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태의 역사 오딧세이 3부작>
남경태, 종횡무진 동양사, 그린비, 1998.
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그린비, 1999.
남경태, 종횡무진 한국사(상,하), 그린비, 2001.
각각의 역사를 통사 형식으로, 그 흐름을 한눈으로 읽을 수 있게 구성된 역사책이다. 통사는 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 기술의 양식, 또는 그렇게 쓴 역사라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이렇게 통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가는 형식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장점이 있다. 특히 이 책처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사책에서 어울리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필연적 요인으로서 지정학적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서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정치체제와 사상이 발전한 이유를 들 수 있다. 동양에서는 지리적으로 중심이 있을 수 있었고 서양에서는 중심이 있기 힘든 지형이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수직적인 정치사상이 발전하였으며 계속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역사였고, 서양에서는 수평적인 사상과 함께 지방분권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사건들을 큰 흐름의 표출로써 설명하는데,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필연성을 가정한다. 여기에서 그 큰 흐름이나 필연성을 자연 과학의 가설이나 법칙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러한 가설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더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히면 우연적인 요인으로써, 각 역사적 배경에서 등장하는 인물들(특히 지도자들)과 전쟁의 승패 결과가 있는 것 같다.
연장선상의 이야기인데, 책에서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그 배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오지만, 직접적 계기는 우연한 작은 사건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264년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메시나가 시라쿠사와의 다툼으로 로마 원로원에 SOS를 치지 않았다면 포에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원후 303년 서진의 사마영이 흉노 족장 유연을 팔왕의 난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중국의 남북조시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계기들이 없었다 해도 기원전 3세기에 로마는 어차피 지중해 세계를 통일했을 테고 기원후 4세기에 중국은 오랜 분열기로 접어들었겠지만, 어쨌든 계기로만 보면 지극히 사소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그 계기를 만든 자들은 그런 결과가 빚어질지 미처 몰랐으리라는 이야기다. [종횡무진 한국사(상) pp. 344]저자의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 역사학계에서 정설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으나,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거의 독립적으로 발전했던 각각의 문명 사이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이나 발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제자백가가 발생하던 시기나 고대그리스에서 고전 철학이 성립하던 시기, 18세기의 서양의 백과전서와 청나라의 고금도서집성, 사고전서 등의 백과사전 편찬,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일본 막부의 성립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 책과 같은 통사적인 역사 서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인 것 같다. 이러한 사실들도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 뿐일까.
이 책의 특징으로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민족(사람) 중심이 아닌 어떤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한민족이 살았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인 것이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고 유목적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 동감한다.
나는 이 책을 서양사 - 동양사 - 한국사의 순서로 읽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현대는 서양사의 세계로 전 세계가 통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서양에 흡수되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봐도 무리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서양 역사 발전의 연속선상에서 전 세계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하나의 문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동양과 서양은 별개의 문명이라 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처럼 각각에 대해 통사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동양사, 특히 중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인만큼 동양사를 먼저 읽고, 연속적으로 한국사를 읽는 것이 좋았었다.
여기에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역사는, 가까이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지 못한 사대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여기서도 역사의 필연적 원인으로서의 지정학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왕조교체나 분열 등의 환경에 따라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끼쳤음을 말하고 있다(멀게는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 모두).
특히 직접적으로 현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에 대해서는 수직적 중화주의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왕이 아닌) 사대부들이 지배한 사회라 말하고 있다(오히려 근대 유럽처럼 절대왕정의 시기가 있었다면 더 바람직하게 발전했을 거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학자-관료라는 개념과 당쟁, 사화 등이 사대부들이 지배하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 사육신이나 연산군도 겉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사대부의 지배가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대부, 성리학 중심의 조선에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 한족의 왕국이 멸망하자, 소중화주의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상까지 생겨, 그 후 역사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말하고 있다.
또한 국난이 생길 때마다 항상 도망가는데 급급했던 지배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병자호란, 임진왜란, 가까이는 6.25 때까지). 그리고 해방 후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이승만, 김일성: 잘못된 역사의식과 비정상적인 권력욕을 가진) 지금 분단의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고 있다. 이는 혁명을 통해 모순을 없애지 못한 우리나라의 한계이지만, 각 국민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을 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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