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최고 번역본을 찾아서_(10)나관중의 '삼국지연의'

김구용 譯 가장 신뢰...황석영 譯, 재미있고 정확해고전번역비평
최고 번역본을 찾아서_(10)나관중의 '삼국지연의'

2005년 09월 13일 《교수신문》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2005 Kyosu.net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처럼 출판사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책이 없는만큼, 해방 이후에만 삼국지 번역은 60종이 넘으며, 해방전까지 더한다면 그 수가 두배에 달한다. 번역종류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인하대 한국학연구소는 ‘정역류/평역류/재창작류’로 구분하는가 하면, 정원기 아시아대 교수는 ‘정역류/번안류/요시카와 에이지류(일어중역)’로 분류한다. 삼국지의 잘된 번역조건으로는 흔히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한국어 구사가 유려한가, 둘째 원본의 내용과 분위기를 잘 살렸는가, 셋째 역사내용 이해를 위한 주석이 잘 달려있는가다. 이번 취재에서는 총 10명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삼국지를 꼽아달라’라며 그에 대한 자세한 의견을 들었다.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것은 김구용 역과 황석영 역으로 정역류다. 각각 4명이 ‘최고’의 번역본으로 꼽았다. 많은 이들이 정역류를 ‘최우선’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보다 “삼국지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기 때문”. 대표적인 정역류로는 김구용·황석영·리동혁·박상률 역 정도가 있는데, 이중 김구용·황석영 역이 신뢰를 얻고 있는 것.
남민수 영남대 교수, 정원기 아시아대 교수 등이 김구용 역을 꼽는 최우선 요인은 “진지한 작업”이라는 점. 원문내용 전달에 가장 충실해 원문과 대조해가며 봐도 될 정도라는 평가다. 先 번역서들 뿐만 아니라 이후 나온 평역류들과도 확실히 차별성을 띠고 있다는 것. 게다가 삼국지는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주석이 꼭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데, 김구용 역은 주석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이어서 읽기를 돕는다는 의견들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학자의 번역이기에 작가들의 번역에 비해 “융통성이 부족한” 필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고문투가 있고 무미건조한 문체라는 것인데, 어쩌면 이는 삼국지를 ‘재밌게’ 읽으려는 독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인초 연세대 교수, 홍상훈 서울대 강사, 권순긍 세명대 교수 등은 황석영 역을 ‘최고’로 꼽는다. “원본을 최대한 살렸”으면서도 “재미있”는, 두 핵심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점 때문이다.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의 연구 프로젝트로 국내 대부분의 번역본을 비교해본 홍상훈 씨는 이전엔 김구용 역을 추천했지만, 지금은 황석영 역을 추천한다고 한다. 홍 씨가 삼국지를 보는 최우선 요소는 ‘재미의 여부’다. 그는 “정확성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황석영은 원문도 잘 살리면서 특유의 필력을 발휘해 읽는 재미가 있다”라며 김구용 역과 구분짓는다. 전인초 교수가 황석영 역을 추천하는 이유는 “어차피 전문가 번역이 없는 마당에, 황석영 씨는 전문가의 자문과 지도를 적절히 받았기 때문에 신뢰가 간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황석영 역은 이미 일간지에서 논쟁을 몇 번 거쳤듯이 미해결된 쟁점요소들이 잠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판본문제를 재차 제기하고 있는 것이 정원기 교수다. 정 교수는 “유창한 한국어 구사능력에도 불구하고 연변본과의 유사성은 마음에 걸린다”라며 ‘순수성’을 문제삼는다.

장정일 역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비교적 최근 것임에도 3명의 추천을 받아 그 인기를 실감하겠지만, 전문가들 중 몇몇은 새로운 시도에 고개를 젓는다. 우선 추천되는 이유는 기존 번역과는 달리 ‘완전한 재창작’이라는 차별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창헌 교수는 “이문열 평역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여성차별적인 관점들을 고려해 독자층을 넓힌 장정일 역은 다른 평역본들과도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라고 평가한다. 홍상훈 씨는 “필력은 이문열 역이 낫지만, 객관성 면에선 장정일 역을 신뢰한다”라며 둘을 비교·평가한다.
이는 “정사 삼국지와 비교해가며 나름의 현실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해석을 시도했다”는 서동훈 대구미래대 교수의 평과 통한다. 하지만 장정일 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삼국지번역은 중화주의·남성중심주의 일색”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선 “혼동일 따름”이라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홍상훈 씨는 “삼국지를 고전으로 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텍스트로 대할 것인가를 구분해야 한다”라면서 “단지 비판적 안목을 키우면 될 뿐인지 외국의 고전을 두고 중화중심주의라는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라고 덧붙인다.
장정일 역이 “너무 주관적”이라며 비판하는 의견들도 많다. 장 씨가 내세운 ‘창조적·자주적 해석’이라는 것은 자칫 이데올로기적 냄새를 풍길 수 있다는 게 정원기 교수의 비판이다. 또 이등연 전남대 교수도 “너무 주관적인 해석이 강해 삼국지라 보기에는 가당찮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성실성’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남민수 영남대 교수는 “68회 분만 비교해봐도 상당한 내용이 삭제됐다”라며 “현대적 감각에 맞지 않아 삭제했다면 할말 없지만 원본에 대한 불성실한 번역이다”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재창작류는 작가의 창의성이란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작 훼손이라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정치학자로서 삼국지 마니아라 할 수 있는 신복룡 건국대 교수는 단연 박태원(최영해) 역을 최고로 꼽는다. “가장 정확하고, 원전에 가장 충실하며 번역자의 작위적인 글이 가급적 절제되어 있어 삼국지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라는 것. 구문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삼국지를 읽는 데 전혀 흠이 안된다는 견해다.
박종화 역도 한표를 얻었다. 남민수 영남대 교수는 “한문을 좀 안다면 박종화 역이 볼만하다”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원전에 충실하다는 김구용 역과 비교해 봐도 원문전달에 큰 하자가 없으며, 역사소설가로서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원문 중의 긴 대화를 자의적으로 나누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 문학의 멋을 가장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 외 김광렬 외 역, 황병국 역, 이문열 역도 각각 한명에게 추천을 받았다.
국내 삼국지 번역은 전문가 번역이 없어 대부분 문제를 지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문열 역이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신복룡 교수는 “이문열 역은 소설을 다시 쓴 것이지 삼국지라 할 수 없다”라며 비판한다. 오역의 문제뿐만 아니라, 유비가 아닌 조조를 중심에 둔 것은 삼국지의 내용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견해다. 남민수 영남대 교수는 “작가의 개입이 지나치고 누락과 오역도 많다”라고 지적한다. 가령, 제7권 360쪽에서 “좌자가 옥에 갇히고 음식을 주지 않아도 멀쩡하게 지내자 조조가 어찌할 수 없어서 풀어주었다”(2002년판 기준)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대목은 원래 ‘曹無可奈何’의 다섯 글자로 조조가 풀어주었다는 언급은 일체 없다는 것. 이건 하나의 예에 불과할 정도로 이문열 역의 오역은 끊임없이 지적된다.
지난 7월 연변작가 출신인 리동혁 역이 나와 삼국지 출판경쟁에 불을 붙인 바 있다. 리 씨는 이미 ‘삼국지가 울고있네라는 저서를 통해 이문열 역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이인데, 그가 중국의 12원전을 아우른 이른바 ‘통일 전본’을 번역해 야심차게 내놓은 것.
하지만 이를 접한 전문가들은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정원기 교수는 “지나친 재주 때문에 오히려 기형아를 낳은 꼴”이라 말한다. 12종 원본의 특징을 아울렀다는 건 “삼국지의 판본 진화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발생한 넌센스”라는 것. 홍상훈 씨도 “오역은 최소화 했겠지만, 삼국지는 원래의 저본에 충실해야 제맛인데 12본을 모두 반영해 재미를 떨어뜨린다”라고 비판한다. 나아가 한국작가들이 중국어에 능통치 못해 오역을 저지르는 것처럼, 리 씨의 한국어 구사 역시 매끄럽지 않다고.
유명작가들이 번역에 뛰어들면서 삼국지 출판붐을 과도하게 일으키는 가운데, 오역논쟁이 간간이 제기되고 있지만, 문제는 이런 지적이 반역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상훈 씨는 “리동혁 씨가 이문열 역에 대해 오역을 정확하게 지적했음에도 2002년 개정판에서 60%정도만 고쳐졌을 뿐이다”라며 “이문열·황석영 역은 독자들을 고려해 빨리 개정판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라고 주문한다.
● 추천교수 명단권순긍 세명대(국문학), 남민수 영남대(중국고전문학), 민관동 경희대(중국소설), 서동훈 대구미래대(국문학), 신복룡 건국대(정치학), 이등연 전남대(중국소설), 이창헌 명지대(고전산문), 정원기 아시아대(중문학), 전인초 연세대(중문학), 홍상훈 서울대(중문학) 이상 총 10명 가나다순.


시대를 휩쓸었던 삼국지들
2005년 09월 13일 《교수신문》이은혜 기자ⓒ2005 Kyosu.net


●박태원(정음사 刊, 1950) 월북작가인 박태원의 삼국지는 원문을 최대한 살리려 한 것이 특징으로 1950~60년대 두루 읽혔다. 고투의 문체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신뢰를 얻고 있다. 박태원본은 최영해본과 동일한데, 이에 대해 ‘작품 전편중 2/3를 박태원이 작품 말미는 최영해가 번역했다“라는 풍문이 있다. 1941년 4월~1943년 1월까지 ’신세대‘에 연재된 것을 수정·정리 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1953년 이후엔 최영해 본으로 나왔으며, 북한에서도 몇종이 간행되었다.
●김광주(창조사 刊, 1965)요시카와 에이지류 중 널리 읽힌 것으로, 120회 완역을 기본으로 하되 ‘읽기 쉽고 재밌는 번역’에 초점을 뒀다. 강조부분에 소제목을 붙였으며 매회 줄거리를 제시한다. 원문의 재구성 역시 돋보이며, 현대적인 대화투와 명쾌한 단문구사가 읽는 묘미다. 그러나 삼중당(1969) 본에서는 장비에 대한 성격묘사가 크게 바뀌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현재는 서문당(1996)에서 출간되고 있다.
●박종화(삼성 刊, 1967) 역사소설가 답게 박종화 본은 대중소설적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가령, 고통받는 백성들을 대신해 장비가 탐관오리인 독우를 지칭하는 대목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든지 여포와 초선이 등장하는 장면을 흥미를 위해 가미하는 등 원문에 없는 내용들이 곳곳에 윤색·첨가되었다. 1963년 1월 1일~1968년 5월 8일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것으로 박종화 특유의 문체와 감각의 발휘로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최근엔 대현출판사(1999)에서 나오고 있다.
●김구용 (솔 刊, 1974) 전통학문에 조예가 깊고 네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답게 내용과 문체 모두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종강 ‘삼국지연의’의 원래 모습을 가장 잘 구현한 게 특징이다. 다만 ‘무미건조함’이나 ‘지루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솔출판사에서 개정판(2000, 2003)이 나온 이래 현대독자들에게도 친근하게 읽히고 있다.
●정비석(광희문화사 刊, 1975)자유부인’, ‘소설 손자병법’으로 이름을 떨친 대중작가답게 삼국지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았다. 일본 요시카와 판본을 토대로 재창작 했다. 전체적인 체례와 본문의 내용을 약간씩 다듬었으며, 각권의 제목도 우리말로 풀어놓았다. 문장도 현대적이라 ‘정비석 판본 현대 변형판’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은행나무출판사에서 6판(2004)까지 나왔다.
●이문열(민음사 刊, 1988)모종강 본을 바탕으로 해설과 평을 곁들인 최초의 評譯류라 할 수 있다. 1983년 10월~1988년 1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걸 묵어냈다.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삼국지도 큰 성공을 거뒀는데, 대학입시 논술고사의 필독서로 공고되면서 1권의 경우 총 1백 쇄를 발행했을 정도로 역대 출판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문열 본의 힘은 거대출판사의 광고전략과 작가의 명성, 나아가 평론가들의 맹목적인 떠받듦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들이 제기되어 왔다.
●황석영(창비 刊, 2004)‘장길산’, ‘객지’ 등을 통해 유려하고 장쾌한 글솜씨를 보여줬던 실력을 삼국지로 옮겼다. 1999년 샹하이 강소고적출판사에서 나온 ‘수상삼국연의’를 기반으로 했으며, 원문의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체를 최대한 살리되 중요한 전투장면 등에는 박진감 넘치는 묘사를 덧붙인 게 특징. “민중문학의 좌장격으로서 작가 특유의 의식이 들어가지 않아 아쉽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김구용의 뒤를 잇는 정역류라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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