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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일 수요일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 / 탈레반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원문]

이슬람 시아파/수니파

시아파(Shiis)와 수니파(Suunis)는 이슬람교를 양분하는 분파로, 현재 수니파가 전세계 10억 이상의 이슬람 교도들 중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교조 마호메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 후계를 둘러싸고 대립이 시작되면서 시아파가 생겨 둘로 나뉘었다.

마호메트가 죽은 뒤 아부 바크르, 우마루, 우스만, 알리를 정통 칼리프로서 승인한 대다수의 신자가 수니파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수니파는 마호메트의 후계자를 정통 칼리프왕조와 역대 칼리프왕조의 칼리프(계승자 ·대리자라는 뜻)로 본다.

시아파는 원래 예언자 마호메트의 정당한 후계자(칼리프)는 그의 사촌이며 사위인 알리(제4대 칼리프) 뿐이라고 주창하는 사람들, 즉 시아 알리(알리의 당파)를 뜻하였다. 시아파는 알리와 그의 직계후손 11명만이 정당한 후계자이며 무슬림 공동체의 최고지도자이자 종교지도자를 '이맘'이라고 주장한다.

즉, '수니'란 말은 코란과 함께 '마호메트의 순나(말과 행동, 관행)를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시아'는 '알리와 그 후손들을 따르는 사람들(시아트알리)'을 말한다.


■ 시아파와 수니파의 차이점

때문에 수니파는 코란을 영원하다고 보고 그 해석에 충실한 반면 시아파는 이맘을 마호메트에 버금가는 완전무결한 존재로 보고 그들의 코란해석을 신봉하고 있다. 이란에서 종교 지도자가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절대적인 정치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도 이맘에 대한 독특한 인식과 제도에서 비롯된다.

또 시아는 유일신 고백, 예배, 헌금, 라마단 중 금식, 성지순례 등 수니파의 5개 기둥 외에 지하드(성전)와 선행을 추가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 영토, 신념, 기구를 보호하기 위해 성전에 나설 수 있다고 한 지하드 개념때문에 시아파가 과격하다는 인상을 준다.


■ 각 이슬람 국가의 종교정책

현재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로는 이란(90%) 이라크(60%) 바레인(75%) 등이 있다.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임에도 집권층은 모두 수니파 출신이었고 바레인 역시 다수가 시아파이지만 집권층은 모두 수니파 출신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1979년 이란 혁명에 자극받은 이라크의 시아파는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으나 곧 진압됐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시아파는 과도통치위원회 다수를 점하게 되었으며, 2005년 1월 실시된 이라크 총선 결과 시아파가 국정을 주도하게 되었다.

한편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고 있던 무장세력인 탈레반은 수니파가 주축이 되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후 축출된 시아파는 북쪽을 근거지로 반군(북부동맹)을 결성, 탈레반 정부와 내전을 벌여왔으며 수많은 난민이 발생, 파키스탄과 유럽을 떠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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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백과사전 [원문]
탈레반

1996년∼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고 있던 지배세력이었다. 그러나 2001년 탈레반이 비호하고 있던 빈 라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미국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대해 미국이 아프간을 보복공격함에 따라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었다.

「구도자」「학생」등을 의미하는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고 있던 회교 원리주의(수니파) 무장세력이다.

최고지도자인 모하마드 오마르가 94년 파키스탄 접경 칸다하르주에서 과격 이슬람 학생운동가들을 규합해 조직을 결성했다. 탈레반은 수니파 근본주의자들이 주축을 이루며 지도부는 오마르를 비롯해 임시정부의 '6인위원회' 의장인 물라 모하마드 랍바니 등 과거 대(對) 소련 무장독립 투쟁의 베테랑들로 구성됐다.

탈레반은 이슬람 이상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벌여왔고 1996년 랍바니 대통령 정권을 수도 카불에서 몰아낸뒤 아프가니스탄 전 국토의 95%를 장악하며 실질적인 지배세력이 됐다.

이들은 전체 노동인구의 40%인 여성의 고등 교육과 취업, 자유로운 외출을 규제하는 등 극단적 원리주의를 추구한다. 여성들에게 눈만 보이는 차도르의 일종인 '부르카'의 착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면 돌로 쳐죽이는 잔인성이 종종 외신에 보도돼왔다.

98년에는 미 대사관 폭탄테러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회교원리주의를 통치이념으로 강조, 미국 등 서방과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 2001년 3월 탈레반은 우상화 배격운동의 일환으로 모든 불상을 파괴하도록 명령하여 유엔으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바미얀 석불'을 파괴하여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후 축출된 시아파는 북쪽을 근거지로 반군(북부동맹)을 결성, 탈레반 정부와 내전을 벌여왔으며 수많은 난민이 발생, 파키스탄과 유럽을 떠돌게 되었다.


■ 탈레반 붕괴

2001년 탈레반이 비호하고 있던 빈 라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미국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대해 미국이 아프간을 보복공격함에 따라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고 말았다.

미국의 탈레반 보복공격 이후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2001.11.27 독일 본에서 '아프간 정파회의'가 개막되었으며, 이 회의 결과 12월 5일 향후 6개월간 아프간을 통치할 29명의 과도정부가 구성되었다.

이에 따라 파슈툰족 지도자 하미드 카르자이가 과도정부 수반으로 추대됐으며, 북부동맹이 외무.국방.내무장관 등 내각의 핵심요직을 맡게 되었다.

2007년 7월 23일 월요일

탈레반 피랍사건, 교회는 왜 비하되는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위험수위’입니다. 인정많은 한국인들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냉혹한 반응을 보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출은 해와야겠지만, 구출 비용은 세금을 쓰지 말고 그들에게 받아내야 한다”거나, “자기들 소원대로 죽게 됐는데(순교), 내버려둬라”는 반응, “이슬람 사회에 기독교 선교하러 간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반응 등, 기독교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네요.

피랍된 이들이 교회 차원에서 무모하게 봉사활동을 위해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탈레반’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피랍된 당사자와 교회를 비난하고 있는겁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일상에 만연한 일부 ‘교회’들의 폭력적인 선교 방식과 횡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 본질적으로 살펴본다면 개신교 신자와 비신자의 간극이 더 이상 멀어질 수 없을만큼 멀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개신교 관계자나 신자들이 모두가 폭력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이들의 좀 더 건강하고 상식적인 신앙생활이 더 부각돼, 간극이 좁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개신교, 왜 그들은 ‘개독교’라는 표현의 대명사가 됐으며, 이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더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걸까요?

교회도 ‘먹고 살아야’ 하다 보니

혹시 집에 계신 분이라면 창문을 한번 열어보시길 바랍니다. 고층아파트 사시는 분이라면, 좀 귀찮더라도 더더욱 권해봅니다. 자, 뭔가가 ‘많이’ 보일겁니다. 뭘까요? 예, 교회의 십자가일겁니다.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게 교회입니다. 비교적 큰 교회도 많지만, 영세한 교회도 많습니다. 자,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게 교회입니다.

이게 본질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들으면 화날지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만, ‘종교’도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 숱한 교회들 틈에서 더 많은 신자들을 모아 헌금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겠죠? 이때부터는 경쟁입니다. 더 많은 전단지를 뿌려야 하고, 대중교통수단에서도 남이 듣던말던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려야 하고,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려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적·종교적 책임에 앞서 출석교인을 늘리는 일이 우선이 돼버렸습니다.

그 많고 많은 교회 중에서 1/10만 이런 일에 나서도, 우리가 자주 겪는 ‘폭력적인 선교방식’은 일상이 될 수 밖에 없는겁니다.

하지만, 종교란 ‘강요’하고 ‘세뇌’한다고 해서 선택되는게 아니죠? 가끔, 그렇게 ‘세뇌’돼 집문서까지 갖다바치는 분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관이 있고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걸 안다면, 이런 짓 자제해야 됩니다.

교회가 잊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의 다원성

기독교는 원래 선민의식이 강한 종교입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의 유대는 로마제국 치하에 있었습니다. 본래부터 선민의식이 강하고 종교적으로는 다소 독선적이던 유대인들과, 종교적으로 다원성을 추구했던 로마제국과의 충돌은 필연이었습니다.

그런 정세에서 활동했던 분이 예수였고, 실제로 내부논쟁 속에서 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외부의 압력에 대처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감정적인 프리미엄’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절대자가 된 것이고, 예수 역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 ‘감정적인 프리미엄’에는,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게 후대에 와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변질된 거죠. 앞서 이야기한, 대중교통수단 내의 ‘선교’도 ‘어린 양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사명’으로 받아들인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교회의 존재 목적 중 하나도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과 성장”입니다. 그 ‘나라’를 세우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머릿수’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의 위대함을 알린답시고 하는 짓이 결국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돼버린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입니다. 의지가 있는 분들끼리 알아서 믿으시면 됩니다. 괜히 남 눈살 찌푸리게 할 일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불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까지 보냅니다.

가톨릭을 대표하는 김수환 추기경과 조계종 총무원장이 손을 맞잡고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연출합니다. 그런걸 보면, 개신교의 일부 폭력적인 선교방식이 더 부각될 수 밖에 없는겁니다. 개신교, 이제 좀 더 ‘아름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일부 ‘정치목사’들의 준동

사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태생적으로 함께 할 수 없는 물과 기름같은 사이일 수도 있습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북한에서 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그러면서 ‘탄압’당해 월남한 분들이 많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되는데에도 교회 세력의 지원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 ‘한기총’이라는 개신교 극우파의 탄생과 성장은 그런 정서로부터 비롯되는겁니다. 누가 욕하든 말든, 이분들은 성조기 흔들면서 열렬한 반공을 표합니다. ‘한기총’은 이 정서를 활용해 성장한 것이고, 정치에도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이 ‘정치목사’들은 대형교회들의 담임목사들이 많고, 부패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형교회이기에 주목받을 수 없었고,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의 고발도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거기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까지 같이 생각해볼까요? 비신자가 바라보는 개신교의 이미지는 ‘부패집단’일 수 밖에 없는겁니다.

교회, 이제 그만 ‘자체정화’해야

앞서 이야기했듯이 결론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체정화’하는겁니다. 남들이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보고 결정하세요. 과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말입니다.

양심적으로 믿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싸우세요. 전체의 이미지를 먹칠하는 저 일상의 폭력과 싸워야만 합니다.

개신교도 원래는, 가톨릭의 ‘면죄부 남발’ 등의 부패에 반발한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했던 종파잖습니까? 태생 자체가 ‘부패와의 싸움’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있어 ‘부패와 폭력’과의 싸움은 숙명인 것입니다.

그 숙명을 알고, 자신의 양심을 믿어 싸운다면, 외부의 비신자들도 당신들에게 환호를 보내며 명분을 보내줄 겁니다. 어차피, 하나님이라는 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분이잖습니까?

그런 분을 믿으신다면, 비록 비신자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분’을 생각하며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당신들의 양심 속 하나님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저 일상의 폭력에 묻어가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양심의 힘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출처: 박형준 님 블로그 [원문]

2007년 6월 25일 월요일

신학과 과학 발달, 동서양의 비교

[현대물리학이 탐색하는 신의 마음 pp.102-104]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 과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성이라는 신의 선물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종교가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 '환원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는 선형물리계의 이해에 효과적이나 최근의 '전체론적 과학'에서는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동양 사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말하고 있다.

다른 데에서는 주로 부정적으로 언급됐던 두 가지(종교, 환원주의)가 서양 과학 발달의 주요한 원이라고 분석한 게 흥미롭다.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자연과학과 종교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아르눌프 지텔만)]
끝부분에 자연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삶의 방향제시로서의 종교의 역할로써 끝맺음을 한다. 자연과학이 또 하나의 형이상학인 종교에 미치는 영향, 즉 그 자체로는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형이상학이 그와 어긋나거나 동떨어져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얘기한다. 유물론적 관점이다.
그런데 철학과 종교의 관계는 무엇일까.

종교와 사이비 종교

[노자와 21세기2 p22] 에서는 (참)종교의 공통된 특성으로서 희생을 얘기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기엔 사이비 종교냐 아니냐는 사회에서의 역할로 구분해야지 교리의 진실여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창조론이 그르다고 증명된다해서 그 종교를 사이비라 말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종교 자체의 이익이나 신도들만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한다면 그건 사이비 종교이다. 종교에 대한 비판 또한 논리적, 과학적으로 맞느냐가 아니라 그 종교를 믿는 신도들에 대한 영향이나 사회적 활동에 대해서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무종교인만 가질 수 있는 관점인가, 아니면 다른 종교도 인정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은 가질 수 있을까. 만약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기독교의 창조론 등)는 믿지 않으면서 그 종교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도, 기독교를 예를 들면, 창조론은 믿지 않더라도 신의 존재는 믿어야겠지? 그런데 신이 존재가 없는 종교도 있나? 다시 말하면, 우주의 탄생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론(신이 개입하지 않는)을 세운 다음, 그것을 믿고 가치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것도 종교인가, 그냥 믿음인가? 결국 종교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해야겠다.

ps.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히면, 결국 종교는 인간의 극복할 수 없는 약점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특히 죽음이라는 한계)

스크랩)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한겨레]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국과 일본의 많은 지성인들은 왜 그토록 ‘종교적 전제왕국’의 환상에 쉽게 빠지는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수년 전 필자가 한국의 한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유독 눈에 띈 것은 학생회관 내 어느 방에 걸려 있던 ‘하늘과 땅’이란 현수막이었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로서 결례를 무릅쓰고 들어가서 인사를 청했다. 나중에 그곳이 어떤 신흥종교에 열정을 바치는 동아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모르는 새 종교가 여기에 있구나! 새로운 발견을 한 기분으로 필자는 그 학생들을 사귀었고 그 교주를 알현하기까지 되었다.

한 교주의 빌라에서 충격을 받다

굿당들이 많은 산에 위치했던 교주의 빌라에서 필자는 그날 충격을 받았다.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에 둘러싸인 교주가 ‘말씀’을 하면 “네, 선생님!”을 연발했던 신도들의 얼굴 표정도 “문선명에게 늙은이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 식구들은 젊은 피가 많아!”와 같은 ‘교세 자랑’도 충격이었다. 지금 그 교단의 정확한 명칭도 기억할 수 없지만, 전도 유망해 보이던 학우들이 왜 그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그 교단으로 가게 만든 이유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몇 개월 뒤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어느 종말론적 선교회의 선교사와 만난 일이 있었다. 1992년 10월28일이 되면 세계사가 끝이 나고 믿는 자만이 허공으로 들려 올라갈 수 있다는 예언을 위주로 설교하는 부부 선교사였는데 그 남편은 원래 대기업의 사원이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거쳐간 사람이 갑자기 광신으로 뭉친 소집단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뒤 1992년 10월28일 시한부종말론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읽었을 때 이장림 목사에게 현혹돼 전 재산을 바치는 등 극단적인 신앙 행위를 벌인 2만여명 중 공무원·교사·기업체 간부 등 고학력 중산층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이라도 비판 정신을 가진다면 곧 허구성이 드러나는 한 개인의 종교적인 환상을 고학력자들이 어떻게 절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동아시아의 ‘중산층 신형 신흥종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는 1995년 3월20일의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이었다. 이 가스 제조의 책임을 맡은 화학 석사나 옴진리교를 위해 러시아에서 무기 구입을 한 오사카대학교 출신의 젊은 건축가,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재판을 받았음에도 꾸준히 믿었던 도쿄대학교 박사과정 출신의 인류학자 등 젊은 지성인들은 어떻게 해서 “문선명과 창가학회(創價學會·일본의 대표적인 불교적 신흥종교)의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회장이 유대인 조직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일본인들을 말살하려고 한다”는 난센스를 믿고 대량 살인을 ‘정당한 방어’로 믿게 됐는가? 물론 일본 국내의 교도들은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의 극소수에 불과하며, 영계·환생에 대한 괴설로 유명(?)한 도쿄대 법학부 출신 오가와 류호(大川隆法)의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고학력 중산층 위주의 ‘신형 신흥종교’들도 수만명 이상의 고정 신도를 모을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상당수 대학생들이 한번쯤 옴진리교·행복의 과학 유의 말세론적·유사(類似)밀교적·카리스마적 리더 숭배 중심의 ‘신형 신흥종교’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고, ‘교주 말씀’이라면 범죄까지도 서슴지 않을 만큼 ‘개인 숭배’가 태심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윗 사람에 대한 맹종문화’가 토양

아시아에서 근대적이라 할 일본이나 한국에서 어떻게 해서 지성인들까지 빨아들일 수 있는 ‘전제왕국’들이 생겨날 수 있는가? 이 현상이 동아시아 근대성의 본질적인 문제들과 연관은 없는가? 근대 초기의 ‘고전적인’ 신흥종교- 예컨대 한국의 동학이나 일본의 천리교(天理敎)와 같은 민중 본위적인 종교운동- 들이 전통 질서의 밑으로부터의 와해와 대안적 미래의 열망을 반영했다면, 기독교·불교의 요소를 종말론·환생론에 자의적으로 갖다붙이는 식의 1970년대 이후의 ‘신형 신흥종교’들은 근대의 무엇을 반영하는 것인가? 일본이 제도적으로는 근대화됐지만 근대성의 기본 요소인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을 끝내 가져보지 못했다는 전후 일본의 진보적 사상계의 주역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96)의 뼈아픈 지적을 보자. 서구에서는 주체적인 개인의 탄생이 이루어졌다는 마사오의 의견에 그대로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도 아직도 끝까지 탈피하지 못한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메이지 모델’이 주체적 개인의 탄생을 극단적으로 방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설교문 테이프를 수시로 듣고, 옴진리교 소유의 공장에 가서 무보수로 일하고, 교주의 명령이 떨어지면 ‘배교자’들을 납치·살인을 했던 옴진리교 신도들의 행동 양식은 우리로서 끔찍할 뿐이고 이장림 목사 유의 ‘교주’들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은 바보로 보인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계 서열적인 폭력·착취, 패거리 집단 안에서의 ‘윗사람’에 대한 맹종이 과연 한국·일본 사회에서 드문 일인가? 물론 체육학과 교수의 지시에 따라 성적을 못 올린 후배에게 주먹질을 하는 선배나, 내용상 관계가 없더라도 자신의 논문의 제1주에서 꼭 지도교수의 글을 인용하는 대학원생도 ‘교주’의 의심 모를 하수인이 되려면 특수한 계기·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방모찌’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주류’ 사회로의 진출이 불가능한, 즉 개인과 집단의 ‘어르신’ 사이의 합리적인 횡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토양에서 ‘교주님’들이 번성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류' 집단의 물신주의·출세주의·형식주의에 질려버린 젊은 지식인으로서 늘 이탈의 동기가 존재하지만, 이탈이 곧바로 또 하나의 패거리로의 편입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악 속의 빌라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몰입하던 학우들이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이었을 듯하다. 상황을 더욱더 왜곡하는 것은 한국의 경우 일반적인 종교집단의 구조적인 문제들이고, 일본의 경우에는 전전(戰前) 민족주의의 청산의 미흡성이다. 즉, 일반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를 비판하기는커녕 평등한 상대로서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에서, 어떤 경우에는 권위주의가 지나친 일반 성직자와 사이비 ‘교주’ 사이에서 구별조차 하기 힘들다. 그리고 유대인의 지하조직과 미국, 영국의 왕실 등이 일본을 말살하려고 하고 그들과 연결돼 있는 일본의 국제적 명망가들이 다 ‘유대인’들이라는 아사하라의 가르침이나, 일본의 ‘신인류의 중심’에 놓인 수많은 ‘신형 신흥종교’의 교리는 겉으로만 과거의 국가주의를 ‘극복한’ 오늘의 일본에서 민족주의적 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린이와 어른을 동등한 인격체로

후기 산업사회의 무의미한 생산·소비의 순환에 식상하여 허무감을 종교적인 모색으로 메우려는 중산층 고학력자 젊은이들의 고뇌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중심부나 준주변부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리나 ‘참 나’로부터의 소외의 진정한 이유인 자본주의적 체제의 기본 문제들이 무시되고 담론의 구조가 전적으로 종교적 차원만으로 전환되는 한 이 모색이 생산적 ‘소외 극복’으로 되지 못하고 기존의 구조로 계속 회귀된다. 다만, 서구·미국의 경우에는 요가나 불교, 탄트라(성적 요소가 강한 힌두교적·불교적 밀교) 등이 결국 일종의 ‘종교적 소비품’으로 전락되어 핵화된 소비주의자들의 입맛에 단순히 맞추어지는 반면에, 소외라는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가 집단주의·자율적 개성의 미발달과 중첩되는 한국·일본 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라는 위계질서적 구조를 벗어나게 하는 개체들이 곧 전체주의적 성격이 훨씬 강한 ‘비주류’ 교단으로 몰입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양쪽의 근대화 과정이 달랐던 만큼 자본주의의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擬似) 탈주’의 구조도 다른 것이다.

물론 종교적 모색이 시장 논리에 편입된 구미 지역을 흠모할 일은 없지만 개인이 집단 속에서 용해되는 만큼 극단적인 폭력이 저질러질 가능성이 있는 동아시아형 ‘신형 신흥종교’들의 문제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린이와 어른이 기본적으로 동등한 인격체로서 취급됨으로써 개인으로서의 독립심과 자긍심을 길러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참고 사이트 1. 옴진리교 관련 사이트 링크의 모음: http://square.millto.net/~sacca/
2. 옴진리교의 후신 단체인 ‘알레프’의 사이트: http://www.aleph.to/
3. 아사하라 ‘예언집’의 일부. ‘일미 결전(決戰)’을 예언하는 것은 태평양전쟁 시대의 세계관을 방불케 한다: http://www.geocities.co.jp/WallStreet/1733/aum/seppou-1.html
4. 이탈자 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영생교’라는 한 신흥종교의 사이트. 그 교주 조희성이 “전지전능한 구원자”로 불렸다: http://www.victor.or.kr/
5. 옴진리교에 대한 영문 정리와 영문 링크 모음 :
http://religiousmovements.lib.virginia.edu/nrms/aum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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