시 풍경보다는 자연 속이나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편이라 거기 있을 때도 주로 그런 곳을 많이 구경 다녔다. 우리나라처럼 산속에 있는 절이 아니라, 그래도 도시에 가깝게 있는 절이라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 이전에는 그랬겠지?) 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건 공원 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슴들이었다.

나중에 교토, 나라 등에 다녀 왔다는 말씀을 듣고 교수님께서 둘 중 어디가 더 좋았냐고 물어보시길래 나라라고 답했는데, 교수님께서 더 오래된 곳이라 우리나라랑 더 비슷해서 편하게 느껴졌을 거라 말씀해주셨다. 예전 삼국시대 때 백제를 통한 문화가 전해진 곳이 나라라고 들은 것 같다.

동대사 전경. 보기에는 그렇게 크게 안 보이지만 작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마당(?)의 잔디밭. 보다시피 깨끗하다. 왠지 들어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가운데 향로에서 나오는 연기를 쐬는 부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나는 그냥 구경만 했다.


이 기둥의 구멍을 통과하면 복을 받는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스모 선수 빼곤 다 통과할 수 있다던데 과연...? 여기도 그냥 구경만 했다.


어딘가의 처마. 그냥 이런 걸 좋아해서 한 번 찍어봤다.


그냥 돌아다니던 사슴. 관광객들이 먹이도 많이 주고, 사슴들도 사람들을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애가 먹이를 뜯기도 전에 몰려들기도 하더라.


탑. 이것도 역시 크다.


호수를 전경으로 한 컷. 이런 풍경이 좋다.


어딘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지만...

2007년 6월 14일 목요일

만화,애니) 마루코는 아홉살

마루코는 아홉살 (원제: ちびまる子ちゃん)

일본의 대표적인 가족 만화 중의 하나로서, 일본에서 만화는 86년부터 96년까지 연재되었고 애니로는 90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방영되고 있다 한다. 원작의 작가는 사쿠라 모모코라는 주인공과 똑같은 이름의 만화가라고 한다. 오래 지속된 방영 시간만 봐도 상당히 인기가 있다는 걸 추측해볼 수 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인 마루코이고, 그 식구들과 같은 반 학생들 등의 주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배경은 명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마루코와 그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모모에'의 활동 시기로 보아 70년대 말로 추측한다. (이거 검색하다 마츠다세이코 등의 일본 아이돌 스타도 알게 되었다) 같은 반의 많은 급우들까지 각각 개성을 잘 살린 캐릭터가 이 만화의 장점이라 생각하고, 이야기의 분위기에 맞는 그림체도 참 마음에 든다.

처음 보게 된 것은 케이블 채널 여기저기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때 에피소드가 도둑질을 한 친구를 위해 대신 누명을 써준 착한 친구의 이야기인데 (만화답게 해피엔딩), 보고 나서 단순히 짱구처럼 웃기기만 한 만화가 아니라 (짱구도 나름대로 감동을 주지만) 감동이 있는 가족 만화라는 것을 느꼈다. 아마 작가가 자기 경험을 살려 그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주변에 나오는 개성강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실제와 얼마나 비슷한지 궁금하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만화 중에서 실제로 자라서 만화가가 된 마루코가 친구를 통해 옛날 어렸을 적 (메인 무대가 되는 초등 3년 때) 기억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에피소드의 성인이 된 마루코가 작가 자신의 실제 모습이겠지? 일본판 영상도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며 느낀 것이 한국어 더빙판의 성우들이 얼마나 잘 했는가였다. 마치 일본인 성우들이 우리말을 배워 한국어로 더빙한 느낌이랄까. 앞으로도 케이블채널에서 많이 방영해줬으면 좋겠다.

여기에 한국판 오프닝을 소개한다.

한국판 오프닝


참고:
정주씨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feb19th) : 등장 인물 등에 대한 설명을 정성들여 잘 작성한 곳
위키피디아 페이지(영문) http://en.wikipedia.org/wiki/Chibi_Maruko-chan

영화) 포레스트 검프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 미국 / 드라마, 코미디 / 142 분 / 개봉 1994.10.15


감독: 로버트 제멕키스
출연: 톰 행크스(포레스트 검프)
국내 등급: 12세 관람가
해외 등급: PG-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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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성공기(?)를 다룬 영화이다.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미국의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미국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추억과 더불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극장에서 본 건 아니었고 TV 인가 비디오방에선가 대학교 2학년 때 혼자서 봤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재밌게 봤고, 하숙집에 와서 같은 하숙집에 살던 형에게 재밌었다고 얘기했더니 왜 미국 이야기에 네가 재밌어하냐고 말했었다. 그때는 어리버리해서(물론 지금도) 아무 말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 고유의 정서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사람으로서 보편적인 정서란 게 있을 것이고 거기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텐데...

영화 뒤에 숨겨진 의도는 사람들에게 검프처럼 국가에 충성하며 아무 생각없이 살면 복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중간에 보면 제인의 친구로서 학생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든지 제인의 히피 문화 등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장면을 얘기해보면, 월남전을 끝내고 돌아온 검프가 본의 아니게 반전 집회에서 연설을 하게 됐는데, 제인이 검프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뛰어 나와 서로 만나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오랫 동안 헤어져있다가 제인이 돌아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제인은 에이즈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제인이 죽기 전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검프가 그동안 경험했던 인상깊었던 광경들을 이야기 해준다. 베트남의 비가 갠 후의 밤하늘, 호수에 비친 산 등등... 제인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같이 봤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말을 하지만, 검프는 '같이 있었다'고 말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검프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크랩) 공부의 내력

노땡큐) 공부의 내력
▣ 김규항 발행인

밥상에서 김건이 말했다. “빨리 5학년이 되면 좋겠어.” “왜?” “역사 공부 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 “응. 왕건이나 대조영 같은 거 너무 재미있어.” “그래, 역사는 재미있는 거야.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생각보다 재미없을 거야.” “왜?” “그건 말이야..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거든.” “역사가 아니라니?” 김건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다. “역사가 뭐지?” “응, 옛날에 있었던 사건이나 전쟁 같은 거 아냐?” “큰 사건이나 전쟁만 역사는 아니야. 우리 집에도 역사가 있고 건이에게도 역사가 있지. 여기 부러졌던 일 기억하지?” “당연하지.”

무조건 열심히…

녀석은 세 살 때 어느 날 미끄럼틀에서 놀다 다리가 부러졌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디 한 번 부러지는 거야 그리 큰일은 아니지만 그게 사건이 된 건 그러고 울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잠이 깨서 나오는 아이가 한쪽 다리를 짚지 못해 병원에 가보니 골절이라고 했다. 깁스를 하는 의사가 웃을 만큼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김건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작은 역사가 되었다.
“그게 몇 년 몇 월 며칠이었지?” “몰라.” “그럼 깁스한 병원은?” “몰라.” “의사 이름은?” “몰라, 아빤 기억해?” “아빠도 기억이 안 나.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날짜, 병원 이름, 의사 이름만 알아내선 그 사건에 대해 건이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한다면 어때?” “바보 같지.” “학교에선 그런 걸 역사라고 배워.” “정말?” “누나한테 물어봐.” “누나!” 김건은 제 누나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나는 그의 누나가 5학년 첫 시험을 준비하면서 역사 때문에 힘들어하던 걸 떠올렸다. 부여의 첫 도읍지는 어디였는지, 두 번째 도읍지는 어디였는지 따위를 외우면서 말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공부법은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다. 동양의 공부란 사람이 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지식과 깨우침이 담겼다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몇 권의 고전을 거듭 공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공부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면 동양의 공부는 지적 통찰을 체득하는 정신 수련이었다. 사방이 책으로 빼곡한 서양 학자의 서재와는 달리 동양의 학자 공부방에는 몇 권의 책만 있었다.
서양식 공부가 도입되고 아이들이 배우는 건 ‘사회적으로 합의된 몇 권의 고전’이 아니게 되고도 한참 동안 부모들은 동양식 공부법에 젖어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가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길 기대했고 요구했다. 대략 지금 아이들의 할아버지 세대까지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의 부모, 즉 우리는 청년 시절에 공부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 몰래 동아리를 지어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책들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그 공부를 통해 처음으로 벅찬 지적 희열을 느꼈다. 그 공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는 어떤 공부를 강요하는가

그런 우리는 지금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게 하는가? 우리는 오히려 공부에 대한 깨우침이 없었던 우리 부모들보다 더 한심하고 무지스럽게 아이들에게 역사 아닌 역사, 국어 아닌 국어, 수학 아닌 수학을 강요한다. 우리는 한술 더 떠 우리에게 난생처음으로 벅찬 지적 희열을 주었던 인문 사회과학 책들을 모조리 다이제스트판으로 달달 외우게 한다. ‘논술 필수 고전’이라 불리는 그 명단엔 심지어 까지 들어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이들이 진짜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20여 년을 달달 볶는 동시에 그들이 입시에서 빠져나와 처음으로 지적 희열을 느끼기 위해 보존되어야 할 지적 감수성의 부위들마저 하나하나 불로 지져 영원한 지적 불감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게 이른바 부모가 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반복하는 교육적 실천이다. 그렇게 하루의 실천을 마친 우리는 인사동이나 신촌의 지적인 카페에 둘러앉아 지적인 얼굴로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 “인문학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야” 떠들어댄다. 아, 우리는 대체 어떻게 된 인간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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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3일 수요일

책) 마틴 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

마틴 가드너 (과학세대 역), 마틴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제3개정판), 까치, 1993. (책 표지는 처음 봤다. 어렵게 구한 책 표지 그림인데 좀 후지다. ㅎㅎ)

너무 읽고 싶어서 헌책방을 뒤지다 포기하고, 결국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해 제본한 책. (지적재산권에 어긋난 행동이긴 하지만, 이렇게 구하기 힘들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이렇게 매력을 느낀 이유는 우선 저자 '마틴 가드너'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 파라독스(사계절)'란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작가이다. 그 뒤 '아하!(사계절)', '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바다출판사)', '마틴가드너와 함께보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라사랑)' 등의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은 마틴 가드너는 수학자인 동시에 대중들에게 수학에 대한 내용을 재밌게 풀어쓰는 작가이며, 사이비 과학의 헛점을 파헤치는 사이비 과학 헌터(?)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마술이나 초능력의 사기를 현상금까지 걸고 찾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렇게 저자만으로도 관심 있었는데, 어디선가 책 소개를 봤는데 책의 내용이 단순히 대칭의 기하학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입자나 우주, 끈이론 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고 꼭 구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 부분의 입자나 우주, 시공간의 내용들을 읽을 때는, 항상 그러는 것처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그냥 느낌만 가지고 넘어갔지만, 간단하게 거울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초끈이론까지 이야기를 전개한다. 책에서는 특별히 나누지 않았지만, 책이 다루는 주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대칭의 (거울 상의) 기하학, 원자/분자, 생물, 양자, 우주론/시공간/통일장이론

자연 만물의 대칭과 비대칭, 그리고 패리티 보존 법칙의 성립 및 붕괴를 통해 기본 법칙을 말하고 있고, 눈에 보이는 거시세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까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본문에 여러가지 관점의 내용을 더 자세하고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전부 다 기억나지는 않고, 그냥 일반인의 입장에서 한가지 생각을 덧붙혀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에서 말한 것과 같이 만물에 대해 대칭/비대칭을 기준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아무 것도 없다면 (대칭, 비대칭을 말하긴 어렵지만) 대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평평한 모래밭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한 곳에서 모래를 파내어 다른 곳에 쌓아두면 비대칭이 생기게 된다. (웅덩이와 언덕) 입자와 반입자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뭔가가 존재한다 함은 곧 비대칭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우주가 전체적으로 평형인가, 즉 입자와 반입자가 동일하게 존재하는 우주인가 등에 대한 문제는, 책에서도 나오지만 여러 가지 의견이 있고,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여기서는 패스) 이렇게 물질(곧 에너지)의 존재는 곧 비대칭이며, 무한대의 엔트로피는 아무런 존재가 없는 완전한 대칭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책) 괴짜경제학

스티븐 레빗 (안진환 역), 괴짜경제학, 웅진지식하우스, 2005.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다루었기 보다는 여러 경제적 현상들의 쉽게 보이지 않는 진짜 원인을 정리해주는 책이다. 그중에는 통계적인 착각에 대한 내용도 있다. 작년 초에 읽었던 책이라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몇 가지 내용을 통해 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 교사와 스모 선수의 공통점은
- 경제적, 도덕적, 사회적 인센티브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여 부정 행위까지도 유발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2장 KKK와 부동산 중개업자는 어떤 부분이 닮았을까
- 정보의 폐쇄성을 이용해서 얻는 이득에 대해 이야기한다.
3장 마약판매상은 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걸까?
- 소수에게 집중된 소득 때문에 대부분은 가난하다.
그 밖에 앞서 말한 통계적 오류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분야든지 자기의 전공 분야를 일반인에게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나 글들을 보면 참 부럽다. 이 책도 그런 예의 한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의 전공분야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동감을 얻을 수 있도록 잘 정리,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스크랩) [인터뷰특강] 우리나라 국사책 믿으십니까

[인터뷰특강] 우리나라 국사책 믿으십니까

[한겨레] [제3회 인터뷰 특강- 거짓말 ③]
한홍구 vs 박노자 ‘한국사의 거짓말을 논쟁하다’
주입되는 모든 것을 검토하며 ‘역사 바로보기’를 훈련하라
▣ 김종옥 7·8기 독자편집위원

특강에 오기 전에 ‘학부모 총회’를 하러 아이들 학교에 갔다. 시간이 되자 ‘국민의례’를 시작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흘러나왔다. 그 비장한 서약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미루더라도, 그 맹세가 박정희 정권 시절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치졸한 표절이라는 사실이 이미 <한겨레21>을 통해 밝혀졌건만 도대체 학부모 회의에 모여서까지 촌스런 거짓 맹세를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라는 섬뜩한 강요가 진창 속에 웅크린 부스럼두꺼비마냥 징그럽다.
해서, 기분 전환을 위해 저녁에 있을 <한겨레21> 특강을 생각해냈다. 아, 그래. 한홍구, 박노자 교수의 특강이 있지. 우리 역사 안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있는가, 역사 서술가들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가에 대해 실컷 얘기하는 신나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지.

박노자에 섭섭? 한홍구는 여럿이다?

사회를 보는 오지혜씨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들떠 있었다. 인터뷰 특강의 두 간판스타를 좌우에 거느리게 된 기쁨에 그는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청중의 열기도 뜨거워서 두 스타의 소개 인사에 환호가 터져나왔다. 정치적 지향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건 이렇게 중요한 문제다. 가족도 그 점에서는 양보가 안 된다. 박수를 치고 기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청중은 한순간 슬쩍 동지가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지혜씨는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 국민 모두가 일렬로 서서 혼나는 기분마저 든다. 귀화까지 한 한국인으로서 그렇게까지 혼내는 것이 은근히 섭섭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질문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야 뭐, 자기 자신을 야단치는, 그런 똑같은 심정으로…”라고 답했다. ‘자기 자신’이라는 표현에 감동받은 사람이 많았으리라.
이어 한홍구 교수에게는 활동 영역이 넓은 것을 지적하며 “심지어 ‘한홍구는 여럿이다’라는 말까지 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작업을 감당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예전에 박노해 시인에게도 독재정권에서 그런 의혹을 덧씌웠는데, 그때는 그가 조작된 거짓 인물인 것처럼 보이려고 억지를 쓴 것이었고 오늘 질문은 감탄이 섞인 찬사이니 세상이 변하긴 했다.) 한홍구 교수는 “물론 감당하기 어렵죠. 여기저기서 ‘빵꾸’가 나서 샙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본격적인 토론은 박노자 교수가 역사 속의 거짓말에 대해 몇 가지 주제를 정해 묻고, 그에 대해 둘이서 각자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가 준비해온 열 가지의 담론 주제를 다 소화하기에 시간은 너무도 짧아서,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서까지 진행되었음에도 할 얘기의 3분의 1도 하지 못하고 아쉽게 끝났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며 몇 대목만을 소개한다.
"역사가 과거의 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사회의 주류와 전문가 집단의 의견에 가깝고, 따라서 역사에 대한 힘있는 자의 주관, 나아가서는 거짓말이 당연한 진실로 둔갑돼 대중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를 잡으면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져 멀쩡한 사람이 눈뜬 맹인이 되는 것”이라는 ‘업계의 비밀’을 밝히면서 대담을 시작한 박노자 교수는 맨 처음 우리 국사 교과서 문제를 거론했다.

삼국은 과연 한나라였을까

박: 국정교과서의 고대 중세사 부분을 보면 고대 우리나라의 삼국이 과연 한 나라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런 의식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자기네 영토 안에서 일어난 일은 다 자기 역사라고 하는 거짓말은 근대국가에서는 다 그랬지요.
한: 최근 보면 일단 영토를 규정해놓고, 그 안에서 일어난 것을 모두 우리 역사 속에 넣으려고 합니다. 근대국가가 역사를 서술하려다 보면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를 올려잡기도 하고요. 약소국이고 어려운 시기에는 그럴 수 있지만, 이미 이 정도의 규모를 갖춘 국가에서는 그런 의도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개화기 때 얘기를 해볼까요. 박은식, 신채호 같은 분들이 당시 단군을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인정하기는 하지만, 혈통 위주의 민족주의의 탄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복왕조의 의미로 단군을 부각시키면서 군사적으로 강력한 게 긍정적으로 서술되고, 또 그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내조자에 멈추게 되지요.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말씀하셨다시피 제국주의 침략이 시작된 상황이라는 걸 빼고 신채호를 읽을 수 없지요. 그가 가진 진짜 진보성은, 당시 자신이 얼마나 시대를 성찰하고 변화시켰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패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고대사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박: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있는 이라크 독립군의 위치를 그와 똑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친일 청산을 외치면서도 한편에서는 과거 친일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습니까. 그건 모순이죠.
논의가 막 무르익을 무렵 이미 정해놓은 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박노자 교수는 준비했던 주제들을 아쉽게 건너뛰어 ‘남성 위주의 힘의 역사에서 벗어나 미래의 교과서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귀화인 등 약자와 소수자를 어떻게 기술해야 할 것인가’를 서둘러 물어야만 했다. 한홍구 교수는 전적으로 소수자 문제가 역사 속에 포함돼야 하지만 교과서에 실을 만한 수준으로 소수자의 역사가 축적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이 대목에서 박노자 교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의 다양한 측면의 자료를 복원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자의 삶를 기록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에서 많은 질문이 쏟아져 곤욕을 치른 뒤 마무리로 한홍구 교수는 역사의 거짓말을 거둬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정제된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의 눈으로 걸러서 진짜를 가려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중은 역사 속에서 무수하게 속아왔지만 이제는 속지 않을 능력, 속았지만 바로잡을 능력을 키워나가야 하며 그것이 ‘역사 바로보기’라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민중의 고통과 투쟁을 우선시하고 미래의 민중의 복지와 자율성을 지향하는 민중적 주관의 입장에서 역사를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외부에서 내게 주입하려는 모든 것을 내 입장에서 한 번 걸러보면 거짓말을 좀은 가려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리 살면 좀 피곤하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에 쫓겨 할 얘기를 너무나 많이 남기고 특강이 끝나버렸고 아쉬운 마음은 오늘도 길고 긴 팬 사인회의 줄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스타 학자와 얼굴을 맞대고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 덕에 시간이 더 길어졌고, 이에 따라 경비 아저씨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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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과학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여라

과학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여라

[한겨레] 생명공학 등의 발전과 함께 급변한 과학 환경이 ‘신뢰의 위기’ 만들어
시민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포괄하는 사회적 합의로 불확실성 최소화해야
▣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꽤 오래전에 번역했던 <과학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과학저술가 존 호건은 저명한 과학자와 과학철학자들을 면담하면서 과학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대발견이 가능한지 묻는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종말이라는 말은 호킹이 <시간의 역사>에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만물의 이론이 곧 완성될 것이기 때문에 “이론물리학의 끝이 보인다”고 했던 의미에서의 종말이다. 호건은 원래 영문학자였는데 문학비평이 학자마다 다르고 작품 구절 하나의 해석을 놓고 끝없는 논쟁이 벌어지는 데 염증을 느끼고 이른바 확실성을 찾아 과학으로 개종한 인물이다.
호건뿐 아니라 과학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막연하게 과학의 확실성에 대한 환상을 품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그 토대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근대과학은 지금까지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설명력을 제공해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들의 접근 방식과 지향점, 그리고 설명 대상의 특성 등이 저마다 다른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식의 일방적인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겠지만, 그런 논의는 이런 자리에서 할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자. 따라서 통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은 얼마간 근거를 가진다고 볼 수 있고, 과학은 불확실성과는 관계가 없거나 최소한 상당히 거리가 먼 무엇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러한가.
오늘날 과학을 둘러싼 논쟁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확실성에 대한 통념이 무색할 지경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이 인체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배아복제의 윤리성, 원자력 에너지의 계속 사용을 둘러싼 논쟁,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논쟁, 전자태그(RFID·무선을 이용한 식별 기술)의 사회적 영향 등 우리나라에서 굵직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거나 되고 있는 논쟁들에는 예외없이 복수의 전문가 견해가 등장했고, 내로라하는 과학자들도 단일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법정에 결정을 위임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과학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확실성과 동의어로 간주돼온 과학이 오늘날 겪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학은 확실한데, 다만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의 문제인가? 아니면 과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와 함께 과학에 대한 인식, 나아가 과학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과학의 불확실성 문제와 관련된 주제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된 담론이 ‘신뢰의 위기’다. 그 발단은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은 광우병(BSE)이었고, 영국 정부는 발병 초기에 광우병의 인체 위해 여부를 투명하게 다루지 못했다가 영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인간 광우병 파문을 불러일으켜 국민들의 심각한 불신을 초래했고, 이러한 행보는 이후 유전자 조작 식품 시판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재현됐다. 영국 상원이 지난 2000년에 발행한 보고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명공학과 정보기술의 빠른 발달에 불안해하고, 심지어는 일상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에 대해서까지도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신뢰의 위기는 영국 사회와 영국의 과학 모두에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쓰고 있다.

학계에선 이미 오래전에 제기된 주제

이 대목에서 어떤 독자는 “맞아. 문제는 대중들의 괜한 불안감이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보고서는 문제의 원인을 대중이나 언론이 아닌 과학 그 자체와 과학을 대표하는 과학자 사회와 정부에게 돌리고 있다. 이 보고서의 첫 번째 주제가 ‘과학과 불확실성’이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 모두 불확실하다”라는 전제에서 논의를 출발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고서는 “시스템이 복잡하고 카오스적이기 때문에 지구가 태양 궤도를 돈다는 사실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에도 불확실성이 개입할 수 있으며, 유전학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분야에서는 많은 것들이 불확실한 상태이다”라고 지적한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본질적’ 불확실성의 문제 때문에 과학기술을 둘러싼 의사결정은 일부 전문가들에게 맡겨둘 수 없으며, 시민들의 다양한 관점을 참여시켜 가능한 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어느 과학자도 확실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포괄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사실 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기술과 불확실성이라는 주제가 제기됐고, 여러 학자들이 불확실성에는 과학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일찍부터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실비오 펀토비츠와 제롬 라베츠는 오늘날 과학의 특성을 “예측불가능성, 가치의 배태” 등으로 특징지으면서 쿤의 정상과학 개념을 비틀어서 “포스트-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이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요약하면, 오늘날의 과학은 불확실성을 소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측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전통적인 과학 개념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단 이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과학을 둘러싼 상황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과학의 성격이 크게 변했음을 도처에서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게놈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생명공학의 빠른 발전은 다른 한편으로 과학지식 생산을 본령으로 하는 과학에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특성을 낳았다. 몇 가지만 열거해보면 국가가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선 국가 주도의 과학, 거대 자본들의 투자와 개입으로 인한 과학의 노골적인 상업화, 생물 특허로 상징되는 과학 지식의 독점화,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인한 빠른 정보 확산 등이다.
특히 생명공학에서 본격화된 국가의 과학연구 개입은 점차 그 시기가 빨라져서 나노 기술의 경우 아직 개념조차 분명치 않은 연구 분야에 나라마다 천문학적 액수의 지원금이 경쟁적으로 쏟아부어지면서 과학의 관료화와 중앙집중화가 심각해져 과학의 자율적 발전이나 동료 평가에 의한 연구 방향 설정은 아득한 동화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생명공학과 나노 기술 등 최근에 새롭게 부상한 과학은 그 탄생부터 숱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깊이 각인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 벌어지는 대부분의 과학기술 논쟁이 가치가 배태된 논쟁임이 당연해진다. 과학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에 과학에서 가치를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과학의 성격이 변했다

또한 공공성을 대표하던 국가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변하면서 과학기술을 둘러싼 논쟁에서 더 이상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이른바 ‘심판 부재’로 인한 불확실성의 가열화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벌어지는 많은 논쟁들이 해결되지 않는 원인 중에는 우리 사회에 공공성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의 부재도 큰 몫을 한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 결국 과학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것은 현 과학의 수준 때문이 아니며,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불확실성을 완전히 소거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앞에서 소개했던 영국 상원의 보고서가 다양한 관점들을 포괄하도록 권고한 것도 그런 예에 해당한다. 그것이 오히려 튼튼하고 건강한 과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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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종교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아르눌프 지텔만)]
끝부분에 자연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삶의 방향제시로서의 종교의 역할로써 끝맺음을 한다. 자연과학이 또 하나의 형이상학인 종교에 미치는 영향, 즉 그 자체로는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형이상학이 그와 어긋나거나 동떨어져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얘기한다. 유물론적 관점이다.
그런데 철학과 종교의 관계는 무엇일까.

철학의 의의

위대한 사상들도 결국 검증, 증명할 수 없기에 아무 의미없는 소리로 취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인 과학의 한계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 특성상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어떻게'이지 '왜'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없다. 그 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결국 철학이 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새로운 과학이론이 이전의 사실들과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철학 또한 과학, 즉 우리가 감각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혈액형과 성격이 연관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양적 사고

[혈액형 성격과 동양적 사고 - 생각의 지도 4장]
책에서 제시된 동양적 사고의 특성 중 하나는 만물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재밌는 사실은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세계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어떠한 결론에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 다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 때문에 좋은 과학의 (필요)조건인 반증 가능한 결론을 내지 않는다. 쉽게 말해 두리뭉실한 얘기만 한다. 그래서 과학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동서양의 특성은 서로 보완할 점이 있다.

질량중심

[질량중심 - 물리법칙특성 p137]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의 질량중심은 그것이 전에 있었던 바로 거기에 있다."
관성의 법칙 (전체적으로 볼 때), 작용반작용법칙 (부분적)과 관련되어 있는 놀라운 사실. 상대성이론의 등속직선운동과 연관지어 생각해보자.

양전자와 시간

[양전자와 시간 - 일반인을위한파인만의QED강의 p150-152]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와 광자, 전자의 시공간에서의 움직임의 예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양전자의 움직임을 전자가 시간을 거슬러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 근거는 전자는 시간에 따라 서로 밀어낸다. 예전에도 한 번 봤지만 입자 세계에서 시간의 정의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참고로, 광자의 반입자는 광자. 광자에서의 과거, 미래는 구별이 없다?

첨가 - 광속으로 움직이는 물질, 즉 광자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언어의 한계

[언어의 한계 - 노자와21세기1 p106-108]노자가 지적한 언어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언어의 의미와 중요성만 강조한 나로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와 가상, 결국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리고 최초의 디지털로서 언어로 한계를 말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의 노동(교환)가치 이론

[마르크스의 노동(교환)가치 이론 - 한권으로 보는 마르크스p98]
"상품의 가치는 그것이 생산되기 위해 요구되는 노동 시간에 의해 규정된다."
평소에 했던 나의 생각 - 가격은 각 사람이 그만큼의 돈을 버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상대적이다. 따라서 각 상품의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시간이라는 공통된 단위로 환산할 수 있다. - 과 관계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노동가치론에서는 사람들의 노동수준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였고, 내 생각에서는 동일한 상품을 얻는데 필요한 시간으로 각자의 노동 수준을 평가하였다.

종교와 사이비 종교

[노자와 21세기2 p22] 에서는 (참)종교의 공통된 특성으로서 희생을 얘기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기엔 사이비 종교냐 아니냐는 사회에서의 역할로 구분해야지 교리의 진실여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창조론이 그르다고 증명된다해서 그 종교를 사이비라 말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종교 자체의 이익이나 신도들만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한다면 그건 사이비 종교이다. 종교에 대한 비판 또한 논리적, 과학적으로 맞느냐가 아니라 그 종교를 믿는 신도들에 대한 영향이나 사회적 활동에 대해서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무종교인만 가질 수 있는 관점인가, 아니면 다른 종교도 인정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은 가질 수 있을까. 만약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기독교의 창조론 등)는 믿지 않으면서 그 종교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도, 기독교를 예를 들면, 창조론은 믿지 않더라도 신의 존재는 믿어야겠지? 그런데 신이 존재가 없는 종교도 있나? 다시 말하면, 우주의 탄생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론(신이 개입하지 않는)을 세운 다음, 그것을 믿고 가치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것도 종교인가, 그냥 믿음인가? 결국 종교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해야겠다.

ps.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히면, 결국 종교는 인간의 극복할 수 없는 약점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특히 죽음이라는 한계)

공공시설과 범죄자

범죄자들도 대중교통이나 전기, 수도 등의 공공재를 사용한다. 공공재는 국가의 매개를 통해 국민들이 제공한다. (여기서 국가의 또 다른 의의 - 큰 규모가 필요한 공공재의 제공과 관리 - 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것들은 국가라는 체제에 동의한 다수에 의해 제공되며, 사용하기 위해선 동의(준법, 세금, 각종 의무)가 필요하다. 범죄자들은 이 동의를 지키지 않은 사람이며, 동시에 다른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다. 그래도 공공재를 사용한다.

그런데 동의는 지키지 않았지만,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았거나 혹은 도움을 주는 사람은 범죄자인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의적이나 반체제 인사 등), 공공재를 이용할 자격이 있는가. 즉, 국가라는 체제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국가를 통하지 않고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으로 그 의무를 다 하는 사람은 이용할 자격이 있는가. 왠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으면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스크랩)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한겨레]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국과 일본의 많은 지성인들은 왜 그토록 ‘종교적 전제왕국’의 환상에 쉽게 빠지는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수년 전 필자가 한국의 한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유독 눈에 띈 것은 학생회관 내 어느 방에 걸려 있던 ‘하늘과 땅’이란 현수막이었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로서 결례를 무릅쓰고 들어가서 인사를 청했다. 나중에 그곳이 어떤 신흥종교에 열정을 바치는 동아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모르는 새 종교가 여기에 있구나! 새로운 발견을 한 기분으로 필자는 그 학생들을 사귀었고 그 교주를 알현하기까지 되었다.

한 교주의 빌라에서 충격을 받다

굿당들이 많은 산에 위치했던 교주의 빌라에서 필자는 그날 충격을 받았다.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에 둘러싸인 교주가 ‘말씀’을 하면 “네, 선생님!”을 연발했던 신도들의 얼굴 표정도 “문선명에게 늙은이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 식구들은 젊은 피가 많아!”와 같은 ‘교세 자랑’도 충격이었다. 지금 그 교단의 정확한 명칭도 기억할 수 없지만, 전도 유망해 보이던 학우들이 왜 그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그 교단으로 가게 만든 이유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몇 개월 뒤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어느 종말론적 선교회의 선교사와 만난 일이 있었다. 1992년 10월28일이 되면 세계사가 끝이 나고 믿는 자만이 허공으로 들려 올라갈 수 있다는 예언을 위주로 설교하는 부부 선교사였는데 그 남편은 원래 대기업의 사원이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거쳐간 사람이 갑자기 광신으로 뭉친 소집단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뒤 1992년 10월28일 시한부종말론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읽었을 때 이장림 목사에게 현혹돼 전 재산을 바치는 등 극단적인 신앙 행위를 벌인 2만여명 중 공무원·교사·기업체 간부 등 고학력 중산층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이라도 비판 정신을 가진다면 곧 허구성이 드러나는 한 개인의 종교적인 환상을 고학력자들이 어떻게 절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동아시아의 ‘중산층 신형 신흥종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는 1995년 3월20일의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이었다. 이 가스 제조의 책임을 맡은 화학 석사나 옴진리교를 위해 러시아에서 무기 구입을 한 오사카대학교 출신의 젊은 건축가,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재판을 받았음에도 꾸준히 믿었던 도쿄대학교 박사과정 출신의 인류학자 등 젊은 지성인들은 어떻게 해서 “문선명과 창가학회(創價學會·일본의 대표적인 불교적 신흥종교)의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회장이 유대인 조직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일본인들을 말살하려고 한다”는 난센스를 믿고 대량 살인을 ‘정당한 방어’로 믿게 됐는가? 물론 일본 국내의 교도들은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의 극소수에 불과하며, 영계·환생에 대한 괴설로 유명(?)한 도쿄대 법학부 출신 오가와 류호(大川隆法)의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고학력 중산층 위주의 ‘신형 신흥종교’들도 수만명 이상의 고정 신도를 모을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상당수 대학생들이 한번쯤 옴진리교·행복의 과학 유의 말세론적·유사(類似)밀교적·카리스마적 리더 숭배 중심의 ‘신형 신흥종교’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고, ‘교주 말씀’이라면 범죄까지도 서슴지 않을 만큼 ‘개인 숭배’가 태심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윗 사람에 대한 맹종문화’가 토양

아시아에서 근대적이라 할 일본이나 한국에서 어떻게 해서 지성인들까지 빨아들일 수 있는 ‘전제왕국’들이 생겨날 수 있는가? 이 현상이 동아시아 근대성의 본질적인 문제들과 연관은 없는가? 근대 초기의 ‘고전적인’ 신흥종교- 예컨대 한국의 동학이나 일본의 천리교(天理敎)와 같은 민중 본위적인 종교운동- 들이 전통 질서의 밑으로부터의 와해와 대안적 미래의 열망을 반영했다면, 기독교·불교의 요소를 종말론·환생론에 자의적으로 갖다붙이는 식의 1970년대 이후의 ‘신형 신흥종교’들은 근대의 무엇을 반영하는 것인가? 일본이 제도적으로는 근대화됐지만 근대성의 기본 요소인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을 끝내 가져보지 못했다는 전후 일본의 진보적 사상계의 주역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96)의 뼈아픈 지적을 보자. 서구에서는 주체적인 개인의 탄생이 이루어졌다는 마사오의 의견에 그대로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도 아직도 끝까지 탈피하지 못한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메이지 모델’이 주체적 개인의 탄생을 극단적으로 방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설교문 테이프를 수시로 듣고, 옴진리교 소유의 공장에 가서 무보수로 일하고, 교주의 명령이 떨어지면 ‘배교자’들을 납치·살인을 했던 옴진리교 신도들의 행동 양식은 우리로서 끔찍할 뿐이고 이장림 목사 유의 ‘교주’들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은 바보로 보인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계 서열적인 폭력·착취, 패거리 집단 안에서의 ‘윗사람’에 대한 맹종이 과연 한국·일본 사회에서 드문 일인가? 물론 체육학과 교수의 지시에 따라 성적을 못 올린 후배에게 주먹질을 하는 선배나, 내용상 관계가 없더라도 자신의 논문의 제1주에서 꼭 지도교수의 글을 인용하는 대학원생도 ‘교주’의 의심 모를 하수인이 되려면 특수한 계기·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방모찌’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주류’ 사회로의 진출이 불가능한, 즉 개인과 집단의 ‘어르신’ 사이의 합리적인 횡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토양에서 ‘교주님’들이 번성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류' 집단의 물신주의·출세주의·형식주의에 질려버린 젊은 지식인으로서 늘 이탈의 동기가 존재하지만, 이탈이 곧바로 또 하나의 패거리로의 편입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악 속의 빌라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몰입하던 학우들이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이었을 듯하다. 상황을 더욱더 왜곡하는 것은 한국의 경우 일반적인 종교집단의 구조적인 문제들이고, 일본의 경우에는 전전(戰前) 민족주의의 청산의 미흡성이다. 즉, 일반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를 비판하기는커녕 평등한 상대로서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에서, 어떤 경우에는 권위주의가 지나친 일반 성직자와 사이비 ‘교주’ 사이에서 구별조차 하기 힘들다. 그리고 유대인의 지하조직과 미국, 영국의 왕실 등이 일본을 말살하려고 하고 그들과 연결돼 있는 일본의 국제적 명망가들이 다 ‘유대인’들이라는 아사하라의 가르침이나, 일본의 ‘신인류의 중심’에 놓인 수많은 ‘신형 신흥종교’의 교리는 겉으로만 과거의 국가주의를 ‘극복한’ 오늘의 일본에서 민족주의적 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린이와 어른을 동등한 인격체로

후기 산업사회의 무의미한 생산·소비의 순환에 식상하여 허무감을 종교적인 모색으로 메우려는 중산층 고학력자 젊은이들의 고뇌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중심부나 준주변부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리나 ‘참 나’로부터의 소외의 진정한 이유인 자본주의적 체제의 기본 문제들이 무시되고 담론의 구조가 전적으로 종교적 차원만으로 전환되는 한 이 모색이 생산적 ‘소외 극복’으로 되지 못하고 기존의 구조로 계속 회귀된다. 다만, 서구·미국의 경우에는 요가나 불교, 탄트라(성적 요소가 강한 힌두교적·불교적 밀교) 등이 결국 일종의 ‘종교적 소비품’으로 전락되어 핵화된 소비주의자들의 입맛에 단순히 맞추어지는 반면에, 소외라는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가 집단주의·자율적 개성의 미발달과 중첩되는 한국·일본 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라는 위계질서적 구조를 벗어나게 하는 개체들이 곧 전체주의적 성격이 훨씬 강한 ‘비주류’ 교단으로 몰입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양쪽의 근대화 과정이 달랐던 만큼 자본주의의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擬似) 탈주’의 구조도 다른 것이다.

물론 종교적 모색이 시장 논리에 편입된 구미 지역을 흠모할 일은 없지만 개인이 집단 속에서 용해되는 만큼 극단적인 폭력이 저질러질 가능성이 있는 동아시아형 ‘신형 신흥종교’들의 문제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린이와 어른이 기본적으로 동등한 인격체로서 취급됨으로써 개인으로서의 독립심과 자긍심을 길러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참고 사이트 1. 옴진리교 관련 사이트 링크의 모음: http://square.millto.net/~sacca/
2. 옴진리교의 후신 단체인 ‘알레프’의 사이트: http://www.aleph.to/
3. 아사하라 ‘예언집’의 일부. ‘일미 결전(決戰)’을 예언하는 것은 태평양전쟁 시대의 세계관을 방불케 한다: http://www.geocities.co.jp/WallStreet/1733/aum/seppou-1.html
4. 이탈자 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영생교’라는 한 신흥종교의 사이트. 그 교주 조희성이 “전지전능한 구원자”로 불렸다: http://www.victor.or.kr/
5. 옴진리교에 대한 영문 정리와 영문 링크 모음 :
http://religiousmovements.lib.virginia.edu/nrms/aum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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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 [한겨레21 2006-05-09 08:06]

[한겨레] 한때 정치인의 전유물이었던 ‘뻔뻔함’은 이제 대중들의 일상 속으로 … 과연 당신의 진보성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성을 지키고 있는가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다. “뻔뻔스럽고 부끄러워함이 없음”이란 뜻이다. 후안무치에 친화적인 정치판에선 상대편을 비난할 때 자주 쓰는 상용어지만, 보통 사람들 사이에선 큰 욕이다. 넓고 묽게 보자. 후안무치를 도덕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는 하나의 인간적 특성으로 보자.
김구가 이승만의 적수가 되지 못한 이유
정치인의 제1 자질이 무엇일까? 단연 후안무치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보통 사람의 도덕감정을 고수하면서 정치를 한다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인에겐 비상한 수단을 사용하고 상황에 따라 언행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이 한국 현대사만 살펴봐도 이는 분명해진다.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경쟁자들과 비교해볼 때 후안무치 자질이 더 뛰어났다. 예컨대 이승만과 김구를 비교해보라. 김구도 다른 독립투사에 비하면 꽤 후안무치한 편이었지만 감히 이승만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이는 대통령들에게 다른 탁월한 능력과 자질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른 탁월한 능력과 자질은 기본이고 거기에 후안무치 자질이 더해져야만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영삼부터 살펴보자. 3당 합당과 내각제 각서 파동은 김영삼의 탁월한 후안무치 능력을 보여주었다. 정계은퇴 식언과 ‘20억+알파’ 사건은 김대중의 후안무치 능력을, 대선후보 전 동교동계에 대한 우호적 태도와 지역주의 양비론의 일시적 위장 등은 노무현의 후안무치 능력을 입증해준다.
대체적으로 보아 높이 오른 사람일수록 후안무치를 저지른 건수가 더 많고 농도가 더 강하다. 피부가 얇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거나 조직의 리더가 된 걸 본 적이 있는가? 설사 있다 하더라도 유능하진 않았을 게다.
정치는 인간의 야수적 속성을 다루는 영역이다. 어느 영역치고 그 속성과 무관하랴만, 본격적인 권력투쟁이라는 점에서 정치를 따라갈 수 있는 영역은 없다. 경제 영역의 투쟁도 무섭긴 하지만, 그쪽은 이익 중심이기 때문에 이익과 더불어 이념·명분 등이 칼춤을 추는 정치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는 경제계의 거물이었던 정주영과 김우중이 정치판에 뛰어들거나 기웃거리다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가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영역에서도 후안무치가 경쟁력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의 삼성과 현대차 사태를 보라. 왜 잘나가는 재벌그룹 총수일수록 후안무치의 농도가 강한가? 그건 평소 후안무치했기 때문에 그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답으로 대신하면 되겠다.
주변을 둘러보기 바란다. 후안무치 자질이 비교적 뛰어난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게다. 그들에겐 좋은 점이 많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교섭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비교적 탁월하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이미 권력을 가진 쪽은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난 즉, 같은 선수를 알아보고 요청·요구에 응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뻔뻔함'은 새로운 철학적 사유 양식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후안무치를 자각할 수 있는가? 없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싹튼다. 자신이 후안무치하다는 자의식을 갖게 되면 후안무치를 구사하기 어려워진다. 후안무치를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하는 기분으로 체화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람의 상식적 판단을 넘어서는 일을 해도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같은 후안무치 자질을 가진 측근 인사들에게 의존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대중은 묘한 동물이다. 그들은 정치인의 후안무치가 필요악임을 흔쾌히 인정하면서도 어느 순간 돌아서서 후안무치하다고 욕을 한다. 언제 어느 경우에 그러는지 그건 확실치 않다. 그들은 “해도 너무하네”라고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서부터 너무한 건지 그들 자신도 답을 갖고 있진 않다. 그래서 정치는 늘 대중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임이 된다.
1920년대 후반 미국 마피아 조직을 주름잡았던 알 카포네는 “상류사회란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고 이익을 만끽하려는 뻔뻔스러운 놈들로 이 ‘훌륭한 사람들’은 합법적인 공갈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폭이 감히 그런 말을 해? 아니다. 상류층의 후안무치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조폭도 당당해진다. 일반 대중인들 무얼 망설이랴. 민주화 이후 한국인에게 나타난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는 후안무치의 일상화다.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의 반열에 올랐다. 보수파들은 그게 민주화 탓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게 아니다. 후안무치의 엘리트 독식 체제에서 대중화 체제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 일단 긍정적 변화로 보는 게 옳다.
그건 마치 아줌마들의 후안무치를 비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남존여비 가부장 체제하에서 처녀 때까지 억눌려왔던 후안무치 욕구가 애 낳고 폭발하면 원인부터 따져보는 게 옳다. 나는 후안무치해도 좋지만 너는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후안무치의 평준화는 사회 정의다.
독일에 페터 슬로터다이크라는 괴짜 철학자가 있다. 이 사람은 ‘위선적 계몽주의’를 질타하면서 ‘뻔뻔함’을 새로운 철학적 사유 양식이자 실천 항목으로 제시했다. 이론과 명분대로 살려면 위선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표현 양식이라 할 뻔뻔함을 발휘하면서 문제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깨닫기 어려운 심오한 뜻이 있겠지만, 후안무치를 다시 보자는 메시지만큼은 그대로 접수해도 좋겠다. 사실 한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돼온 것이다. 한동안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이 기(氣) 살려주기 운동’도 기실 따지고 보면 이 후안무치한 세상에서 내 새끼 경쟁력 키워주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
지금 이 후안무치 이야기를 행여 냉소로 이해하면 크게 실수하는 거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문법에 대해 탐구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이 이대로 좋은가 하는 걸 정색을 하고 살펴보자는 뜻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혁명의 순수성은 2주일을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운동이나 개혁의 순수성은 얼마나 갈까? 2개월? 2년? 얼마이건 그 주체는 모른다. 왜 그런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주체에겐 후안무치 자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기엔 이미 순수하지 않은데도 자신은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걸 무슨 수로 막으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농민운동가 천규석이 라는 책에서 “지나고 보니, 60~80년대까지의 그 풍성했던 민주화운동이란 것들도 잘난 놈들에게는 입신출세와 물질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전리품을 동시에 거두어갈 기회로 활용되었다”고 독설을 퍼부었을 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민주화운동을 한 인사들은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계속 밖에서만 떠돌아야 하고, 공직은 운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독식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천규석이 말하고자 한 건 운동가들의 공직 진출 자체가 아니라 공직 진출 이후 보여주는 모습일 거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글과 말로만 운동을 했던 지식인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혹 나는 나의 글을 입신출세와 물질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든 지식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후안무치는 정치인들만의 무기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고종석은 언젠가 ‘글쓰기의 무서움’이란 글에서 “자신의 발언을 자신의 발 밑에 조회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는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모두에게 긴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자신이 실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옳은 메시지라면 널리 전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반론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로 인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너무 심각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한국 사회엔 ‘담론의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 유치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구체적 각론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이야기는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적어도 수준의 잡지에선 ‘부국강병론’이니 ‘소득 2만달러론’이니 하는 것은 경멸받기 딱 좋은 보수파 담론으로 통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멸이 과연 정직한 것인가에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국가주의·민족주의는 무조건 때려야 진보고 품위 있는 지식인으로 통하는 이 풍토가 언행일치를 전제로 한 정직성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잠시 를 보자. 이 신문은 자주 문화적으론 ‘좌파 담론’의 상품화에 열을 올린다. 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극우성을 위장하려는 술책이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을지 모르겠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그게 그 신문 독자들이 원하는 상품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가?
"잘 살아보세”는 “잘 써보세”로 바뀌고…
뫚맏맒봉 법칙’이란 게 있다. 미국에서 학생운동권 출신이지만 일류대를 나와 좋은 직장을 갖게 된 이른바 ‘보보스족’이 정치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과거 운동권 시절과 비교해 갖게 되는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문화적으로만 진보 냄새를 피우는 걸 말한다.
과연 의 독자들은 독자들과 얼마나 다른가? 당신의 진보성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성을 지키고 있는가? 물론 삼위일체를 고수하는 게 옳다거나 바람직하다는 법은 없다. 얼마든지 각기 따로 놀 수 있다. 다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일관된 경향성에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김대중 정권은 물론이고 노무현 정권이 경제적으로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성장주의 패러다임’이 과연 한국인 다수가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인가?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사라진 유물이 아니다. “잘 써보세”로 바뀌었을 뿐이다. 민주시민의 윤리는 소비자 윤리로 대체되었다. 소비자가 악덕 상인에 분노하듯, 민주시민은 악덕 정치권에 분노하는 정도의 윤리는 갖고 있지만, 단지 거기까지뿐이다. 민주주의는 소비주의와 결탁했다. 민주시민은 그 이상의 선은 넘으려 하지 않는다.
일부에 지나지 않을망정, 그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매년 해외여행을 하고 중형차를 굴리고 골프를 치기도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은 재벌 총수들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은 돈으로 이른바 ‘대학 개혁’을 하고 있지만, 그것에 저항하진 않으며 그로 인한 수혜만 누린다.
이런 지적은 부당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았던 미국의 노엄 촘스키가 짜증을 냈듯이, 유치하다고 짜증을 낼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논점은 지식인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의 담론 생산이 현실 세계와 맺는 관계다. 그 괴리가 클수록 지식인의 ‘상징 자본’은 튼실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세계를 바꾸는 데 어떤 실천력을 갖는가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제도와 법의 차원에선 한국 사회는 개혁을 할 만큼 했다. 물론 할 게 더 남아 있고 앞으로 더욱 해야겠지만, 제도와 법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남아 있으니 그게 바로 의식과 행태의 영역이다. 예컨대 정치판에선 ‘보스 정치’가 거의 사라졌지만, 대학엔 건재하다. 학연주의와 파벌주의는 정치권 뺨을 치고도 남는다. 대학 내 선거 수준도 직업 정치판 선거보다 높지 않다는 이유로 관리권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빼앗겼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그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늘 사회를 향해서만 설교를 늘어놓는다.
정치권 동지들을 새삼 경외하다
자신의 후안무치에 대해 가끔이나마 자각을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글쓰기가 몹시 싫어지니까 말이다.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게 되면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언행일치를 하는 사람 위주로 글쓰기 시장이 물갈이돼 담론과 세상의 거리가 좁혀지고 그에 따라 실천력도 강해질 게 아닌가. 정치권의 후안무치 동지들에게 새삼 경외감을 갖게 된다. 그들에겐 이런 고민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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