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가’로 연구평가의 형평성 맞춰야
최근 서울시와 울산시, 그리고 행정자치부가 무능하고 불성실한 공무원 퇴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에서도 연구원 퇴출을 둘러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대전의 한 출연연에 근무해 온 A연구원은 6월말까지만 출근한다.
그는 ‘삼진아웃제’에 의해 퇴출되는 것이다. 삼진아웃제란 △연구비 수주실적 △특허∙논문 출원 △기술이전 수입 등을 근거로 한 개인역량 평가에서 3년 연속 하위 평점을 받은 연구원은 기관과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해당 기관을 떠나는 제도다. A연구원은 지난 3년간 하위 평점을 받은 것에 대해 사유서를 준비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연구원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용지물’이던 출연연 퇴출제
(▲ 최근 바이오 분야에서 근무하던 출연연의 한 연구원이 ‘삼진아웃제’에 의해 기관을 떠날 예정이다. ⓒ동아사이언스)
출연연의 연구원 퇴출제는 갑자기 생겨난 제도가 아니다. 대부분의 출연연은 퇴출에 대한 자체 규정이 있으나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을 뿐이다. 가령 2년 연속 최하위 점수를 받은 연구원은 적성과 전공을 최대한 고려해 다른 연구팀으로 옮기거나 뒤쳐진 기술을 만회하도록 해외연수를 가기도 한다. 심지어 모 출연연의 관계자는 “3년 연속 하위 5%에 들더라도 한 차례 기회를 더 준다”고 밝혔다. 이처럼 실적이 부진해도 연구소를 떠나는 이가 드물어 삼진아웃제는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출연연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한국화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4~5년 전부터 연구성과가 아닌 연구비 수주실적으로 평가가 강화되면서 훌륭한 연구를 해놓고도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IMF 사태 이후 비정규직 연구원이 많아지고 연봉제가 도입되면서 연구원에 대한 평가가 강화된 때문이다. 또한 연구비 취득이 개인평가 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거나 특허를 출원해도 해당 연구비의 금액이 적으면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1996년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연구과제중심제도’(PBS, Project Based System) 시행이 이런 문제를 불러왔다고 지적하는 연구원도 있다. 10년 넘게 근무한 출연연의 한 책임연구원은 “연구과제 수주에 매달리다보니 ‘보따리 장사’라 불린다”며 “인건비의 40%까지만 정부가 대주고 나머지는 연구원이 직접 수주 받은 연구과제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기관에서도 연구비 확보를 평가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PBS보다는 ‘상대평가’가 문제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과거 절대평가를 할 때는 퇴출 연구원에 대한 평가결과에 다른 연구원들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며 “현재 연구원을 S∙A∙B∙C∙D등급별 강제 배분하는 상대평가는 오히려 연구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팀의 속한 연구원의 실적이 모두 높을 경우에도 일정 비율은 낮은 등급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밥벌이 얼마나 했나”가 평가기준?
조성재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회장은 “연구원이 생산해야할 본질적 가치는 ‘연구성과’”라며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인 ‘돈’으로 평가되는 현실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시 말해 연구에 집중해야 할 연구원에게 “네 밥벌이 얼마나 했냐”고 따진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 대덕의 밤은 깊지만 출연연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의 열정은 환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조 회장은 “5~10년 전에는 우수한 평가를 받던 연구원의 연구분야가 사회적 필요성이 떨어진다면 최근 3년간 연구과제를 수주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이런 논리라면 지금 잘 나가는 연구원도 언제든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공공기술연구회 산하의 한 연구원은 “연구과제의 액수가 작고 학문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적은 기초과학을 탐구하는 전공자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적은 연구비로 과제를 수행해 ‘사이언스’나 ‘네이처’, ‘셀’ 같은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알려진 생약의 효과를 재검증하거나 양약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상의학의 과학화를 추구하는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선 다른 분야의 평가잣대로 다룰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기술개발 속도가 빠른 IT분야에선 45세가 넘으면 자기발전에 한계를 느낀다”며 “연구 분야별 특성을 반영해 평가하거나 적성과 능력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출연연의 연구원들은 내부경쟁을 해야 조직이 발전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의 미래도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즉 현재의 ‘퇴출제’에 적극 찬성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변호사는 자식에게 자신의 직업을 권할 수 있어도 과학자는 그럴 수 없다”며 “과학자가 연구에 전념한 만큼 보상받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 적당히 연구하는 문화도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2007-06-19 오후 5: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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