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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5일 일요일

깊고 느린 역사 -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pp.183-192]

책에서 말하는 페르낭 브로델의 역사라는 학문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역사적 시간을 다층적으로 생각: 사건사, 국면사, 구조사
    - 사건사: 어느 시대에 어떠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다식의 서술, 연대를 중심으로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
    - 국면사: 사건들보다는 더 장기적이고 불변적이 요소, 이를테면 경제, 국가, 사회, 문명 등의 주제 분석. 여기에서 다루는 시간은 사회적인 시간, 즉 천천히 움직이며 반복되는 시간
    - 구조사: 인간을 둘러싼 주위 환경과 연관된 역사. '거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 있는 역사'. 예를 들면 산과 바위, 강과 바다, 흙과 공기의 변천사 등. 지리적 시간.

  • 일반적인 시불변의 구조주의가 아닌, 기원과 생성 과정을 지니며, 너무나도 느리게 변하는 '구조'.
    - 역사에 대한 한계 또는 제약
    - 구조사: 가장 근원적인 역사 - 가장 중요한 역사에서부터 가장 피상적인 역사로, 가장 긴 호흡의 장기지속에서부터 가장 빠른 단기지속으로
    - 지리적 환경만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사실, 생산성의 한계 등 복잡한 요소도 포함 - 역사학, 지리학, 경제학, 사회학 등 인문, 사회과학의 여러 학문 분과들이 두루 동원되어야 진정한 역사 서술 가능: 학제적(學際的) 연구
책의 이 장을 읽으면서 저자의 다른 책 '남경태의 역사 오디세이 시리즈'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그 책들에서 계속 강조되는 역사에서 지정학적 조건의 역할이 여기서 말하는 브로델의 관점에서 나온 것 같다.

개체 단독이 아닌 구조 내에서의 역할로서 인간을 분석하는 구조주의처럼, 인류의 역사 또한 그 단독으로서가 아닌 주어진 환경 내에서의 필연으로서 해석해야 한다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두 가지의 '구조'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구조'란 분석 대상과 상관없이 미리 주어지는 조건?)

(잘은 모르지만) 구조주의도 그렇고 여기에서 말하는 구조주의와 결합된 역사도 그렇고, 인문, 사회과학에서 '(구조의 가정 하에서) 자연과학과 같은 (필연적) 법칙의 도출과 그를 이용한 해석'을 시도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이 맞다면 구조 자체를 다루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결국 계층적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2007년 6월 28일 목요일

책) 소설이 아닌 삼국지

최명, 소설이 아닌 삼국지, 조선일보사, 1997.

인물별, 에피소드별로 구성한 소설 삼국지연의에 대한 평전.

저자인 최명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라 한다. 책의 성격과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책의 목차를 정리해 보자.


천하 대세의 순환 / 조조와 진궁 / 영웅론 1,2 / 공명론 1,2,3 / 봉추론 / 선비론 / 주유론 / 노숙론 / 관우론 1,2 / 미인론 1,2 / 쪼다론 / 장수론 1,2 / 모사론 / 사마의론 / 정통론

이처럼 책의 목차만 봐도 책이 어떤 내용인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본 국가의 분열과 통일이라든지 정통이란 무엇인가처럼 역사의 관점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물들에 따라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내용 중에서는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의 인물이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 밖의 중국역사, 고전이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도 적절하게 잘 섞여 내용의 다양성과 충실함을 높혀준다.

그리고 삼국지에 대한 학술적 분석이나 본격적인 비판을 목적으로 쓴 책이라기 보다는, 마치 삼국지를 읽은 친구와 함께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화장실에서 잠깐잠깐씩 읽기도 좋은 책이랄까. 어느 정도 삼국지의 전체 줄거리가 잡혀있는 상태에서 읽으면 새록새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의 책인 것 같다.

책의 저자는 삼국지를 매우 좋아해서 수없이 읽었다 하며, 정음사 판(나는 읽어보진 못했다)을 기본으로 이 글을 썼다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 등에서 나오는 '유비는 쪼다이다' 등의 여러 의견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여러 번역본을 참고한 듯 하다.

여튼 삼국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덧붙혀 보면, 우선 개인적으로는 김구용씨가 쓴 삼국지를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삼국지(많이 알려져 있는 이문열 삼국지 등)들을 읽으면서, 과연 원본은 어떨 것인가 궁금해했다. 어쭙잖게 평역이랍시고 번역자에 의해 변형된 삼국지들을 읽다보면 어떤 것이 원래 내용인지 알 수가 없게된다. 물론 삼국지의 현대적인 해석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예를 들어 조조에 대한 재해석이라든지). 하지만 우선은 변형되기 전의 것을 알아야 이런 것들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중문학자인 김구용 씨가 직접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삼국지를 읽으며, 그동안 내가 찾던 삼국지구나 하는 것을 느꼈었다.

또 한가지,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사와의 비교라든가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소설 내부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므로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교훈을 찾으려고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교훈도 얻을 수 있겠지만, 소설은 재밌지고 읽는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번역가가 '이것은 정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임의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앞에서 삼국지들의 평역에 대해 별 가치를 인정치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어짜피 소설가지고 너무 심각한 게 싫다고나 할까).

이런 관점에서 삼국지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재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재미이다. 용맹스런 장수들, 뛰어난 모사들,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싸우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활약하는 난세에서, 주인공인 유비 삼형제들이 정통성을 등에 업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 삼국 중의 한 나라를 성립하는 과정이 주요 재미라 생각한다(말하자면 이 밖에도 더 많지만 삼국지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이고 따로 글을 쓰는 게 좋겠다).

다시 '소설이 아닌 삼국지'로 돌아가 보면, 여러 에피소드들은 어짜피 삼국지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후흑학(厚黑學)'에 대한 내용이 흥미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영웅이 되려면 자기의 본심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하긴 했지만, 성공하려면 남을 속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처세술도 남을 속이는 것도 싫어하지만, 살아가며 가끔은 이 말이 뜻하는 것을 경험하고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이러한 현실의 답답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속에서는 아무리 치열하고 삭막하더라도 어짜피 소설이니까.

어찌 쓰다보니 이 책의 유쾌한 분위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방금 말한대로 이 책은 정말 유쾌한 책이다. 친한 친구와 삼국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2007년 6월 23일 토요일

동양에서의 왕조 교체의 이유

[종횡무진 한국사 (하) pp. 35]

농경문명을 중심으로하는 동양적 왕조가 일정한 패턴을 가지며 계속적으로 교체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토지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기존의 토지 소유를 무효화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왕조의 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체된 토지제도가 그 효력을 발휘하는 동안에는 왕조도 잘 나가다가, 그 효력이 다하는 중기 무렵에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고 그 영향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때 왕조가 교체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예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분석 중의 하나인 것 같다.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5.18이 폭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아 양심이 있느냐?

개봉 전의 기대치를 보려고 왔건만, 이런 영화를 왜 만드느냐, 5.18이 모래시계나 기타등등 많이 만들어졌는데 돈벌려고 또 만드냐, 폭동을 미화하느냐 등등등 개쓰레기만도 못한 글들이 수두룩하구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독재정부가 쿠데타를 인정 못하는 주민을 학살한 것이다. 그리고 더 참혹한 사실은 내가 대학생이 되기 전에 5.18이 뭔지도 얼마나 죽었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깡촌 시골학교에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이 외우라는 것은 열심히 외웠고 필요없다는 것은 한 자도 읽지 않았다. 아프리카 여러나라의 주요 수출품을 외우고,수천년전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의 년도를 외웠다. 땅속 광석들의 종류를 구분하고, 농업시간엔 젖소나 돼지의 임신기간도 외웠다. 하지만 내가 아기일때 이나라에서 수백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다쳤다는 역사는 말하지 않더라.. 폭동인지 투쟁인지 내가 판단할 일인데 나이든 국사선생님은 알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셨나 보다. 고교졸업후 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당시 맞아가며 수년동안 외웠던 암기사항들은 전혀 기억에도 없지만, 대학신입생때 잠깐 배운 5.18의 슬픔은 내게 지식으로 남았다.

요즘도 많은 이들이 북한을 욕하고 일본을 욕하고 남미,아프리카를 비웃는다. 북한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고, 일본은 타국을 괴롭히고도 반성이나 사과할 줄 모르며, 아프리카,남미는 끝없는 내전으로 서로를 죽여가며 기아에 허덕이는 한심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웃음과 비난을 날리는 사람들 중에 더한 인간들이 있다.

북한이나 일본으로부터 자신과 국가를 지켜달라며 믿음과 세금을 보냈지만, 주적 김일성과 오십보 백보인 대머리 인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오히려 지켜야 할 대상을 죽이는 일을 벌이고도 반성을 모르는 인간들이다.

북한을 동족을 죽인 빨갱이라면서 자기도 동족을 죽이고 일본이 제대로된 사과를 안한다면서 그들은 사과조차도 없고 지금도 빨갱이폭도이라 매도하며, 제3세계의 가난한 내전국을 비웃으며 우리나라도 그런 참혹한 살육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을 욕하고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바라기 전에 우리부터가 당당해야 하지만, 친일파와 군부의 남은 찌꺼기들은 끝까지 똥칠을 하고 있다.

더이상 폭동이나 간첩들의 음모니 떠들어서 다른 나라들이 비웃을 추잡한 짓거리를 하지말자. 이건 아이들에게 숨기고 이웃나라에 숨기고 자신에게도 숨길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무력과 폭압에도 죽음으로 맞선 자랑스런 역사다. 다른 나라같으면 자랑할 역사를 스스로 지우고 깍아내리고 욕하기 바쁘니 얼마나 추한가. 일본이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문제나 난징학살을 지웠다고 욕하기 전에 우리의 역사나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스스로의 과오를 청산하지 못하는 민족이 타민족의 사과를 바라는 건 넌센스다. 독일은 학살자로서의 과거를 눈물로 사과하고, 파시즘에 반대하다 고문과 노역,살인으로 숨진 열사를 기리며, 경제적 마이너스를 알면서도 통일을 이룩했다. 일본이 독일처럼 못한다고 욕하기 전에 우리부터 독일의 장점을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은 물론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도 억압과 파시즘, 군사독재, 이념의 충돌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탈이데올로기로 발전해 가는데, 아직도 암흑시대를 그리워하고 과거를 조작하기 바쁜 쓰레기들이 한국에 발로 차일 정도로 넘쳐난다는게 정말 부끄럽고 답답하다.

의경복무시절 상관이신 경찰관 중에 특수부대원으로 광주에 계셨던 분이 있었다.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걸 꺼려하셔서 자세한 얘기는 못했지만 네이버의 쓰레기들처럼 폭도니 빨갱이니 하는 소리는 없더라. 그 자리에서 피흘리고 동료가 죽어가는 현장에 계신 분도 말이 없는데, 빈깡통이 요란하다고 경험도 지식도 인격도 모자란 놈들이 더 설치는게 아닌가 한다.

40대면 불혹이고 50이면 지천명의 나이다. 인터넷 익명성의 편의아래 개똥보다 못한 지저분한 생각들을 배설물처럼 쏟아내지말고, 인간적인 글들을 남겨서 인생의 후배들을 감동시키는 건 못하는가?

이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은 분들이시여... 누군가들 비난하고 깍아내리고 욕하는데 남은 인생과 열정을 쏟기에는 아까운 시간이 아닌가? 죽을 때까지 누구를 비하하고 당신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분노해서 자신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건가? 기성세대로서의 존경을 나이로만 받으려 말고 쌓여진 주옥같은 지식과 인생의 철학들로 받으려 노력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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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격양된 감정으로 쓴 두서없는 글이 메인리뷰에 오르니 많이 쑥스럽습니다.

지우고 싶은 생각도 들고 과격한 표현들을 고치고 싶기도 하지만 왠지 자신을 속이는 듯 싶어서 그냥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역사는 외우는게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가기위해 공무원이 되기위해 억지로 외워야 하는 암기사항도 아니어야 하며, 자신의 해박함과 암기력을 자랑하기 위한 지식이 되어서도 안되죠.

이순신장군도 자신의 이긴 전투의 횟수가 몇번이고 대첩들의 순서와 위치, 격파한 일본의 함선이 몇척인지를 달달 외우며 암기하기를 바라시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기를 원하시지도 않겠죠. 다만 자신과 조선의 민초들이 격은 고통과 맞써 싸운 용기들을 가슴속에 담고 있기를 바라리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5.18의 열사와 희생자들도 자신들이 영웅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진 않으리라 생각하네요. 다만 그들의 용기와 마지막까지 잃지 않았던 희망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리라 믿습니다.

그날의 광주에 있었던 민간인도 시민군도 군인도 모두가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혼돈과 공포, 슬픔과 희망을 지금의 후세들과 비경험자들이 느끼지도 완전히 알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매일같이 기억하고 공부할 수도 없죠. 하지만 절대로 잊지만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네이버 영화리뷰에 와서 멋진 글, 재밌는 글, 웃기는 글들을 찾으며 영화의 오락성을 많이 추구했고 장난같은 댓글과 리뷰를 가끔씩 쓰면서 혼자 좋아하며 여흥처럼 이용했었네요.

하지만 "화려한 휴가" 에서는 그런 오락과 재미만을 추구할 수는 없었고 결국 타인들의 독설을 독설로 대응하는 미숙함을 보이며 제가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적었습니다.

쪽지까지 보내주신 어느 분의 말씀처럼 "화려한 휴가"가 역사와 진보는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는 걸,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걸 보여줬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왜곡된 현대사와 과오들이 수정되고, 서로를 미워하고 새로운 갈등을 만드는 그릇된 사회구조가 사라질 수 있도록 새로운 세대인 우리들이 지역과 정치관을 넘어서 서로 노력했으면 합니다.

(많은 추천과 댓글 감사드리며. 다른 역사관과 정치관을 가지신 분들을 심하게 모욕한 점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출처: 네이버 영화 네티즌 리뷰 natural200 님의 글 (관련영화: 화려한 휴가) [원문]

2007년 6월 20일 수요일

“이순신동상이 이순신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

창원대 도진순 교수

(사진: 4월28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을 앞두고 충남 아산자율방범연합대원들이 충남 아산 신정호 국민관광단지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척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크게, 더 높게만 세워놓은 이순신 장군 동상이 오히려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막고 있다.”

창원대 도진순(사학과) 교수가 19일 오후 경남도의회 회의실에서 도의회 선진교육문화연구회(회장 이유갑)가 마련한 포럼에서 '과거속의 미래 찾기:남해안 시대와 충무공 이순신-동북아 해양평화벨트 구축을 위한 시론'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면서 서두에 강조한 말이다.

도 교수는 전국적으로 인간적인 내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높게, 크게만 세워놓은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에서는 난중일기 곳곳에서 나타난 이충무공이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낸 고통과 전쟁에 대한 고뇌, 각종 질병 등의 모습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수병의 주요 무기가 활인데도 활을 든 이순신은 전혀 없고 천편일률적으로 칼을 든 이순신만 있다고도 꼬집었다.

이에 비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에서는 사람 그 자체보다 생각이 보이고 영-프 전쟁 당시 도시를 구하기 위해 교수형 집행지를 향해 걸어가는 시민들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고 도 교수는 지적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임란 당시 일본 장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고 좌충우돌형으로 그리는 것 또한 당시 일본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의 막강한 전투력을 오판할 수 있도록 한다고 도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이순신을 이런 식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조총과 일본, 세계를 보지 못하게하는 것은 물론 당시 민중과 조선의 현실,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망각하도록 하고 있다"며 "도가 추진하고 있는 이순신 프로젝트도 1천400억원을 들여 다시 이순신만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 교수는 이어 남해안 일원에 흩어져 있고 제각각 관리되고 있는 임진왜란 유적지와 방치되고 있는 왜성 유적지, 러.일전쟁 유적지, 식민 유적지 등을 묶어 동북아 국제평화와 교류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해양 역사공원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했다.

그는 또 일본과 중국의 전쟁 유적지와 연계해 크루즈 투어를 실시하는 방안도 내놓고 궁극적으로 한.중.일의 전쟁 관련 유적과 평화공원 등을 묶어 '동북아 해양평화벨트'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도 교수는 "자신이 아닌 타인, 선인이 아닌 악인, 영광이 아닌 치욕, 영웅이 아닌 범인(凡人)의 유적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할 것인가가 화두"라며 "함부르크의 반파시즘 기념관과 일본 오키나와(沖繩) 평화공원의 사례처럼 치욕의 역사는 없애는것이 아니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영국 런던 빅토리아 타워 가든에 있는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위키피디아 이미지)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이란?

1884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인 칼레시의 시장으로부터 1347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영국에 시 전체가 포위되었을 때 도시를 구한 영웅들의 조각상 제작을 의뢰받았다.

전쟁 당시 칼레는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에 버텼으나 도시 절멸의 위기 앞에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영국왕 에드워드3세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도시 대표들의 목숨을 요구했다. 불안에 떤 칼레 시민들 중에서 자원자가 나섰다. 칼레 최고의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였다. 이후 칼레의 지도자와 귀족들이 줄줄이 뒤를 이어 자발적으로 나섰다. 모두 6명의 의인이었다. 시민을 위해 스스로 희생에 나선 이들이 칼레를 구했다.

로댕은 숭고한 역사를 담은 작품 완성에 10년이란 세월을 투자했다. 칼레 시민들은 거장 로댕의 손길이 칼레와 그 시민들을 구한 ‘영웅’을 용감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조각상으로 나타내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로댕이 완성한 작품은 칼레 시민들의 기대와 달랐다. 도시의 함락을 앞두고 목숨을 내놓으러 나선 6명의 인물은 공포와 고뇌에 가득차 있었다. 영웅이 아니라,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숙인 채 고독과 공포에 처해 고뇌하는 사람들이었다. 로댕은 6명의 인물들을 제각각 흩어지게 배열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 속에 인물마다 고유한 표정과 움직임이 살아 있게 만들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연합


출처: [한겨레신문 2007-06-19 오후 07:30:30]

2007년 6월 19일 화요일

역사 서술 방법의 종류

우선 역사서의 편찬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형식이 있었다 한다.

역사 서술 방법 - 기전체, 편년체, 기사본말체, 강목체

편년체(編年體): 시간 순으로 서술하는 방법 (조선왕조실록,고려사절요)
기전체(紀傳體): 사마천의 사기가 기원, 본기(왕의 행적), 세가(제후의 전기), 연표(연대기), 지(사회, 경제, 문화, 제도), 열전(신하의 전기) 등으로 나누어 서술, (삼국사기,고려사)
강목체(綱目體): 성리학적 사관을 바탕으로 역사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구분하고, 강(큰 줄거리)과 목(자세한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는 형식, (동사강목)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법 (연려실기술)

기전체랑 편년체는요 역사를 서술하는 한가지 방법인데요. 기전체는요 역사사실을 서술할 때 본기(本紀) ·열전(列傳) ·지(志) 등으로 구성하여 서술하는 역사서술의 체재입니다. 한 왕조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하여 여기에 속한 신하들의 전기 ·통치제도 ·문물 ·경제실태 ·자연현상 등을 분류, 서술하여 왕조 전체의 체제를 이해하기에 편한 역사서술이므로 중국 ·한국의 정사체제로서 자리잡았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조선시대 관찬사서인 《고려사》, 그리고 사마천의 《사마천 사기》가 그 예입니다.

그리고 편년체는요. 연월(年月)에 따라 기술하는 역사편찬의 한 체재입니다. 일기처럼 시간순서에 따라 써내려 가는 방법이지요. 기전체형식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이러한 기술방식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후한대순열편저의 《한기》에서부터입니다. 그후 역대로 단대사적 편년의 역사서가 작성되어 왔으나, 북송의 사마 광에 이르러 비로소 통사로서의 《자치통감》이 편찬되었으며 이를 계승하여 이도의 《속자치통감장편》 등의 우수한 편년체의 사서 편찬이 계속되었고, 연월에 따르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기사의 분단을 보충하기 위한 방식으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형식의 사서도 편찬되었답니다.
(출처: 멋쥔넘(csj8563) 님의 블로그)


통사와 분류사

그리고 통사와 분류사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우선 통사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고, 그 반대말인 분류사는 사전에는 없었으며 네이버 지식iN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통사(通史): [명사]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 또는 그렇게 쓴 역사.

통사(通史)와 분류사(分類史)

6차교육과정에서 배웠던 국사 교과서는 통사였고 7차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국사 교과서는 분류사입니다.
6차(통사)에서는 시대별로 단원이 나뉘어져서 삼국시대 안에 삼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고려시대 안에 고려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이 시대별로 묶어져 있었는데 7차(분류사)는 정치사,경제사,대외관계사,사회사,문화사로 단원을 나눠져서 정치사 안에서 고대의 정치, 중세의 정치, 조선의 정치를 배우고, 경제,사회, 문화 역시 그 안에서 시대별 세부 내용을 배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통사는 선사시대,고대,중세,근세..등으로 시대별 구분이 되어있고, 분류사는 경제사,대외관계사,문화사,사회사,정치사 등 영역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분류사는 주제에 따라 변화과정을 연결하면서 배우기 때문에 흥미를 유발하기 좋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책이 상호 연결되는 주제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주제를 재미있게 드러내기 쉽고, 학생들은 쉽고 재미있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반면, 통사는 시기나 큰 주제에 초점을 맞춘 서술 방법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추적하는데 유효합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iN mugirg 님 글)

책)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한국사



<남경태의 역사 오딧세이 3부작>
남경태, 종횡무진 동양사, 그린비, 1998.
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그린비, 1999.
남경태, 종횡무진 한국사(상,하), 그린비, 2001.

각각의 역사를 통사 형식으로, 그 흐름을 한눈으로 읽을 수 있게 구성된 역사책이다. 통사는 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 또는 그렇게 쓴 역사라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이렇게 통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가는 형식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장점이 있다. 특히 이 책처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사책에서 어울리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필연적 요인으로서 지정학적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서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정치체제와 사상이 발전한 이유를 들 수 있다. 동양에서는 지리적으로 중심이 있을 수 있었고 서양에서는 중심이 있기 힘든 지형이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수직적인 정치사상이 발전하였으며 계속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역사였고, 서양에서는 수평적인 사상과 함께 지방분권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사건들을 큰 흐름의 표출로써 설명하는데,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필연성을 가정한다. 여기에서 그 큰 흐름이나 필연성을 자연 과학의 가설이나 법칙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러한 가설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더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히면 우연적인 요인으로써, 각 역사적 배경에서 등장하는 인물들(특히 지도자들)과 전쟁의 승패 결과가 있는 것 같다.

연장선상의 이야기인데, 책에서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그 배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오지만, 직접적 계기는 우연한 작은 사건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264년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메시나가 시라쿠사와의 다툼으로 로마 원로원에 SOS를 치지 않았다면 포에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원후 303년 서진의 사마영이 흉노 족장 유연을 팔왕의 난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중국의 남북조시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계기들이 없었다 해도 기원전 3세기에 로마는 어차피 지중해 세계를 통일했을 테고 기원후 4세기에 중국은 오랜 분열기로 접어들었겠지만, 어쨌든 계기로만 보면 지극히 사소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그 계기를 만든 자들은 그런 결과가 빚어질지 미처 몰랐으리라는 이야기다. [종횡무진 한국사(상) pp. 344]
저자의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 역사학계에서 정설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으나,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거의 독립적으로 발전했던 각각의 문명 사이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이나 발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제자백가가 발생하던 시기나 고대그리스에서 고전 철학이 성립하던 시기, 18세기의 서양의 백과전서와 청나라의 고금도서집성, 사고전서 등의 백과사전 편찬,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일본 막부의 성립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 책과 같은 통사적인 역사 서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인 것 같다. 이러한 사실들도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 뿐일까.

이 책의 특징으로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민족(사람) 중심이 아닌 어떤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한민족이 살았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고 유목적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 동감한다.

나는 이 책을 서양사 - 동양사 - 한국사의 순서로 읽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현대는 서양사의 세계로 전 세계가 통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서양에 흡수되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봐도 무리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서양 역사 발전의 연속선상에서 전 세계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하나의 문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동양과 서양은 별개의 문명이라 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처럼 각각에 대해 통사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동양사, 특히 중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인만큼 동양사를 먼저 읽고, 연속적으로 한국사를 읽는 것이 좋았었다.

여기에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역사는, 가까이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지 못한 사대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여기서도 역사의 필연적 원인으로서의 지정학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왕조교체나 분열 등의 환경에 따라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끼쳤음을 말하고 있다(멀게는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 모두).

특히 직접적으로 현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에 대해서는 수직적 중화주의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왕이 아닌) 사대부들이 지배한 사회라 말하고 있다(오히려 근대 유럽처럼 절대왕정의 시기가 있었다면 더 바람직하게 발전했을 거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학자-관료라는 개념과 당쟁, 사화 등이 사대부들이 지배하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 사육신이나 연산군도 겉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사대부의 지배가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대부, 성리학 중심의 조선에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 한족의 왕국이 멸망하자, 소중화주의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상까지 생겨, 그 후 역사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말하고 있다.

또한 국난이 생길 때마다 항상 도망가는데 급급했던 지배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병자호란, 임진왜란, 가까이는 6.25 때까지). 그리고 해방 후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이승만, 김일성: 잘못된 역사의식과 비정상적인 권력욕을 가진) 지금 분단의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고 있다. 이는 혁명을 통해 모순을 없애지 못한 우리나라의 한계이지만, 각 국민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을 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고 있다.

2007년 6월 14일 목요일

스크랩) 공부의 내력

노땡큐) 공부의 내력
▣ 김규항 발행인

밥상에서 김건이 말했다. “빨리 5학년이 되면 좋겠어.” “왜?” “역사 공부 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 “응. 왕건이나 대조영 같은 거 너무 재미있어.” “그래, 역사는 재미있는 거야.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생각보다 재미없을 거야.” “왜?” “그건 말이야..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거든.” “역사가 아니라니?” 김건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다. “역사가 뭐지?” “응, 옛날에 있었던 사건이나 전쟁 같은 거 아냐?” “큰 사건이나 전쟁만 역사는 아니야. 우리 집에도 역사가 있고 건이에게도 역사가 있지. 여기 부러졌던 일 기억하지?” “당연하지.”

무조건 열심히…

녀석은 세 살 때 어느 날 미끄럼틀에서 놀다 다리가 부러졌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디 한 번 부러지는 거야 그리 큰일은 아니지만 그게 사건이 된 건 그러고 울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잠이 깨서 나오는 아이가 한쪽 다리를 짚지 못해 병원에 가보니 골절이라고 했다. 깁스를 하는 의사가 웃을 만큼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김건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작은 역사가 되었다.
“그게 몇 년 몇 월 며칠이었지?” “몰라.” “그럼 깁스한 병원은?” “몰라.” “의사 이름은?” “몰라, 아빤 기억해?” “아빠도 기억이 안 나.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날짜, 병원 이름, 의사 이름만 알아내선 그 사건에 대해 건이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한다면 어때?” “바보 같지.” “학교에선 그런 걸 역사라고 배워.” “정말?” “누나한테 물어봐.” “누나!” 김건은 제 누나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나는 그의 누나가 5학년 첫 시험을 준비하면서 역사 때문에 힘들어하던 걸 떠올렸다. 부여의 첫 도읍지는 어디였는지, 두 번째 도읍지는 어디였는지 따위를 외우면서 말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공부법은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다. 동양의 공부란 사람이 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지식과 깨우침이 담겼다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몇 권의 고전을 거듭 공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공부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면 동양의 공부는 지적 통찰을 체득하는 정신 수련이었다. 사방이 책으로 빼곡한 서양 학자의 서재와는 달리 동양의 학자 공부방에는 몇 권의 책만 있었다.
서양식 공부가 도입되고 아이들이 배우는 건 ‘사회적으로 합의된 몇 권의 고전’이 아니게 되고도 한참 동안 부모들은 동양식 공부법에 젖어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가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길 기대했고 요구했다. 대략 지금 아이들의 할아버지 세대까지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의 부모, 즉 우리는 청년 시절에 공부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 몰래 동아리를 지어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책들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그 공부를 통해 처음으로 벅찬 지적 희열을 느꼈다. 그 공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는 어떤 공부를 강요하는가

그런 우리는 지금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게 하는가? 우리는 오히려 공부에 대한 깨우침이 없었던 우리 부모들보다 더 한심하고 무지스럽게 아이들에게 역사 아닌 역사, 국어 아닌 국어, 수학 아닌 수학을 강요한다. 우리는 한술 더 떠 우리에게 난생처음으로 벅찬 지적 희열을 주었던 인문 사회과학 책들을 모조리 다이제스트판으로 달달 외우게 한다. ‘논술 필수 고전’이라 불리는 그 명단엔 심지어 까지 들어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이들이 진짜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20여 년을 달달 볶는 동시에 그들이 입시에서 빠져나와 처음으로 지적 희열을 느끼기 위해 보존되어야 할 지적 감수성의 부위들마저 하나하나 불로 지져 영원한 지적 불감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게 이른바 부모가 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반복하는 교육적 실천이다. 그렇게 하루의 실천을 마친 우리는 인사동이나 신촌의 지적인 카페에 둘러앉아 지적인 얼굴로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 “인문학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야” 떠들어댄다. 아, 우리는 대체 어떻게 된 인간들인가?

http://h21.hani.co.kr/section-021031000/2007/06/021031000200706070663010.html
copyright The Hankyoreh. han21@news.hani.co.kr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스크랩) [인터뷰특강] 우리나라 국사책 믿으십니까

[인터뷰특강] 우리나라 국사책 믿으십니까

[한겨레] [제3회 인터뷰 특강- 거짓말 ③]
한홍구 vs 박노자 ‘한국사의 거짓말을 논쟁하다’
주입되는 모든 것을 검토하며 ‘역사 바로보기’를 훈련하라
▣ 김종옥 7·8기 독자편집위원

특강에 오기 전에 ‘학부모 총회’를 하러 아이들 학교에 갔다. 시간이 되자 ‘국민의례’를 시작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흘러나왔다. 그 비장한 서약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미루더라도, 그 맹세가 박정희 정권 시절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치졸한 표절이라는 사실이 이미 <한겨레21>을 통해 밝혀졌건만 도대체 학부모 회의에 모여서까지 촌스런 거짓 맹세를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라는 섬뜩한 강요가 진창 속에 웅크린 부스럼두꺼비마냥 징그럽다.
해서, 기분 전환을 위해 저녁에 있을 <한겨레21> 특강을 생각해냈다. 아, 그래. 한홍구, 박노자 교수의 특강이 있지. 우리 역사 안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있는가, 역사 서술가들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가에 대해 실컷 얘기하는 신나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지.

박노자에 섭섭? 한홍구는 여럿이다?

사회를 보는 오지혜씨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들떠 있었다. 인터뷰 특강의 두 간판스타를 좌우에 거느리게 된 기쁨에 그는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청중의 열기도 뜨거워서 두 스타의 소개 인사에 환호가 터져나왔다. 정치적 지향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건 이렇게 중요한 문제다. 가족도 그 점에서는 양보가 안 된다. 박수를 치고 기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청중은 한순간 슬쩍 동지가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지혜씨는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 국민 모두가 일렬로 서서 혼나는 기분마저 든다. 귀화까지 한 한국인으로서 그렇게까지 혼내는 것이 은근히 섭섭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질문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야 뭐, 자기 자신을 야단치는, 그런 똑같은 심정으로…”라고 답했다. ‘자기 자신’이라는 표현에 감동받은 사람이 많았으리라.
이어 한홍구 교수에게는 활동 영역이 넓은 것을 지적하며 “심지어 ‘한홍구는 여럿이다’라는 말까지 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작업을 감당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예전에 박노해 시인에게도 독재정권에서 그런 의혹을 덧씌웠는데, 그때는 그가 조작된 거짓 인물인 것처럼 보이려고 억지를 쓴 것이었고 오늘 질문은 감탄이 섞인 찬사이니 세상이 변하긴 했다.) 한홍구 교수는 “물론 감당하기 어렵죠. 여기저기서 ‘빵꾸’가 나서 샙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본격적인 토론은 박노자 교수가 역사 속의 거짓말에 대해 몇 가지 주제를 정해 묻고, 그에 대해 둘이서 각자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가 준비해온 열 가지의 담론 주제를 다 소화하기에 시간은 너무도 짧아서,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서까지 진행되었음에도 할 얘기의 3분의 1도 하지 못하고 아쉽게 끝났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며 몇 대목만을 소개한다.
"역사가 과거의 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사회의 주류와 전문가 집단의 의견에 가깝고, 따라서 역사에 대한 힘있는 자의 주관, 나아가서는 거짓말이 당연한 진실로 둔갑돼 대중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를 잡으면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져 멀쩡한 사람이 눈뜬 맹인이 되는 것”이라는 ‘업계의 비밀’을 밝히면서 대담을 시작한 박노자 교수는 맨 처음 우리 국사 교과서 문제를 거론했다.

삼국은 과연 한나라였을까

박: 국정교과서의 고대 중세사 부분을 보면 고대 우리나라의 삼국이 과연 한 나라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런 의식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자기네 영토 안에서 일어난 일은 다 자기 역사라고 하는 거짓말은 근대국가에서는 다 그랬지요.
한: 최근 보면 일단 영토를 규정해놓고, 그 안에서 일어난 것을 모두 우리 역사 속에 넣으려고 합니다. 근대국가가 역사를 서술하려다 보면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를 올려잡기도 하고요. 약소국이고 어려운 시기에는 그럴 수 있지만, 이미 이 정도의 규모를 갖춘 국가에서는 그런 의도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개화기 때 얘기를 해볼까요. 박은식, 신채호 같은 분들이 당시 단군을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인정하기는 하지만, 혈통 위주의 민족주의의 탄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복왕조의 의미로 단군을 부각시키면서 군사적으로 강력한 게 긍정적으로 서술되고, 또 그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내조자에 멈추게 되지요.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말씀하셨다시피 제국주의 침략이 시작된 상황이라는 걸 빼고 신채호를 읽을 수 없지요. 그가 가진 진짜 진보성은, 당시 자신이 얼마나 시대를 성찰하고 변화시켰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패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고대사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박: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있는 이라크 독립군의 위치를 그와 똑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친일 청산을 외치면서도 한편에서는 과거 친일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습니까. 그건 모순이죠.
논의가 막 무르익을 무렵 이미 정해놓은 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박노자 교수는 준비했던 주제들을 아쉽게 건너뛰어 ‘남성 위주의 힘의 역사에서 벗어나 미래의 교과서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귀화인 등 약자와 소수자를 어떻게 기술해야 할 것인가’를 서둘러 물어야만 했다. 한홍구 교수는 전적으로 소수자 문제가 역사 속에 포함돼야 하지만 교과서에 실을 만한 수준으로 소수자의 역사가 축적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이 대목에서 박노자 교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의 다양한 측면의 자료를 복원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자의 삶를 기록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에서 많은 질문이 쏟아져 곤욕을 치른 뒤 마무리로 한홍구 교수는 역사의 거짓말을 거둬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정제된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의 눈으로 걸러서 진짜를 가려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중은 역사 속에서 무수하게 속아왔지만 이제는 속지 않을 능력, 속았지만 바로잡을 능력을 키워나가야 하며 그것이 ‘역사 바로보기’라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민중의 고통과 투쟁을 우선시하고 미래의 민중의 복지와 자율성을 지향하는 민중적 주관의 입장에서 역사를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외부에서 내게 주입하려는 모든 것을 내 입장에서 한 번 걸러보면 거짓말을 좀은 가려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리 살면 좀 피곤하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에 쫓겨 할 얘기를 너무나 많이 남기고 특강이 끝나버렸고 아쉬운 마음은 오늘도 길고 긴 팬 사인회의 줄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스타 학자와 얼굴을 맞대고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 덕에 시간이 더 길어졌고, 이에 따라 경비 아저씨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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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한겨레]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국과 일본의 많은 지성인들은 왜 그토록 ‘종교적 전제왕국’의 환상에 쉽게 빠지는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수년 전 필자가 한국의 한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유독 눈에 띈 것은 학생회관 내 어느 방에 걸려 있던 ‘하늘과 땅’이란 현수막이었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로서 결례를 무릅쓰고 들어가서 인사를 청했다. 나중에 그곳이 어떤 신흥종교에 열정을 바치는 동아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모르는 새 종교가 여기에 있구나! 새로운 발견을 한 기분으로 필자는 그 학생들을 사귀었고 그 교주를 알현하기까지 되었다.

한 교주의 빌라에서 충격을 받다

굿당들이 많은 산에 위치했던 교주의 빌라에서 필자는 그날 충격을 받았다.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에 둘러싸인 교주가 ‘말씀’을 하면 “네, 선생님!”을 연발했던 신도들의 얼굴 표정도 “문선명에게 늙은이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 식구들은 젊은 피가 많아!”와 같은 ‘교세 자랑’도 충격이었다. 지금 그 교단의 정확한 명칭도 기억할 수 없지만, 전도 유망해 보이던 학우들이 왜 그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그 교단으로 가게 만든 이유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몇 개월 뒤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어느 종말론적 선교회의 선교사와 만난 일이 있었다. 1992년 10월28일이 되면 세계사가 끝이 나고 믿는 자만이 허공으로 들려 올라갈 수 있다는 예언을 위주로 설교하는 부부 선교사였는데 그 남편은 원래 대기업의 사원이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거쳐간 사람이 갑자기 광신으로 뭉친 소집단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뒤 1992년 10월28일 시한부종말론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읽었을 때 이장림 목사에게 현혹돼 전 재산을 바치는 등 극단적인 신앙 행위를 벌인 2만여명 중 공무원·교사·기업체 간부 등 고학력 중산층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이라도 비판 정신을 가진다면 곧 허구성이 드러나는 한 개인의 종교적인 환상을 고학력자들이 어떻게 절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동아시아의 ‘중산층 신형 신흥종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는 1995년 3월20일의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이었다. 이 가스 제조의 책임을 맡은 화학 석사나 옴진리교를 위해 러시아에서 무기 구입을 한 오사카대학교 출신의 젊은 건축가,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재판을 받았음에도 꾸준히 믿었던 도쿄대학교 박사과정 출신의 인류학자 등 젊은 지성인들은 어떻게 해서 “문선명과 창가학회(創價學會·일본의 대표적인 불교적 신흥종교)의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회장이 유대인 조직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일본인들을 말살하려고 한다”는 난센스를 믿고 대량 살인을 ‘정당한 방어’로 믿게 됐는가? 물론 일본 국내의 교도들은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의 극소수에 불과하며, 영계·환생에 대한 괴설로 유명(?)한 도쿄대 법학부 출신 오가와 류호(大川隆法)의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고학력 중산층 위주의 ‘신형 신흥종교’들도 수만명 이상의 고정 신도를 모을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상당수 대학생들이 한번쯤 옴진리교·행복의 과학 유의 말세론적·유사(類似)밀교적·카리스마적 리더 숭배 중심의 ‘신형 신흥종교’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고, ‘교주 말씀’이라면 범죄까지도 서슴지 않을 만큼 ‘개인 숭배’가 태심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윗 사람에 대한 맹종문화’가 토양

아시아에서 근대적이라 할 일본이나 한국에서 어떻게 해서 지성인들까지 빨아들일 수 있는 ‘전제왕국’들이 생겨날 수 있는가? 이 현상이 동아시아 근대성의 본질적인 문제들과 연관은 없는가? 근대 초기의 ‘고전적인’ 신흥종교- 예컨대 한국의 동학이나 일본의 천리교(天理敎)와 같은 민중 본위적인 종교운동- 들이 전통 질서의 밑으로부터의 와해와 대안적 미래의 열망을 반영했다면, 기독교·불교의 요소를 종말론·환생론에 자의적으로 갖다붙이는 식의 1970년대 이후의 ‘신형 신흥종교’들은 근대의 무엇을 반영하는 것인가? 일본이 제도적으로는 근대화됐지만 근대성의 기본 요소인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을 끝내 가져보지 못했다는 전후 일본의 진보적 사상계의 주역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96)의 뼈아픈 지적을 보자. 서구에서는 주체적인 개인의 탄생이 이루어졌다는 마사오의 의견에 그대로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도 아직도 끝까지 탈피하지 못한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메이지 모델’이 주체적 개인의 탄생을 극단적으로 방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설교문 테이프를 수시로 듣고, 옴진리교 소유의 공장에 가서 무보수로 일하고, 교주의 명령이 떨어지면 ‘배교자’들을 납치·살인을 했던 옴진리교 신도들의 행동 양식은 우리로서 끔찍할 뿐이고 이장림 목사 유의 ‘교주’들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은 바보로 보인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계 서열적인 폭력·착취, 패거리 집단 안에서의 ‘윗사람’에 대한 맹종이 과연 한국·일본 사회에서 드문 일인가? 물론 체육학과 교수의 지시에 따라 성적을 못 올린 후배에게 주먹질을 하는 선배나, 내용상 관계가 없더라도 자신의 논문의 제1주에서 꼭 지도교수의 글을 인용하는 대학원생도 ‘교주’의 의심 모를 하수인이 되려면 특수한 계기·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방모찌’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주류’ 사회로의 진출이 불가능한, 즉 개인과 집단의 ‘어르신’ 사이의 합리적인 횡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토양에서 ‘교주님’들이 번성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류' 집단의 물신주의·출세주의·형식주의에 질려버린 젊은 지식인으로서 늘 이탈의 동기가 존재하지만, 이탈이 곧바로 또 하나의 패거리로의 편입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악 속의 빌라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몰입하던 학우들이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이었을 듯하다. 상황을 더욱더 왜곡하는 것은 한국의 경우 일반적인 종교집단의 구조적인 문제들이고, 일본의 경우에는 전전(戰前) 민족주의의 청산의 미흡성이다. 즉, 일반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를 비판하기는커녕 평등한 상대로서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에서, 어떤 경우에는 권위주의가 지나친 일반 성직자와 사이비 ‘교주’ 사이에서 구별조차 하기 힘들다. 그리고 유대인의 지하조직과 미국, 영국의 왕실 등이 일본을 말살하려고 하고 그들과 연결돼 있는 일본의 국제적 명망가들이 다 ‘유대인’들이라는 아사하라의 가르침이나, 일본의 ‘신인류의 중심’에 놓인 수많은 ‘신형 신흥종교’의 교리는 겉으로만 과거의 국가주의를 ‘극복한’ 오늘의 일본에서 민족주의적 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린이와 어른을 동등한 인격체로

후기 산업사회의 무의미한 생산·소비의 순환에 식상하여 허무감을 종교적인 모색으로 메우려는 중산층 고학력자 젊은이들의 고뇌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중심부나 준주변부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리나 ‘참 나’로부터의 소외의 진정한 이유인 자본주의적 체제의 기본 문제들이 무시되고 담론의 구조가 전적으로 종교적 차원만으로 전환되는 한 이 모색이 생산적 ‘소외 극복’으로 되지 못하고 기존의 구조로 계속 회귀된다. 다만, 서구·미국의 경우에는 요가나 불교, 탄트라(성적 요소가 강한 힌두교적·불교적 밀교) 등이 결국 일종의 ‘종교적 소비품’으로 전락되어 핵화된 소비주의자들의 입맛에 단순히 맞추어지는 반면에, 소외라는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가 집단주의·자율적 개성의 미발달과 중첩되는 한국·일본 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라는 위계질서적 구조를 벗어나게 하는 개체들이 곧 전체주의적 성격이 훨씬 강한 ‘비주류’ 교단으로 몰입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양쪽의 근대화 과정이 달랐던 만큼 자본주의의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擬似) 탈주’의 구조도 다른 것이다.

물론 종교적 모색이 시장 논리에 편입된 구미 지역을 흠모할 일은 없지만 개인이 집단 속에서 용해되는 만큼 극단적인 폭력이 저질러질 가능성이 있는 동아시아형 ‘신형 신흥종교’들의 문제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린이와 어른이 기본적으로 동등한 인격체로서 취급됨으로써 개인으로서의 독립심과 자긍심을 길러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참고 사이트 1. 옴진리교 관련 사이트 링크의 모음: http://square.millto.net/~sacca/
2. 옴진리교의 후신 단체인 ‘알레프’의 사이트: http://www.aleph.to/
3. 아사하라 ‘예언집’의 일부. ‘일미 결전(決戰)’을 예언하는 것은 태평양전쟁 시대의 세계관을 방불케 한다: http://www.geocities.co.jp/WallStreet/1733/aum/seppou-1.html
4. 이탈자 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영생교’라는 한 신흥종교의 사이트. 그 교주 조희성이 “전지전능한 구원자”로 불렸다: http://www.victor.or.kr/
5. 옴진리교에 대한 영문 정리와 영문 링크 모음 :
http://religiousmovements.lib.virginia.edu/nrms/aum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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