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1일 목요일

책) 소오강호 (笑傲江湖)

김용 (박영창 역), 소오강호(전 8권), 중원문화사.

유명한 김용(金庸)이 쓴 무협소설 중 한 작품으로, 김용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예전 임청하, 이연걸 주연의 영화 '동방불패(東方不敗)'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제는 정파(正派)와 사파(邪派)란 무엇인가, 그 구별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가 아닐까 싶다. 김용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권력에 대한 욕심이라든지 겉으로만 군자인 척 하는 것 등 다양한 인간 본성에 대한 묘사가 좀 더 자세한 것 같다.

내용은 화산파(華山派)의 수제자인 영호충(令狐沖)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임씨 집안에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무공비급 규화보전(葵花寶典)을 둘러싸고 정파와 사파 양측에서 암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능력부족으로 긴 내용을 적당한 분량으로 줄여쓰지 못해 이 정도로만 생략. 혹시 안 읽어보신 분은 읽어보셔도 후회 안할 거라고 보장. 그만큼 대중성 있음).

김용 소설 중에서 소오강호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 영호충 때문이다. 영호충은 우선 허우대 좋고 얼굴도 잘 생긴 편인, 겉보기에서는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보다 유쾌하고 여유있는 말솜씨, 더구나 두려운 것이 없는 듯한 말투는 자칫 그를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정파의 가르침 그대로를 따르는 마음과 행동이라 하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겉보기에는 약간 천박해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충심으로 신의를 지키며, 남녀 간의 관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며 희롱하거나 가벼운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욕심이나 야망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이용하지 않으며, 강자의 위협에 결코 굴하지 않는다. 참, 술을 매우 좋아하고 잘 마신다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술에 약한 나로서는 부럽다).

정리하면 겉으로는 가볍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말그대로 교과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군자검(君子劍)의 별호를 가진 스승 악불군의 위군자(僞君子)적인 행동과 대비된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중에서는 역사를 다룬 소설을 좋아하고(三國志, 大望 등), 또 김용의 장편소설들은 대개 중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절묘하게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시는 점이 내가 김용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소오강호에서는 중국 역사상의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시기인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저 명대 쯤일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용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무협지답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김용 작품 말고 무협지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지만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좀 더 정치적으로 얽히고 섥히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정사(正邪) 구분의 무의미함을 통해 마치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공허함을 말하는 듯 하다. 실제로 이 소설이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을 빗대어서 쓴 것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다 (정확히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또한 이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가 앞에서 말한 위군자인데, 좌냉선으로 대표되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권력 지향적인 사람에 비해, 악불군처럼 자기의 야망을 숨기고 겉으로는 초연한 척하는 위군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악불군의 본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복선이 나오기도 하지만, 거의 반전에 가깝다). 주인공 영호충은 진짜 군자이나 겉으로 봐서 그것을 쉽게 알기 어렵고, 악불군은 누가봐도 군자의 행동거지나 말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위군자인 것이다.

또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심리묘사이다. 흔히 김용의 작품 중에 남녀간의 애정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영웅문 2부로 알려져 있는 신조협려를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보다는, 소오강호에서 영호충의 사매 악영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림의 영호충에 대한 소녀와 같은 동경, 영영의 영호충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애정의 표현 등에서 더 감동을 느꼈었다 (뭐, 원래 익숙치 않은 영역이라... ㅎㅎ 제일 어려운 것은 남녀 간의 마음이로다).

이 소설은 초반에 정파의 유정풍과 마교 곡양의 음악을 통한 목숨을 뛰어넘는 우정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이 등장한다. 소설의 제목 '소오강호'는 이 두 사람이 같이 만든 음악의 제목이다 (그 뜻은 '강호를 호탕하게 비웃는다' 정도?). 그리고 소설의 결말은 정파와 마교의 또 다른 인물인 주인공 영호충과 마교 교주의 딸 영영(盈盈)이 결혼하여, 같이 소오강호를 연주하는 것이다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 이 두 장면을 통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스포일런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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