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스크랩)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교주님과 근대성의 역학!

[한겨레]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국과 일본의 많은 지성인들은 왜 그토록 ‘종교적 전제왕국’의 환상에 쉽게 빠지는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수년 전 필자가 한국의 한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유독 눈에 띈 것은 학생회관 내 어느 방에 걸려 있던 ‘하늘과 땅’이란 현수막이었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로서 결례를 무릅쓰고 들어가서 인사를 청했다. 나중에 그곳이 어떤 신흥종교에 열정을 바치는 동아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모르는 새 종교가 여기에 있구나! 새로운 발견을 한 기분으로 필자는 그 학생들을 사귀었고 그 교주를 알현하기까지 되었다.

한 교주의 빌라에서 충격을 받다

굿당들이 많은 산에 위치했던 교주의 빌라에서 필자는 그날 충격을 받았다.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에 둘러싸인 교주가 ‘말씀’을 하면 “네, 선생님!”을 연발했던 신도들의 얼굴 표정도 “문선명에게 늙은이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 식구들은 젊은 피가 많아!”와 같은 ‘교세 자랑’도 충격이었다. 지금 그 교단의 정확한 명칭도 기억할 수 없지만, 전도 유망해 보이던 학우들이 왜 그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그 교단으로 가게 만든 이유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몇 개월 뒤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어느 종말론적 선교회의 선교사와 만난 일이 있었다. 1992년 10월28일이 되면 세계사가 끝이 나고 믿는 자만이 허공으로 들려 올라갈 수 있다는 예언을 위주로 설교하는 부부 선교사였는데 그 남편은 원래 대기업의 사원이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거쳐간 사람이 갑자기 광신으로 뭉친 소집단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뒤 1992년 10월28일 시한부종말론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읽었을 때 이장림 목사에게 현혹돼 전 재산을 바치는 등 극단적인 신앙 행위를 벌인 2만여명 중 공무원·교사·기업체 간부 등 고학력 중산층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이라도 비판 정신을 가진다면 곧 허구성이 드러나는 한 개인의 종교적인 환상을 고학력자들이 어떻게 절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동아시아의 ‘중산층 신형 신흥종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는 1995년 3월20일의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이었다. 이 가스 제조의 책임을 맡은 화학 석사나 옴진리교를 위해 러시아에서 무기 구입을 한 오사카대학교 출신의 젊은 건축가,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재판을 받았음에도 꾸준히 믿었던 도쿄대학교 박사과정 출신의 인류학자 등 젊은 지성인들은 어떻게 해서 “문선명과 창가학회(創價學會·일본의 대표적인 불교적 신흥종교)의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회장이 유대인 조직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일본인들을 말살하려고 한다”는 난센스를 믿고 대량 살인을 ‘정당한 방어’로 믿게 됐는가? 물론 일본 국내의 교도들은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의 극소수에 불과하며, 영계·환생에 대한 괴설로 유명(?)한 도쿄대 법학부 출신 오가와 류호(大川隆法)의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고학력 중산층 위주의 ‘신형 신흥종교’들도 수만명 이상의 고정 신도를 모을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상당수 대학생들이 한번쯤 옴진리교·행복의 과학 유의 말세론적·유사(類似)밀교적·카리스마적 리더 숭배 중심의 ‘신형 신흥종교’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고, ‘교주 말씀’이라면 범죄까지도 서슴지 않을 만큼 ‘개인 숭배’가 태심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윗 사람에 대한 맹종문화’가 토양

아시아에서 근대적이라 할 일본이나 한국에서 어떻게 해서 지성인들까지 빨아들일 수 있는 ‘전제왕국’들이 생겨날 수 있는가? 이 현상이 동아시아 근대성의 본질적인 문제들과 연관은 없는가? 근대 초기의 ‘고전적인’ 신흥종교- 예컨대 한국의 동학이나 일본의 천리교(天理敎)와 같은 민중 본위적인 종교운동- 들이 전통 질서의 밑으로부터의 와해와 대안적 미래의 열망을 반영했다면, 기독교·불교의 요소를 종말론·환생론에 자의적으로 갖다붙이는 식의 1970년대 이후의 ‘신형 신흥종교’들은 근대의 무엇을 반영하는 것인가? 일본이 제도적으로는 근대화됐지만 근대성의 기본 요소인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을 끝내 가져보지 못했다는 전후 일본의 진보적 사상계의 주역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96)의 뼈아픈 지적을 보자. 서구에서는 주체적인 개인의 탄생이 이루어졌다는 마사오의 의견에 그대로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도 아직도 끝까지 탈피하지 못한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메이지 모델’이 주체적 개인의 탄생을 극단적으로 방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설교문 테이프를 수시로 듣고, 옴진리교 소유의 공장에 가서 무보수로 일하고, 교주의 명령이 떨어지면 ‘배교자’들을 납치·살인을 했던 옴진리교 신도들의 행동 양식은 우리로서 끔찍할 뿐이고 이장림 목사 유의 ‘교주’들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은 바보로 보인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계 서열적인 폭력·착취, 패거리 집단 안에서의 ‘윗사람’에 대한 맹종이 과연 한국·일본 사회에서 드문 일인가? 물론 체육학과 교수의 지시에 따라 성적을 못 올린 후배에게 주먹질을 하는 선배나, 내용상 관계가 없더라도 자신의 논문의 제1주에서 꼭 지도교수의 글을 인용하는 대학원생도 ‘교주’의 의심 모를 하수인이 되려면 특수한 계기·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방모찌’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주류’ 사회로의 진출이 불가능한, 즉 개인과 집단의 ‘어르신’ 사이의 합리적인 횡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토양에서 ‘교주님’들이 번성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류' 집단의 물신주의·출세주의·형식주의에 질려버린 젊은 지식인으로서 늘 이탈의 동기가 존재하지만, 이탈이 곧바로 또 하나의 패거리로의 편입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악 속의 빌라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몰입하던 학우들이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이었을 듯하다. 상황을 더욱더 왜곡하는 것은 한국의 경우 일반적인 종교집단의 구조적인 문제들이고, 일본의 경우에는 전전(戰前) 민족주의의 청산의 미흡성이다. 즉, 일반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를 비판하기는커녕 평등한 상대로서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에서, 어떤 경우에는 권위주의가 지나친 일반 성직자와 사이비 ‘교주’ 사이에서 구별조차 하기 힘들다. 그리고 유대인의 지하조직과 미국, 영국의 왕실 등이 일본을 말살하려고 하고 그들과 연결돼 있는 일본의 국제적 명망가들이 다 ‘유대인’들이라는 아사하라의 가르침이나, 일본의 ‘신인류의 중심’에 놓인 수많은 ‘신형 신흥종교’의 교리는 겉으로만 과거의 국가주의를 ‘극복한’ 오늘의 일본에서 민족주의적 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린이와 어른을 동등한 인격체로

후기 산업사회의 무의미한 생산·소비의 순환에 식상하여 허무감을 종교적인 모색으로 메우려는 중산층 고학력자 젊은이들의 고뇌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중심부나 준주변부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리나 ‘참 나’로부터의 소외의 진정한 이유인 자본주의적 체제의 기본 문제들이 무시되고 담론의 구조가 전적으로 종교적 차원만으로 전환되는 한 이 모색이 생산적 ‘소외 극복’으로 되지 못하고 기존의 구조로 계속 회귀된다. 다만, 서구·미국의 경우에는 요가나 불교, 탄트라(성적 요소가 강한 힌두교적·불교적 밀교) 등이 결국 일종의 ‘종교적 소비품’으로 전락되어 핵화된 소비주의자들의 입맛에 단순히 맞추어지는 반면에, 소외라는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가 집단주의·자율적 개성의 미발달과 중첩되는 한국·일본 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라는 위계질서적 구조를 벗어나게 하는 개체들이 곧 전체주의적 성격이 훨씬 강한 ‘비주류’ 교단으로 몰입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양쪽의 근대화 과정이 달랐던 만큼 자본주의의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擬似) 탈주’의 구조도 다른 것이다.

물론 종교적 모색이 시장 논리에 편입된 구미 지역을 흠모할 일은 없지만 개인이 집단 속에서 용해되는 만큼 극단적인 폭력이 저질러질 가능성이 있는 동아시아형 ‘신형 신흥종교’들의 문제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린이와 어른이 기본적으로 동등한 인격체로서 취급됨으로써 개인으로서의 독립심과 자긍심을 길러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참고 사이트 1. 옴진리교 관련 사이트 링크의 모음: http://square.millto.net/~sacca/
2. 옴진리교의 후신 단체인 ‘알레프’의 사이트: http://www.aleph.to/
3. 아사하라 ‘예언집’의 일부. ‘일미 결전(決戰)’을 예언하는 것은 태평양전쟁 시대의 세계관을 방불케 한다: http://www.geocities.co.jp/WallStreet/1733/aum/seppou-1.html
4. 이탈자 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영생교’라는 한 신흥종교의 사이트. 그 교주 조희성이 “전지전능한 구원자”로 불렸다: http://www.victor.or.kr/
5. 옴진리교에 대한 영문 정리와 영문 링크 모음 :
http://religiousmovements.lib.virginia.edu/nrms/aum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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