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1일 목요일

누가 싸이에게 돌을 던지랴?

재입대의 악몽을 꾸었다.

탁현민 기자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회 구석구석 물렁물렁한 곳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유독 준엄한 구석이 하나 있으니 바로 병역문제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징병의 나라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병역문제는 어떤 사건, 사고 보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누구든 비위의 대상으로 선정되는 순간 거의 '아작'이 난다.

군대 가는 것을 가슴 벅찬 신성한 병역의 의무라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고, 다들 제대하면 오줌도 그쪽으로 안 싼다고 이를 박박 갈면서 제대하고, 제대해서 몇 년 동안 잊지 않고 불러 모으는 예비군 훈련이 지겨워 죽겠는게 대부분의 남자들이다.

그렇게 가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군대이건만, 누가 어찌어찌해서 면제라거나, 공익으로 빠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군대 안 갔다 오면 남자도 아니라느니,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느니, 애국심이 없다느니,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까닭을 참 모르겠다.

끌려갔다온 사람들이 안 간 사람들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면제받거나 대체복무를 하게 된 사람들이 제대로 조국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못 가진 것이 안쓰러워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 가수 싸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검찰에서는 그가 애초의 대체복무 분야와 다른 일을 했고 그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고, 네티즌과 일반 여론은 모범을 보여야 할 연예인이 어떻게든 군대를 안 가려고 꼼수를 썼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괘씸하다는 것인이다. 군대 갔다 왔고, 가기 싫은 예비군도 다녀왔고, 이제 민방위 3년차에 접어든 입장에서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싸이에게 '다시 군대 가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아니 '일빵빵' 주특기 받고 '60미리' 메고 뛰어 다닐 수도 있는 일이고, 소총수로 왔다가 행정병으로 확 풀려 버릴 수도 있는 곳이 군대 아니었나? 제대로 근무를 안 했다는 것도, 그래 군대라는 곳이 풀리면 다행이고 꼬이면 에라 어떻게든 돌아가는 게 국방부 시계라고 믿으며 2년 2개월(지금은 2년인가) '뺑이 치는 곳' 아니었는가 말이다.

업무를 게을리 했다는 검찰의 엄숙한 발표는 그래, 솔직히 좀 뜨끔했다. 군대 있을 때 업무를 게을리 한 것이 문제라면 나도 어쩌면 다시 군대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상병 때까지는 병장 눈치 보여 그럭저럭 열심히 하는 '척' 했지만 병장 달면서부터는 어떻게든 짱 박히려 노력 했고, 제대를 앞두고는 '아. 세상에 가장 편한 것은 육군 병장 말 호봉'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업무 태도가 불량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나도 참 할 말이 없다.

그래 물론 이 나라에서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이 모두 나나 싸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은 한다. 정말 병역의무를 신성하게 생각하고, 하루하루 '충성'하며 열심히 생활하다 온 사람들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가기 싫고,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가서 그래도 적당히 사고치지 않고 시간 채워 나왔다면 그도 최소한의 의무는 다한 것이다. 아마도 주특기대로 복무하지 않았다고 땡땡이 쳤다고 다시 군대 가라면 아마도 다시 가야할 사람 적지 않을 것이고 기준이 그렇다면 병역비리수사는 전국적으로, 전 방위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네티즌과 여론의 감정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다. 나 역시 돌아서면 네티즌이고 여론의 한 부분이니 솔직히 "싸이, 그냥 제대로 갔다 오지 꼼수 쓰다가 잘 걸렸다"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근데 그게 솔직히 고백하자면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싸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거나 그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행해야할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방기했기 때문에 분노해서는 아니더라.

누구는 '뺑이' 치고 삼년 썩었는데(사실 2년 2개월인데 왜들 꼭 삼년이라는지 모르겠다. 나도 마찬가지고) 누구는 군대 안가고 편하게(사실 편한지 아닌지도 잘 모르지만) 있으면서 그마저도 제대로 안했다니까 부아가 치밀어서 그런 것이었다.

글쎄, 내가 군대 있을 땐 '대체복무'라는 것이 없어서 그게 그렇게 편하고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이해하기에는 대체복무도 군대처럼 다 하기 싫고, 가기 싫은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하면서, 군대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게끔 만들어진 제도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대체복무'중에 제대로 일했느냐? 아니냐? 는 과정 중에 물어야 할 책임이지 제대, 아니 소집해제, 아니 퇴사? 여하튼 끝난 마당에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제대한지 10년도 넘은 내게 검찰이든 헌병대든 찾아와 '너 93년 복무 중에 사역 나간다고 하고서 PX에서 짱 박혔던 적 있지?' 조사하면 이런 젠장 나도 군대 다시 가야 되는 것이냐?

-- 덧붙히는 글
분명히 이런 분들 계실 것 같아 미리 말해두는데
싸이와는 반면식도 없는 사이다. 당연히 뭐 하나도 받아먹은 것 없다.
군대는, 열심히는 안했지만 여하튼 다들 그렇듯이 제대로 제대 했다.
애국심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은? 죄송스럽지만 그다지... 어쩌랴 먹고살기 고달픈데.

출처: 오마이뉴스 2007-06-21 08:54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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