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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3일 금요일

책)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남경태,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황소걸음, 2001

20세기의 사상들을 간단히 정리한 책.

예전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이하 굴뚝청소부)'을 읽고나서 이런 류의 책은 이제 그만 읽고, 이제부터는 한 사람의 생각에 대한 책들을 읽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우선 철학과 굴뚝청소부란 책이 너무 잘 쓰여져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도 철학자와 그 사람의 철학에 대해 소개한 책들을 몇 권 읽어봤는데, 대개 각 장에서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 그 사람이 말한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불만은 그 사람의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너무 피상적인 것 같았고, 그래서 너무 간단하게 다뤄지다보니 이해가 어려웠다. (거의 다 번역서였는데 어쩌면 번역에서 오는 한계일 수도 있다. 추측하기에는 일반인들에게 풀어쓴 책이라면 당연히 쉽게 썼을테지만 번역하는 도중에 다시 어려워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굴뚝청소부는 사람의 생애보다는 철학에 대해 자세한 정도를 적당하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되니 재미도 있고, 각 사상에 대해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한 눈에 읽는 현대철학(이하 현대철학)'은 사실 남경태라는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굴뚝청소부와 비교해보면 솔직히 굴뚝청소부가 더 마음에 든다. 이 책 역시 앞에 말한 다른 책들처럼 한 사람당 9~12쪽 정도의 한정된 분량 안에서 소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 (31명, 장은 30개)을 소개할 수 있었지만 깊이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분량으로도 뭔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사상을 이해하기엔 좀... 그래서 다른 책들도 찾아가고 그러면서 읽었다. 그래도 이 책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책 뿐만 아니라 이런 종류의 책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장점이지만, 어떠한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부터 시작해서 주로 20세기에 활동한 사람들의 사상을 정리해서 한 번에 쭉 읽다보니 어렴풋하게나마 책 제목처럼 현대철학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소위 철학자 뿐만 아니라 과학자, 의사 등의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같이 소개함으로써, 철학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의 업적들이 사상에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나 알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20세기 사상의 흐름을 한 단어로 나타내보라면 나는 '구조주의'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인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각 개인의 행동이나 생각은 언어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회 속에서 결국 규정하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인간은 언어에 기반하여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언어 자체나 언어가 생성, 사용되는 사회의 구조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주체, 그리고 주체가 외부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생각함에 있어서 주체가 속해 있는 구조(무엇이 됐든)를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에서도 나오지만, 이 구조 자체도 사람들에 의해 (물론 개인은 아니지만), 아니면 사람들의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변화되어진다. 결국 역사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대개의 구조주의의 분석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구조 자체를 기반으로 주체를 해석하기 때문에, 구조를 시불변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류의 초기부터 그러한 구조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결국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 것과 밀접한 관계를 있을 수 밖에 없다. 초기 원시적인 형태의 구조 틀안에서 사람들이 사고하고, 또 그 사고들이 모여서 구조가 변화가 되고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지금의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또한 구조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사람의 인식 또한 역사성을 가지는 것일까?

여튼 앞으로는 이제 각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 우선 머리 덜 아픈 책 좀 읽고.

2007년 7월 8일 일요일

현대물리학이 탐색하는 신의 마음 4장, 5장

[현대물리학이 탐색하는 신의 마음 4장, 5장]
    - 세계(자연)의 수학적 본질
    - 수학의 특성(기계론적)
    - 논증 불가한 논리, 계산 불가한 숫자
    - 계산기계를 통한 구현
    - 라이프 게임을 통한 구현
    - 시뮬레이트와 현실의 차: 시간의 비가역성, 하지만 이론적으로 구현 가능, 결국 차이 없음
    - pp171 그 내부의 인간에게는 그 세계가 칸트의 물자체, 경험주의 입장에서 그 이상은 알 수 없음
    - 알고리즘의 압축가능성, 법칙, 카오스
    - 계산 불가한 수 오메가와 종교들의 秘傳: 진리를 담고 있으며 믿음으로 이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그냥 단어를 나열하는 식으로 정리해봤다. 언젠가 다시 읽을 때 도움이 되겠지. 여튼 중요한 것은 시뮬레이트 내의 이성이 존재한다면, 그 이성에게 있어서는 시뮬레이트 내의 신호, 정보(전기 신호든 뭐든)가 소위 칸트의 물자체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시뮬레이트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왠지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난다.)

마찬가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 그러니 그 이상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물자체라는 개념을 가정하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냐, 없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으로 갈리는데 하물며...

2007년 6월 25일 월요일

초끈이론

[우주의 구조]

초끈이론의 전개를 보면서 과거의 천동설과 지동설이 생각났다. 천동설 또한 나름대로 천체의 운동을 잘 설명했으나 지동설보다 불필요하게 복잡했고, 결국 지동설이 맞음이 증명됐다. 초끈이론 또한 뭔가 불필요하게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컴의 면도날). 진실은 달리 있는게 아닐까, 아직 알아내지 못했던가. 수학이나 물리학의 대가들이 느끼고 말하는 '수학적 아름다움'이 초끈이론에도 있는지.

또 한가지, 과학이 철학화되어감을 느꼈다. 둘 다 결국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을 가지고 현실 - 우리가 감각하는 - 을 설명한다.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자연과학과 종교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아르눌프 지텔만)]
끝부분에 자연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삶의 방향제시로서의 종교의 역할로써 끝맺음을 한다. 자연과학이 또 하나의 형이상학인 종교에 미치는 영향, 즉 그 자체로는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형이상학이 그와 어긋나거나 동떨어져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얘기한다. 유물론적 관점이다.
그런데 철학과 종교의 관계는 무엇일까.

철학의 의의

위대한 사상들도 결국 검증, 증명할 수 없기에 아무 의미없는 소리로 취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인 과학의 한계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 특성상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어떻게'이지 '왜'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없다. 그 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결국 철학이 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새로운 과학이론이 이전의 사실들과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철학 또한 과학, 즉 우리가 감각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07년 6월 11일 월요일

존재의 분류

"하틀은 서로 다른 여러 법칙들이 주어진 일련의 데이터에 부합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가 발견한 법칙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신의마음p117)"

책의 저자는 법칙의 발견을 주장하지만, 위 인용구는 발명을 말하고 있다. 여튼 이런 논의는 먼저 존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크게 오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존재와 간접적인 존재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간접적인 존재에는 개념적인 존재와 가상적인 존재가 있다. 개념적은 공통된 성질로서 인간이 찾아내는 것이고, 가상적은 직접적과 같으나 오감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이다. 직접적과 가상적은 객관적 존재로 묶을 수 있는데 이는 인간과는 별개로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유물론적 가정 하에서 정의)

직접적존재

가상적존재

개념적존재

인간과 별도로 존재

아니오

인간이 감지 가능

아니오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